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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 시인의 시에는 현실적인 삶의 풍경과 체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상작이 실려 있는 근작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에도 삶과 죽음, 절정과 몰락 등 극단의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을 담은 시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도시를 걸어다니다 우연히 눈에 띈 풍경을 그만의 독특한 독법으로 읽어내 이미지화한 것들이다.
●삶 속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언어 해체나 요설이 담긴 시들과는 구분된다. 시는 전달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시인에게 젊은 시의 다양성은 긍정적인 것이지만, 두서없이 난해하고 자기취향적인 언어를 남발하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인은 여러차례 자신만의 ‘시인론’을 밝힌 바 있다.
“시인이란 ‘불행의 작두’를 타야 할 숙명을 지닌 사람이다.” 시인이란 칼날 같은 현실을 돌아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위를 걷고, 자신의 상처로 세상이 치유되지 않으면 기꺼이 죽음에도 키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특한 시인론은 그가 왜 철학, 교양, 인식 등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공초 선생과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여러차례 전해들은 공초 선생의 치열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시작(詩作)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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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눈뜨다
시인은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 등이 당선돼 등단했다. 약관을 갓 넘긴 서울사대 영어교육과 2학년 때의 일이다. 시인의 자질은 이미 중학교(부산사대부중) 때부터 충분히 엿보였다. 입학한 뒤 교지 ‘천마’에 시를 투고했다가 탈락한 ‘중학생 이수익’은 절치부심, 중 2년 1학기 때 다시 도전해 마침내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2학기 때는 제4회 ‘학원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969년 발표한 첫 시집 ‘우울한 샹송’은 시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정형화된 시 작법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구어체로 읊조리는 듯한 가벼움을 담은 시인의 초기 ‘연애시’에 대해 미당 서정주 등은 “새로운 시의 패턴을 가져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등단 초기, 이처럼 운율과 리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인은 “시를 그렇게 쓰면 골격의 힘이 없어질 수 있으니 이미지 시를 써보라.”는 시인 박남수의 조언에 또 다른 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시인에게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의 길을 가련다
“사물, 즉 사람에 내재하는 비극적 요소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제는 이미지에 정서를 입히는 쪽으로 약간 변형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모습을 많이 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은 대학졸업 후 줄곧 방송국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가진 채 시 창작을 병행해왔다. 부산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KBS 라디오 차장,KBS 편성운영국 부주간 등을 거쳐 KBS TV 편성주간,KBS 라디오본부 편성주간,KBS 라디오2국 국장,KBS 라디오센터 제작위원 등을 지내다 재작년 정년퇴직했다. 요즘은 고려대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일반 문학지망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뿐 대부분의 시간을 시창작에 쏟아붓고 있다.
“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는 굉장한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한 곳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만도 힘이 들어요. 실험할 여력이 없습니다. 나의 방향을 깊이 있게 뚫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시집까지 4∼5년 주기로 시집을 발표해온 시인은 요즘도 외출할 일이 있으면 메모지부터 챙기는, 영락없는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글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심사평
마지막 남은 시인 5,6명 중에서 이수익이 금년도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 어려움 없이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수익의 시가 맑고 선명한 것만큼이나 수상자로서의 이수익의 자격이 선명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그의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 중에서 당선 시편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결정하는 과정 역시 수월하였다. 이 시가 갖는 간결성, 뜻의 함축성, 빛과 음영의 아름다운 어른거림 등이 읽는 이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시란 영혼의 구조의 드러남’이라고 믿고 있다. 이 때의 영혼이 별 고뇌도 모르는 평범한 영혼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련과 고뇌와 심미적 체험을 삭여 남다른 만큼의 수준에 이른, 그러한 영혼을 두고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영혼이, 시어들이 엮는 뜻의 구조 속에 마치 살아서 피어오르듯이 부각된다. 시에서 영혼의 구조를 드러내는 시인은 그만한 경지에 가 있다는 말도 된다. 이런 말이 시인 이수익만큼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이수익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말하면 ‘허무를 덮는 아름다운 서정성의 그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때의 ‘허무’ 역시 퇴폐적인 허무가 아니며, 삶과 존재에 대한 비극적 체험으로서의 허무다. 비극적 체험과 미의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체험해오고 있는 바다. 쉽게 말해서 슬픈 노래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수익은 시인으로서 이러한 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당선작으로 뽑힌 시의 제목 ‘오체투지’는 땅에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엎드려 절대자에게 몸도, 마음도 봉헌함을 나타내는 일종의 종교의식이다. 이 시 역시 간결한 형식과 시어의 이미지의 선명함, 뜻의 깊이와 그늘의 짙음이 읽는 이에게 매우 큰 감명을 준다.‘누에’ ‘거미’ ‘나’의 병치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은 미물의 형제이며 동시에 천사의 형제일 수도 있다. 끝 연 3행이 주는 운동감과 색채감도 놀랍다.
이러한 시의 특색은 그대로 시인 이수익의 인품과 일치한다. 이수익 시인의 공초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근배, 임헌영, 성찬경을 대표하여 성찬경 씀.
■ 이수익 시인은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1965년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과 졸업, 신인예술상 수상
▲1980년 부산시문학상 수상
▲1987년 현대시문학상 수상
▲1988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5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1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 작품집
시집 ‘우울한 샹송´(1969),‘야간 열차´(1978),‘슬픔의 핵(核)´(1983),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꽃나무 아래의 키스´(2007).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허무를 덮는 아름다운 서정성의 그물’이라 는 이수익 시인님의 시세계 잘 공부하고 갑니다. 우울한 샹송을 낭송으로 듣곤하던 때가 무지 그립네요. 비오는 날이라서 더욱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