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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8-2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이 세상에는 궁극적으로 보아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천국에 갈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지옥에 갈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다. 그런데 천국에 갈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진리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한편 지옥에 갈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 세상에 속한 사람, 육신 또는 혈육에 속한 사람, 죄에 속한 사람, 이교, 또는 이단에 속한 사람 등이다.
우리는 자신을 살펴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밭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 한 바다에서 좋은 물고기과 나쁜 물고기가 함께 살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이 친히 뽑으신 12 제자들 중에도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라고 하는 요한복음 17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라고 하셨다. 곧 가룟 유다에 대하여 ‘멸망의 자식’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멸망의 자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아무도 방심하면 안 된다. 항상 깨어서 자기를 살펴야 한다.
1.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특징
1)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첫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요 8:47). 그런데 듣는다는 말은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순종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3:36에서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에서 보면 “믿는다”는 말과 상대되는 말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을 사용하였다. “말씀을 듣는다, 믿는다, 순종한다”는 말이 같은 뜻이고, 또한 “말씀을 안 듣는다, 안 믿는다, 불순종한다”는 말이 같은 뜻이 된다.
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 예수님은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진리에 속한 자마다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라고 하셨다.
② 시편 119:97과 103절에서는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노래한다. 신앙의 위대한 용사들은 이렇게 주님의 법을 사랑하고 사모하였다.
③ 그러나 예수님이 탄식하시던 말씀을 기억해 보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눅 13:34). 이것이 유대인들의 역사이고, 또한 현실이다. 동시에 이것은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2)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둘째 특징은 세상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본문 19절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① 비슷한 말씀를 더 보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요 18:36)라고 하셨고, 팔복의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나로 인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② 그런가 하면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고 하셨다.
③ 왜 그런 박해가 있을까? 이 세상은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죄를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책망하니 그것이 듣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였다. 우리나라도 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이와 회담을 하기 위해 5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퍼주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은폐하였고, 그것이 죄이고, 부끄러운 줄은 아니까 특검도 못하도록 훼방하였고, 문재인이도 조국 사태를 숨기느라고 별별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이 훌륭하고 용감한 지도자라면 자기의 수하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도록 버려둘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나서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④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혁, 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그것이 개혁인가? 사상이 불그레한 사람을 정보부의 책임자 자리에 앉히면 그것이 개혁인가? 참 개혁은 죄를 없애는 것이다.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죄를 감추려고 하지 말고, 용감히 밝히고 청산하는 것이다. 대선 자금도 솔직히 밝히고 용서를 빌면 야당도 자연히 밝히게 되지 않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그러니 누구든지 바른 소리를 하면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게 된다. 우리의 과거 정권들이 수도 없이 그런 짓들을 거듭해 왔다. 야당 시절의 민주 투사도 소용이 없다. 개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죄다. 부정과 부패를 자기부터 청산해 내야 한다.
3)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셋째 특징은 의를 행하는 것이다. 요한삼서 11절에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아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한다. 요한일서 4:7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5:8-9에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한다. 또한 예수님은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부활을 설명하시면서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의인을 찾고 계신다. 특히 이 말세에 세상에 물들지 말고 거룩하게 살면서 의를 행하기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2. 세상에 속한 사람의 특징
1)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그들은 그 말을 잘 듣는다(요일 4:5).
①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미련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깨닫지도 못한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2:14).
②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열을 올리면서 세상적인 말을 한다. 어떤 때는 밤을 새워가면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할 줄 모른다. 디모데후서 3:1-5에 말세에 될 일을 예언하고 있다. 그때는 고통하는 때가 될 것인데, 왜 그런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③ 요한일서 2:15-16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④ 남한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살아도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은 북한 방송을 들으며, 미국을 비난하고 욕하고, 남한 정부에 항상 반대하며,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학교의 선생이 되면 학생들에게 그런 붉은 사상을 가르친다. 모든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항상 편견과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니까 잘못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사람들은 고집도 대단하여 자기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항상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모두가 이단이라고 정죄한다.
2) 세상에 속한 자의 특징은 천국을 파괴하는 일이다. 천국을 파괴하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①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 때에 모압 땅에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살았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나중에 발람이 발락에게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곧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은 저절로 망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압의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모압의 신들에게 절하게 하고, 모압 여인들과 간음죄를 짓게 했다. 그러자 진노가 임하여 전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다. 지금도 마귀는 이 수법을 매우 즐겨한다. 우리가 깨어서 이런 유혹을 이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저절로 망할 수밖에 없다.
② 둘째 방법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거짓을 믿게 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후서 2:1에도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란 정통을 가장한 이단이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후서 11:14에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하였다. 가짜가 진짜 같고, 오히려 진짜는 가짜처럼 보인다. 성경이 이것을 밝히 보여주지 않는가! 특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정통이라고 말하고, 백성들도 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책망하셨다(마 3:7; 12:34; 23:33).
③ 셋째 방법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였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정죄하였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그들에게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그래서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제자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여 핍박하였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 이러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우리는 깨어서 사람의 미혹에 속지 말고 분별력을 가져야 하겠다.
3) 세상에 속한 사람의 근본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① 안다는 말은 아주 쉬운 말 같지만, 실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우리가 서로 안다. 그러나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부부간에도 30년을 같이 살아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늘그막에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②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대통령을 잘 안다. 날마다 신문에 사진이 나오고, 텔레비젼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의 날마다 그의 육성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그분을 잘 아는데, 그분은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꼭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마 7:23)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어도”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③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잘 아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도 그것을 말한다. 그들이 왜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할까?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21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너희를 죽이는 모든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16:2-3).
4) 따라서 세상에 속한 사람은 마귀에게 속으면서 사는 것이다.
① 마귀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마귀는 본래 영광스러운 천사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44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로부터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의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의 특징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곧 첫째는 욕심쟁이라는 사실이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도 욕심을 집어 넣어준다. 그래서 그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미 마귀의 종이 된 것이다. 재물욕은 물론이고, 음욕, 명예욕, 권세욕 등 모든 욕심의 노예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한다는 말은 그 첫째가 세상에 속한 모든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찬송가에서는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라고 하였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하고, 높임 받으려고 하는 모든 욕심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귀의 둘째 특징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는 사실이다. 그가 누구를 죽였는지는 단정해 말하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살인하고 싶은 마음을 넣어주고 나아가 그것을 실행하도록 역사한다. 곧 마귀는 우리 마음에 형제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 형제에게 분노하는 마음을 넣어준다. 특히 의인을 미워하게 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질투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이 궤계를 알지 못하면 그런 악한 마음이 생겨도 물리치지 못하고, 당연한 것인 줄 알거나, 오히려 그런 악한 마음의 노예가 되어 죄 가운데 떨어지고야 만다.
마귀의 셋째 특징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마귀는 본래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귀의 거짓말은 너무도 간교하다. 유대인들의 전설에는 뱀이 하와를 속일 때에 사용했던 수법을 소개하고 있다. 뱀이 하와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라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는 큰 오류가 있었다. 곧 하나님은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을 하신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하와는 그 말을 넣었다. 하와의 지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아챈 뱀은 즉시로 선악과 하나를 따서 손으로 막 만졌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보아라. 이렇게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지?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야.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단다.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란다”라고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극히 작은 허점이 하나만 발견되면 마귀는 지체없이 그 약점을 찔러댄다. 그리하여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마귀에게 속아넘어갈지 모른다.
② 더 심각한 사실은 마귀에게 속았다는 데에 있지 않다. 우리가 속으면서도 깨닫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속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절대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나 신학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사정없이 비판하고 정죄하고 짓밟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귀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늘 살펴서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다.
3.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될까?
마태복음에는 장차 심판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8:12; 13:42,50; 22:13; 24:51; 25:30). 왜 그렇게 될까? 그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줄로 생각했는데, 심판 때에 보니까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살 때에 방심하고 있었다. 우리도 방심하지 말고 늘 자신을 살펴서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1)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는 늘 자기를 살펴 죄를 끊어야 한다. 돌아서면 천국이요, 돌아서면 지옥이다. 실로 천국과 지옥은 백짓장 차이이고, 돌아서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 못박혔던 강도들을 보라! 그들은 함께 살인을 했고, 함께 감옥에 갇혔고, 함께 사형을 당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들의 운명은 똑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운데 둔 그들의 운명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고 말았다.
“마귀는 욕심쟁이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다.” 따라서 마귀에게 속하면 우리도 다 그렇게 된다. 참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버리기를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을 버릴까? 세상에 속한 욕심이다. 다음에는 살인, 곧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이다. 셋째는 모든 거짓말이다. 땅에 속한 것, 세상에 속한 것을 버려야 비로소 하늘에 속한 것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계 3:14). 우리가 자신을 살펴 마귀에게 속한 것들을 다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할 때에 비로소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어야 한다.
항상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의를 행할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게 된다. 히브리서 12:2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한다. 나아가 우리는 순교자들의 역사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는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야 한다.
3)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기도생활이다. 성령이 충만해야 능력이 있다.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을 깊이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탄식하신다. 기도에 힘써서 성령 충만을 받고, 더욱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면서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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