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로마클럽의 세계 계획 : 기술의 발전의 종지부를 찍다
1996년, 나는 서로 정보를 나누는 동료로부터 아나톨 라파포트(Anat-ol rappaport)
박사를 만나보라는 말을 들었다.
박사가 발표한 논문에는 행정부가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지는 내용이 있었다.
박사는 논문에서 NASA의 우주계획은 그 유용성을 잃었으므로
이제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파포트는 NASA의 우주계획을 즉시 폐기하라는 주장이 깔려있는 논문 사본을 기꺼이 내게 건네주었다.
NASA의 많은 과학자들은 미국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들이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로켓에 대해 제조부터 추진에 이르기까지 청중에게 열심히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라파포트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장래의 우주과학자가 되려고 결심한 세대는 2000년이 되면 일자리가 없어서
'남아도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라파포트의 NASA에 관한 신상보고서가 로마 클럽에 의해 NATO에 제출되자 300인 위원회는 곧 행동을 지시했다.
과격한 반 NASA 운동 때문에 비난받은 NATO-로마 클럽의
고관들은
할랜드 클리블랜드(Harland Cleveland), 조지프 슬레이터(Joseph Slater),
클레이본 펠 (Claiborne Pell), 월터 레비(Walter J. Levy),
조지 맥기(George McGhee), 윌리엄 워츠(William watts),
로버트 스트라우스 휴프(Rpbert Strausz-Hupe, 미국의 NATO 대사),
도널드 레시(Donald Lesh) 등이었다.
1967년 5월, 북대서양회의(North Atlantic Assembly)의 과학기술위원회
(Scientific and Technoligical Committee)와 외교정책연구소가 회의를 주최했다.
'대서양의 불균형과 협력'이라고 불린
이 회의는 프랑스 도빌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 소유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열렸다.
도빌에서 열린 회의의 기본 목적과 의도는 미국의 기술과 공업 발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한 권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ognew Brzezinski)의
[테크노트로닉 시대 Tecbnotron Era]이며, 다른 한 권은 회의의 의장인
아우렐리오 페체이가 쓴 [깊어진 단절 The Cbasm Abead]이었다.
페체이는 브레진스키와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덧붙인 것은 장래에
단일정부가 다스리지 않는다면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는 말이었다.
이 점에서 페체이는 소련이 'NATO와 손을 잡을' 필요가 있으며, 그러면 미국과 함께 신세계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은 장래의 '위기 관리와 세계계획의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로마클럽의 첫 번째 '세계계획 계약'은 300인 위원회의 주요 연구소인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보내졌다.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or)와 데니스 메도스(Dennis Meadows)가 그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들의 보고서는 어떤 내용인가? 그것은 맬서스(Malrhus)와 프리드리히 폰 하예크(Friedrich von Hayek)의 이론, 말하자면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통적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40. 로마클럽의 핵융합과 제3세계를 비판
포레스터-메도스의 보고서는 완전히 사기였다.
그들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인간에겐 발명의 재능이 있어서 자원의 '부족'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았다.
300인 위원회가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는 핵융합 에너지는 잘 응용하면 천연자원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핵융합은 이를테면 1평방마일의 평범한 바위에서 4년 동안의 전력 수요에 쓸 알루미늄을 끌어낼 수 있다.
페체이는 집요하게 국민국가를 비난하며 그것이 인류의 발전에 얼마나 피괴적인 존재인지 모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단 책임'을 요구했다.
민족주의에 대해 인류를 좀먹는 암적 존재라고 말한 것은 페체이의 중요한 연설 주제였다.
그의 가까운 친구인 어빈 라즐로(Ervin Lazlo)는
1997년에 같은 내용으로 로마클럽의 연구에서 이정표가 될 [인류의 목표Goals of ManRind]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공업의 확대와 도시의 성장부터 끝까지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 시기에 연락을 맡았던 키신저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를 대표하여 모스크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글로벌 모델링Global Modeling>지는
키신저의 크렘린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정보를 나누었다.
제3세계와 관련하여 로마 클럽의 할랜드클리블랜드가 마련한 보고서의 내용은 냉소의 극치였다.
그 당시 클리블랜드는 NATO의 미국 대사였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제3세계에서 어떤 민족을 말살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페체이는 나중에 (클리블랜드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주요 3국과 블록의 모순된 정책으로 인해 깨어지고 여기저기 땜질한 현재의 국제경제 질서는 이음매가 터질 게 분명하다.
누구를 구해야 할지 선별하는 것은 정말 냉혹한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태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이런 결정을 내릴 권리를 몇몇 국가에만 맡길 수 없다.
그러면 세계적 규모의 기근에 괴로워할 사람들을 지배할 무시무시한 힘을 그들 국가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사하라 이남의 국가들에게서 증명되듯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굶겨 죽이려는 300인 위원회의 정책이었다.
이것은 최악의 냉소주의로, 300인 위원회는 아프리카 사람들로부터 삶과 죽음을 그들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이미 빼앗았으며
페체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에 [성장의 한계Limits of Growth]라는 책을 써서 그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페체이는 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철저히 배척하고 그 대신 단일세계정부 아래 로마 클럽과 NATO가 세계를 지배할 것을 주장했다.
천연자원은 세계계획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 국민국가는 로마 클럽의 지배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정글에 법칙에 의해 먹고 먹히는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매도스와 포레스터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를 대신하여 최초의 '시험적 사례'로
1937년의 중동전쟁을 꾸몄다.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은 앞으로 세계계획 입안자들이 관리하고,
그것은 곧 300인 위원회에 의해 통제 된다는 것을 의미함을 전세계에 분명히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41. 미국 지배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는 페체이,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호머 벌뮤터(Homer Perlmutter), 알렉산더 킹(Alexander King) 박사등과의 회담을 요구했다.
런던 회의에 따라 페체이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대통령과 각료들을 만난 뒤, 국무부를 찾아 국무장관과 정보기관, 국가정책계획위원회와 회담했다.
이같이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300인 위원회의 미국에 대한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흔히 듣는 "왜 미국 정부는 로마 클럽이 국내에서 파괴적인 활동을 하도록 허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볼커의 금융정책은 영국 재무 장관이며 300인 위원회의 회원인 재프리 하우(Geoffrey Howe)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는 어떻게 영국이 1812년 영미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미국을 조종하고 300인 위원회의 정책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 나라를 지배했는지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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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매주 수요일에 올려야 되는데 추석이라 바빠 미리 올립니다 나쁜놈들 많은 시청과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