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가 왜 부정되어야 하는가?
유신이라는 체제의 붑버성이나 비상식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들여다 보았지만 이번에는 왜 유신이라는 체제가,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박정희라는 군사반란자의 시대가 부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들여다 볼 일이다.
유신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군사반란자의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대략 양성우 시인의 겨울 공화국이라는 글제를 빌어서 이야기 하면 쉽게 표현될 것이다.
양시인은 75년 2월 12일 광주 YMCA가 주최한 기도회에서 자작시 겨울공화국을 낭독하고 유신체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광주여고에서 파면됐고, 이후 또 다른 저항시가 일본 월간지에 실려 국가모독죄 등으로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부르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껄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러쳐서 누군가의 발 밑에 까무러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겨울공화국....무슨 겨울이 유난히 긴 시베리아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사계절은 뚜렷한데 전혀 겨울이라는 계절외에는 다른 계절이 우리 영혼에 없었던 시대. 국민 여러분들에게 사계의 풍성함은 없고 그저 한 계절만 존재하는 시대..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은 그래서 제목이 별로다. 그때는 공화국이 아니라 일인제국,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전제국가가 아니면 朴氏왕정시대라 불러야 하는 것이라 겨울제국이 맞는 말이다. 양성우 시인은 나름대로 무척이나 인정머리가 많으신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정희에 의한 친위구테타인 유신체제는 긴급조치라는 초법적인 불법수단으로 그의 죽음까지 같이 동행하며 사고가 정지되고, 자유가 얼어붙고, 권리가 냉동이 되어버린 자칭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시대였다. 이 시대의 가혹한 폭력과 압제의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으나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막이 내려지고 봄이 와야하는 당연한 순서를 또다시 군홧발의 우렁찬 전진에 숨죽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바로 전두환과 신군부라는 정치군인들에 의한 군사반란이 또다시 세월을 격하고 등장한 것인데 이들의 등장은 출발이 약간 다를뿐 박정희의 군사반란을 그대로 답습하는 복사판이었다. 여기서 전두환등의 군사반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군사반란의 시도와 진행이 어떤 뿌리를 가지느냐를 말하려는 것이다.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의 살벌한 시대가 끝이나야 마땅하지만 軍 우월주의자들과 정치색이 짙은 박정희의 수족들은 권력의 중추를 국민에게 넘기기를 거부하고 또다시 유신만큼이나 가혹한 시대를 국민 여러분들께 강요한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이 권력이라는 기름지고 큼지막한 고깃덩이에 배가 부른 정치군인들은 절대로 국민 여러분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유신은 일개인의 권력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반인간적인 체제였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개인의 권력욕을 옆에서 보고 자란 세대에게 기꺼이 그 자리를 물려주는 관성을 가졌다는데 있다. 전두환등의 군사반란자들은 박정희의 유신통치를 분명히 보고 권력의 무한한 힘이 미치는 범위를 알았던 것이다. 총구의 힘이 얼마나 국민 여러분들을 길들이고 폭력의 힘이 얼마나 국민 여러분들을 통제하기 쉬운지를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유신은 그보다 더욱 야만적인 학살을 동반하고 말았다. 그보다 더욱 교묘한 야수를 길러낸 것이다. 유신은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막고, 억압하고 탄압했으나 새로운 반란은 한걸음 더 나가서 국민 여러분들을 때리고 죽이기를 서슴피 않았으니 나중에 배운 도적놈이 더욱 극악한 강도요 살인자로 변한 셈이다. 이것은 유신이라는 체제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유신체제가 왜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유신이라는 체제는 필연적으로 더욱 가혹한 후계자를 길러내고 그 계승자는 전보다 더욱 가혹한 독재자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국민 여러분들은 유신이라는 기묘한 체제에서 생각하거나 저항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굴종과 통제에 익숙해진 것인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유신체제를 관통하는 서슬퍼런 폭력이다.
유신체제 이후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집단주의라는 이름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중국집에 식사를 하러 갔을때 여럿이 간다면 각자가 나는 자장면, 너는 잠뽕, 저쪽은 볶음밥, 이쪽은 잡채밥...이렇게 시키면 주문받는 사람은 "통일 하시면 좋은데..." 라는 말을 한다. 한술 더해서 주문하는 일단의 무리속에서 "어지간 하면 통일하지?" 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럼 왜 음식점에 다른 메뉴를 만들어 놓았고, 음식점에 내돈 내고 식사하러 왜 갔는지에 대한 단순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으레 그런 생각은 서로간에 없고 어느새 메뉴는 두가지 이내로 통일된다.
이게 자연스럽다. 정말 자연스러운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각양각색의 맥주를 파는 곳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맥주가 이름이 걸려있기에 시켰더니 그것이 없단다. 그래서 다른 맥주를 시켰는데 그것도 없단다..옆에 있는 친구들이 "것참..대충 골라서 마시지 뭐가 그렇게 까다롭냐?" 이렇게 말한다. 이게 자연스럽다.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가?
통제의 시대는 이와같다. 굳이 통제하거나 일률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통제하고 알아서 규제한다는 것인데 거기에 개인적인 판단이나 기호는 별로 작용할 여지가 없다. 너무나 억압받은 의식이 곁에 압력이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런 것을 요구하고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데 대단히 重症의 현상이다.
국가 전체를 병영化해서 통제한 유신체제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일률적이라는 이름과 질서정연, 혹은 일사불란한 규격화된 상태의 사회였다는 점이다. 이 일사불란하고 규격화된 사회는 통제하기가 쉬울뿐 아니라 멋대로 부려먹기가 편리한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자유나 선택의 여지를 인정한다면 권력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맘대로 할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닐때 '파비안느' 라는 이름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파이 영화를 단체로 관람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돈을 걷어서 단체로 본 영화인데 1979년 12월21일 금요일 명보극장 개봉했던 100분짜리 영화로 행크 마일스톤(Hank Milestone)감독이 만든 영화다. 뭐 당시에 국민학생 관람줄가였으니 글쓴이가 그 영화를 보기에는 별로 제한은 없었던 영화였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보기위해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러갔다가 학교 선생님들에게 걸려서 혼이 난 경우도 왕왕있었다.
이것뿐 아니라 몇몇 영화는..물론 삼류 재상연관에서 두게 묶어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갔다가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걸려서 학교로 명단이 통보된 적도 있지만 느닷없이 유신체제를 이야기 하다가 무신 영화 이야기냐면 영화뿐 아니라 학생들의 교복과 두발, 교복 우측 어깨부에 새겨진 견장에 쓰여진 충성이니 반공, 멸공이니 하는 것과 경례구호인 충성, 단결등의 군대식 문화의 일반화는 통제하기 쉬운 사회를 위한 방편들이었다는 것이다.
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느냐면 개별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가 없는데 꼭 단체관람이나 그런 것이 아니면 일정부분 금지를 했는데 그것은 두발이나 구호등과 아울러서 자율을 주었을때 통제하기 어렵다는 미명보다는 분출될 에너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통제의 주체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의 세밀한 부분까지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을 들이밀고 간섭을 했던 시대가 유신체제라는 것이다.
자장면과 영화와 두발...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손쉬운 통제와 통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라 유신체제의 이야기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것은 유신체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유신체제로 통칭되는 군사반란자들의 국민 억압하기라는 면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생채기이며 아직까지 남아있는 발칙한 수단들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요즘은 자유를 너무 많이 주니까 질서도 없고 막나가는것 아니냐..라는 말로 통제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눈이 녹으면 물이 흐르고 진땅이 되었다가 봄이 오는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눈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의 나라에서 살던 관성에 젖어서 그러는지 알 도리가없지만 확실히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것이다.
유신체제가 부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몸속에 관성적으로 남아있는 통제와 일률적인 규제의 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느끼기 째문이다. 스스로의 규율, 자기검증이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들이 유신체제로 인한 폐해라는 것이다. 비겁하고 가혹한 시대를 부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반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신체제는 반드시 부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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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퍼 간답니다. ^^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정당, 민주정치가 자리를 잡으면 박정희는 유신과 함께 '부관참시'해야합니다.. 또한 1년에 별을 2개씩 다는 진기록도 갖고 있는데 반역을 일으킨 주범이니 이등병으로 강등해야합니다.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전제국가가 아니면 朴氏왕정시대라 불러야 하는 것이라 겨울제국이 맞는 말이다...
그래도 왕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으니까 정통성이라도 있지, 박정희는 반역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일종의 강도입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갖은 악행으로 인권을 짓밟은 박정희의 행태를 정확히 기록하는 장 이라면 그의 기념관 건립을 찬성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