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의 전설-성덕대왕신종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봉덕사에 달려 있어 봉덕사종이라는 이름도 있고, ‘에밀레’라고 울린다고 하여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요. 특히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이 유명합니다.
종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봉덕사 승들이 재물이나 쇠붙이를 보시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어느 승이 한 집에 들렀을 때 여인 하나가 아이를 안고 나와,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데 이 아이라도 괜찮겠느냐"고 말한다. 승이 놀라 그 날은 그냥 돌아갔지만, 주종작업이 지지부진하고 꿈에 노인(혹은 부처님)이 나타나 그 아이를 넣어야 종이 완성된다는 계시를 내린다. 승이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아이를 데려와 도가니에 넣는다. 마침내 종이 완성되고, 종을 치면 그 안의 깃든 아이의 원혼이 '에밀레'라고 울부짖는다. '어미 때문이야'라는 것이다.
-<한국어문학연구> 47집, ‘에밀레종 전설 연구사 비판’ 중에서 발췌
에밀레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위의 내용이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일 것입니다. 실제로 성덕대왕신종은 성덕왕의 아들인 경덕왕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으나, 경덕왕은 끝내 완성된 종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왕인 혜공왕 대가 되어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지요. 구리 12만근을 사용한 30년에 걸친 대사업이었습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이니만큼 그 주조 과정이 매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재밌는 것은 에밀레종에 대한 기록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라고 칭한 문헌은 어디에도 없지요. 1925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아동문학가 렴근수의 단편 동화 <어밀네 종>이 바로 위 전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후 친일문학가 함세덕이 이 이야기에 살을 붙여 희곡으로 만들며 널리 퍼지게 되지요. 이것은 일제의 수탈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다만 전설 자체는 그 이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는 인신공양을 통해 명검을 만들었다는 간장·막야에 대한 전설이 전국시대부터 내려오고 있지요. 또한 오호십육국시대 때 세워진 대운사란 절에 있는 종은 "낭아娘呀, 낭娘"(여자 혹은 어머니) 이라고 운다고 합니다. 이런 중국의 전설이 한반도로 넘어와 성덕대왕신종과 결합하여 대대로 구전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전설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성덕대왕신종의 성분 검사를 해본 결과 인간을 넣었을 때 당연히 검출되어야 할 칼슘이나 인 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았지요. 애초에 사람과 같은 불순물이 들어간 상태에서 거대한 종을 만드는 것도 무리고요. 다만 당시 아기를 넣었다고 할 만큼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만들었다는 추측 정도는 해볼 수 있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성덕대왕신종은 국보 29호로 지정된 만큼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종 표면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은 신라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지요. 또한 1,000여자의 글자도 함께 새겨져 있는데, 현재까지 손상되지 않았기에 당시 신라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돌이나 쇠로 만들어진 유물에 새겨진 글자들을 ‘금석문’이라 하는데 과거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지요.
성덕대왕신종은 현존하는 종들 중 국내 최대의 종이기도 합니다. 다만 역사상 최대의 종은 아닌 게 황룡사의 종은 성덕대왕신종의 4배의 크기였다고 전해집니다. 아쉽게도 고려 때 몽골군의 침입으로 황룡사와 함께 사라졌지만요.
하지만 성덕대왕신종은 현재 종으로써의 수명이 끝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종한 것이 2003년 개천절이지요. 본래 종을 매달아 놓은 쇠고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는지, 현재는 아래 사진처럼 받침목으로 종을 괴어놓은 상태입니다.
ps1.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실물을 볼 수 있고, 녹음된 타종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종 표면의 명문이나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탁본이 전시되어 있지요.
ps2. 성덕대왕신종 비공식 트위터도 있습니다. 들어가 보면 좀 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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