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팔뚝으로 박수를 치며
내가 처음으로 안양의 나자로 마을을 찾은 것은 고인이 되신 이경재 신부님이 나자로 마을을 설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노인들을 위로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우리 학교의 국악 동아리 학생들과 방문하여 그들을 위해 거문고 반주를 하고 멋지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60명에 가까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박수를 치시는데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손바닥이 없이 팔뚝으로 박수를 치거나 으등거려진 손을 맞대어 두드리고 어깨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박수를 받으며 아이들은 노래는 부르지만 가슴이 무언가 맺히는지 박자도 틀리고 음정도 불안해서 자기들끼리 마주보고 눈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라자로 마을 사람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할머니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가까이 가서 얘기도 할 정도로 점차 발전하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안나 할머니를 이경재 신부님께서 소개해 주었는데 내게 자신의 얘기를 울면서 들려주시는데 정말 모습이 너무 예쁘셨고 말씀도 참 잘하셨는데 미인박복이라더니 정말 기가 막힌 인생은 이러했습니다.
시골에서 꽃다운 나이에 잘생긴 청년과 혼인해서 시댁 어른들과 아주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남편은 군인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은 때는 만삭으로 해산달이 가까웠을 때였답니다. 지친 몸으로 유복자를 낳아 자신의 모든 서러움을 묻고서 아기 때문에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해서 어느 날 세수하다가 눈 섶이 모두 빠지면서 나병이 발생한 것이지요. 집안에서는 우선 출입을 못하게 하고 골방에 가두어두고 약을 써 봐도 낫지 않으니까 먼 산에 움막을 마련해서 음식을 날라다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점차적으로 병은 점점 심해지고 손가락이 떨어지고, 온 몸에 고름이 창궐해도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그 마을을 매일 찾아가는 것입니다. 먼발치에서 아들이 놀고, 학교에 오가며 건강하게 다니는 것을 보면 가슴을 쥐어뜯고 매일 울면서 매일 아이를 따라서 학교로 집 근처로 옮겨 다니면서 멀리서나마 아이를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고 희망이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돌팔매로 피투성이가 되고, 나무 등걸에 살점이 뜯겨도 아들만 볼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아들이 아파서 밖으로 나와 놀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숱한 밤들이 괴롭기만 하고 병이 심해지자 아이에게 “문둥병 자식이라”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전국의 나환자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나자로 마을에 온지 한 10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대학시험에 합격했다고 어느 날 나자로 마을에 찾아왔는데 면회신청을 받은 안나 할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는 떨어져나가고, 팔뚝만 있고 눈 하나는 멀고, 흉측한 몰골이 되어있는 자신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답니다. 먼발치에서 아들을 훔쳐보며 “네 엄마는 이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오지도 말고, 너 건강하게 사는 것만 하느님께 기도한다.”라고 돌려보내 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군인 가기 전도 오고 군인을 다녀온 후에도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을 때도 차마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도 이제는 장가를 들어야 할 나이인데 누가 문둥이 자식한테 시집을 오겠다는 착한 아가씨가 있으면 어미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었다고 말하고 장가들어라.”고 신신 당부를 했답니다. 아들은 올 때마다 모습은 뵐 수 없고 엄마의 목소리만 듣고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매일 울었답니다.
그러면서도 라자로 마을에서 아들 자랑하는 할머니가 되었고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으로 얘기하고 결혼을 했고, 첫아들을 낳았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출생신고를 며느리가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호적에 시어머니가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을 며느리가 본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고, 아들은 그간의 얘기를 아내에게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며느리는 한 동안 가만히 있더니 남편에게 말하더랍니다. “문둥병을 앓고 있어도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매몰찬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이제 손자까지 보셨으니 이번 주일에 가서 뵙시다.” 그래서 그 주일에 나자로 마을에 떡을 많이 해가지고 손자를 안고 와서 안나 할머니에게 면회 신청을 하였답니다. 안나 할머니는 아들이 어떤 여자랑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방송에서 들었답니다. “네 엄마는 죽었다니까 왜 찾아왔느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며느리가 뛰어 나와서 “어머니 손자가 왔어요.” 그러더랍니다. 안나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니께 내가 눈이 뒤집혔슈, 그래서 펄펄 뛰어갔쥬, 이 팔뚝으로 막 손자랑 며느리랑 아들을 안아주면서 내가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고, 몇 번이나 애기를 불렀는지 모르실뀨.”
그날부터 할머니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약을 먹어서 성한 몸이 되었지만 살아 있는 나균이 신경을 갉아 먹을라치면 얼마나 아픈지... 의사들은 야구방망이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40대를 내리치는 아픔이라고 표현합니다.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건만 안나 할머니는 성당으로 달려가 성당 바닥에 엎드려 묵주를 크게 펴놓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빠진 눈에라도 넣고 싶은 손자를 위해서 기도했답니다. 팔뚝으로 묵주 한 알 한 알을 더듬으면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제 자식들의 아픔은 모두 제게 주시고, 은인들의 아픔도 제게 주십시오. 제게 주십시오.”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면 온몸이 굳어서 빳빳해질 때까지 기도하는 삶이 되었답니다.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할께유.”하신 안나 할머니의 따뜻한 기도의 힘이 오늘도 생생한 주님의 은총으로 느껴집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축일 7월 12일 성녀 베로니카 (Veronica)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 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베로니까
전승에 따르면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님께서 골고타(해골산)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이다. 그녀는 머리에 두르는 천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에서 피땀을 닦아드렸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그 천에 주님의 얼굴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카’로 알려졌는데, 라틴어의 ‘베로니카’는 ‘베라’(vera : 참, 진실한)와 ‘이콘’(icon : 형상, 성화상)의 합성어로 그 이름 자체로 그리스도의 ‘진실한 형상’, ‘진실한 성화상’, ‘참된 모습’이란 뜻이 된다. 그래서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중세 때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천을 전해 준 사람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참모습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후대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빌라도의 술책”(Mors Pilati)이나 “황금 전설”(Legenda aurea) 등에서는 성녀 베로니카의 신원에 대해 여러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오르시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루카 23,27) 중 한 사람으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여자(마태 9,20-22)로, 베타니아의 성녀 마르타(Martha)로, 주로 프랑스에서는 예리코의 세관장으로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자캐오(루카 19,1-10)의 부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녀는 남편 자캐오와 함께 프랑스 남부 지역으로 건너가 그곳 사람들의 개종을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성녀 베로니카가 나중에 로마로 가서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천으로 티베리우스 황제를 치유했고, 임종하면서 그 천을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s I)에게 드리라고 유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천은 944년까지 에데사(Edessa)에 보관되었음이 확인되었다가 동로마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1세(920-944년 재위)가 전리품으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져갔다고 한다. 10세기 말 또는 11세기 초부터 로마에서 공경을 받았고, 중세 때에 대단한 신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로 옮겨와 현재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녀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되어 있으나 식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성녀 베로니카는 여러 지역과 일부 전례 안에서 기념되기도 했으나 초기 순교록이나 “로마 순교록”에도 그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체로 대중적인 신심 안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수건으로 대표되는 성녀 베로니카는 특별히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를 통해 주님의 수난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그 고통에 동참하며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로니카 자매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