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이은상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없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며 시름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닷물 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 바닷물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을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도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이나 깨끗이도 깨끗이
===[한국 대표 명시 3, 빛샘]===
이은상( 李殷相 )
필명:남천(南川)·강산유인(江山遊人)·두우성(斗牛星)
아호:노산(鷺山, 蘆山), 이공(耳公)
본관:전주 이씨
출생:1903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상남리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사망:1982년 9월 18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자택
학력:
창신학교 (고등과 /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 중퇴)
와세다대학 (사학 / 수료)
동양문고 연구부 (한국문학 / 수료)
묘소: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6호
상훈:건국훈장 애국장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시인, 사학자, 교육자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초기에는 동양적 인생무상과 관조의 정신을 담은 자유시를 창작했으나 곧 시조시인으로 전향했고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유명한 가곡인 '가고파'의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한편 친독재 전력으로 논란의 대상에 놓여 있다.
1903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상남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이승규(李承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마산 성호리교회(현 문창교회) 장로였던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고,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1925년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22년 조선문단을 통해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자유시를 창작하다가 1926년 이후 카프의 계급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조국의 전통 문학과 국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조시인으로 전향하였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32년 노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가고파 ', ' 성불사의 밤' 등은 지금도 가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가람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민요적 리듬을 살린 작품들을 많이 썼다.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1935년 4월까지 신동아 기자, 신가정 편집인 등으로 근무했다.# 1935년 6월에는 조선일보사로 이직하여 1938년까지 편집국 고문 및 출판국 주간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인 1943년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 검속으로 구속된 후 전라남도 광양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8.15 광복을 맞게 된다.
1949년 동국대학교 교수에 부임하였고 이후 청구대학, 서울대학교 교수를 재직하기도 했다. 그밖에 충무공 이순신장군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한국청년운동협의회(현 대한민국통일건국회) 회장, 전두환 정부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언론, 사학, 문학 쪽에서 다양한 저술을 남겼으며 난중일기를 초역하는 등 충무공 이순신 연구자로서도 명성이 높다.
1982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사후 문화훈장 1등급 금관문화훈장에 추서 되었고 국가 지원 사회장으로 그의 유해가 1982년 9월 22일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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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이: 게
● 달음질: 빠른 빠르기도 달리는 발걸음
● 뱃장: 나무로 만든 배의 안쪽 바닥
● 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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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고향을 그리워한 것이 아닌 조국을 잃고 상심에 젖은 민족의 현실을 말한 것이 아닌지.
고향은, 고향은, 고향은...
정말 가고픈 고향입니다.
고향은 가고픈 곳입니다.
"동무"라는 참 좋은 말은 북한이 사용해서 남한에서 사라진 말이 되었습니다.
동요 "고향의 봄"을 조용히 부르며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