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학교인가? 아니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인가.'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초등학교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일행의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날 조 교육감은 전신을 하얀 방진복으로 무장한 채 석면이 검출돼 논란이 된 인헌초를 둘러봤다.
3M사의 1급 방진마스크를 쓰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모습이 기막혔다.
저렇게 전신을 꽁꽁 싸매야 하는 곳을 예정대로 개학하려 했다니….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스크 하나 없이 등교했을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인헌초는 이번 겨울방학 동안 석면 철거 공사를 한 전국 1227개교 중 한 곳이다.
석면 공사를 한 모든 학교는 공사 후 청소를 하고 석면 잔재물 검사를 하게 돼 있다.
인헌초는 달느 대부분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육청 의뢰 조사에서 '문제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학부모가 주축이 된 재조사에서 백석면뿐 아니라 더 치명적인 갈석면, 청석면까지 검출됐다.
교육청 조사에서는 문제가 없다가 재조사에서 문재가 드러난 이유는 뭘까.
방은영 인헌초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교육청 조사는 '어떻게든 문제를 안 만들기 위한 조사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기질 측정을 할 때보니 먼지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가만히, 교실 한쪽 구석에 측정기를 놓고 조사하더라는 것이다.
반면, 재조사에서는 실제 아이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처럼 바닥의 먼지를 송풍기로 일으켜 측정했고, 곳곳의 먼지를 물티슈로 닦아 시료를 채취했다고 했다.
사실 인헌초는 굉장휘 특수한 사례다.
이 학교는 석면 문제에 민감한 학부모들이 '명예감독관'이 돼 석면 철거 공사 시작 단계부터 전 과정을 관리한 학교다.
그런데도 석면이 나왔다. 방 대표는 "이 정도면 상위 1% 관리'라고 했는데도 이렇다'며 "다른 학교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다르면 석면 철거 공사를 할 때는 공사현장과 집기를 일일이 비닐로 최대한 감싸야 한다.
만일 에어컨 등을 비닐로 싸지 않았다가 가루가 속으로 들어가면 가동 시 석면 바람을 맞는 효과를 내게 된다.
아이들의 작고 여린 폐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인헌초 학부모들을 교육청과 학교는 '진상' 취급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교육당국은 민원을 야기하는 골칫덩이 취급만 할 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차라리 시공업체가 더 협조적이었다"고 울분을 쏟았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은 입자가 뾰적해 호흡기를 통해 폐에 들어가면 폐포에 박혀 악성종양을 만든다.
석면 전문가 이용진 순천향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도에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10~20년 안에 암이 발생한다"며 "10년가량 노출됏을 때 백석면은 10만 명당 1명, 갈석면은 15명, 청석면은 100명꼴로 암을 일으킨다"고 전했다.
물론 발병해도 개인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매우 힘들다.
모든 아이들이 매일 가야만 하는 학교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를 넘어 잠재적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이유다.
정부는 개학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25일에서야 뒤늦게 학교들을 다시 청소 하고 100곳을 샘플로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철거규정을 위반한 업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면피성 대척도 잊지 않았다.
지극히 나태한 정부를 철석같이 믿었던, 인헌초를 제외한 나머지 1226개 학교는 대부분 예정대로 3월 2일 개학을 맞을 것이다.
임우선 / 동아일보 정치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