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가피 / 혜민스님
오랜만에 동창회를 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명품옷을 사 주었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면 모두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나갔더니 그날 나온 친구 중의 한 명은 자기 남편이 선물로 아주 비싼 외제차를 사 주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지금까지는 고마운 남편이었는데 갑자기 '겨우 요거밖에 못 해주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옷 자체는 좋은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니지만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보살님은 아들이 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마중하려고 공항에 나갔다. 외국에서 아주 즐겁게 잘 지내고 왔겠지.. 생각했는데 나오는 아들을 보니까 팔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이 부러졌다고 하였다. '아니, 이런 불행한 일이 있나~'
그런데 너무나도 놀라고 걱정하는 보살님에게 그 아들은 말하기를 그래도 자기는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나마 자기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이 정도로 그쳤고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심한 중상을 당하고 심지어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들으니까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왔다. 똑같은 일이 불행에서 가피로 급반전한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지만 우리 마음에 따라 좋은 걸로 되기도 하고 나쁜 걸로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정된 것은 없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가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개인의 분별심 때문이라 그렇다 하여도 사회 전반적으로 '좋다,나쁘다' 하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나 그러한 기준조차도 항상하고 불변한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예전에는 좋았던 게 나쁜 걸로 변할 수도 있고, 나빴던 게 좋은 걸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양귀비 그림을 보았더니 요즘 기준으로는 도저히 미인이라 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아름답다,추하다' '좋다,나쁘다' 하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혹시 불만스럽거나 안좋은 일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가 왜 안좋게 생각하는가? 어떤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닌가?'
우리는 어떤 일이 생기면 분별심을 일으켜 '좋다,나쁘다' 하는 주석을 달아서 경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고 사실 그 일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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