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합니다.
윤미향은
30년 동안 위안부를 세계에 알린 게 아니었다.
30년 동안 위안부 때문에 잘 먹고 잘 살았다.
말 가지고 .싸운다면 대적할 상대가 없다.
머리 회전도 빨라 금융정보는 검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윤미향은 당당하고 민주당 이해찬 서 훈 김두관이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윤미향 정의연대에 찍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 파다하다.
보수는 분열로 망하고, 진보는 비리로 망한다.
섬 여행
사람에 취하고 바다에 취하고
동해 섬은 시(詩)이고, 남해 섬이 산문이라면 남도 섬은 소설입니다.
섬에는 길게 저무는 해, 아득하게 넓은 갯벌에 씨줄과 날줄로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완도 소안도에 갔다가 섬의 매력에 빠져, 물때(조류)를 시계 삼아 물질과 해산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바다가 사나워지면 며칠이고 갇혀 있는 역설적인 섬의 삶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전남 고흥 거금도 어민들은 60년대 프로레슬러 김일 덕분에 전기가 들어와 김 양식으로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신안군 홍도는 태풍주의보만 내리면 몇 날 며칠 여성들의 세상이 됩니다.
섬 안에는 배를 안전하게 댈 곳이 없어, 남자들이 배를 뭍으로 옮기기 위해 섬을 떠납니다.
독도 풍경
어떤 사람은
독도에 절을 하고
어떤 사람은
독도에 태극기를 꽂고
어떤 사람은
독도에 입을 맞추고.
어떤 사람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 부르고
어떤 사람이란 모두가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조영수(1959~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완성한 우이도, 신라의 장보고가 활동한 장도 등 섬 여행은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기야 뒤야! 만경창파! 여기 멸치는 우리 배가 다 잡았네!“로 시작되는 가거도 멸치잡이 대목에서, 바다냄새가 진하게 풍깁니다.
정겨운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록도에는 생이별을 한 문둥이 부모가 한 달에 한번 자식과 면회한다는 '수탄장(愁嘆場)'이 있습니다.
고하도 주민들은 목포대교 건설로 갯벌이 사라져 먹고살 일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전남 여천군 소리도는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때문에 전복과 소라가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설움도 섬사람들 몫이 되었습니다.
섬은 조선시대 단골 유배지였습니다.
섬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바다를 두 번 건넌다고 합니다. 목포 까지 가야 장례 치를 병원이 있습니다. 장례 후에는 시신을 섬에 묻습니다.
육지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아놨다가, 파도 때문에 발이 묶여 텅 빈 예식장에서 결혼한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공중목욕탕이나 책방은 사치이고, 중학교가 있는 섬도 드뭅니다.
관광지로 소문이 난 섬은 외지인들 차지입니다. 그래서 섬사람들이 육지 사람에 때한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서해 용왕님! 너울너울 김발에 포자도 잘 붙게 하시어, 올해 김 농사도 풍년 들게 하소서."
전북 고창 만돌 마을은 굴뚝 만 개가 솟아 흥할 곳이라 '만돌'입니다. 굴뚝 대신 갯벌에 꽂은 김발을 맬 지주가 만 개는 될 것 같습니다.
바닷물이 허리춤을 넘어 가슴까지 올라오면. 그제야 어민들은 김발을 펼치고 줄을 당겨 기둥에 묶는다고 합니다.
어민의 정성과 서해 용왕의 음덕으로 열흘 정도 지나면 붉은색 포자가 김발에 엉겨 붙고, 한 달 남짓 지나면 햇김을 수확합니다.
'자산어보'에는 김을 '자주색 채소(紫菜) 또는'짐'이라고 했습니다.
김은 조류 소통이 잘되고 담수가 적당히 유입되는 내만이 적지입니다. 양식 기술의 발달로 깊은 바다에서도 대규모로 양식을 하는데 부류식입니다.
물때에 따라 바다에 잠기고 바람에 씻기고 햇볕에 노출되며 자라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주식 양식입니다. 그렇게 재래식 김이 만들어집니다.
김은 명절에 세찬(歲饌)으로 겨우 밥상에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막 구운 김에 쌀밥을 올려 조선장에 찍어 먹던 맛이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김 한 장을 나누는 것에도 격식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그리고 아이들은 수저를 덮을 정도로 작게 찢었다고 합니다
.
김은 효자 품목입니다. 수출도 많이 해서 '수산물 한류 1호'라고 합니다.
갯마을 밥상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질 무렵이면 생각나는 것이 섬 밥상이다.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안동비빔밥 통영비빔밥처럼 지역 이름을 붙인 비빔밥은 많은데
통영에서 배 타고 한 시간을 가는 섬, 우도의 해초비빔밥이다.
멍게비빔밥은 통영, 낙지비빔밥은 무안이 유명하다.
우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20여 가구가 사는 보잘 것 없는 섬으로 낚시인이나 관심을 갖는 그런 섬이다.
2002년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30대 부부가 칠순 노인들만 사는 우도로 들어왔다.
이들 부부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영도 못한다. 그래서 마을 할머니들에게 물때를 익히고 갯바위에서 해초를 뜯었다.
부부는 뜯어 온 해초로 밥상을 차려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한다.
어쩌다 찾은 여행객에게도 내놓은 게 소문나면서 우도 해초비빔밥은 전국에 알려졌다.
미역, 톳, 우뭇가사리, 파래, 서실, 세모가사리, 모자반 등 그때그때 갯바위에 자란 해초다..
밥은 톳과 따개비를 넣어 지었다. 비빔용 해초로는 세모가사리, 모자반, 미역, 톳 무침을 준비했다. 미역국에는 굴을 넣었다.
반찬은 파래무침, 거북손, 해초전, 생선전, 파김치, 배추나물, 갓김치, 멸치볶음, 고들빼기김치, 배추김치, 그리고 양념장을 끼얹은 청어구이다.
막걸리 생각이 간절한데 꾹 참았다.
아침 일찍 산에서 뜯어왔다는 살짝 데친 머위도 내 왔다.
모두 섬과 바다에서 나는 것으로 차렸으니, 밥상도 착하고 값도 착하다. 부부를 꼭 닮았다.
지천으로 땅을 덮고 있는 동백꽃 낙화와, 우도로 들어오는 길의 동백꽃 터널은 덤이었다.
provenance 김 준의 맛과 섬
까꿍 아침산책 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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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떤 사람은
독도에 절을 하고
어떤 사람은
독도에 태극기를 꽂고
어떤 사람은
독도에 입을 맞추고.
어떤 사람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 부르고
어떤 사람이란 모두가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조영수(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