貂蟬(초선)
초선은
정사는 물론 소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에도 등장하는 여인이다.
한말의 대신
王允(왕윤)이 董卓(동탁)과 呂布(여포)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동탁에게 쓴 미인계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왕윤은
동탁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동탁에게는 1만 명의 군사로도
대적하기 힘든 용맹한 여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왕윤은
미녀 초선을 동탁에게 헌사 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했다.
이렇게 초선은
두 사람을 이간질하는데 성공했고
동탁 은 제거되었다.
이런 계략이
성공한 뒤에 초선은 달에게 왕윤의
무사기원을 빌었다.
그런데 때마침
구름이 달을 가렸고 왕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어버렸구나’라고 했다.
여기서
‘달이 숨다’라는 閉月(폐월)이라는 말이
초선의 대명사 가 되었다.
왕윤의 미인계는
이렇게 성공했지만 초선에게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관우는
‘이 여자는 화근덩어리이니 살려둔다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여 초선은 죽음을 맞 게 된다.
그런데 정사
≪삼국지≫에는 초선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동탁의 ‘시비’라고만 되어 있다.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布與卓侍婢私通)’는
대목이 그것이다.
여 기서
‘초선’이라는 이름은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 또는
누군가에 의해 각색되어 삽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비의 본명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따라서 초선은 실존하기는
했지만 초선이라는 이름은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동탁의 시비는
초선으로 가정되는데 정사 ≪삼국지≫와 그녀에 관한
기록들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초선은
황제가 바뀐 뒤에도 궁에 남았으므로 후궁이
아닌 일반 궁녀였고,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실제로는 초선을 표현하는 말이었던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릴’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목민족이었던
여포는 전장에 오래 있었고, 유목민족은 미모보다는 건강을 우선시하므로
그녀가 건강미인이었을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초선은
미모를 가졌겠지만, 중국의 4대 미인에 들 만큼의
경국지색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초선은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모습처럼
유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 지연의≫에서
그녀는 동탁 소유의 시비로서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일을
‘죽을 죄라고 자복 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여포와 사랑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벌인 일 아닌가?
이는 여포도
마찬가지로 초선과는 서로 진정 사랑한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선은
동탁과는 정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탁의 애첩이었다면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것까지 피해서 여포와
정을 통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초선은
자유 연애를 실천한 정열적인 여인으로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고대 중국의 경국지색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았다.
중국에는
위에서 예로 든 미녀들 가운데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를 4대 미녀로 꼽아왔다.
물론 초선의 경우는
옛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외모보다 건강미가
돋보이는 미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후 세의 사람들은 나라를 기울게 한 책임을 이 미녀들에게 돌리고
나라를 기울게 한 미색(경국지색)이라며 그녀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도 맞지 않을뿐더러
남성들의 편견이 다분히 작용한 것이다.
통치계급이 된
여성들이 포악 한 황제와 더불어 수많은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일조한 적도 있지만
원래 이들은
황제의 노리개이자 피착취자로
출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나라를
기울게 한 책임은 전적으로 황음무도 한 황제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출처] 貂蟬(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