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4.4.28) 말씀/ 빌립보 4:11,12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비결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 4: 11,12) 인간은 누구나 다 풍요롭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작고 좁은 공간의 마티스보다 벤쯔를 소유하고 싶고, 25평짜리 보다는 4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생각해 볼 때 얼마나 광대하고 다양하고 풍성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식물을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하늘과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과목으로 가득차게 하셨고, 풍성한 강과 지하자원과 보석들과 생명나무로 채우셨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비한 가나안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의 삶을 보면 100배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고, 야곱도 처가살이 돌아올 때 거부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역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또 풍족히 베풀고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근본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지 못할까요? 물론 풍요롭다는 것은 많은 돈과 물질을 소유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의 환경조건이 살기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그는 결코 배부르고 풍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며,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처럼 모든 형편에 자족하며 풍부하게 살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시크릿 저자는 풍요를 가로막는 것은 우리 생각이라 하였고, 빚이나 결핍보다 풍요에 집중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정된 관념의 생각을 벗어너 먼저 성경이 이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자족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재물이 많고, 세상에서 명성을 날리고, 인기를 끌고, 출세 가도를 달린다 할지라도 근본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풍요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없는 성취,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배부름 모두가 허망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지만 영적인 믿음생활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욕심은 목끝까지 찾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육신의 장막은 으리으리한데 영적인 집은 헐고 무너져 가는 빈집처럼 되어있습니다. 겉만 보면 풍부한 것 같지만 속은 가난합니다. 시편 106편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세상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빈곤하다면 육신적으로 가난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 권력은 있어도 두려움과 염려가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한 라오디아 교회에게 "곤고한 것과 가나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계). 바울은 외적인 조건을 볼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고전2:3). 그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수고하였고, 옥에도 갇히고 매도 많이 맞고, 죽음의 위협도 수없이 당하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 외에도 날마다 교회를 생각하면 눌렸습니다(후 11:23 -28). 질병의 가시가 그의 몸을 괴롭혔습니다(고후12:710). 그런데 모든 일에 배부르며 자족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나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그에게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것도 자신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고전15:10). 그에게는 몸에 질병의 가시도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도 자고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로 이런 은혜 때문에 바울은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후 6:8-10). 그는 장자의 말로 유 무를 초월한 무무의 경지에 이르서 우주적 풍요를 누리며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중국에 유명한 윗치마니 목사님이 한번은 중병에 걸려 오랫동안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 것을 여러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께서는 완쾌함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그 몸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정도의 힘만 주시고 병의 뿌리는 뽑아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루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성령의 잔잔한 음성이 속으로부터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중간에 높이 5척이나 되는 돌이 막혀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바윗돌을 옮겨주소서."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바윗돌을 옮겨주랴 강물이 넘쳐 이 바위를 지나가게 해주랴?" 그는 “주님, 바위를 옮기는 것보다도 강물이 넘치므로 바위를 지나가게 하여주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깨었습니다. 그 후 비록 병은 뿌리가 뽑히지 않았지만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을 이기며 기쁨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우리 자신들의 형편을 볼 때 정말 풍족한 조건을 갖고 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루 하루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쁜 일과를 시작하면서도 새벽 말씀을 놓치지 않고 주일 말씀에 생명을 걸고 귀를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삶의 기본 바탕이 되어 흘러넘치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저는 요즘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삽니다. 어찌보면 은퇴해야 할 나이에 오히려 삶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교회에 양들이 많이 나올 때만 역사가 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은혜를 누렸습니다. 지금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풍족한 은혜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말씀 은혜뿐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이 함께하시면서 누리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일한 것이 없어도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일한 댓가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져주는 선물 입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은혜를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 지금 은혜를 받지 못하면 땅에 영적 기갈이 임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글을 보면 그 날에 영적 기갈이 임하는 데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며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하였습니다(암 8:12,13). 그런가운데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남방 먼 곳에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 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왕상10:8)." 시바여왕은 금이 맣아서 솔로몬에게 주었지만 당시 백성들이 솔로몬 옆에서 인문고전 지혜의 말씀을 듣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솔로몬보다도 더 위대하신 주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매주 인문고전 독서을 하며 영성 지선 육의 풍성함을 누리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난 큰 축복입니까? 저는 매일 큐티 말씀을 섬기기 위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며 살고, 또 댓글을 달면서 지체들이 묵상한 글을 읽으며 또 다시 은헤를 누리고, 독서 모임을 섬기기 위해서 책을 여러분 읽고, 반복 묵상하니 정말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풍성합니다. 솔로몬의 백성들을 복되다고한 시바 여왕의 고백이 이해가 됩니다. 은혜가 넘치면 풍요를 누리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둘째,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풍부한 삶을 살았던 바울의 삶을 보면 그 삶 속에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가 넘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며...."(엡5:20) 또 골로새서 3장 15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 또한 풍성한 삶을 사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은혜를 증가시키는 요소입니다. 환경은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 감사, 감사 하다보면 더욱 사람이 윤택해집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하지 않으면 있던 행복도 점점 사라집니다. 소유나 환경은 인간을 풍족하게 하게 하는 절대 요소가 아닙니다.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는 근본은 마음에 있습니다. 바울이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었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실라와 함께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결과 옥문이 열리고 구원의 문이 열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감사는 행복한 삶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마다 문이 하나씩 열립니다. 막힌 것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해를 주시리라. 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별을 주시리라. 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의의 태양 예수 그리스도를 주실 것이다." 이것이 풍성함을 누리는 증가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열 문둥이를 고쳐주신 것을 잘 압니다. 한 사람이 돌아와서 감사를 하였는데 오직 감사한 이방인 한 사람만 구원의 은헤를 덧 입었습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영적 문둥병자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없는 사람이 행복하고 풍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감사치 않는 마음. 불평불만으로 축복의 문을 닫아 잠글 뿐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하게 되면 비밀이라는 책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우주적 창조 에너지와 조화를 이루어 좋은 것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계속 감사할 일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합니까? 현재 없는 것보다도 있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풍요로운 삶을 사기 원한다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땅에 발이 당에 닫기 전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계속 감사할 일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당장 감사제목이 없으면 없어도 심리학적으로 미리 가불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서광호 목사님 미리 가불로 감사하며 섬기지 않았습니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신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죄사함의 은헤, 구원, 영원한 하나님 나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시 103:2-5). 어떤 젊은이가 노만 핀센트 목사를 찾아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 목사님, 저는 이제 완전히 망했습니다. 죽고싶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너만 박사가 물었습니다. “젊은이 결혼했습니까?" 네 했습니다." "그럼 부인은 죽었습니까?" "아니요 살아 있습니다." "자녀는?" "건강한 자녀가 둘 있습니다." "그럼 집에 화재가 났습니까?" "아닙니다” 그 때 노만 핀센트 목사님은 대답하였습니다. "이것 보시오. 아직도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실망하고 죽으려하오?" 이 때 젊은이는 "목사님, 이제야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죽고 싶었던 이 젊은이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이 많은 데 보지 못하고 없는 것을 보고 부정적 생각을 합니다. 시크릿의 저자 론다번은 우리가 풍요롭게 살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조건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보다 우리의 부정적 생각이 가로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바뀌어도 우주는 풍요로움을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셋째,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풍요롭다는 것은 많을 것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잘 쓰고 베푸는 것이 풍요로 가는 길입니다.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베푸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없을 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없는 것처럼 인색하게 행동을 합니다. 그런 생각이 부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이 부자가 되고, 풍성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럴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고 부자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없어도 부자인척 풍성한 척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꾸 없다고 없다고 하면 설령 부자가 되어도 인색한 사람이 되어 베풀줄 모르는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됩니다. 누가 복음에서 부자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수학을 하고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며 만족 해 하는 영혼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부과 설명을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하나님을 감사하지 않고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실상의 가난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허망해지고 우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사야는 인간 창조 목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사43:21).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대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시간, 물질, 은사 재능 모든 것을 쓰는 것이 더욱 풍요로움으로 가는 길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가난한 중에도 주님을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자 보십시오.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 넘치는 기쁨. '극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소유가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가리켜 네가 궁핍과 환란을 당하나 실상은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풍부한 삶을 살려면 이웃에게 베풀어야합니다. 없다고 인색하게 살면 점점 가난해집니다. 가난의 운명을 극복하려면 자꾸 주어야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 때마다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는 것만이 내 것입니다. 세상에 부자가 많지만 실상 부자가 누구인지는 하나님 앞에 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두렙도 동정을 연보한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허상 부자가 아니라 실상 부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계2:9). 모두가 풍요로운 자 실상의 부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세가지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행복은 소유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하고, 드리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들 한 가지 한 가지를 깊이 새기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모든 형편을 뛰어 넘어서 정말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나누면 사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주안에서 풍성함을 누리는 삶을 사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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