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나날
최형심
달팽이는 말한다. 새와 나무 사이에 걸린 문장이 사라진다면 당신을 잊어도 될까. 달팽이는 말한다. 왜 날짜 지난 신문 가까이 앉으면 배가 고플까. 달팽이는 말한다. 두 개의 모자를 쓰면 꽃이 될 수 있을까. 너는 말한다. 사라진 발과 사라진 손과 사라진 머리카락과 사라진 발가락에 대하여.
껍데기를 제거한 달팽이 48마리,
파슬리 2묶음, 마늘 3쪽, 아몬드가루 100g, 버터 150g, 펜넬 뿌리 2개, 처빌 1다발, 쪽파 1다발, 쑥 1다발, 올리브 오일 100ml, 라임 1개, 크랜베리 20g, 소금과 후추 약간
붉은 피로 빚은 짐승은 왜 지난여름 나에게 오지 않았을까. 도마에 젖은 손을 대면 입술만 남은 여자를 만질 수 있을까. 페루를 가본 적 없는 사람과 폐를 나누어 줄 수 없는 사람과 눈동자 아래 빗방울의 표정을 그려 넣은 사람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말할 수 없었다.
소금과 후추와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들……
다시는 태어나지 마라. 달팽이는 말한다. 왜 머리 위에 수평선을 그린 뒤부터 숨을 쉴 수 없을까. 온몸이 입술인 사람이 죽은 나무에 엎드려있다. 가장 낮은 몸이 그늘을 밀어내고 있다.
젖은 등 위에 놓인 공중이 한 뼘이 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