전 서울시장이시며 미래한국신문을 창간하셨던 고 김상철 장로님과 나의 첫 대화는 그분의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묻겠습니다. 누구신지요? 오늘 이 글을 스크랩해 두었습니다.
중국의 양안정상회담 문제와 토지권에 대한 글은 자료가치가 큽니다.
계속 좋은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꼭 10년 전이었던 2003년 2월 14일 나는 "중국 역사에 대한 무지 드러낸 도올의 대북비밀송금 합리화"이란 제목의 글을 썼었고(http://cafe.daum.net/futurekorealab/Dx2s/428), 이 글을 올리자마자 김 장로님이 나에게 물으신 질문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고 김상철 장로님은 2003년 종북 좌파와의 싸움을 시작하신 첫 지도자들 중 한 분이셨다. 김 장로님은 미래한국신문 창간 및 북한인권 등 큰 일들을 많이 하셨으나, 위대한 발자취 중 하나가 애국운동을 위한 카페를 처음 개설하신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의 김기보 기자가 앙마라는 아이디를 쓰며 자작극으로 반미촛불시위를 큰 규모로 일으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을 때 인터넷에는 제야의 종 울릴 때 백만 명을 촛불시위에 동원하면 2003년 김정일이 통일대통령 될 수 있다는 글들이 꽉 차 있었다. 김정일이 영변의 핵 인봉을 떼고 노무현 당선 선물로 동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였을 때 청소년들과 20대는 김정일 세력이었다. 그래서 김기보 기자의 자작극을 폭로하며 촛불시위를 막아야 했고, 논객 활동을 시작하여야 했다. 그때는 다음 카페를 한총련과 노사모 등 종북세력이 완전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때 김상철 미래한국신문 사장님께서 '미래한국연구회'라는 이름의 카페를 개설하셨고(http://cafe.daum.net/futurekorealab), 최영은 기자가 미래소녀라는 이름으로 카페 운영자였는데, 김상철 사장님도 카페를 키우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다. 그때 이 카페를 키워야 했던 이유는 학생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국운동의 첫 구심점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운영자가 없어 카페 운영이 중단되었지만 역사학도도 김성욱 기자도 이필재 기자도 모두 이 카페 출신이며, 김성욱 기자 등 이 카페에서 알게 된 여러 애국 동지들이 고 김상철 장로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며 미래한국에 기여하시고 있다. 지난 12월 중순 박근혜 후보 당선의 기쁜 소식을 이 땅에서 듣지 못하고 소천하신 고 김상철 장로님을 추모하여 마지않는다. 이 어른처럼 좋은 애국운동의 본을 보이신 분이 대한민국에 계셨다는 것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고 김상철 장로님이 육신으로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 미래한국을 위한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미래한국을 위한 구국운동은 2013년에 더욱 새로이 힘차게 지속되어야 한다.
2013년 1월 30일 역사학도
고 김상철 장로님 추모 관련기사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