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누구와도 사랑에 빠진다. 기와의 둥근 곡선과 나무의 직선이 조화를 이루어내는 한옥은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이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한옥에 생기와 열정을 불어넣은 4명의 작업실을 찾았다. | |
‘고방’이라 이름 붙인 금속공예가 고혜정의 작업실.
금속 공예가 고혜정의 공방 겸 갤러리
전통, 그 안에 예술을 담다 | |
제주도에서 공수한 현무암과 대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화단.
전통적인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방.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과 어우러진 집 안 곳곳,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계동 좁은 골목 사이,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대문 위 작은 푯말에 ‘고방’이라고 쓰여 있다. ‘고혜정의 방’에서 딴 이름으로 고혜정 작가의 공방 겸 갤러리다. | |
방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 작업대가 마당을 바라보는 독특한 구조가 위트 있다.
그녀는 미국 유학 후 우연히 문인화가 소석 구지회 선생의 한옥 아틀리에를 보고 계동에 터를 잡게 되었다. 처음엔 지금 공방이 있는 골목 맞은편 길에 공방을 열었지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고방을 마련했다.
이곳은 1백 년이나 된 오래된 한옥으로 2년 전까지만 해도 주방에 아궁이가 남아 있을 정도로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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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정 작가의 작업실 책상 앞. 지인들의 글귀와 아기자기한 사진들로 꾸며놓았다.
마당을 포함해 30평 남짓 되는 이곳은 개화기에 지은 집으로 지금의 공방으로 재탄생하기까지 공사가 만만치 않았다. 기존의 한옥 모습을 그대로 살리기위해 그녀는 서까래와 기둥,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대문의 위치만 바꾸고 방과 주방 모두 최대한 옛것 그대로 되살려 집을 고쳐나갔다. 그렇게 한옥을 고치고 서울시의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2010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만의 보금자리에 입성했다. | |
창을 열고 작업대에 앉으면 운치 있는 고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 공사를 할 때 서울시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줘요. 대신 내 집이라도 창문 하나, 기둥 하나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요. 일일이 서울시에 허가를 받아야 하죠. 그래서 공사 기간도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이 집으로 들어올 때 가슴 벅차고 설레더라고요.”
고방은 ㄷ자 형태로 대문을 지나 중문으로 들어가는 오른쪽으로 마루가 보이고 그 안에 안방이 있다. 안방 옆으로 부엌과 작은 방이 있고 맞은편에 작업실이 마주하고 있다.
고방은 특이하게도 부엌을 실내에 들여놓지 않고 옛 구조 그대로 마루에서 마당으로 나가야 부엌으로 갈 수 있다.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불편할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게 한옥에 사는 매력 아니겠냐며 해맑게 웃는다. 또 그렇게 해야 진짜 옛 한옥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생활 속 불편은 감수하기로 했다. | |
안방 안에 있는 벽장은 전시가 있을 때면 멋스러운 전시실로 변신한다.
계동으로 들어오기 전 그녀는 집 근처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가까워서 편하긴 했지만 공간의 환기가 잘 안 돼 페인트 냄새로 매일 머리가 아프고 몸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고방으로 옮겨 매일같이 나무 향 가득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곳에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고. 그보다 그녀가 이곳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는 그녀에게 바닥의 돌 틈 사이로 싹을 틔우는 꽃이며 이끼 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금속들을 갈고 닦다 보면 목이며 허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럴 땐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차를 마시며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지인들의 작품을 감상하곤 한다. 이 집의 중문 앞에는 작은 해태가 양쪽에 앉아 있는데 이것은 이웃에 사는 최진호 작가의 작품으로 선물 받은 것이다.
또 마루에는 소석 구지회 선생의 작품인 수묵화가 걸려 있고 그 옆 안방에는 ‘보빈느 퀼트’의 이불이 놓여 있다.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마당과 마루에 그녀의 고향인 제주에서 공수해온 맷돌과 찻상 등이 놓여 집 안 곳곳을 빛내주고 있다. 고방 자체가 갤러리인 셈이다.
“꽃나무를 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고방을 찾아오시는 분들마다 마당과 화단이 멋있다고 하세요. 마당의 돌들은 전부 제 고향인 제주도에서 공수해왔는데 고방의 마당과 대나무, 현무암이 삼박자를 이뤄 생각지 못한 멋진 공간이 됐어요.
저기 개구리밥이 자라고 있는 돌그릇은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돼지 여물통이에요. 저것도 여기선 멋스러운 소품으로 다시 태어났죠. 고향의 물건을 가져다 놓고 보니 이곳이 더 따뜻하고 내 집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더라고요.” | |
곳곳의 소품들에서 고방에 대한 고혜정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마당과 집 안을 둘러보고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처음에 마당에 꽃나무를 심고 싶었는데 꽃나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대나무를 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 같다고. 바람 따라 스르륵, 사라락 부딪히는 소리가 한옥과 어우러져 고방만의 멋스러움이 살아난다.
작년까지 1년 동안 고방에서 생활했던 그녀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 있던 터라 한옥 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옥은 외풍이 심해 한겨울에는 집 안에서도 두꺼운 카디건이나 스웨터를 껴입어야 했다.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아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한참을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했고, 집 안의 싸늘한 한기 때문에 움츠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적응이 되면서 곳곳에서 한옥만의 매력이 느껴졌다.
현재 고방은 작업실 겸 갤러리 공간으로, 평소엔 그녀와 그녀의 제자 단둘이서 일하는 작업실이지만 1년에 두 번은 10일간 전시회를 연다. 10월엔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고, 봄에는 다른 작가들에게 전시관을 대여해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 고방은 한옥과 잘 어울리는 브랜드 론칭이나 작은 음악회, 시 낭독회 등의 대관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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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이 모두를 반갑게 반기는 우영미 대표의 아틀리에는 항상 열려 있다.
바느질 작가 우영미의 작업실 겸 쇼룸
생활 속에 무명을 녹이다
전통과 전통이 만났을 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평화로운 한옥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무명천들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그곳, ‘규방도감’을 찾았다. | |
그릇 하나를 놓을 때도 예쁜 자수를 놓은 정갈한 플레이트를 곁들여 보는 이의 기분까지 좋아진다.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지나가는 거리 한쪽에 있는 좁은 골목길, 그 길에 작은 한옥이 숨어 있다. 바로 바느질 작가 우영미 대표의 작업실이자 쇼룸인 ‘규방도감’이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는 규방도감 안으로 한발 내딛는 순간 마법처럼 사라진다. 남아 있는 것은 시원한 바람소리와 그에 맞춰 춤을 추는 풍경의 맑은 울림, 그리고 그 속에서 조용히 자수를 두고 있는 우영미 대표뿐이다. | |
아름다운 자수를 놓은 쿠션이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침실을 더 아름답게 바꿔놓았다.
방석부터 이불, 옷 등 다양한 생활 소품에 소재, 자수, 천연 염색 등을 접목시키는 일을 하는 그녀가 아틀리에 겸 쇼룸으로 한옥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자신만의 작업실이 필요했고, 그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품들을 사람들은 그저 아름답다며 감상만 하더라고요. 실제로 제품을 구입해서 자신의 방이나 거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때문에 1백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아틀리에 옆에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처럼 쇼룸을 꾸며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장소로 한옥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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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쪽에 모아놓은 장독대들마저 한옥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규방도감에는 아틀리에와 함께 침실, 거실, 서재, 사랑방 등 4개의 콘셉트로 꾸민 쇼룸이 있는데, 쇼룸을 진짜 누군가가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색감의 무명 이불이 침대와 만나면 어떤 느낌이 나는지, 창문에 흰 무명천으로 만든 커튼을 달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천연 소재인 무명 특유의 느낌과 천연 소재로 만든 한옥의 느낌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무명으로 만든 침구, 커튼 등 소품을 사용하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 느낌이 한옥과 접목되어 더 배가되는 것이다. 덕분에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것이 예전보다 더욱 편안하고 즐거워졌다고. | |
규방도감의 사랑방은 언제라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늘 정갈한 모습을 유지한다.
지금의 규방도감과 그녀는 처음부터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을 수리하는 동안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지금의 한옥과 처음 만났다. 잠만 잘 곳을 원했던 터라 급하게 들어온 그 당시 규방도감은 지금과 매우 달랐다. 수리해야 할 곳 천지였고 집 안은 바퀴벌레가 나올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 동안 아파트와는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는 우영미 대표.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바람이 불면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침이면 쏟아지는 햇살 덕분에 행복했다. 때문에 집을 내놓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아틀리에를 이곳으로 옮겨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던 한옥 아틀리에로 바꾸기 시작했다. | |
아침이면 한가득 햇빛이 들어오는 규방도감. 마루에 걸터앉아 봄바람을 느끼며 햇볕을 쐬는 재미가 쏠쏠하다.
“애초에 집이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어서 수리를 많이 해야 했죠. 하지만 공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한옥 그대로의 멋을 살리는 거였어요. 집 구조, 나뭇결 등 본 모습 그대로의 한옥이 예쁘니까요. 그리고 최대한 가구를 들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죠. 한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되거든요.”
실제로 규방도감에는 큰 가구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나무 선반을 이용해 소품을 장식하고 보관할 뿐이다. 한옥의 고즈넉한 멋을 그대로 살려서인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틀리에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한다. 이는 우영미 대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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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도감의 거실은 누구나 들어와 쉬었다 갈 수 있게 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규방도감의 가장 큰 안방은 온전히 그녀만을 위한 작업 공간이다. 작업실 한 가운데에 있는 큰 탁자에서 조용히 앉아 수를 놓거나 이불을 디자인한다.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늘 번잡하고 어지러웠던 그곳과는 달리 한옥에 마련한 아틀리에는 그녀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때문에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에 열중하게 된다고. 특히 요즘처럼 볕이 좋은 날 선선한 바람에 처마의 풍경이 조용히 울려 퍼질 때면 이곳이 도심 한가운데라는 것을 잊기도 한다.
지금도 간혹 한옥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이도 있지만 그녀는 규방도감으로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자신이 만든 이불, 보자기, 방석 등이 한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그녀의 한옥 예찬은 끝나지 않았다. | |
한국의 정서와 색감을 담은 플라워 아틀리에 이에나와 플로리스트 이주희.
플로리스트 이주희의 정원
자연과 온기를 담아 완성하다
낡은 살림집이 잘 손질돼 말끔한 외관에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거닐고 싶은 정원을 품은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다른 곳보다 아침을 빨리 맞이하는 플라워 아틀리에 ‘이에나’에 다녀왔다. | |
이주희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대청마루에 앉으면 정원 한쪽의 작은 꽃나무까지 보인다.
매일 아침 꽃시장에 다녀와 정원이 있는 한옥으로 들어서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떤 것일까. 안국역 4차선 도로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플라워 아틀리에 ‘이에나’가 있는 골목으로 발길을 꺾자마자 여지없이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한옥에서의 하루는 빠듯해요. 한옥에서 생활하려면 쓸고, 닦는 게 몸에 배야 해요. 아침저녁으로 플라워 수업이 있고, 개인 작업도 해야 하죠. 오전 수업을 끝내면 오후 2시 정도에 잠깐 여유가 생기지만 그 시간마저도 한옥을 가꾸는 뭔가를 하고 있죠. 요즘은 낮 시간에 정원에서 잡초를 뽑느라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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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대표는 이에나는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니 부담 없이 이에나의 대문을 넘어와 달라고 강조했다.
오픈 초기의 이에나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한옥이 더 반짝반짝했다. 게다가 꽃을 다루기 때문에 마룻바닥에 끊임없이 꽃과 물이 떨어지는데, 우물나무를 쓴 덕에 마루 청소를 게을리 하면 나무가 상하기 때문에 항상 청소는 기본이어야 한다. | |
이주희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수집한 클래식한 유럽 가구와 한국의 고가구, 화사한 파스텔 톤 꽃들이 어우러지며 이뤄내는 스타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왜 한옥이었을까? 갓 파리에서 돌아온 플로리스트라면 좀 더 이국적인 공간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싶지 않았을까? “꽃을 다루는 곳인데 꽃 냉장고가 없다고 다들 의아해하세요. 하지만 꽃은 실온에 있을 때 가장 예쁘게 유지돼요.
냉장고에 있다 실온으로 나온 꽃이 금방 시드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한옥은 흙과 나무로 만들어서 항상 서늘하게 유지돼 꽃 냉장고가 필요없어요. 이렇듯 예민하고 연약한 꽃도 잘사는데 사람이 한옥에서 지내면 정말 좋지 않겠어요.”
플라워 아틀리에 이에나를 오픈한 지 이제 2년여. 그녀는 한옥 붐이 일기 이미 한참 전, 안국동에 한옥을 소유하고 있던 어머니에게서 한옥을 물려받으며 자연스럽게 아틀리에에 대한 계획을 실천하게 되었다.
워낙 낡기도 했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서까래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올리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무 전통적이지도 모던하지도 않은 편안한 느낌의 한옥을 만들고 싶었다. 한옥 내부는 무엇보다 채광과 조망에 집중했다. 조선 문이라 불리는 창살문을 없애고 유리창과 통창을 달아 실내에서도 정원 곳곳이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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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짠 탁자 위로 한낮의 햇살이 보기 좋게 드리운다.
지금의 정원은 원래 ㅁ자 구조였던 한옥의 방 한 칸을 빼서 만든 것이며, 나무를 심은 정원 역시 애초에는 콘크리트가 덮여 있던 마당으로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마당에 덮여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잔디보다 병충해에 강해 관리가 쉬운 마사토를 깔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겨울에는 삭막해지는 서양식 정원이 싫어 사계절 내내 푸릇한 소나무와 모란, 작약, 백일홍, 수호초, 야생화를 심어 각 계절에 맞게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양과 서양을 결합한 정원을 만들었다. 이 정원에 꽃이 다 피면 얼마나 인상적일까. 화려해지기 직전의 정원을 품은 한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빗소리조차 정원의 풀과 기와가 흡수해버리는 듯했다.
이에나에서 머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그곳을 기억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치유의 공간인 정원과 강하지만 거침없이 부드러운 직선과 곡선을 모두 지닌 한옥은 서로 상통한다. 이주희 대표 역시 한옥에 자리한 이에나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있다. | |
미팅을 하거나 개인 업무를 보는 작업 공간. 옆으로 뚫린 통창을 통해 한옥의 운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잡지 편집장 심정은의 문화 아지트
집 속의 또 다른 집, 현대미를 품다
한옥 풍경에 반해 들어서니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이 나온다. 한옥이 품은 또 다른 매력으로 그녀의 한옥 아틀리에는 언제나 새롭다. | |
프라이빗한 파티장, 하우스 콘서트장, 편집팀의 회의실. 가변성이 가득한 지하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듯한 느낌에서 특별함을 얻는다.
골목골목 이어진 북촌 한옥마을을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할 법한 단정한 한옥은 가정집이라 하기에는 다듬은 느낌이고, 상업 공간이라 하기에는 이렇다 할 간판이 없다. 가끔은 문이 굳게 닫혀 있기도 해 골목을 오가는 이들의 궁금증은 물론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혹은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ㄱ’자 형태의 이 한옥은 시사 교양지 (BEFRIENDERS INTERNATIONAL)의 편집장 심정은의 작업실이다. | |
대지가 높아 북촌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디어프렌즈의 마당. 햇볕이 좋으면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한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녀의 첫 번째 작업실은 암실을 갖추는 등 전문성이 깃든 공간이었던 반면, 한옥에 마련한 두 번째 작업실 ‘디어프렌즈’는 기능적인 면보다 그녀의 다양한 관심사를 풀어놓을 수 있는 아지트 느낌을 많이 담았다.
그녀는 도네이션에 관심이 많다. 그녀가 만들고 있는 잡지의 성격도 그러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개인 공간도 필요했던 그녀는 평소 꿈꾸던 한옥을 생각했고, 적당한 곳을 모색하던 중 남산을 향하고 있는, 여름이면 푸른 나뭇잎으로, 가을이면 낙엽으로 계절을 느끼게 하는 키 큰 나무가 있는 집을 이웃으로 둔 오래된 주택을 발견했다. 그곳이라면 자연을 가까이 접하며 살고 싶은 그녀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거 같아 그녀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한옥을 만들어나갔다.
과감히 기존 주택을 헐고 그 터에 한옥을 지었고, 한옥의 멋을 살릴 수 있는 외관과 서까래 등만 그대로 두고 다시 공사를 해 실내를 미니멀하게 꾸민 것. 한옥이 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 집 속의 집을 5년여에 걸쳐 완성한 셈이다.
실제로 마당에서 한옥을 바라보거나, 실내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한옥 안에 화이트 큐브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지가 높다는 점을 활용해 지하 공간도 마련했다. | |
1층과 지하 공간을 이어주는 나무 계단. 감각 있는 그림의 디스플레이로 갤러리 느낌을 더했다.
1층과 지하 공간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층은 아늑한 느낌의 작업 공간과 오픈 주방, 작은 리빙 룸으로 꾸몄고, 지하 공간은 한옥이 자취를 감춘 지극히 미니멀한 멀티 공간으로 꾸몄다. 그 안에서 그녀가 기획한 다양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얼마 전에는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디어프렌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오랜 친구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어요. 사랑의 손길로 아프리카 지역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죠. 도네이션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공동 작업실이라고 봐도 좋을 거 같아요. 디어프렌즈라는 이름과의 연관성을 계속 만들어갈 생각이에요.”
두 층의 역할이 정해진 듯하지만 사실 이곳은 가변적인 매력이 상당하다. 1층은 해가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작업 공간과 리빙 룸의 위치가 며칠 단위로 바뀌고, 지하 공간의 큰 테이블은 한 달에 한 번 편집팀의 회의실로 변한다.
게다가 금·토·일 3일간은 카페로 변하기도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권유로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카페라는 타이틀도 단 것. 가벼운 음료를 마실 수 있는데, 카페 수익금으로는 동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비워터 식수지원 캠페인을 후원한다. 착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카페 역시 디어프렌즈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
활짝 열린 통창으로 봄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오픈 주방과 리빙 룸. 화이트 큐브 사이로 보이는 서까래의 모습이 재미있다.
그녀는 주중에는 주로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가끔 작업실에 들러 미팅을 하거나 개인 작업을 한다. 회사와 15분 거리에 있어 오가기도 편하다. 주말에는 되도록 작업실을 지키려고 하는데 너무 바쁠 때는 카페 문을 닫기도 한다고.
“자연과 가까운 한옥을 만끽하려고 벽을 통창으로 마무리해 바깥 풍경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했어요. 화장실도 천장을 유리로 마감해 하늘과 마주 보게 했고요. 디어프렌즈는 바깥에서 볼 때는 영락없는 한옥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한옥임을 잊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모던한 공간 곳곳에서 한옥의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죠.”
한옥이 지닌 공간의 개방과 차단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며, 디자인 오브제로 현대인의 감각도 함께 담은 심정은 편집장의 한옥 아틀리에는 항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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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박미란, 강하나, 이지영, 이하나 기자
사진 정민우, 이봉철
제공 리빙센스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