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son | Club | Games | Goal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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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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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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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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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31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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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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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3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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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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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27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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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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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32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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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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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33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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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
![]() |
Manchester United | 36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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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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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25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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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
![]() |
Manchester United | 31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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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 |
![]() |
Manchester United | 30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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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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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24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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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 |
![]() |
Manchester United | 29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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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
![]() |
Manchester United | 26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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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
![]() |
Manchester United | 33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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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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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29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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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4 |
![]() |
Manchester United | 38 | 13 |
![]() |
92/93 |
![]() |
Manchester United | 41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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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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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38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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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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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 2 | 1 |
긱스는 맨유의 살아있는 레전드이자
세계 최고의 레프트 윙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게 월드컵은 그저 꿈일 뿐이다.
그의 조국은 영국 연방의 '웨일스'이다.
한때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18세에 어머니의 조국인 웨일스를 선택했다.
이 선택으로 그는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만약 긱스가 잉글랜드 대표였다면 월드컵과 유로(EURO)에서 트로피는
브라질과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가 들어올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잉글랜드는 팀 전력에 비해 레프트 윙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2위. George Weah (Liberia)
라이베리아, 들어는 봤는가?
1966년 내전을 넘어 종족 전쟁, 수많은 난민 등등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문제 국가인 라이베리아에서
믿기 힘들 기적과도 같은 한 영웅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조지 웨아.
축구팬이라면 라이베리아는 몰라도 조지 웨아는 알 것이다.
(그래도 모른다면 한번쯤 보았을 AC밀란 유니폼을 입고 70m를 달려 골을 성공시킨
선수의 동영상을 생각해보라. 그 유명한 동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조지웨아다.)
웨아는 나라의 사정으로 인해 교육 한번 받지 못하고
순수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축구 실력을 쌓았다.
그렇기에 남다른 의지로 웨아는 축구선수가 되었고
당시 아프리카 선수로는 드물게 유럽무대에 진출하였다.
Club-statistics
Season | Club | Games | Goal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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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
![]() |
Al-Jazeera Abu Dhabi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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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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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Jazeera Abu Dhabi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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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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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ique Marseille | 19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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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
![]() |
Manchester City | 7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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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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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lsea London | 11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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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 |
![]() |
AC Milan | 1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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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 |
![]() |
AC Milan | 26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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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 |
![]() |
AC Milan | 24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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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
![]() |
AC Milan | 28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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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
![]() |
AC Milan | 26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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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 |
![]() |
Paris Saint-Germain | 34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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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4 |
![]() |
Paris Saint-Germain | 32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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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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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Saint-Germain | 30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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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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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Monaco | 34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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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1 |
![]() |
AS Monaco | 29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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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0 |
![]() |
AS Monaco | 17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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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9 |
![]() |
AS Monaco | 23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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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 |
Tonnerre Yaounde | 18 | 14 |
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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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ncible Eleven Monrovia | 23 | 24 | |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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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hty Barolle Monrovia | 10 | 7 | |
1985 |
![]() |
Bongrange Company | 2 | 1 | |
1984 |
![]() |
Young Survivors | 0 | 0 | |
1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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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Survivors | 0 | 0 | |
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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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Survivors | 0 | 0 |
웨아의 검은 질주는 아프리카가 전 세계에 전해준 신선한 충격이였다.
현재 유럽에서 흑인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웨아는 1991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의 수상자가 되었고
특히 1995년에 수상받은 올해의 유럽선수상(발롱도르)은
비유럽인 최초라는 점에서 그의 경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웨아의 조국은 역대 비운의 스타 중 가장 불운한 국가인 라이베리아이다.
그러나 웨아는 월드컵의 꿈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대표팀이라는 개념 조차 확립되지 않은 나라인 라이베리아를 이끌고
웨아는 그동안 모은 자신의 사비를 털어 선수 겸 감독을 맡게 된다.
모두가 너무 무모했지만 라이베리아는 놀랍게도 본선행 진출 성공 일보직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신은 마지막까지 그를 외면했다.
승점 단 1점차에 나이지리아에게 본선행 티켓을 내주고 만 것이다.
그렇게 웨아의 꿈을 향한 도전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1위. Alfredo Di Stefano (Argentina/Colombia/Spain)
축구의 상징과 같은 인물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국내팬들은 대부분 펠레와 마라도나를 뽑곤 한다.
그러나 유럽인과 남미인들에게 이 질문의 답에 디 스테파노가 등장한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축구의 세계화 초창기에 활약한 선수라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디 스테파노는 세계인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축구의 영웅들을 소개하는데 가장 먼저 등장한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그는 그라운드 위의 지배자이다.
디 스테파노는 경기 내내 공격, 미드필드, 수비를 넘나들며
경기장을 누볐고 모든 역할을 해내는 선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을 자랑하며 '정력가'로도 불리운다.)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디 스테파뇨는 당시의 기억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고된 농장일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여기 그의 위대함을 알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디 스테파뇨를 한 팀에 두는 순간,
당신은 22명의 선수(포지션별로 두명씩)를 데리고 경기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미구엘 무뇨스 -
엑토르 리알, 라이몽 코파, 페렌치 푸스카스 등
당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모인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디 스테파노는 '별중의 별'로 커리어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디 스테파뇨는 펠레의 뒤를 이어 FIFA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2위에 올랐다.
그리고 유서깊은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은 요한 크라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보비 찰튼이 아닌
디 스테파뇨를 '금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그렇다면 본론에 들어가 디 스테파뇨는 왜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을까?
그는 시대의 피해자였다.
Club-statistics
Season | Club | Games | Goals | ||
---|---|---|---|---|---|
6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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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anyol Barcelona | 23 | 4 | |
6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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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anyol Barcelona | 24 | 7 | |
6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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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Madrid | 24 | 11 | |
62/63 |
![]() |
Real Madrid | 13 | 12 | |
![]() |
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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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Madrid | 23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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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1 |
![]() |
Real Madrid | 23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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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0 |
![]() |
Real Madrid | 23 | 12 |
![]() |
58/59 |
![]() |
Real Madrid | 28 | 23 |
![]() |
57/58 |
![]() |
Real Madrid | 30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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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7 |
![]() |
Real Madrid | 30 | 31 |
55/56 |
![]() |
Real Madrid | 30 | 24 | |
54/55 |
![]() |
Real Madrid | 30 | 25 | |
5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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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Madrid | 28 | 27 | |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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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onarios Bogota | 0 | 0 | |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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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onarios Bogota | 24 | 19 | |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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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onarios Bogota | 34 | 32 |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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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onarios Bogota | 29 | 23 | |
![]() |
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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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onarios Bogota | 15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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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 |
![]() |
River Plate Buenos Aires | 12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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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8 |
![]() |
River Plate Buenos Aires | 23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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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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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Plate Buenos Aires | 30 | 27 |
4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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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acan Buenos Aires | 25 | 10 | |
44/45 |
![]() |
River Plate Buenos Aires | 1 | 0 | |
43/44 |
![]() |
River Plate Buenos Aires | 0 | 0 |
지금은 한번 국가대표면 영원한 국가대표로 귀화가 불가능하지만
당시 확고하지 않은 규정으로 활약하고 있는 리그의 대표팀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1946년, 세계대전으로 인해 월드컵이 치뤄지지 못했다.
1950년, 나라 사정이 어려웠던 아르헨티나는 스스로 대회참가를 거부했다.
1954년, 콜롬비아 리그에서 잠시 활약하여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유니폼을 입은
디 스테파노에게 FIFA는 그에게 스페인 대표 자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미비한 규정'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1958년, 디 스테파노의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이변을 겪고 만다.
1962년, 그의 나이 36세로 마지막 기회를 맞게 된다.
스페인은 역대 최고의 멤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디 스테파노는 대회 기간 직전에 당한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것이다.
우승후보 0순위였던 스페인은 디 스테파노의 공백으로 인해
브라질에게 패하며 쓸쓸히 짐을 쌌다.
디 스테파노는 꿈의 무대 데뷔를 눈 앞두고 마지막 최후까지 불행했다.
우리는 그들을 비운의 스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만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 선수마다 마무리가 허무했던 것은 아직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위. Ryan Giggs (Wales)
"난 웨일스 인이다. 개인적인 영광을 위해 국가를 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웨일스로 갔다."
- Ryan Giggs -
긱스는 단 한번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잉글랜드를 선택하여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한들,
웨일스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단순한 영광이 아닌 조국이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daum.net의 긱스 편 참조)
2위. George Weah (Liberia)
"당신은 돈이 부모나 친구, 조국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 George Weah -
('힘들게번 돈을 왜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여기서 소개한 3명 중 객관적으로 기량과 클래스를 따진다면 웨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긴 하다.
(웨아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라기 보단 긱스와 디 스테파노의 수준이 너무 사기 수준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조지 웨아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조지 웨아가 처음으로 유럽무대에 진출했을 때 인종차별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지 웨아는 현실의 벽에 좌절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을 수행해나가며
결국 실력과 성품으로 동료와 팀 관계자, 그리고 수많은 팬을 설득시켰다.
까만 피부 속에, 그 누구보다도 하얗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조지 웨아였다.
조지 웨아가 태어나기 전의 라이베이라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조지 웨아라는 영웅이 등장한 후 라이베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조국 라이베리아는 조지 웨아에게 도와주지 못했지만
조지 웨아는 그의 조국 라이베리아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라이베리아를 '전쟁 없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마한
2005년 라이베이라 대통령 선거에서 최종 투표에서 아쉽게 당선되진 못했지만
그의 조국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웨아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통념과는 다르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축구가 무엇보다 소중했으나, 선수 이전 온전한 인간적 가치를 깨닫고 있었던 조지 웨아다.
1위. Alfredo Di Stefano (Argentina/Colombia/Spain)
"축구의 위대함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이 이 자그마한 축구공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 Alfredo Di Stefano -
디 스테파노는 국적이 다양했다.
앞서 본 두 선수와는 조금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디 스테파노에게 애국심이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아르헨티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다르다고 한다.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에서 좀더 활약하기를 원했지만
어려운 나라 사정으로 월드컵 불참에 이어 선수 파업까지 겹쳤기에
축구선수 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국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라 조국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던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인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콜롬비아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스페인에 진출하게 되었고
스페인 대표로 월드컵에 참가하려 했지만 당시 FIFA의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규정으로 인해 시대의 피해자가 되고만 것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는
축구선수였던 디 스테파노에게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후 출전한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단 1분 조차 데뷔하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마라도나가 펠레보다 못한 선수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디 스테파뇨는 확실히 펠레보다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 Diego Maradona -
만약 디 스테파노가 월드컵에서 활약했더라면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는 펠레나 마라도나가 아닌
디 스테파노였을 것이다.
"오.. 나의 오랜 친구(축구)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축구공은 나에게 영광, 명예, 그리고 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소중한 친구 덕분에 지금 나에겐 멋진 가족과 축구를 배우는 아들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 치우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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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참고 - 베스트일레븐 (2008.8), 싸커라인 이형석 등등
축구선수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 http://blog.daum.net/chiwoopyein
(치우폐인의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시리즈 블로그)
위에서 보았던 긱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 '내 이름은 라이언 긱스,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blog.daum.net/chiwoopyein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어... 내려가면 댓글 창이...
삭제된 댓글 입니다.
2명의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요...
긱스가 잉글랜드 청대로도 뛰었군요;; ...... 안타깝넹 정말;; 잉글랜드로 갔다면.. 하악;;
조지 웨아가 그닥 떨어진다고는.....ㅡ.ㅡ;;; 뭐 디 스테파뇨가 워낙 사기캐릭이라 그렇지만요....ㅋ~
원조 흑표범 '조지웨아'
스타일이 바꼇군요
최고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에우제비오도 포포투 인터뷰에서 디 스테파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춘 선수라고 평했죠...조지웨아 긱스도 참 볼때마다 안타깝지만, 또 어떤 면으로 보면 그런 그들의 선택이 참 멋진 선수죠.
이동국도 포함좀;;;;;;;;;;;;
긱스의 눈물
웨아가 긱스한테 떨어진다라.........;;;; 디스테파뇨야 사기유닛이라고 여러번 들었고... 웨아가 긱스에 꿀릴 레베루는 전혀 아니라고 보는데...;;
네디 ㅠㅠ
조지 웨아는 선수로서도 훌륭했지만 인격적인 면도 상당히 훌륭한 사람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