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딱따구리 새의 모든것을 알아보자...
슬로우 모션으로 본 나무 쪼는 딱따구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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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공지보기▶시속 2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딱따구리는 현재 지구상에 약 200여종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잘 알 듯이 그 특유의 나무를 쪼는 솜씨로 유명한 새이다. 딱따구리는 보통 나무 밑동에서부터 나선 모양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면서 나무를 쪼는데,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을 수 있도록,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특수 발톱과 받침대 역할을 할 수 있는 꽁지를 갖고 있다. 일단 나무에 매달린 채로 자리를 잡으면, 먹이를 찾기 위하여 나무를 쪼아대는데, 그 속도가 자그마치 일초에 약 15번을 쫀다고 하니, 기관단총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속도이다. 이를 위하여, 딱따구리의 머리는 총알 속도의 두배 이상의 빠르기로 움직여야 하며, 이 머리를 갑자기 멈추기 위해서는 우주로 발사되는 로케트 안의 우주 비행사가 받는 힘의 250배에 달하는 스트레스를 또한 머리에 받는다고 하니, 나무를 한번 쪼을 때마다 딱따구리의 머리가 부서져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이 같은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서 딱따구리는 부리와 머리뼈 사이에 이제까지 인류가 고안해낸 그 어느 것보다도 우수한 충격 흡수 장치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나무를 쪼는 동안 머리를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 근육을 갖고 있어, 매일 같이 수십년 동안을 나무를 쪼아대어도 뇌진탕 하나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딱따구리의 부리는 그와 같은 충격을 이길 만큼 단단할 뿐만 아니라, 부리 끝에는 끌같은 부분이 있어 나무를 쉽게 쫄 수 있게 해주며, 부리에 있는 콧구멍은 보통 다른 새와는 달리 여닫이식 문이 달려 있어 나무를 쫄 때 생겨나는 톱밥으로부터 숨이 막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일단 나무에 구멍을 내고 나면, 이제 딱따구리는 긴 혀를 내밀어 벌레를 잡아먹는데, 이 혀에는 끈끈한 액체가 발라져 있어 벌레들을 쉽게 잡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기다란 혀를 평상시에는 과연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가령 입 속에 돌돌 말아 갖고 있으면 어떨 것인가? 그러면, 아마 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긴 혀가 떨어져 나와 우리가 보기에 우스꽝스럽기도 하겠지만, 딱따구리의 입 속에는 실제로 그 혀를 넣어 둘만한 공간이 없어 이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놀랍게도 딱따구리는 이 긴 혀를 부리 밑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두개골 위로 돌려서 말아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만 이를 내밀어 사용한다고 한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파내 둥지를 짓는 아주 특별한 재주를 갖춘 친구들입니다. 딱따구리는 무엇을 고려해서 둥지를 지을까요?
까막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내는 모습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내는 모습
청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내는 모습
■ 둥지 입구의 방향과 입구의 보조 장치
어떤 나무를 보면 딱따구리의 둥지가 같은 방향으로 주르르 나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14개의 둥지가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다른 방향은 안 되고 꼭 그 방향이어야 하는 당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해 발품을 팔아 살펴보니 딱따구리가 입구의 방향을 정할 때 몇 가지 고려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둥지 입구가 주르르 한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쪽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선, 둥지의 입구는 철저하게 비가 들이치는 방향을 피하도록 정합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나무줄기에 구멍을 파서 만드는 것이므로 웬만해서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비가 한 번 들이치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바닥에는 작은 나무 부스러기가 톱밥처럼 깔려 있기 때문에 눅눅하고 습한 기운이 지속되어 어린 새들을 키우기 위한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번식이 이루어지는 봄철,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이 남풍인 지역에는 남쪽으로 입구가 향한 둥지는 없으며, 서풍인 지역 역시 서쪽으로 입구가 향한 둥지는 없습니다. 자신이 서식하는 지역에서 비가 오는 날의 주풍향은 귀신처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풍향은 주풍향일뿐입니다. 비가 오는 날 더러 다른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대비인 듯 딱따구리의 둥지는 대부분 비를 막기 위한 보조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둥지의 위치를 나뭇가지 바로 아래쪽으로 정하는 경우입니다. 나뭇가지는 우산 또는 처마의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그리고 나무의 휜 부분 안쪽으로 둥지의 위치를 정할 때도 많습니다. 이 역시 비가 둥지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둥지 입구 위쪽의 가지는 비가 올 때 우산 또는 처마의 역할을 해줍니다.
굽은 나무의 안쪽으로 입구 방향을 잡아 가능한 비를 피합니다.
또한 딱따구리는 둥지 입구를 전방이 트인 곳으로 정합니다. 그런데, 전방이 트이면 둥지가 쉽게 노출되는 단점을 떠안게 됩니다. 그러나 둥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밖에서는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으므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딱따구리는 전방이 트인 곳에 둥지를 트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는 둥지가 거의 없으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가 넉넉한 숲에 둥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숲에서도 가능한 가장자리 나무를 택하며, 입구는 숲을 등집니다. 이는 가능한 둥지로 빛이 잘 들어오게 하려는 배려와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딱따구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둥지 입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 둥지의 내부
딱따구리는 나무줄기에 입구를 내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둥지를 짓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나무줄기는 뿌리가 토양으로부터 빨아들인 물이 지나는 통로라는 점입니다. 물론 줄기를 파내는 순간 물길은 끊어지며, 물은 파내지 않은 쪽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손상된 부위인 둥지의 안쪽 벽이 눅눅해지는 것까지 피할 길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원치 않을 환경입니다.
까막딱따구리 부리에 진흙이 묻어 있습니다. 진흙은 먹고 와서 토해내 벽에 바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둥지를 지을 때 딱따구리의 부리에 진흙이 묻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둥지가 습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둥지 안쪽 벽에 바르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 진흙입니다. 진흙을 가져와서는 수도 없이 다지고 또 다져 물길을 완전히 차단합니다. 결국, 딱따구리의 둥지는 나무줄기 속에 만든 황토방인 셈입니다. 어쩌면 황토방의 시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둥지에 있는 새가 날갯짓을 하자 흙먼지가 풀풀 날립니다. 둥지 내부에 진흙이 발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 수종과 수형의 선택
딱따구리가 둥지를 짓지 못할 나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리가 단단한 딱따구리라 하더라도 일부러 딱딱한 나무를 택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실제로 재질이 무른 나무에 둥지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장 속도가 빠른 속성수가 재질이 무른 편인데 은사시나무, 미루나무와 같이 흔히 포플러라고 부르는 사시나무속의 나무와 오동나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동나무는 청딱따구리 둥지가 가장 많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종류와 관계없이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나무는 딱따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고사목은 살아 있는 나무보다 원하는 모양으로 나무를 파내기도 수월하며, 습도 조절 면에서도 유리합니다.
둥지 나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수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 곧 수형입니다. 아무리 굵기가 적당하고 무르다 하더라도 곁가지가 많은 나무에는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게다가 둥지 입구는 언제나 전방이 탁 트인 곳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보면 딱따구리는 둥지에 드나들 때 걸림이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근래 가로수로 각광을 받고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속성수로서 줄기도 시원스레 솟으며 재질이 무른 나무이지만 곁가지가 상당히 촘촘히 뻗어 있는 편입니다. 이런 형편의 메타세콰이어에는 딱따구리가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지치기를 해서 곁가지를 정리해주면 딱따구리가 둥지를 틉니다.
굵기도 적당하고 곁가지 없이 줄기가 쭉 뻗은 수형을 갖추었으며 재질이 무른 편인데도 딱따구리가 가능한 피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나무 수 대비 딱따구리 둥지의 빈도가 가장 낮은 나무입니다. 아마도 송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소나무도 고사목이 되면 애용합니다.
■ 둥지의 높이
딱따구리 둥지의 높이는 종에 따라 다르며, 같은 종이라도 편차가 크지만 5 미터 ~ 8 미터의 높이에 가장 많은 둥지가 분포합니다. 둥지를 낮게 정하면 둥지를 짓기에 알맞은 나무 두께를 확보한다는 면에서는 유리하겠지만 뱀이나 쥐를 비롯한 천적의 위협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둥지를 높게 정하면 천적을 피하기는 용이하겠으나 적당한 나무 두께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5 미터 ~ 8 미터의 높이는 이 두 가지 문제를 절충한 높이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딱따구리는 다양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둥지를 짓습니다. 절대로 아무렇게나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의 사전에 ‘아무렇게나’ 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새가 알을 품는 과정에 동행하다 보면 진지함과 간절함도 지나 경건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새는 포란(抱卵) 일정에 한 번 들어서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알을 품는 기간은 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주에서 3주 사이일 때가 가장 많습니다.
새는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알을 품는 것은 첫 알을 낳고 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알을 낳기 하루 전이나 마지막 알을 낳은 뒤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낳은 알을 거의 동시에 부화시키기 위한 전략입니다. 부화의 시기가 다르면 먼저 부화한 어린 새가 먹이를 독차지하여 늦게 부화한 새는 먹이 공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으며, 성장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집니다. 게다가 둥지를 떠나는 시기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 어린 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알을 다 낳고 알 품기에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미 새의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알이 여러 개일 경우 품 안에 있던 알은 밖으로, 밖에 있던 알을 품 안으로 가져오는 시기가 적절해야 하며, 알 하나하나도 제 때 부지런히 굴려 모든 면을 고르게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기 전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일단 알 품기에 들어서면 알에서는 발생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발생이 진행 중인 알의 온도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그 알은 생명체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새가 알을 품을 때 둥지를 비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언뜻 생각해보아도 24시간 둥지를 지키는 과정이 쉬운 일정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암컷 혼자 알을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사나흘에 한 번, 또는 하루에 한 번 정도만 기본적인 먹이활동을 위해 둥지를 비우며 둥지를 나설 때는 자신의 깃털을 뽑아 알을 잘 덮어놓고 잠시 나갔다 옵니다.
딱따구리가 알을 품는 시기에 꼭 보고 싶은 모습이 하나있었습니다. 배 부분에 생겨있을 무늬였습니다. 그런데 딱따구리 종류는 나무에 매미가 달라붙듯 나무줄기를 똑바로 보며 앉기 때문에 배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둥지로 옮겨가려 몸을 틀었을 때 딱 한 번 배를 볼 수 있었고, 배에는 털에 빠지며 생긴 무늬가 또렷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 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의 배에 털이 빠져있습니다. 알을 품기 위해 스스로 뽑은 것입니다.
■ 까막딱따구리 수컷의 부리에 털이 묻어있습니다. 자신의 배에서 털을 뽑은 흔적입니다.
■ 까막딱따구리 수컷이 배에서 털을 뭉텅이로 뽑아 둥지 밖으로 던지는 모습입니다.
새의 몸은 깃털로 덮여있습니다. 깃털은 비행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보온의 효과도 지닙니다. 그런데 새들은 알을 품을 때 배 부분의 털을 스스로 뽑아 버립니다. 배는 알과 닿아 알을 덥힐 부위인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털을 뽑아내면 맨살이 드러나며 혈관이 더 집중되어 오히려 온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새가 알을 품는 과정은 알에 털을 대는 것이 아니라 털을 뽑아낸 맨살을 맞대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알을 품을 때 생기는 이 놀라운 무늬를 포란반(抱卵班)이라고 합니다.
새들은 어떤 방식으로 번식 일정을 치러낼까요? 번식에 참여하는 암수의 행동양식에 따라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암수가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고, 암수가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하는 친구들이 있으며, 암수가 교대를 하며 번식 일정을 이어가는 친구들이 있고, 이 세 가지를 시기에 따라 혼용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짝짓기 이후로는 암컷이 번식 일정 전체를 홀로 감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다른 새에게 번식을 위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새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까막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딱따구리는 ‘교대’의 길을 택한 친구들입니다. 둥지도 암수가 교대로 짓고, 알도 교대로 품으며, 먹이도 교대로 나릅니다.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모든 딱따구리 공통의 특징입니다. 그렇다고 밤조차 잠을 설치며 교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번식 둥지의 밤은 오직 수컷만 지키며, 암컷은 다른 둥지에서 잡니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딱따구리 모두 그렇습니다.
번식 일정 중 알을 품는 시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시기는 정말 완벽하게 교대를 합니다. 한 쪽이 와야 다른 쪽이 나갑니다. 교대 간격은 딱따구리 종류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크기가 작은 친구들은 하루에 6번, 몸집이 조금 큰 친구들은 하루에 4번 교대를 합니다. 다른 습성도 그런 것처럼 교대 횟수 또한 큰오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 사이가 경계입니다.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는 낮 12 시간을 2시간 간격으로 6번 교대를 하고, 청딱따구리와 까막딱따구리는 3시간 간격으로 4번 교대를 합니다.
암컷이 와서 이루어지는 첫 교대는 해가 뜰 무렵에 이루어집니다. 알을 품는 시기에 해당하는 4월의 경우 대략 6시 정도가 됩니다. 6번 교대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8시, 10시, 12시, 오후 2시, 오후 4시에 교대가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교대인 4시 이후로 다음 날 아침 암컷이 와서 다시 첫 교대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수컷이 꼬박 둥지를 지킵니다. 4번 교대가 이루어지는 경우 9시, 12시, 3시가 교대 시간이 됩니다.
물론 2시간과 3시간의 간격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횟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6번 교대나 4번 교대 방식 모두 암컷은 하루에 6시간만 둥지를 지키는 것이며, 수컷은 밤을 포함하여 18시간 동안 둥지를 지키는 꼴이 됩니다. 결국 암컷의 몫은 하루의 1/4, 수컷의 몫은 3/4이므로 형식은 교대이지만 역할의 비중은 수컷 쪽으로 많이 치우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딱따구리는 왜 교대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물론 교대라는 방식은 수고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무엇이 있어 보입니다. ‘한 쪽이 와야만 다른 쪽이 나가는’ 교대 양식의 가장 큰 장점은 둥지가 24시간 단 한 순간도 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청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 큰오색딱따구리의 교대 과정
딱따구리의 둥지는 모습 면에서 완벽한 둥지입니다.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걱정이 없으며, 추울 때는 따듯하고 더울 때는 선선합니다. 게다가 천적을 방어하는 데에도 으뜸입니다. 그러니 숲에서 나무를 파내 둥지를 지을 능력이 없는 뭇 생명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입니다. 문제는 이들 뭇 생명들이 딱따구리의 둥지를 동경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시탐탐 노리며 빼앗으려 덤벼듭니다. 딱따구리로서는 지켜야 합니다. 낮은 물론이고 밤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딱따구리는 교대의 방식을 통해 24시간 둥지를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딱따구리의 숲에서 벌어지는 둥지 전쟁은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교대 방식에는 몇 가지 작은 아픔이 있습니다. 한 쪽이 교대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으면 다른 한 쪽은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알을 품을 때 교대 간격 2시간을 지키는 딱따구리 종류도 더러 6시간이 지나서 올 때가 있습니다. 교대 간격 3시간을 유지하는 까막딱따구리의 경우 9시간 만에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알을 품는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9시간을 기다리려면 힘도 들 터이고 배도 고플 터인데 저들은 절대 둥지를 비우고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아픔은 하루 중 암컷과 수컷이 만나는 시간의 전부가 그 짧은 교대의 순간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대의 순간은 무척 애틋하며, 저들만의 의식을 치릅니다. 특별한 용어가 없기 때문에 필자는 ‘교대 의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선 둥지에 다가오는 쪽이 신호를 해줍니다. 신호는 소리며, 딱따구리마다 고유의 소리를 냅니다. 까막딱따구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끼리리리링” “내가 교대해주러 가고 있어요.”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나의 귀에 막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순간, 둥지에 있는 쪽도 신호로 화답합니다. 둥지에 있는 쪽은 부리로 둥지 안쪽 벽을 두드려줍니다. “탁탁탁” “나도 둥지를 비우지 않고 지키고 있었어요.”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둥지로 접근하며 소리를 내는 것이니 “끼리리리링” 소리는 점점 커지며, 이에 따라 “탁탁탁” 소리도 점점 커집니다. “끼리리리링”, “탁탁탁”, “끼리리리링”, “탁탁탁” …
서로 소리로 소통을 했음에도 교대는 꽤나 신중합니다. 교대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둥지 안으로 고개를 넣어 두세 번 신호를 해주어야 둥지 안에 있던 쪽이 입구로 올라옵니다. 둥지 입구에서 드디어 얼굴을 마주하며 눈길을 주고받는 순간 특별한 몸짓을 합니다. “읏꿔엇” 소리를 내며 등과 목을 출렁이듯 움직여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몸을 옆으로 비켜주면 그 동안 둥지를 지켰던 쪽이 날개를 펴고 날아 둥지를 떠납니다.
번식 일정은 기본적으로 암수의 신뢰와 유대감에 기초하여 치러집니다. 그런데 딱따구리 종류는 하루에 몇 번, 둥지 입구에서 잠시 주고받는 눈길 하나로 서로의 신뢰를 이어가는 어찌 보면 한 수 위의 친구들입니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몸 하나 간신히 드나들 크기의 입구를 연 다음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둥지를 짓습니다. 잠자리 전용 둥지의 내부는 좁지만 번식 둥지는 꽤 넓은 편이며, 번식이 끝난 둥지는 잠을 자는 둥지로 용도 변경이 일어납니다.
어떤 둥지이든 딱따구리의 둥지는 이끼나 풀로 엮은 다른 새들의 둥지와 달리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걱정이 없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 추운 날에는 훈훈하고 더운 날에는 선선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요새입니다. 고개만 내밀고 방어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둥지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입니다. 그러니 나무를 파서 둥지를 지을 능력이 없는 숲의 뭇 생명이 딱따구리의 호화주택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 딱따구리의 둥지에 입주한 다양한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를 부러움의 대상을 지나 아예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딱따구리의 숲에서는 지키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 사이의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특히, 번식의 계절에는 다툼의 수준이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승자는 언제나 정해져있습니다. 지키는 자입니다.
▲ 까막딱따구리가 멋진 번식 둥지를 지었습니다.
▲ 청설모가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넘보다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 둥지가 잠시 빈틈을 타 청설모가 둥지 바닥 깔개를 마련해 왔습니다.
▲ 청설모가 마련한 바닥 재료를 이번에는 동고비가 다 꺼내고 있습니다.
▲ 까막딱따구리의 둥지가 다 좋은 데 너무 깊고 입구도 넓습니다. 나뭇조각을 물고와 바닥을 높인 뒤 다시 진흙을 가져와 입구를 좁히고 있습니다.
▲ 드디어 주인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서지는 못하겠나 봅니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 정말 허무합니다. 동고비가 4시간에 걸쳐 쌓은 나뭇조각을 15초 만에 깔끔히 청소해버립니다.
▲ 청설모가 다시 둥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설모나 동고비나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동고비가 끈질지게 위협해 보지만 청설모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 청설모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까막딱따구리는 자기 집이라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 까막딱따구리, 청설모, 동고비 모두 둥지를 비운 사이 원앙이 살며시 스며들어와 알을 낳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 아직 신방도 차리지 못한 침실에 남의 알이 버젓이 놓여있는 꼴이니 당치않습니다. 바로 빼냅니다.
▲ 일찌감치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차지한 큰소쩍새는 맹금류답게 “애들 쓴다.”는 표정으로 이 모든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 까막딱따구리 둥지에도 산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암수가 교대를 하며 24시간 잠시도 비우지 않고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 2주의 일정이 시작됩니다.
▲ 24시간 둥지를 지키니 이제는 누구도 둥지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 까막딱따구리로는 반갑지 않은 여름철새가 숲에 들어왔습니다. 파랑새는 곧바로 공격을 개시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 알을 품는 시기가 지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둥지를 잠시 비운 순간 원앙이 진입하고, 그 뒤를 파랑새가 쫒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주인 없는 집에 그야말로 객들이 난리입니다.
▲ 원앙과 파랑새의 등쌀에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어린 새 하나가 생명을 놓아버렸습니다. 아주 어린 새의 주검은 물고 나와 숲으로 돌려보냅니다.
▲ 사납기 그지없는 호반새도 입성을 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 호반새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공격을 퍼붓습니다.
▲ 교병필패(驕兵必敗)라는 말이 있습니다. 둥지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까막딱따구리마저 공격하더니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 원앙도 참으로 집요합니다. 하지만 알은 나오려 하는데 알을 낳을 공간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 원앙, 파랑새, 호반새의 난입으로 또 다시 둥지에서 변고가 일어납니다. 정말 다 컸는데 말입니다.
▲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어린 새 하나를 잘 키웠습니다. 둥지를 바로 나선 어린 암컷이 늠름하게 나무에 매달려있습니다.
▲ 그런데… 그도 잠시입니다. 이토록 어린 새마저 호반새의 공격으로 눈을 다칩니다.
우리의 눈에 온전히 띠지 않을 뿐, 숲에서는 이러한 둥지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다. 뺐고 빼앗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먹고 먹히는 것마저 모두 자연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숲에 좋은 나무가 부족하여 이러한 다툼이 다툼을 넘어 전쟁이 되고, 그 전쟁이 훨씬 더 처절해지고 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오랜 노력에 힘입어 우리의 숲이 예전보다 울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속내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색딱따구리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다섯 가지의 색으로 치장한 딱따구리입니다. 다섯 가지의 예쁜 색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흰색, 검은색, 갈색, 붉은색, 주황색입니다. 아래꼬리덮깃에 나타나는 주황색은 어찌 보면 붉은색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주황색이라고 우기겠습니다. 그래야 오색이 되니까요. 그렇더라도 암컷은 머리에 붉은색이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사색딱따구리인 셈입니다. 크기는 23 센티미터 정도입니다.
오색딱따구리 수컷
오색딱따구리 암컷
큰오색딱따구리는 오색딱따구리보다 약간 큽니다. 오색딱따구리보다 2 센티미터가 커서 25 센티미터 정도이니 자연에서 이들을 만나 육안으로 크기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크기에 따라 우리나라의 딱따구리를 나열해보면 까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의 순서가 됩니다.
큰오색딱따구리 수컷
큰오색딱따구리 암컷
슬쩍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오색딱따구리와 큰오색딱따구리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수컷의 경우 큰오색딱따구리는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고, 오색딱따구리는 머리 뒷부분만 붉습니다. 암컷은 오색딱따구리와 큰오색딱따구리 모두 머리에 붉은 색이 없으므로 머리만 보아서는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배 부분이 서로 다릅니다. 큰오색딱따구리의 배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고, 오색딱따구리는 검은색 줄무늬가 없이 온통 하얗습니다. 암수 공통의 차이점이니 큰오색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의 흰색 무늬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흰색 줄무늬가 가로로 가늘게 여러 겹 있는 반면, 오색딱따구리는 여덟팔자(八)를 뒤집은 모양으로 흰 무늬가 크게 들어가 있습니다.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의 어린 새들은 어미 새들의 모습을 똑 닮았습니다. 어린 수컷은 아빠를 닮고, 어린 암컷은 엄마와 같습니다. 그런데 오색딱따구리와 큰오색딱따구리는 어린 새들의 모습이 어미들과 조금 다른 것이 흥미롭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수컷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암컷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는 암수 모두 머리에 붉은색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를 모두 수컷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엄마 새의 머리에는 없는 붉은색 깃털이 어린 새들에게는 모두 돋아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붉은색의 분포는 암수가 서로 다릅니다. 어린 수컷은 붉은색의 분포가 아빠처럼 넓고 암컷은 조금 좁습니다. 어린 암컷의 머리에 돋은 붉은색이 성장하며 검은색으로 변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어린 암컷의 붉은 깃털은 성장하며 빠지는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 수컷의 경우도 빠지고 다시 나는 것인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오색딱따구리의 경우입니다. 머리 모습으로는 오색딱따구리 어린 새와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 오색딱따구리가 어린 새를 키울 때는 마치 큰오색딱따구리의 어린 새들을 대신 키우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빠는 머리 뒷부분만 붉은데 어린 새들은 큰오색딱따구리처럼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색딱따구리 어린 새들의 머리에 돋은 털이 어떻게 바뀌어갈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은 어린 새가 아빠처럼 뒷부분만 붉어지려면 어릴 때의 털이 완전히 다 빠지고 뒷부분에서 새롭게 붉은 털이 나는 방법뿐입니다. 이러한 점에 기초할 때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수컷도 같은 방법을 택할 가능성은 무척 높아 보입니다.
어린 수컷에게 먹이를 주는 오색딱따구리 암컷
어린 암컷에게 먹이를 주는 오색딱따구리 수컷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도 나무속에 숨어있는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주요 먹이활동은 점성이 높은 물질이 분비되는 긴 혀를 이용하여 개미를 혀에 붙여서 먹을 때가 많습니다. 개미핥기의 먹이활동과 비슷합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 큰 덩치의 개미핥기도 개미를 주식으로 삼아 늠름히 생활하는 것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나무에 작은 구멍만 뚫고도 나무속에 숨은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는 모습
그런데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큰오색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의 주식은 딱정벌레 애벌레입니다. 이들이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나무 깊숙이 숨어있는 애벌레를 나무를 통째로 뜯어내고 잡아야 한다면 먹이를 취해 얻는 에너지보다 먹이를 취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무껍질을 두드리는 것으로도 어디에 딱정벌레 애벌레가 숨어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냅니다. 위치 파악이 되면 아주 작은 구멍만 뚫습니다. 그 다음 긴 혀를 구멍에 집어넣어 쑥 끄집어냅니다. 다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청딱따구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30 센티미터 정도의 중형 딱따구리로 까막딱따구리 다음으로 큰 딱따구리라 할 수 있습니다. 등은 녹색이고, 배와 머리 부분은 회색이며 수컷은 머리 위쪽으로 붉은 털이 돋아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몸에서 푸른색은 보이지 않는데 청딱따구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녹색을 더러 푸르다고도 하는 데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도 ‘blue woodpecker’와 green woodpecker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점입니다. 현재 청딱따구리의 영어명은 머리가 회색인 딱따구리라는 뜻의 ‘gray-headed woodpecker’입니다.
청딱따구리 수컷은 머리에 붉은 털이 돋아있고, 암컷은 붉은 털이 없습니다.
청딱따구리는 까막딱따구리와 크기도 차이가 나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번식습성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어린 새를 키울 때 부모 새들이 먹이를 낱개로 잡아오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고 와서 토해준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습성의 이유는 먹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 모두 어린 새들을 키우는 주요 먹이가 개미의 알과 개미 애벌레입니다. 우선 먹이가 너무 작아 낱개로 나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아주 멀리 이동하여 간신히 개미의 집을 발견했는데, 고작 부리에만 채워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에 해당할 것입니다. 한 번에 가장 많이 나를 수 있는 방법으로 뱃속에 가득 채워오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는 또 다른 이점과도 맞물려있습니다. 뱃속에 담겨진 먹이가 소화효소와 적절히 버무려질 터이니 어린 새의 영양 효율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몸집이 큰 이들이 둥지에 자주 드나들지 않아도 되므로 천적에게 둥지를 덜 노출시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청딱따구리보다 크기가 작은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는 하루에 50번 정도 낱개로 먹이를 나릅니다. 10분에 한번 꼴로 분주하게 둥지에 드나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까막딱따구리와 청딱따구리는 하루에 10번 내외로 먹이를 나를 뿐입니다.
그런데 먹이를 토해서 어린 새에게 줄 때 작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린 새가 많이 커서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때부터 생기는 문제입니다. 부모 새들이 먹이를 토해내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어린 새들이 부모 새들의 몸을 마구 쪼아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둥지 앞에서 먹이를 토해내다 어린 새에게 쪼여 몸이 튕겨져 나갈 때도 있고, 바닥으로 뚝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지만 부모 새들이 이조차 감내해내기에 작은 문제입니다.
한 번 토해내는 양은 한 입에 넣어주기 딱 알맞은 양입니다. 청딱따구리의 경우 한 번 배에 담아온 먹이를 15번까지 토해내서 전해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 새의 공격까지 피해가며 그 힘겨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육아의 기본인 셈입니다. 까막딱따구리는 청딱따구리에 비하여 토해내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지만 그렇더라도 고통의 순간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까막딱따구리처럼 청딱따구리 역시 어린 새는 부모 새와 모습이 같습니다. 어린 새 수컷은 아빠 새를 닮아 머리에 붉은 색 털이 돋아있고, 어린 새 암컷은 엄마 새처럼 붉은 색 털이 없이 그냥 회색입니다.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는 어린 새의 모습이 부모 새와 조금 다릅니다.
까막딱따구리는 어린 새의 먹이를 뱃속에 담아와 둥지 입구에서 토해 전해줍니다.
아빠 새가 둥구 입구에서 먹이를 토해 어린 새 수컷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빠 새가 둥구 입구에서 먹이를 토해 어린 새 암컷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둥지에 있는 어린 새가 먹이를 빨리 달라고 아빠 새를 쪼면 아빠 새는 뒤로 나뒹굴며 떨어지게 됩니다.
엄마 새가 먹이를 토해내자 어린 새 수컷과 암컷과 동시에 고개를 내밀어 먹이를 받아먹으려 합니다. 어린 새들의 공격을 피해 조금 아래쪽에서 먹이를 주는 모습입니다.
어린 까막딱따구리 암컷이 먹이를 보채며 아빠 새를 쪼는 모습입니다.
까막딱따구리 아빠 새가 둥지에 접근해 먹이를 주려다 어린 새에게 쪼여 뒤로 튕겨져 나가고 있습니다.
둥지를 빠져나온 청딱따구리 어린 새 수컷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딱따구리는 모두 텃새입니다. 우리나라의 딱따구리는 계절을 따라 오가지 않고 일 년 내내 우리의 곁에서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 중 분명 딱따구리지만 그 이름에 딱따구리라는 말이 붙어있지 않은 딱따구리가 있습니다. 흰색의 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검은색이며, 몸길이 45센티미터 정도의 대형 딱따구리로 천연기념물 제 197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Ⅰ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크낙새입니다. 그러나 이제 크낙새는 그러한 안타까운 수식어조차 더 품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조류 목록에서 아예 지워야 할 것 같습니다. 1993년 광릉 숲에서의 관찰 이후로 그 누구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멸종했다고 단언하기는 조금 이르다 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생존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나라 어디라도 생존해 있다면 숲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클락 클락’ 소리를 내며 이동하는 크낙새의 소리조차 18년 동안이나 아무도 듣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크낙새의 소리라도 다시 들을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북한에 잔존하는 개체가 철책을 넘어오는 길일 것인데, 그마저 우리의 숲이 크낙새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라야 합니다.
크낙새/ 그림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크낙새와 크기도 비슷하고 모습도 비슷한 딱따구리가 있습니다. 역시 천연기념물 제 242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까막딱따구리입니다. 까막딱따구리는 배마저 온통 검은 것이 크낙새와 다릅니다. 그런데 크낙새도 그렇고 까막딱따구리도 마찬가지로 머리에 붉은 색이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세계에서 머리에 붉은 색이 있는 것은 수컷이라는 징표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딱 하나 있습니다. 까막딱따구리만큼은 암컷도 머리에 붉은 색이 있습니다. 붉은 색의 분포는 암수가 다릅니다. 수컷은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고, 암컷은 머리 뒷부분만 붉습니다. 까막딱따구리 암컷을 제외한 크낙새, 청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아물쇠딱따구리의 암컷은 머리에 붉은 색이 없습니다.
까막딱따구리 수컷
까막딱따구리 암컷
딱따구리 어린 새는 머리에 돋아난 붉은 깃털의 모습이 부모 새와 다른 경우가 있는데, 까막딱따구리 어린 새는 부모 새와 모습이 같습니다. 어린 새 수컷은 아빠 새처럼 머리 윗부분 전체가 붉고, 어린 새 암컷은 엄마 새를 닮아 머리 뒷부분만 붉습니다.
까막딱따구리 어린 새 수컷
까막딱따구리 어린 새 암컷
둥지를 나선 어린 새 암컷과 아빠 새
까막딱따구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지만 주요 서식지는 경기북부와 강원도 지역입니다. 경기 북부와 강원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주로 국립공원을 비롯한 울창한 숲에 서식하나 개체수가 극히 적으며, 고지대에 분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까막딱따구리는 근래 개체수가 다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까막딱따구리의 개체수가 조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크낙새는 왜 멸종의 길로 내몰렸으며, 까막딱따구리는 왜 그 수가 조금이라도 증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까막딱따구리마저 이 땅의 크낙새가 걸었던 비운의 길을 이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