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INF 조약 서명국 안 했다는 이유로 아무 제약없이 핵무기 증강
미국의 INFT 파기...北의 핵포기 진정성 확인 계기 될 수도
지난 10월 20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거리핵폐기조약(INF Treaty)의 탈퇴를 예고했다. 1987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서명한 이 조약은 사거리 500~5,500km의 모든 중거리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발사 그리고 배치를 금지한 역사적인 핵군비통제 조약이었다. 이 조약이 ‘역사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45년 미국을 필두로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 중국(1964) 등이 핵을 보유하고 이후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가세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에는 모두 아홉 개의 핵보유국이 있지만, 핵군비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결과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을 금지한 핵무기비확산조약(1970 NPT), 지하핵실험 이외의 모든 핵실험을 금지한 부분핵실험금지조약(1963 PTBT) 등을 포함한 많은 핵군비통제조약들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냉전시절 동안 핵무기의 95% 이상을 미국과 소련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는 미소 간의 핵군축에 주목했었고 미소가 제1차 전략핵무기제한협정(1972 SALT-Ⅰ)을 체결했을 때 크게 환호했다.
‘역사적인 핵군비통제’로 평가받은 INFT
하지만 SALT-Ⅰ 협정은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즉, 기존의 핵무기를 철폐하거나 감축한 것이 아니라 양적 상한선을 정한 것이어서 그 상한선까지 전략핵무기가 증강되었고, 상한선 이내에서 핵무기의 성능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종류의 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수직적 핵확산(Vertical Proliferation) 또는 질적 핵경쟁(Technological Nuclear Arms Race)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핵탄두 숫자를 제한한 것이 아니고 미사일, 잠수함 등 투발수단의 숫자를 제한 것이어서 미국과 소련은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개의 핵탄두를 탑재하는 독립비행 다탄두 체제(MIRV)의 개발에 나섰다. 이는 하나의 미사일로 여러 개의 목표들을 타격하는 가공할 공격무기로서 상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선제 핵공격을 통해 초기에 제거해야 하는 무기체계이다. 전문가들이 다탄두 핵미사일을 ‘핵전쟁을 유발하기 쉬운 불안정성 무기(destabilizing weapon)’라는 악명을 붙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카터-브레즈네프 간에 제2차 전략핵무기제한협정(SALT-Ⅱ, 1979)이 체결되어 전략핵 투발수단을 2,250개 씩으로 한정하고 다탄두용 미사일의 숫자를 제한하는 등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성능에 제약을 가했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전략핵무기를 허용한데다가 핵무기의 양(量)과 질(質)을 동시에 검증·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미소 양국은 협정의 규제대상이 아닌 전술핵무기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다. 그 결과, SALT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1986년에는 양국의 핵탄두 숫자가 7만여 개에 이르렀다. 물론, 이후에도 1991년 미소의 전술핵 철수, 후속 전략핵감축조약(1991 START, 2011 New START) 등으로 오늘날 세계의 핵무기는 1만 5000개 수준으로 줄었지만,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지구에는 종말무기들(doomsday weapons)이 너무 많으며, 그동안의 핵군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강국들에게 천사의 옷을 입혀줄 수는 없다.
이런 핵군비통제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INFT는 특정 종류의 핵병기를 전면 폐기한 최초의 조약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나토(NATO) 동맹국들에 배치했던 퍼싱(Pershing-I,II), 핵탑재 토마호크 등을 폐기했고, 소련 역시 바르샤와 조약국들에 배치한 SS-4, SS-4, SS-12, SS-20, SSC-X-4 등을 폐기했다. 이로써 유럽에서의 냉전의 열기는 진정되었고, 이후 유럽의 냉전종식,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붕괴, 독일 통일, 소련연방 해체 등이 이어졌다. 이렇듯 INFT는 냉전종식을 가져온 명실공히 이정표적이고 ‘획기적인 핵군비통제조약(landmark nuclear arms control treaty)’이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러시아의 조약위배
미국이 이런 INF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나선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INF 조약을 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 이후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및 크리미아 합병 등을 통해 미러 간 신냉전 기류를 형성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06년 사거리 500km의 이스칸데르(Iskander) 미사일을 배치했고, 2016년에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위치한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에 이 미사일을 배치하여 서유럽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2017년에는 사거리 2000km의 순항미사일 SSC-8을 실전 배치하고 2018년에는 핵추진 순항미사일 킨잘, 핵추진 수중드론, 차세대 대륙간탄도탄 등 신개념 핵무기들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 킨잘은 사거리 2000km의 전형적인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INFT 위배를 방치하면서 미국만이 조약을 준수하는 것은 당치 않다고 선언한 것이다.
핵강국 반열에 들어선 중국
두 번째 배경은 중국이다. 1987년 당시 중국은 걸음마 수준의 핵보유국이어서 미국이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 등 공인 연구기관들은 중국의 핵탄두가 수백 개 수준인 것으로 추정하지만, 전문가들의 추정치는 2,000~3,000개에 달한다. 중국의 주력 지상발사 핵미사일인 DF(東風) 시리즈 중 대륙간탄도탄인 DF-31과 DF-31A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사거리가 2,000~5,500km인 중거리핵미사일들이며, 잠수함발사 JL-1도 사거리 2,000km인 중거리핵무기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신냉전의 주역이면서도 INF 조약의 서명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약없이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INFT 파기를 통해 중국에게도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셋째, 북한과 이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여섯 차례의 핵실험과 함께 시험 발사해온 노동, 무수단, 북극성, 화성-12호 등도 중거리 핵투발수단들이다. 이란은 2015년 서방 7개국과 맺은 포괄적행동계획(JCPOA)에 서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할 불충분한 합의로 비난하자 이란은 2017년 사거리 2,000km의 호람샤르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미국은 2018년 5월 이란과의 합의를 파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이에 2018년 11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재개했다. 요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INFT를 준수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소국가들까지 중거리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INFT의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기 선언 다음날인 10월 21일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코프 외무장관과 INFT의 서명 당사자인 고르바쵸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탈퇴를 만류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다음날(10.22~23) 모스크바를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탈퇴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에서의 함의
미국이 끝내 INFT에서 조약 관련 사태는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약의 파기로 신냉전이 격화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대미 견제를 위해 북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할 것이며, 북핵 협상에서 북한의 태도는 더욱 완강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어 핵대화가 파탄된다면 북핵 문제는 종전보다 더 나쁜 상태로 복귀할 수 있으며, 한반도 사태는 중거리핵을 둘러싼 새로운 핵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의 INFT 파기는 북한의 핵포기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진정 새로운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열어 가기를 원한다면 더욱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비핵화에 성실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에게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매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