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비는 쌈치기라든가 깔빼기 등으로 딴 구슬이
최하 오백 알 많을땐 최고 이천 알 까지 있었다.
구슬을 팔아 하루 이삼백 원 정도 벌었는데
그래봐야 한시간 남짓이면 팔았던 구슬들도 다시 따서 고스란히 깨비 구슬이 되었다.
하루는 한 아이가 자기
그리고 쌈치기를 하여 고스란히 땄고 다시 천 원 어치를 팔고 고스란히 수거,
삼천 원까지 땄다가 구슬치기를 포기하고 그 돈으로 군것질을 하러 갔다.
그날 밤 그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대동하고서 오셨다.
이미 다 써버린 터라 돈은 돌려주지 못했고 속상하셨던지
어머니께서 다음 날 구슬을 죄다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덕분에 얼마나 속상했던지 한참을 울어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이....ㅎㅎ
2. 동그란 딱지
이 역시 오십 장에 십 원이었는데
글높(글씨가 많이 쓰여진) 숫높(숫자가 높은)
글 번호높(글씨로 숫자 높은 것) 전쟁(무기가 월등한 것) 등등의 게임으로
대략 만여장이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님의 구슬 도난? 사건으로 인하여 땅 속에 숨겨놓았다가 영원히 못 찾았다는..
이와 별개로 네모 딱지 (종이로 접은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사고 팔 돈벌이가 안되는 관계로 아이들에겐 인기가 없었다...ㅎㅎ
3. 말뚝 박기
굴곡이 심한 동네였던 터라 말뚝박기를 하다가 다치거나
정도가 심하여 싸움으로 간혹 번지곤 했는데 어른들이 위험하다며 말려서 자주 하진 못했다.
이외에도 말놀이가 있었는데 깨비는 이거 하다가 오른 손가락 하나를 삐었었다. 그 후로 금지 시켰음.
(깨비는 골목대장.ㅎㅎ. 지금도 주먹을 쥐면 손가락 한마디가 약간 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주로 여자 얘들이 즐겼던 거 같은데
왜냐하면 여자얘들 하던 그 놀이에 훼방을 놓았던 기억이 많기 때문. ㅎㅎ
숨박꼭질은 등화관제라거나 정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하던 놀이.
그러고 보니 요즘엔 등화관제야 그렇다손 쳐도 정전조차도 경험을 못해본 것 같다.
예전에 정전되면 남산타워만 시커멓게 치솟아있어 미사일처럼 보였었는데...
5. 봉봉 (퐁퐁)
동네 공터에 가끔씩 이 봉봉 장사하는 분이 왔는데 (타원형)
어린아이들만 가능하다고 하여 많이 타보진 못했다.
하와이안이라 불리던 까무잡잡하고
이쁜 동네 여동생 하나가 이 봉봉의 대가였는데 순발력이 좋았는지
그야말로 나는 듯이 높게 점프를 하곤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워낙 높이 날아올라 봉봉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 맨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사고 이후로 동네에선 두 번 다시 이 봉봉을 볼 수 없었다.
6. 폭죽 놀이
주로 여자 아이들 괴롭히는 데에 사용했던 단발 폭죽, 콩알 탄. ㅎㅎ.
그리고 끈을 양옆으로 잡아당기면 터지는 폭죽이 있었는데
이것을 간혹 남의 집 대문에 설치하곤 했다.
하루는 친구하나가 갖 이사온 어느 집 대문에 이걸
설치하고서 그 집 대문을 두드렸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물론 집안에는 바깥의 동태를 살피느라고 창문 커튼이
살짝 열리고 닫혔으므로 안에는 분명히 사람이 있었다.)
분풀이랄까?
노크하면서 반응이 없을 때마다 하나씩 더 설치하면서
급기야 다섯 개 씩이나 설치하고서 노크를 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으면 그만 두드리길 바랬었던지
자꾸 노크를 하자 급기야 그 집 아저씨가 열받았는지
워낙 세게 문을 열어 제끼는 바람에 다섯 개가 일시에 터져 버렸다.
쾅쾅쾅꽝꽈앙!!
매캐한 화약 연기가 번지면서 처음엔 대문 안 쪽 사람이 안 보였으나
연기가 가시자 곧 얼어붙은 듯한 아저씨 얼굴이 보였다.
그 아저씨도 처음엔 무척 놀랐던 가 보다.
멍하니 서있었으나 이내 상황 파악을 하고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너나 할 것 없이 후다닥 튀었으나 문제는 그 날 밤에 터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 녀석이 집 앞에서 결국 그 아저씨에게 붙잡힌 것이다.
따귀를 몇대 때리는데 하필이면 그 친구의 아버님이 퇴근하시면서 얼큰하게
막걸리 한 잔까지 걸치고서 돌아오시던 순간에 아들이 맞는 장면과 딱 마주친 것이다.
결국 어른들의 큰 싸움으로 번져 경찰차가 도착하고서야 싸움은 간신히 멈췄다.
7. 달고나
국자에 설탕을 넣고서 젓가락으로 휘저은 다음에 소다를 뿌리면 끝.
집집마다 국자를 시커멓게 만든 주범.
어머니께선 처음에 그 이유를 모르시고서 이상하다? 그러시더니
국자를 새로 사다놨으나 며칠 못가서 금새
국자가 시커멓게 변질되자 뒤늦게 이유를 알게되셨다.
(국자로 따귀 맞아보신 적 있나요?? 전 맞아봤습니다.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고나 영업소는 항상 붐벼서 줄을 서야 했었다.
(그리하여 영업용 달고나는 나중에 설탕대신 사각으로 만들어진 달고나용 재료가 따로 나왔음.)
8. 팽이
박달나무로 만든 팽이외엔 고만고만한 팽이들이었으나
테두리에 쇠를 덧붙인 팽이가 나오면서 최고조에 이른 놀이.
일명 찍기라고 해서 팽이 상판을 팽이의 철심으로 내리 찍어
팽이를 깨거나 흠집을 만드는 놀이를 즐겼는데 한 번 내리 찍히면
더 이상 팽이 돌리는 흥미는 잃고서 오로지 팽이 찍기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곤 했었다. ㅎㅎ
9. 제기 차기.
제기에 대한 추억은 그냥 차는 것 뿐
그외 제기차기에 대한 추억은 크게 없는 듯 하다.
고딩 1학년 당시 하루는 교련 선생님의 M-1 소총을 분해하는 수업 도중에
공이를 빼려다가 자동으로 격발되면서 손가락을 맞았다.
얼마나 아펐던지 눈물이 핑돌면서 복수랍시고 공이를 빼서 발로 툭툭 찼는데
이 모습을 본 교련 선생님이 무슨 생각에선지 느닷없이 제기 차기 시합을 벌였다.
백 몇개를 차서 깨비가 일등을 마악 하려던 순간에 마지막 남은 급우 하나가
깨비의 기록을 깼고 이 녀석이 반 대표로 나가 꼴등을 하고 말았다. ㅎㅎ.
그런데 교련 선생님은 교련 실습 점수를 그 녀석에게 만점을 주었다..ㅜ.ㅜ
10. 스카이 콩콩
삽으로나 콩콩을 해본 기억이 있던 어느 날
아이들이 스카이 콩콩을 타기 시작했고
곧 동생에게 어머니도 이걸 사 주셨다.
동생 몰래 이 스카이 콩콩을 타곤 했는데 멀지않아 들키고 말았다.
스카이 콩콩의 용수철이 깨비의 몸무게로 인하여 내려앉아 제대로 작동을 안했기 때문이다.
다 큰 녀석이.......어머님의 핀잔 소리에 머리만 긁적일 수 밖에 없었다..ㅎㅎ
첫댓글 아 엣날 생각 많이 나네요. 역시 추억은 좋은거 같읍니다.
옛 생각이..... 어릴때 전 잔재주가 많아 동네 구슬이랑 딱지, 그리고 껌종이, 병따꿍은 전부 우리집에 이민 왔었는데..... 싼 가격에 되팔아 수입도 짭짭했구요...^&^ㅋㅋㅋ 어젠 우리집 작은애랑 구슬 따먹기도 했어요.....
콩콩이 타기,딱지치기 ,구슬치기 ~ 옛날 생각에 행복해 졌네요.고마워요 느티나무님
전 어릴때 여자아이들 놀이는 다 싫어라 했죠..구슬치기, 종이딱지, 껌종이 병따꿍 놀이...자치기 ..이런것 참 맣이 하고 좋아했는데....그때가 좋았던것같네요...
어릴적 소꿉놀이 하던 아이들이 있네요 ㅎ 파란구슬이 참 행복한 기억입니다~
우찌... 댓 글 님들께서... 아닌데... 뻥이 조금식 있는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