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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A
1986.08.11 정인세 원장
읽어지는 대로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매우 어려운 말이 나옵니다. 태초에 태초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그런 말이 나옵니다. 태초라는 말만 이야기를 하려도 며칠이 걸리는지 모르고 하나님 이라는 말만 이야기를 하려고해도 며칠이 걸리는지 모르는 이런 큰 문제들이 나옵니다. 여기 태초라는 말은 요한복음 1장 1절 첫머리에도 태초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태자는 클 태(太)자입니다. 아주 큰 처음이라. 그 말입니다. 이 세상도 생기기 전에 아주 오래된 옛날 맨 처음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태초에 아주 옛날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그때는 이 세상에 별도 없고 물론 우리 사는 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고 이 우주 안에는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옳으냐? 하느님이 옳으냐? 하늘님이 옳으냐? 그건 어리석은 수작들입니다. 하나님을 무어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 사람은 가미사마라고 부르고 서양 사람들은 갇 이라고 부르고 나라 사람마다 제 멋대로들 부릅니다.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하늘님이라고 불러도 하나님은 그대로 계시고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그건 그대로 계시고 그것가지고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는 것 다투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어찌되었던지 여기 제가 갖은 성경에는 하나님 이라고 그랬고 여러분이 갖은 공동번역에는 하느님 이라고 그랬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칭은 아무렇게나 부릅시다. 어찌되었던지 원 히브리 사람들이 쓰는 히브리 성경에는 하느님 이라는 장소는 아예 글자도 쓰지 않았습니다. 어떤 성경에는 점만 찍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두렵고 황송스러워서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도 없어서 그래서 점만 찍어 놓은 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부르기를 아주 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야훼라고 부르기 시작 했지요. 그러다가 여호바 라고 불렀지요. 그것이 나중에 여호와라고 불렀지요.
하나님의 명칭이 수없이 바뀌어 왔습니다. 민족마다 다르게 부르고 그 나라마다 하나님을 다르게 불렀습니다. 어찌되었던지 그 하나님이 처음에 계셨습니다. 하나님만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한분이냐 두 분이냐 세분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 창세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가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라 그랬습니다. 내가 사람을 만들자. 내가 나의 형상대로 만들자. 이러지 않으시고 우리라 그랬습니다. 복수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한분만이 아니신 거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은 처음부터 세분이 계셨다. 성부님과 성자님과 성신님과 세분이 계셨다는 근거를 여기서 잡습니다. 어찌되었든지 하나님은 복수도 되고 단수도 되십니다. 그런데 그 아래 가서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거기에 가서보면 나는 절대로 혼자다. 나 밖에 다른 신은 두지도 말아라. 하는 말씀을 아주 수없이 거듭거듭 하셔서 자기 하나밖에 없는 것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없이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바알이니 아스다롯이니 뭐 말곰이니 별 신들을 다 섬겼는데 아주 그걸 기를 쓰고 마지막까지 싸워서 그 우상을 섬기는 다른 신을 섬기는 민족은 쳐들어 갈 적에 늙은이로부터 어린애까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없애버리라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부터 그저 어떤 성이든지 쳐들어가면 사람의 씨알머리 하나도 없이 다 없애버린 것은 그 우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러신 겁니다. 그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 절대하신 하나님이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느냐? 그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는 하나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신 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요.
이 세상에 어떤 물건이든지 다 시작이 있습니다. 이 책상도 시작이 있고 이 집도 시작이 있고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다 어머니 배속에서 생긴 때로 부터 무덤에 들어가는 날까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만물이 뭐 살아있는 물건이나 생명이 없는 물건까지도 전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시무종하신 분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는지 그걸 말 할 사람은 이 땅위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지식을 갖은 사람도 하나님이 언제부터 계시다고 말 할 수 있는 지식은 아직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셨어요. 그러기에 여기다가 맨 처음이라고 그랬습니다. 맨 처음에 그 태초라는 말 속에는 아주 시작에 시작이야. 맨 먼저 시작할 때 그때는 누가 있었느냐? 이런 말을 물어볼 필요도 없어 우리 지식 밖의 세계야. 그것은 그 태초에 하나님이 계셔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셨다고 그랬습니다. 그건 요한복음에도 그 말씀이 나오지요. 말씀 한마디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생각 하는 것 다르고 내 마음속에 생각 하는 것 다르고 그 생각 하는걸 뜻으로 나타내는 것 다르고 또 그 뜻으로 나타낸 걸 행동으로 하는 것 다릅니다. 우리 사람이 내가 생각한 걸 그대로 다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도 없습니다. 속의 생각은 생각대로 돌아다니고 행동은 행동대로 돌아다니고 그래서 그것이 비교적 자기 속에 있는 생각과 행동이 근사한 사람을 인격자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과 행동은 아주 동떨어지게 다릅니다. 그걸 이중인격자니 비인격자니 그럽니다. 그렇지만 그걸 분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특별히 다른 거는 하나님은 생각 하시는 거 하고 행동하고 꼭 맞습니다. 생각 하시면 그것이 그래도 행동으로 됩니다.
여기 보면 처음에 보면 그 말씀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다. 그 수면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강물이나 바닷물과 같은 수면은 아닙니다. 물 기운이 있는, 좀 어려운 말로 하자면 수소분이 가득 차있는 그런 세계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기 행동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말입니다. 그때는 혼돈 했어요. 낮과 밤이 없으니까, 그리고 물질에 육지와 바다도 없을 적이니까 그리고 이런 돌멩이니 산이니 하는 유형한 물질이 없을 적이야. 그것도 만드시기 전이야. 그러니까는 그냥 이것을 과학자들은 성설이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자욱하게 안개와 같은 것으로 참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안개와 같은 것으로 이 우주가 가득 차있었다고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 시작하기 전이라고 과학에서도 그렇게 증거를 합니다. 그러면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이 역사를 하셨다. 행동을 하기 시작을 하셨다.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 그걸 누가 알겠느냐? 욥기에 보면 욥이 그것을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 우는 자가 누구 오니이까? 이렇게 말하고, 하나님은 그 욥과 모든 인생들에게 대해서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내가 이 세상에 토대를 놓고 이 세상에 기초를 놓을 적에 누가 본사람 있으면 대답해라. 그러고 그 욥과 같이 있는 소위 신학자들에게 하나님이 질문을 던지시는 거야. 그러니까 거기서 그냥 그렇게 욥을 공박을 하고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고 요새말로 하면 학자들 아주 당대에 일류 학자들입니다. 그 욥에게 왔던 사람들은 그 학자들이던지 그렇게 말대답을 잘하던 욥도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음성을 내시니까 아무소리도 못하고 한마디도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리고 그리고 욥이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전에는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만 하였었더니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게 되었습니다. 하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었더니 이제는 하느님을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 합니다. 이렇게 이것이 진정한 회개에요.
오늘 회개, 회개 하고 떠들지만 자기 모두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만 죄 몇 개 내놓고 회개라고 떠들지만 그거 아니에요. 이건 하나님 앞에서 그저 티끌과 먼지만도 못하고 하루살이만도 못한 제가 그저 아무것도 잰척하고 모르는 것이 아는 척하고 그러고 살았습니다. 그저 황송합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아무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폭 숙여버린 욥이 아주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한탄하고 회개합니다. 그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눈으로 보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아주 항복을 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여기 창세기 1장에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려도 끝이 없지요. 그렇게 지금 신학자들의 유신론 이라는 것 같이 광범한 것이 없습니다. 유신론 이라는 책은 여기다가 쌓아두면 방이 꽉 차도록 차도 방이 모자라도록 많은 것이 유신론에 대한 책입니다. 서울 기독교서점 같은데 가서 여기저기 들춰본다면 구교에서 신교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같이 쓴 많은 책이 나와 있는 게 없어요. 그렇지만 그거 소 터럭 세는 것만도 못해요. 소 한 마리에서 터럭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서 세는 것만도 못한데 그것도 다 어리석은 짓들입니다. 그래서 여기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이야기를 하려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려는지 또 이것이 어느 때인지 그러니까 그냥 태초라고 그러는 거지요. 맨 처음에 이 세상은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런데 인제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시는데 맨 먼저 필요한 것이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니까 흑암 속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맨 먼저 필요한 것이 빛이야. 빛 그러니까 맨 먼저 빛이 있어라. 여기가 그 말이거든요. 하나님이 빛을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빛이 되어버렸어요. 하나님이 생각 하시면 곧 유형하게 나타나는 거야.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과 행동은 언제든지 일치해요. 일치해, 빛이 있어라. 하니까 빛이 있어서 빛과 어두움을 분간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낮과 밤이더라.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하루라. 이 하루라는 것이 몇 만 년인지 몇 십만 년인지 몰라요. 어떤 기한동안이 그렇게 해서 지나갔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시작을 했지요. 그래가지고 맨 마지막에 가서 사람을 만드셨지요. 사람을 만드실 적에는 우리와 같은 형상으로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자. 그것이 또 문제가 되고 있어요. 하나님이 그럼 우리 사람들과 같이 이렇게 코가 달리고 두 눈이 달리고 귀가 달리고 이런 하나님이신가? 그러니까 하나님을 별나게들 유형하게 생각하려 고들 애를 쓰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형상 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가르친 겁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은 처음부터 같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 속에 있는 영,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맨 먼저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부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어요.
여기 하나 우리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건 사람뿐입니다. 짐승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의 영이 얼마나 하나님과 닮았느냐? 하나님과 같이 지혜롭고 하나님과 같이 자비스럽고 하나님과 같이 능력이 있고 뭐 모든 성깔이 사람의 성깔이 하나님과 꼭 닮도록 만드신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가 제가 처음에는 시간을 하나님이 주시면 기독교의 신관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기독 관을 이야기하고 죄악 관을 이야기하고 인생관을 이야기하고 그러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요 시간에 나올 적에 한 시간만 작정하고 나왔어요. 한 시간 동안에 창세기에서부터 묵시록까지 이야기를 해야 되요. 그러니까 시간은 어느 정도 짜여 질 런지 모르니까 한꺼번에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꺼번에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찌하던지 우리 사람과 같이 참 신통한 물건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기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자기를 무시하라는 것은 죄 짓는 나를 무시하라는 거지요. 내 속에 하나님의 영혼과 같이 창조된 그 영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우리 속에 있는 그 영 그것이 우리의 생명의 본체인데 그 생명의 본체는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하신 겁니다. 너희가 무엇을 주고 네 목숨을 바꾸겠느냐? 온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사람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깔보기도 하고 그건 아주 무식한 짓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짓들입니다. 아무리 여기 이렇게 불구자 수용소에 정신환자들이 많이 있지만 저렇게 사람을 못하는 것도 까닭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정신이 조금 비틀려 졌지만 그 사람 속에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영혼입니다. 우리가 쪼그만 어린애 하나가 지나가면 어린애라고 봐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같은 이는 어린애가 지나가면서 대통령님 가십니까? 그러고 인사를 하면 마주 모자를 벗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의 비서가 아 각하께서는 뭘 어린애들한테 그럽니까? 그러면 아 저 어린애 속에도 대통령이 들어 앉아있어요. 그 한사람, 한사람 어린애들 까지도 대단히 그렇게 뜻있는 사람들은 존중을 했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무식하니까 저 사람은 늙었으니까 저 사람은 병신이니까 그러고 업신여기면 그것이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마귀의 생각들입니다. 하나님의 속에 있는 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 사람이 사람들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인격을 우리가 서로 인정을 할 적에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 속에 있는 인격을 인정하지 않고는 아예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존재할 필요가 없고 말을 듣는 사람도 필요가 없고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위의 대통령으로부터 아래 구두닦이 하는 저런 소년들 까지 그 속에 전부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만들어 놓았는데 인제 문제는 그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제 모습대로 그대로 있었더라면 맨 먼저 아담과 이와를 창조해 놓으시니까 얼마나 영특하고 능력이 있었습니까? 아담 앞에 하나님이 새를 이렇게 날아오게 해서 앉으면 너는 까치다. 그러면 까치가 되는 거야. 너는 까마귀다. 그러면 까마귀가 되는 거야. 큰 물소가 오면 너는 물소다. 그러면 물소가 되는 거야. 그래서 이 땅위에 있는 만물의 이름을 다 지을 정도로 총명했습니다. 아담은, 그런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지금 우리는 저 산에 있는 풀잎사귀를 백가지만 골라내려도 보통 사람은 여섯 가지 일곱 가지만 골라놓으면 벌써 혼란을 일으키고 머리가 약간 총명하고 그래도 백가지 풀을 골라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의 이름을 다 분간할 정도로 그렇게 머리가 좋았습니다. 짐승의 이름도 벌레 저런 하루살이와 같이 메뚜기와 같이 그냥 모기 파리와 같이 좌우간 땅위에 있는 물건 이름을 다 총명하게 그렇게 만드셨어요. 아담 이와를 만들어 놓으셨을 적에는 그랬다. 그 말이지요. 우리도 죄 짓기 전 우리는 그렇게 총명했지요. 아주 하나님과 같이 총명했어요.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대통령만 되어도 우쭐거리지만 그때는 혼자 앉아서 아담 혼자 앉아서 온 천하 만물을 전부 다 가져 그래도 조금도 착오가 없어요. 까딱도 없어요. 그렇게 아주 총명하고 지혜 있고 능력 있고 그런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갔지요. 마귀가 들어가서 너 선악과 따먹지 말라더냐? 그러니까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아니다. 그건 네가 하나님께 둘린 것이다. 네가 그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 하나님이 자기처럼 될까봐 그러는 거야. 따 먹어봐라. 괜찮다. 이것이 마귀의 꼬임의 시작이거든요. 하나님처럼 되려고 이와가 아담이 자기도 하나님처럼 그렇게 한번 사실은 벌써 그렇게 되어져있는데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게 죄악이 시작은 교만이라고 그러는 거야. 교만, 어찌하던지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자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지옥까지 떨어지는 거야. 그 마귀라는 씨에타노라고 하는 것은 원은 천사의 이름이었거든요. 하늘 꼭대기에 있는 천사들 중에도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천사였었어요. 하늘 꼭대기에서 그런데 그 천사가 세상을 다 둘러봐도 자기같이 높은 천사가 없거든. 인제 자기보다 높은걸 하나 쳐다봤더니 하나님이 있거든. 이 하나님이 걸리적거려요. 하나님보다 내가 더 높아봐야겠다. 그러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하다가 마귀가 된 거야. 그래서 그 씨에타노 라는 것이요. 마귀의 기원은 그 하늘에 있던 높은 천사가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높아지려고 하다가 아주 정 반대로 지옥 밑창까지 맨 밑창까지 떨어진 게 그게 마귀에요. 우리 속에서 조금이라도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마귀의 시작이야. 모든 죄는 거기서 생기는 거야. 높아지려는 그러니까 그 마귀가 이와를 꼬여서 너 하나님만큼 될 수 있다. 그 선악과만 따먹어봐라. 그러면 하나님 같이 그렇게 지혜도 있고 능력도 있고 그럴 수 있으니 따 먹어봐라. 이렇게 꼬여요. 그것이 이브로 하여금 또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했거든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해요. 그리고 그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지요.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서 그 아담과 이와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 에덴동산에 나타나시면 아주 반갑고 기쁘게 맞이하고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만드셨어요. 처음에 우리를, 지금 우리는 밤낮 이렇게 하나님하고 숨박꼭질을 하고 살게 만드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하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만드셨는데 그 선악과 따먹고는 모두 앞에다 나무 잎사귀를 갖다가 가리고 수풀 속으로 숨어 다니고 하나님을 피하기를 시작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거 못쓰겠다. 이거 에덴동산에 두었다가는 안 되겠다. 그러고 내쫓지 않았습니까? 내쫓은 뒤로 인제 유형한 육신의 자식들을 낳았지요. 가인과 아벨을 낳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인제 가인과 아벨을 낳으니까 맨 먼저 무엇이 생겼습니까? 가인의 마음속에 누가 그렇게 악한 마음을 넣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갖다가 바칠 적에 가인이 바친 예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눈치가 보여요. 그러니까 벌써 가인은 속에서 아 저양반이 싫어하시는구나. 마음이 벌써 삐뚤어지기 시작을 해요. 그런데 아주 아벨이 갖다 바친 예물은 아주 좋아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거든요. 그러니까 맨 먼저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시기도 무서운 죄야, 사람들 사이에 저 사람 코가 내 코보다 조금만 오뚝 해도 시기를 하고 색깔만 조금 고와도 시기를 하고 옷을 조금만 잘 입어도 시기를 하고 내 자식하고 남의 자식하고 밤낮 비교를 하고 그 마음도 그때부터 생겼어요.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기 시작을 해요. 시기가 자꾸 쌓여서 속에서 부글부글하고 일어나니까 그냥 어느 틈에 구실을 잡아가지고 동생을 때려죽이지 않았소? 시기하는 마음은 살인과 연결이 되는 거야.
그 현 동완 선생님이 그전에 하시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아요? 아주 깊은 산중에 깊은 산중에 수도원이 하나 있었다고 수도원에 수녀들만 몇이 살았어요. 수녀들만 몇 분이 살았는데 거기 신부님 한분이 다니러 왔어요. 고해성사를 받으러 그랬던지 신부님 한분이 다니러 왔어요. 신부님이 이렇게 문에 들어오다가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왔거든요. 다른 수녀가 오다가 보니까 신부님 신발이 이렇게 삐뚤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똑바로 놔야겠다. 하고 똑바로 놨거든요. 그게 무엇이 잘못됐어? 그런데 다른 수녀가 그걸 봤거든요. 아 저 수녀가 신부님 신발을 똑바로 놓는다. 그런데 거기서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아 저 수녀가 신부님을 더 가까이 하나보다. 제일 수녀원에서 무서운 것이 시기야. 시기, 선생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 그것만 보고 괜히 그것들만 보거든요. 그래서 그 수녀가 그 다음에 그 신발을 똑바로 놓은 수녀를 자꾸 유심히 봤어요. 이건 현 선생님 한 테 들은 이야기에요. 유심히 자꾸 봤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미운 마음이 생겼어요. 미운 마음이 생겨서 사사건건 그 수녀가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미운 마음이 생기고 자꾸 그것이 또 쌓이고, 쌓이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요. 여러분들도 이야기 들은 이들은 알지요. 이렇게 산이 있는데 뒤에 산이 있는데 산에 바위가 있어요. 그런데 절벽 꼭대기에 가서 기도들을 하려고 가끔 가거든요. 그런데 그 신발을 똑바로 놓던 수녀가 산에 절벽 꼭대기에 가서 기도하고 있는 걸 그 시기하던 수녀가 가서 떠밀어 버렸어요. 그 낭떨어지로 떨어져 죽어버렸어요. 그 수녀 깊은 산중에 들어가 있는 그 사람 몇밖에 없는 수녀원에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소? 그런 엄청난 죄악이 신발하나 똑바로 놓는데서 생겼어요. 그 이야기를 현 선생님한테 우리가 들을 적에 많이 생각을 했어요. 그 시기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로구나. 이 아벨이 하나님한테 사랑 좀 받았다고 하나님한테 사랑 좀 받았다고 가인이 그것이 미워죽겠어요. 그래서 저놈을 어떻게 할까? 그냥 목을 늘려 죽였겠지. 한 번에 딸까닥 죽여 버렸겠소? 가인이 그냥 저놈의 자식을 어떻게 한번 해 대야지 어떻게 한번 해 대야지 자꾸 이렇게 하다가 결국은 몽둥이로 때려 죽여 버렸어요. 트집을 잡아가지고 그래서 인류가 맨 먼저 생기면서 살인 이라는 것이 시작이 됐어요. 살인이,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이라는 것이 시작이 됐어요. 그 뒤로 가인도 자꾸 자식을 낳고 또 아담 이와도 또 자식을 낳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퍼졌지요. 처음에는 사람 몇 없었지요. 그때를 지금으로부터 대강을 한 6천년으로 잡습니다. 그 전은 우리가 시간을 따질 필요가 없어요. 한 6천 년 전으로 잡습니다. 그래서 얼마동안 내려오다가 창세기 6장으로 가봅시다.
이제 성경을 찾기 시작을 해야겠어요.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사람이 자꾸 퍼지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이제 남자하고 여자를 만들어 놓으니까 남자들이 여자의 마음은 보지 않고 껍데기만 보게 생겼어요. 색깔이 곱기도 하다. 코가 오뚝하고 예쁘기도 하다. 뭐 눈이 빤짝거리는 게 예쁘기도 하다. 아 이 남자들이 여자들의 모양만 보게 생겼다니까 모양만 보게 생겼어요. 그래가지고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사람으로 아내를 삼아요. 그런데 그 아름다우면 꽃이 아름다우면 꼭 꺾고 싶지요? 예쁜 꽃이 있으면 꺾고 싶지요. 여자가 아름다우면 내 것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생겼어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생겼는가? 그래서 자기 아내를 삼으니라. 모든 자로,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으니라.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이 가만히 보시니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아 그냥 고깃덩어리만 서로 좋아하게 되어버렸거든.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벌써 고기 덩어리만 좋아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만든 신을 거둬버렸어요. 아이고, 저 속에다가 내 신을 차마 더러워서 창피스러워서 넣어둘 수 없다. 그걸 빼앗아가 버렸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여기 보니까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되었음이라. 이제 고기 덩어리가 되어버렸어요. 모두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영원히 그와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들의 날을 일백이십 년으로, 그 전에는 시간이 없어요. 뭐 백년도 살고 천년도 살고 아담 이와도 영원히 죽지 않도록 만드셨으니까 그랬던 것이 저 오래 살아서는 못쓰겠어요. 그러니까 일백 스무 살까지만 살아라. 그리고 수명을 제한해 버리셨어요. 그때부터 모두 울고불고 갖다 묻어버리고 그런 일들이 자꾸 잦아져 버렸지요. 빈번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해서 인제 한 천년 내려왔습니다.
어떻든지 그렇게 아담 이와가 자꾸 자식을 낳고 그래가지고 한 천년 내려와, 그 다음에 우리가 띄어가서 한군데 봅시다. 7장으로 가봅시다. 거기가 보면 인제 노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 때에 와서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많아져 버렸는데 그냥 하나님이 보실 수가 없이 되어버렸어요. 세상이 그 이야기는 예수님도 하셨지요. 노아 때와 같이 이렇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거기들만 정신을 쓰는구나. 음란하고 방탕하고 그냥 아주 세상이 그냥 한군데도 빼놓은 데가 없이 이 세상에서 그래서 하나님이 하도 딱하시니까 내가 이 세상을 잘못 만들었나보다. 괜히 만들었나보다. 후회하기 시작을 하셨다고 그래. 그래서 이거 암만해도 안 되겠다. 이 세상을 한번 싹 쓸어버려야겠다. 그러고 홍수를 터뜨리신 거야. 그런데 그래도 내가 일껏 이 세상을 만들었는데 아주 뿌리까지 없애버리기는 아까워요. 또 자기 능력의 손상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둘러보니까 그래도 믿는 척 하는 것이 하나 생겼어요. 노아야, 노아, 그러니까 이걸 믿음을 보시고 노아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그 가족만 보전하기로 마음을 굳히신 거지요. 그래가지고 그 방법으로 방주를 만들라고 그러고 방주 속에다가 노아를 사실은 노아가 있으니까 그때 짐승들도 살아난 거야. 노아가 없었다면 짐승들까지 다 없애버리셨을 거야. 그런데 노아를 살리시고 노아를 따라서 짐승들을 한 쌍씩 배 속에다가 집어넣으신 거야. 그래서 세상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을 해요. 그래가지고 노아가 이제 자식을 자꾸 낳고 또 그 자식들이 자식을 낳고 해서 퍼졌지요. 그래가지고 또 한 천년 내려왔습니다.
띄어가면서 봅니다. 한 천년 내려왔는데 노아에게서 함과 셈과 야벳이 나왔어요. 자식 셋이 나왔지요. 그런데 함의 자손은 함의 자손은 자꾸 퍼져서 흑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검둥이들의 조상이 되었어요. 그리고 야벳은 자꾸 번져가지고 백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백색 인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셈의 자손은 황색인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 셈의 자손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오셨거든요. 셈의 자손에게서 예수님이 이렇게 나오셨어요. 그래가지고 한 천년 동안 흘러내려갔어요. 인제 흘러내려가는 동안에 인제 아브라함에게로 가야겠어요. 이야기가, 지금 하나님이 그때 인제 셈의 자손이지요. 셈의 자손은 동쪽으로 이렇게 자꾸 흘러나오다가 그 인류의 역사를 봐도 그렇거든요. 사람이 살기 좋은 데로 찾아다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 않소? 그 유브라데 강 아브라함이 살던 그 유브라데강은 아주 기름진 땅입니다. 세계 삼대 문명발생지 중의 하나인 유브라데 강기슭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씨만 뿌리면 곡식이 잘됩니다. 아주 무성하게 잘되고 또 기후도 좋습니다. 뭐 산수도 좋고 참 좋은 데입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정착을 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자식들을 자꾸 낳았어요. 그래가지고 부요해졌어요. 자꾸 부요해져요. 사람들이란 것은 어려울 적에도 죄를 많이 짓지만 부유해지면 죄가 더 짙어집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그러신 거지요. 그래서 그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거기서 자꾸 대를 누리고 사는 동안에 풍성해졌습니다. 부유해졌어요.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도 전부 살기가 좋아지니까 하나님은 잊어버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그 셈의 자손들도 동쪽으로 흘러 갈 적에 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살던 족속들입니다. 함도 그렇고 야벳도 그렇고 셈도 그렇고 처음에야 다 하나님을 알았지요. 그런데 거기 가서 생활이 부유해지고 살기가 좋아지니까 인제 우상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지방 거기는 전부가 우상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이거 안 되겠다. 이걸 다 멸해버릴 필요도 없고 이번에는 잘 믿는 놈 하나만 뽑아내보자. 거기서 골라낸 것이 아브라함이야요.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기 시작을 하십니다. 창세기 12장으로 가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이 떠나라는 게 우상을 버리고 떠나라는 거야. 하나님에게는 지금 자기만을 공경하는 그것 하나만을 보세요. 하나님을 공경하는가 안 하는가? 그거 하나만을 보셔요. 그건 당연한 거지요. 하나님만이 선하시거든. 하나님 외에는 전부 삐뚤어졌거든. 그러니까 나만 공경하라는 건 이기주의 같지만 가장 선하고 완전하게 살아라. 그 뜻이야. 그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골라내신 겁니다. 아브라함만은 그래도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러고 살았거든요.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이 재산이니 일가친척이니 이거 다 못쓰겠다. 버려라. 다 버려라. 그리고 떠나 나오너라. 이 동광원 사람들도 소위 처음에는 그러고 나왔어요. 먼저는 다 버리고 떠나라고 했는데 지금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뒷손으로 한쪽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도 붙들고 있고 모두 영 버리지 들을 못해요. 그런데 그때는 가부간 그래서 아브라함이 위대한 거야. 그걸 떠나라고 하니까 그 아버지 할아버지 대대로부터 그렇게 행복하게 잘살고 누리던 그 고향 친척 모두 버리고 떠나요. 그런데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여주어보지도 않았어요. 떠나라니까 덮어놓고 떠났어요. 이것이 아브라함이 위대한 거야. 우리가 여기 앉아 있다가 여지 앉아있는 자리가 뜻이 아니야.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손에 가지지도 말고 그리고 떠나야 해요.
그분도 그때 그 목병 나기도 전부터 말소리가 작았어요. 이렇게 가만히 누워 계시다가 한나 집사님 서울 좀 가실까요? 그거 왜 가라는지 무엇 하러 가라는 지도 모르지. 그러면 아주 뭐 대답도 조그마하게 합니다. 크게도 안 해요. 지금은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고 그래도, 그때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 법이, 네 하고 그냥 일어나서 그냥 나가요. 그냥 앉았다가 서울 좀 가볼까요? 하면 그냥 나가는 거야. 그때는 그랬어요. 그때가 참 동광원이야. 그때가 참 동광원이야. 그러면 일어나 이렇게 방문까지 나가십니다. 방문까지 이렇게 나가시면 잠깐 그러면 왜 주저않는지도 이유도 설명을 안 해요. 왜 잠깐 앉으라고 그랬는지 또 어떤 때는 잠깐만 앉으라고 그래가지고는 그냥 흐지 부지야. 서울 가라는 때는 어디가고 그냥 흐지부지 나 그 이야기 나왔으니 하나 해야겠어요. 저하고 남원에 가서 식구가 여럿이 있었지요. 있었는데 저보고 서울에 가자고 그러십디다. 그런데 그때 금남양도 있었고 큰 애기들 몇하고 같이 남원 정거장에 나갔어요. 사람이 그때 아마 아홉인가 열인가 되었어요. 열인가 됐는데 표를 한 장 모자라게 사라고 그래. 내가 표를 샀는데 아마 사람이 열인데 아홉 장을 표를 산 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한사람씩 표를 나눠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장 남았어요. 한 장 남았는데 이 선생님하고 나하고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가시던지 내가 가든지 그러자는 것 같아요. 나는 표를 쥐고 가만히 있었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원장님이 가시지요. 그러면 내가 표를 가지고 이렇게 나가려고 개찰구로 나가면 잠깐만 가만히 있어요. 그때 또 표를 저를 주십시오. 손을 내밀어 이 선생님을 표를 드리지요. 그러면 아 이 선생님이 가시려나 보다. 그러면 이렇게 조금 나가려는 척 하다가 아니요. 원장님이 가시지요. 하고 또 나를 줍니다. 아 이 표를 갔다가 줬다가 뺏었다가 줬다가 뺏었다가 그 개찰구에 서서 그래도 그때는 나도 참 멍청해서 그랬는지 아무소리도 안하고 주면 또 받고 달라고 하면 주고 몇 번을 그 짓거리를 했어요.
그때는 그러고들 살았어요. 이유도 없어요. 왜 가라는지 오라는지 이유도 없이 그러고 살았어요. 그러고 살았어도 마음은 기뻤어요. 항상 기뻤어요. 그냥 그때 일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그때는 사람 목소리들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또 사람끼리 서로 이렇게 어디를 말하는데 쳐다봐, 그랬지요. 그때 사시던 분들 생각 날거야. 이 선생님이 이렇게 앉아서 말씀을 하시면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가만히 이러고들 땅만 내려다보고 앉아있어요. 숨도 크게 못 쉬고 한번 인제 이렇게 그때는 이렇게 넓은 방이 어디가 있어요? 좁은 방에다가 한 20명 몰아넣으면 막 이렇게 그 멸치 통조림 봤소? 멸치 통조림에다가 그냥 꽉꽉 이렇게 눌러서 집어넣은 듯이 그렇게 앉아서 말씀들 들었어요. 뭐 이렇게 널찍널찍하게 앉은 건 그때는 구경도 못했어요. 꼭꼭 끼어서 이렇게 무릎을 꼭 꿇었지. 이렇게 앉는 거 그때는 어림도 없어요. 무릎을 꿇고 이렇게 하고 인제 이쪽 옆 사람의 무릎이 여기 와서 꽉 닿는다고 이렇게 꼭 통조림에 멸치 집어넣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한방에 꽉 앉았습니다. 이제 아침에 그러고 들어가면 아침밥도 먹기 전이지 빈속으로 들어가면 꼭 이러고 앉아있어요. 종일 점심때가 넘어도 저녁때가 되도 까딱도 못하고 그러고들 앉아서 들어요. 쳐다보지도 않고 아이고 지금 그런 구경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냥 그래도 그 말씀 한마디라도 흘리지 않으려고 저처럼 이렇게 커다란 소리로 떠드는 것도 없지요. 그때는 그냥 알아 들릴 듯 말듯하게 조그맣게 이야기를 하시고 그냥 그걸 한마디라도 흘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다해서 듣고 그럴 적 생각이 나요. 지금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달아나려고 해서 미안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그 말이지요. 아브라함도 떠나라 하니까 그저 어디로 갑니까? 그것도 여쭈어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그냥 떠났어요.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이 가고 있는 데는 어떤 장소인지 압니까? 지금 세계 지리를 배운 학생들은 조금 알 거야요. 아주 거기는 굉장한 사막입니다. 갈대아 우르 지방은 땅도 좋고 물도 풍성하고 그렇지만 거기서부터 서쪽으로, 서쪽으로 자꾸 이렇게 가게 되는데 아주 그냥 짐승만이 사자가 막 뛰어다니고 짐승만이 우굴 우굴 하고 나무하나 구경할 수 없고 산 하나도 볼 수가 없고 그냥 들판 사막지대만 그래도 덮어놓고 갑니다. 아브라함은 덮어놓고 가요. 모두 자기 부인을 데리고 갔지요. 그리고 조카 롯 하나가 따라가고 그리고 짐승들 몇 마리 데리고 갔지요. 그러고 거기를 갑니다. 가는데 가서 어디쯤 갔는가 하니 가나안땅에 들어갔어요. 거기를 가더니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가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야, 너 여기를 모두 둘러봐라 둘러보니까 기가 막히거든요. 산골짜기 그냥 돌멩이 천지 그 갈대아 우르 그 유브라데 강가에서 살던 데에다 대면, 이건 형편없거든. 땅이 뭐 씨를 떨어뜨려도 날거 같지를 않고 메마르기가 짝이 없고 자 이 땅을 네게다 주마. 그러시는 거야. 이거 참 사람 생각으로는 기가 막힐 노릇이야. 그렇게 좋은 땅에서 끌어내서 기껏 주신다는 것이 이렇게 박토 농사도 지어먹을 수가 없고 형편없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마. 그러니까 거기다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우리가 무엇을 존경을 하는지 압니까? 그런 대목이야. 그런 대목, 이 땅을 네게 주마. 녜, 감사합니다. 하고 아이고 왜 이따위 땅을 주시오? 이런 투정도 없고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거기다가 제단을 쌓았다고 그랬지요. 지금 거기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요. 제단을 쌓고 그냥 하나님한테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그리고 이제 살았습니다. 몇 백 년을 또 살았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그래서 몇 백 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래 내려오다가 이제 야곱까지 왔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낳았지요? 야곱까지 왔습니다. 이제 야곱까지 왔는데 야곱이 장가를 여러 번 가고 또 자식도 많이 낳고 해서 꽤 번성해 졌습니다. 그래서 인제 그래도 가나안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려고 그러는데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살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야곱이가 요셉이는 이제 애급으로 먼저 가있으니까 없고 다른 자식들보고 야 너희들 여기 앉아서 굶어죽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 애급으로 빌어먹으러 가자. 그러고 자식들을 데리고 애급으로 들어갔어요. 그것이 대략 잡아서 지금으로부터 모세를 3500년 전 사람으로 잡습니다. 그전에 사백 삼십년 전에 애급으로 들어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한 4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4천 년 전 이야기에요. 애급으로 이제 들어갔습니다. 애급으로 그 야곱이가 모두 자식들 열둘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기서 자리를 잡고 그 임금의 지시대로 고센땅, 고센땅은 나일강 하류지역으로 옥토거든요. 거기는 아주 기름진 땅이거든요. 거기서 정착을 하고 인제 자꾸 번성을 해요. 여기 처음에 들어갈 적에 보면 70명이 들어갔다고 그랬어요. 애급 땅에 들어간 사람이 70명밖에 안 돼. 70명이 들어갔었는데 430년 동안에 이렇게 나오면서 그 애급을 나오면서 사람을 세어보니까 칼을 빼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20세 이상 된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20세 이하 된 소년들 여자들 노인들 전부하면 한 200만 명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렇게 많이 늘어나 버렸어요. 430년 동안에 애급 땅에서 200만 명이나 되게 많은 수효가 늘어났어요. 그때에 애급의 임금 중에서 애급의 임금 중에서 이번에는 출애굽기로 내려가 봅니다.
임금님 중에서 그 자기나라를 도와주던 요셉이 죽은 뒤에 요셉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을 했어요. 학대하는 데는 이유가 많지요. 아 이 백성들이 어떻게 많이 퍼지는지 애급사람보다 더 많아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거기 성경대로 보면 원수가 일어나서 자기 나라를 쳐들어 올적에 이 백성들이 적과 한패가 돼서 우리를 치면 어떻게 하느냐? 그걸 두려워해요. 그래서 이 애급사람을 될 수 있으면 번식을 하지 못하게 자꾸 나중에는 산파를 시켜서 너 해산 할 적에 남자아이만 낳거든 갖다가 죽여 버려라. 그렇게 해서 죽여요. 또 그냥 노동을 중노동을 시킵니다. 나일 강에서 나오는 진흙 벽돌을 이겨서 라암셋이니 비하히롯이니 거기다가 국고 성을 쌓고 창고를 쌓아라. 아주 무서운 중노동을 시키고 막 애급사람들이 채찍을 만들어 가지고 그냥 등허리를 후려 때리고 아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급에서 당하던 고생은 말로 할 수없이 비참했어요. 비참한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자꾸 겪으니까 하나님께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마음에 담았거든. 하나님, 이거 우리들 죽겠습니다. 이거 어떻게 좀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그랬지요. 거기 보면 부르짖었다. 또 그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어요. 여기까지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요, 처음에 아브라함 때도 느꼈고 노아 때도 느꼈고 모두 느꼈지만 자기를 찾는 사람을 언제든지 보고 계셔요. 나를 찾는가 안 찾는가? 그걸 보고 계셔요.
하나님을 등지고 떠날 적에는 내버려두셔요. 마음대로, 마음대로 너희들 재주껏 살아봐라. 이래버려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을 적에는 꼭 그 음성을 들으셔요. 그러니까 애급에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한테 부르짖고 호소를 하고 찾으니까 하나님이 인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어요. 그거 뭐냐 하면 내가 신앙이 있고 믿음직한 놈을 하나 골라내자. 그래가지고 골라낸 것이 모세야. 이제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한 3500년 전 이야기야. 예수 나시기 전 1500년 전 사람이야. 모세는, 그래가지고 이제 모세라는 이가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는데 거기서 부터는 조금 시간을 써야겠는데 이야기가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그냥 말씀 한마디로 천지만물을 창조했다 하니까 아무 힘들이지 않고 하시는 것 같지만 이제 여기서부터 보면 아주 굉장히 하나님도 준비가 많으시고 공력을 많이 들이시고 많은 풍파를 예상하고 또 그것을 겪고 그리고 일을 하셔요. 모세를 맨 먼저 그 나일 강 가에서 바로의 딸이 데려다가 기르지 않았소? 40년 동안을 대궐에다 놓고 모세를 기르셨어요. 하나님의 사람 만드시는 것 보시오. 이제 여기서부터는 우리 동광원 사람들이 깊이 생각을 해야 돼요. 우리고 사람 하나 만드는 걸 그렇게 뭐 부엌에서 도마에 생선하나 다루어서 냄비에다 집어넣어서 푹 끓여 먹듯이 그렇게 사람이 되는 줄 알지 말라. 그 말이지요. 40년 동안을 바로의 왕궁에다 넣어놓고 다루셔요. 그 모세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지식도 애급 학문을 다 배웠다고 그래요. 임금의 아들로 임금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까지 했으니 애급에서 가장 높은 학문은 다 배웠을 거 아니요? 또 가만히 보면 모세가 머리가 보통 사람이 아니야. 머리가 비상히 좋은 사람이야. 그 다음에 전쟁법도 가르쳤어요. 그래서 모세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전쟁만 하면 이겼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백성들도 모세를 아주 훌륭한 지도자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임금도 굉장히 사랑을 하고 아주 그 국민의 국가의 사랑을 한 몸에 다 받고 있던 사람이야. 그렇도록 길렀어요.
그것이 몇 해 동안 길렀어요. 40년 동안 길렀어요. 40년 동안 그랬는데 지질이 하나님이 40년 동안을 길러서 만들어 놓으시니까 기껏 하는 것이 애급사람 하나 때려죽이는 거야. 그렇지 않아? 애급사람을 때려죽여요. 이거 이것 가지고는 안 되겠어. 이 인간 가지고는 안 되겠어. 그러니까는 그 다음에 시내산 아래 광야로 몰아넣으셔 그래가지고 제사장 이드로의 밑에 가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지 않았소? 그래가지고 양이나 몰고 장가를 가고 그래가지고 돌아다녔는데 이 모세가 그 왕궁에서 그렇게 호화스럽게 호강을 하고 우쭐거리고 지도자 노릇을 하고 살던 사람이 나중에 가보면 어쩌면 그렇게 바보가 되어버렸을까? 아주 그 학문도 죄 던져버리고 군사 기술도 다 던져버리고 나중에는 양떼나 우르르 몰고 들에 나갔다가 들어와 집에 들어오면 주는 밥이나 먹고 여편네하고 이야기나 하고 그러고 살던 이런 아주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그래가지고 모세가 가끔 그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한 것이 하나 있었지요. 뭐냐 하면 시내산 꼭대기에 가서 기도하는 버릇은 하나있어요. 그래서 인제 한번은 시내산 꼭대기로 가서 이렇게 기도를 하다보니까는 가시덤불 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아 그런데 불을 누가 지핀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불을 활활 붙는데 나무가 타지를 않아요. 밤낮 그대로야. 이상하다. 그래가지고 가보니까 거기서 모세야, 모세야 너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니 거기서 신을 벗어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모세에게 말씀을 시작하시는 장면이야.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었어요. 모세가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냈어요. 그러면서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서 사십 주야 동안을 계속해서 하나님이 산속에서 모세를 붙들고 씨름을 하십니다. 너 나가서 애급 나라에 가서 네 민족을 건져내야겠다. 네 민족이 지금 부르짖고 있어, 살려달라고 그러니까 네 민족을 구해야 할 게 아니냐?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냥 바로의 왕궁에 있을 적에는 이 민족을 어떻게 하던지 살려야겠다. 그러고 우쭐거렸거든요.
그러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고,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엄청난 그 애급나라를 어떻게 제가 상대를 해서 그 무서운 바로 앞에 가서 어떻게 말을 합니까? 못하겠습니다. 자꾸 꽁무니를 빼지 않았소? 못하겠습니다. 못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십시오.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하고 씨름을 하는 거야. 하나님하고, 그 장면이 이제 나오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이 화를 내셨다고, 그래 나중에는 모세가 제가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모세는 언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말재주는 없었던 것 같아요. 말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굉장한 바로 앞에 가서 말을 합니까? 그러고 핑계를 하니까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아론을 앞세우고 들어가서 아론을 시켜서 말을 하거라. 그래도 제가 무슨 아무 체계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재주로 바로를 굴복시킵니까? 하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양 칠 때 끌고 다니던 막대기뿐이었거든. 그 막대기를 땅에다 던져라. 그러니까 막대기를 땅에다 던졌더니 뱀이 되었거든. 그 모세는 깜짝 놀랐지. 그래 다시 집어봐라. 다시 이렇게 손으로 집으니까 다시 막대기가 되었어. 그 재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처음에는 막대기를 뱀을 만들었다가 도로 지팡이를 만들었다가 그러는 그 재주 하나 가지고 들어갔어. 바로의 왕궁에 처음에는 그 막대기로 바다를 가르고 물이 피가 되고 이런 건 생각도 안했을 겁니다. 그러고 바로의 왕궁에 들어갔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모세가 바로 앞에서 씨름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쉽게 생각을 하는데 예수 믿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데 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을 떠나서 그래서 광야에 와서 40년 동안 방황하기 전에 그 애급에서 떠날 적 일을 꼭 한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려면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지금 부터라도 예수 믿으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 전에 어떤 어려움과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는 것을 우리가 꼭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 장면이 이제 출애굽기 7장에서부터 나오지요. 맨 먼저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급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목과 모든 호수위에 펴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지 애급 온 땅과 나무그루와 돌그릇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이제 네가 갖은 지팡이를 무엇에든지 갖다 대라는 거야? 그러면 전부 피가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피가 되었지요? 그 다음에는 온 애급 땅에 개구리가 넘치게 했지요. 그 다음에는 이 재앙이 있지요. 파리 재앙이 있지요. 그 다음에는 모든 성충의 악한 병이 생기고 독종이 생기고 마지막으로 우박과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이 나왔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재앙으로 이것은 양면 교육이 다 됩니다. 애급사람에게는 하나님 무서운 줄 알게 한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참 두려우신 분이고 재주가 많으신 분이로구나. 전능하신 분이로구나. 그것을 애급사람에게 인식시키게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여러 재앙을 계속해서 내리신거야. 그리고 인제 그래도 마지막까지 바로가 어땠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고 뻗대니까 마지막으로 가서 열 번째 재앙으로 맏아들 죽이는 재앙을 합니다. 그때 그 재앙 장면이 대단히 무섭습니다. 출애굽기 11장을 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급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급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급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애급 온 나라 방방곡곡이 대궐에서부터 빈민굴 속에까지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나리라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이것이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애급사람을 징계하시는 거야. 그러나,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렇게 해서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경계선 딱 이렇게 금을 그어놓으셨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백성과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과 아주 금을 딱 이렇게 그어놓으셨어요.
그런데 그 표로 피를 하나 남기셨지요. 양을 잡아서 먹고 나오는데 그 양의 피를 대문 설주 위에다 바르라. 그래 이스라엘 사람은 전부 대문간에다가 양의 피를 이렇게 칠을 했지요. 사람을 죽이는 신이 이렇게 가다가 대문간에 피가 묻었으면 아 이건 이스라엘 사람이로구나. 그것이 예수님의 피야. 예수님의 피에 대한 상징이 물론 그 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지만 구체적으로는 이 출애굽에서부터 나타난 거야. 그래서 그 대문간에 피만 있으면 천사가 사람을 죽이는 천사가 건너갔거든. 그러니까 그 피 묻은 것으로서 이스라엘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것이 드러났어요. 이것이 오늘과 똑같은 거야. 예수님의 피가 묻어있는 사람은 사망을 벗어나는 것이고 예수님의 피가 묻지 않은 신자는 암만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동광원 생활을 늙어 죽도록 해도 그 영혼에 피가 묻지 않은 영혼은 쓸데가 없어요. 다 하나님이 지나쳐 버리고 뭐 주둥아리를 암만 놀리고 자기는 잘 믿는척하고 열심히 기도를 쫓아다니고 별 짓거리를 다해도 피 흔적이 없는 사람은 지나가 버린다고 여기서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애급 백성을 갈라놓으신 거야. 피가 묻었느냐 안 묻었느냐 이것으로 구분을 하셔요. 언제든지 이것은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날 까지 제가 그 이야기까지 하려고 그랬는데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려는가 모르니까 어저께 어린애들 넷이 찾아왔어요. 제일 적은 아이가 열 살 제일 큰 아이가 열여덟 살 이라고 합디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 그전에 어떻게 돼서 내가 알았어요. 그런데 인제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왔다고 넷이 찾아 왔습디다. 그런데 너희들 교회에 다니느냐? 그러니까 다녀요. 어떤 교회 다니느냐고 하니까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다닌대. 그래서 내가 참 이상한데 다닌다. 속으로 그랬지만 거기서 어떻게 믿으라고 가르치냐? 그러니까 참 동광원 사람들 부끄러워요.
아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 그 아이들 하고 문답시켜놨으면 얼마나 대답 했을지 몰라요. 그래 거기서 무엇을 가르치더냐? 어떻게 가르치더냐? 그러니까 그 동광원이 어떤 단체인줄 알거든요. 그 어린애들이 지금 저를 가르치고 있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27살이에요. 그런데 시집을 안 간대요. 아 그 말 먼저 하더라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하는 걸 하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이제 앞으로 큰 핍박당할 테니까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 믿어야한다. 그렇게 가르친다는 거야. 아 그래서 내가 찔끔해졌거든요. 그러면서 자꾸 질문을 해요. 왜 여호와의 증인에 다니면 안 되어요. 글쎄 조금 재미없다만 지금 네 나이로는 알 수 없을 테니 우선 다녀라. 예수만 잘 믿고 이제 네가 나이를 조금씩 먹어서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그럴 때가 올 거야. 그럴 때 슬그머니 빠져나오너라. 그렇게 일러버렸지요. 일러버렸는데 거기서는 전쟁에 못나간다고 그래요. 총 잡으면 못쓴다고 그래요. 어찌되었던지 어린애들에게 무던히 많이 가르쳐놨어요. 그러거든요. 거기는 징집용 내려도 안 나갑니다. 죽어도 안 나갑니다. 그래 감옥에 들어갑니다.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는 그렇데 한다고 그러고 질문을 하기 시작을 하는데 천당이 정말 있어요? 또 지옥이 있어요? 또 우리 죽으면 틀림없이 이렇게 지옥과 천당이 갈려서 가요? 어떤지 지금 다 기억을 못하겠어. 어떻게 여러 가지 물어보는데 넷이서 돌려가면서 물어보는데 내가 대답을 못해. 그런데 전부 성경이야. 그러니까 가르쳐놓기는 무던히 가르쳐놨더라니까. 그러고 마지막 때가 이제 온다지요. 심판이 온다지요. 심판이 정말 와요. 아 그러니 나는 그럼 심판이 있지 그러면 그 때가서 어떤 사람을 심판해요. 그것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르치는 것이거든. 여호와의 증인에게 속한 사람만 구원 얻는다. 그걸 가르치려고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는대요.
그래 예수 잘 못 믿는 사람이 심판 받지. 그래서 나는 수동적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심판을 하는데 그때 가서는 사람들이 마음이 악해진다지요. 그렇게 악해진다고 그랬지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없어진다고 그러지요. 아 뭐 성경 가지고 꼭 그랬거든. 디모데서에 보면 사람들의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그리고 서로 미워한다지요. 그렇지 다 알아요. 심판에 대한 징조를 다 알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가지고 아마 한 시간이나 이야기를 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를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말세는 말세야.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여호와를 찬송하는 소리가 바다에 물결이 넘침같이 이 땅위에 넘친다고 그랬지요. 다니엘서에도 그랬고 그런 말씀이 나왔지요. 그러면 그때가 가까운 줄 알아라. 인자가 오리라. 예수를 알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이 땅위에 넘칠 거야. 넘쳐, 지금 그냥 어떤 동네에 가면 예배당이 요기도 하나있고 여기도 하나 있고 요기도 하나 있고 막 그냥 같은 통로 안에 가서 네 개 있는 데가 서울 가면 보여요. 광주도 그런데 방림동만 가도 광림 파출소에 지나가면서 예배당이 몇 개인지 세어봤소? 왼쪽에도 있고 바른쪽에도 있고 열 발 가면 있고 스무 발 가면 있고 거기도 다섯 개가 있어. 예배당이 방림교회 말고도, 그것이 왜 그래?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여호와를 부르는 찬송 소리가 바다에 물이 넘침같이 넘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이제 그때가 되거든, 모든 사람이 여호와 이름을 부르게 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되면 그때가 된 줄 알아라. 인자가 문 앞에 있는 줄 알아라. 내가 땅위에 오기 전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모든 사람의 입에서 한번 나오고 말 것이다. 그거에요.
그러니까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줄을 알아서는 안 되어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이 나더라니까요. 아 어린애들 속에 저만큼 성경의 지식이 들어갔으니 이 동광원 사람들은 성경 안다. 소리도 못하겠다. 아주 알아도 똑똑히 알아야지요. 성경을 알아도 진짜로 알아야지요. 또 진짜로 믿어야지요. 그렇게 인제 예수님을 아는 이름이 나오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올 적에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시작할 적에는 다 어려움을 약간씩 겪었습니다. 또 동광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약간 시험들을 겪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애급을 떠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겪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부터가 조금 오늘 본론이 되요. 우리들이 지금 동광원이 처음 이 선생님을 따라 다니기 시작을 하고 믿기 시작한데서부터 오늘까지 겪은 것은 소의 터럭도 안 되는 겁니다. 어립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나와 가지고 그 어려움을 겪고 나와 가지고 맨 먼저 간 거 보면요. 이상하지요? 북쪽으로 이렇게 바로가면 애급에서 가나안까지 열 나흣날이면 가는 길입니다. 보통 낙타타고 다니는 여행자가 이백만명이 어린애를 데리고 간다 해도 한 달이면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북쪽으로 바로 이렇게 가라고 하시지 않고 길을 남쪽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홍해 바다는 가당치도 않은 곳입니다. 홍해 바다는 남쪽에 가서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홍해 바다 쪽으로 끌고 가셔 그 이스라엘 백성을 그래가지고 그것도 바다를 한 번에 건너게 한 것이 아니라 시내산 있는데 까지 데리고 가셔서 시내산 밑에 가서 일 년 동안을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일 년 동안을 그냥 굉장한 교육을 시키셨지요.
거기 보면 출애굽기 14장에 가보면 출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가로되 바다와 믹돌 사이에 비하히롯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 바닷가로 가서 장막을 치라는 거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광야에 갇히게 되었다. 할 것이다. 그러니까 바닷가에다가 장막을 치라고 그 시내산 밑에 들어가서 거기 가서 그 일 년 동안 있는 동안에 굉장한 교육을 받았지요. 첫째는 맨 먼저 모세가 시내산에 들어가서 사십 주야 동안을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그러고 금식 기도를 하고 그리고 그 십계명을 돌 판에다가 하나님이 직접 써주신 것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지요. 그 40일 동안에 먼저 소란이 일어났어요. 이거 우리를 애급에서 끌고나오던 모세는 온데 간 데가 없어졌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이러니 자꾸 아론보고 조르지 않았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서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그러니까 너희들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모두 금붙이들을 내놓으니까 그 금붙이들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었거든. 그래가지고 그건 아론이 다급해서 한 짓이야. 자기는 재주가 없고 이 백성들은 지도자를 내놓으라고 보채고 그러니까 금송아지 하나를 만들어 자 이것이 너희들을 애급에서 끌고나온 신이다 여기다 대고 절을 해라. 그러니까 모두 그 백성들이 좋다고 춤들을 추고 거기 보니까 모두 야단들이 났었다고 그랬거든요. 애급을 떠 난지 지금 일 년도 채 안 됐어. 일 년도 채 안됐는데 벌써 그 소란이 일어났어요. 소란이, 그래가지고 다시 애급으로 들어갈 궁리를 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산에 있는 모세에게 야 내려가 봐라. 난리들 났다. 가봐라. 그러니까 모세가 모세를 그때부터 따라다니던 게 여호수아야. 여호수아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와 보니까 아 모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모두 춤들을 추고 아론으로부터 그냥 야단들인데 기가 막히니까 분이 나서 그 석판을 내던져 버리지 않았어요? 망할 것들 그러면서 석판을 내던져버려.
그것이 모세의 첫 번 실수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겪고 그 다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래도 그 시내산에서 떠 난지 일 년도 못 되서 카데스까지 왔어요. 카데스는 유대 남쪽 땅의 끝입니다. 거기까지 와서 탐정을 들여보냈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해서 열두 명을 들여보냈어요. 우리가 들어가 살 땅은 어떻게 되었나? 방비는 어떤 정도 되어있나? 가서 봐라. 그리고 들여보냈지요. 그 사람들이 나와서 참 좋기는 좋습디다마는 그 아낙 자손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가서 성을 치고 사는데 도저히 우리 같은 건 거기가면 메뚜기 같습디다. 감당도 못하겠습디다. 그러고 보고를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백성들이 울고불고 이거 왜 우리를 여기가지 끌고 와서 죽게 만드느냐고 그냥 원망이 불평이 터지지 않았소? 그러니까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이것들은 나를 믿지 않고 그 사람들만 무서워하는 이것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전부, 전부 40세 이하로 지금 모두 칼을 들고 창을 들고 있던 이 무리들은 전부 그 가나안 족속과 싸울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다. 이것들은 광야에서 다 없애버리겠다. 다 없애버려 그리고 남쪽으로 또 유대나라 땅을 건너다보게 왔다가 길을 거꾸로 돌아 거꾸로 돌아가지고 39년 동안을 길을 이렇게 돌아다녀요. 그때의 고생이라는 것은 39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고생이라는 것은 말도 할 수없는 고생을 한 거야. 어떤데 가서는 무데기로 독사떼를 몰아 넣으셨어요. 독사에게 물려서 막 몇 만 명이 죽기도하고 그냥 모압 자손 암몬자손 별 자손을 다 만나서 부닥치게도 하고 발락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고생도 당하고 별 고생을 다하고 40년을 걸려가지고 요단강 기슭까지 건너오지 않았소? 그런데 그 애급 땅에서 거기까지 오는데 무엇 때문에 40년이 걸렸냐? 40년 동안을 훈련을 시키신 거야. 우리가 지금 예수 믿는다고 여기 예수 믿은 지 40년 된 사람 40년 이하 된 사람은 말할 자격도 없어요. 아직 40년 이상 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급에서 출발해서 광야에서 헤매 던 그 고생을 꼭 한 번씩 겪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고 레위기를 보고 민수기를 볼 적에 꼭 내 마음가운데서 그것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이 그냥 주어진 책이 아니에요. 구약 성경도 우리의 영혼의 가는 길 영혼이 애급을 떠나서 가나안 까지 들어가는 그 동안에 겪어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거야. 노정기야. 노정기, 너희가 반드시 이런 길을 걸어서야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안식에 들어간다. 그 구약은 전부 그걸 가르쳐 준거야. 구약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 한마디도 헛 말이 없어요. 구약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거 아니야. 구약에 있는 것이 우리 영혼의 노정기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걸어 나온 것이 우리의 신앙의 노선이야. 우리가 예수 믿으려면 반드시 요런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가지고 마지막에 그 요단강을 기슭까지 와가지고 거기 와가지고 또 재훈련을 시키지 않았소? 거기 와서는 큰 고비를 많이 겪었지요. 첫째로 모세하고 작별을 했어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일백 이십 세라고 그랬는데 그때도 오히려 눈이 밝았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모세는 너는 가나안땅에 못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 모세가 웬만하면 발버둥을 치고 아 제가 그 고생을 하고 그 많은 무리를 끌고 나왔는데 왜 나를 가나안땅에 안 들여보내십니까? 그럼직도 하지요. 우리 동광원 사람들 같으면 열 번도 그랬을 거야. 왜 나는 무엇이 언짢아서 이렇게 합니까? 그렇지만 모세는 아무 말도 안하고 순종을 하고 받아요. 그런데 모세에 대해서 한마디만 이야기 할 거야. 모세의 시체를 가지고 마귀와 천사가 싸웠다고 그랬지요. 그 왜 그런지 알겠지요? 우리 동광원에서 한나 집사님을 비롯해서 귀주 집사님이랑 그렇게 일생동안 그렇게 고생도 많이 하고 귀주 집사님은 남자가 젊었을 적에 손 한번 잡았다고 지금도 이놈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그러는 양반이야. 그렇게 무섭게 순결을 지키고 애를 쓰던 양반들이 왜 돌아가실 때 그 고생을 하고 간다고 나는 한분, 한분 돌아갈 때마다 들여다봐요. 그 귀주 집사님 하나만 예를 듭시다. 아 뼈가 모두 물러났어. 엉덩이뼈가 여기서 몸에서 따로 돌아 뒤로도 나가고 앞으로도 나가고 아 이 양반이 무슨 죄가 많아서 이렇게 몸둥어리에서 뼈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가? 그렇게 그 노인들 그렇게 일생동안 깨끗하게 살려고 예수님만 부르고 하나님만 찾던 사람들이 왜 저런 고생들을 겪어야 하는가? 왜 편안하게 축복해 가면서 너희들 잘 살아라. 나는 하늘나라 간다. 이러고 가지. 그런 양반 봤소? 아 그 내가 작년 11월에 여섯 구의 시체를 갖다 묻었어. 여섯 번 장례식을 치렀어. 그런데 하나같이 아주 험상지게들 고생들을 하고 떠납디다. 왜 마지막까지 저럴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다 놓고 이제 요단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