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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들을 어떻게 하면 짝을 맺어 줄 수 있을까."
황새 복원을 위해 러시아에서 황새를 들여 왔지만 6년간 한 쌍의 부부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황새들을 한 우리에 넣었는데 수컷이 뾰족한 부리로 암컷을 공격해 죽이기도 하고, 암컷은 수컷을 피해 도망다니곤 했다. 짝을 맺도록 해줘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부부의 연(緣)을 맺어주기란 그렇게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컷 '청출'이가 자기 우리를 벗어나 옆 우리에 있는 수컷 '자연'이 옆에 가서 있는 게 아닌가. 청출이를 다시 제 우리로 집어넣은 뒤 어떻게 옆 우리로 가는지를 관찰했다. 우리의 한구석에 설치된 카메라 옆에 길이 40㎝의 좁은 공간이 있는데 청출이가 그 틈을 비집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청출이와 자연이는 그렇게 우리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연모하다가 짝을 맺었다. 황새는 짝 맺기가 어려운 만큼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황새를 택하는 법이 없고, 다른 황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청출이는 이듬해 알을 낳았고 알을 품은 지 한 달 만에 두 마리의 새끼가 깨어났다. 그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일본은 황새 짝짓기를 20여년 걸려 성공했는데 우리는 단 7년 만에 이뤄냈다. 그해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의 감격처럼, 우리는 골을 넣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따 두 새끼의 이름을 '선홍'과 '상철'이로 지었다.
이처럼 황새를 새끼 때부터 큰 우리에 함께 넣어 스스로 짝을 맺게 했다. 이렇게 탄생된 황새 부부는 모두 일곱 쌍이다. 연애결혼으로 부부가 된 황새들을 한 쌍씩 짝 지어 번식장으로 옮겨 새끼를 낳게 했다. 이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했고, 그래서 15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다량 번식이란 결실을 맺어 지금은 모두 98마리가 됐다. 100마리를 번식시키는 데 일본이 3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셈이다.
우리나라 황새가 멸종된 것은 충북 음성의 황새 부부가 사라지면서다. 수컷은 1971년 사냥꾼 총에 맞아 죽었고 홀로 남은 암컷은 농약을 먹고 신음하다 발견돼 서울대공원에서 살다가 1994년에 죽었다.
황새 복원을 시작한 지 15년이 흘렀다. 그러나 황새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야생 황새가 많은 러시아에서 황새를 들여 와야 했지만 러시아 환경부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1996년 러시아 아무르지역에 산불이 일어나면서 황새들이 잇따라 죽어갔다. 그러자 러시아 환경부는 한국 반출을 허가했다. 러시아에서 황새가 멸종해 복원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한국이 황새를 다시 보내주기로 한 전제조건을 달고서였다.
황새를 인공 부화시키면서 초유(初乳)의 중요성을 배웠다. 황새가 알을 낳으면 인큐베이터에 넣어 인공 부화를 시키는데 보름만 지나면 병이 걸려 죽곤 했다. 황새를 관찰하니 어미가 위에서 먹이를 삭혀 그것을 다시 게워내 새끼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초유같이 면역 성분이 높은 것이었다.
황새는 영특한 새다. 어느 여름날 어미 황새들은 우리 안의 수조에서 부리로 물을 담아 새끼들의 머리에 부어주곤 했다. 더위를 식혀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조의 물을 갈아주느라 수조에 깊이 5㎝가량의 물만 남아 있었다. 어미 황새는 다리를 벌리고 몸을 낮춰 부리를 수평으로 해서 물을 담는 것이었다. 이솝 우화에선 황새가 접시에 담긴 물은 못 먹는다고 했지만 실제는 그와 달리 영리하게 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부부애도 돋보였다. 황새에겐 하루 한 번씩 먹이로 조기 크기만한 전갱이를 준다. 하루는 사육사가 통에 먹이를 넣자 수컷 어람이가 달려왔다. 암컷 미미는 알을 품고 있던 중이었다. 10마리쯤 되는 전갱이가 있는데도 어람이는 그것을 다 먹지 않았다. 고작 세 마리를 먹고는 재빨리 미미에게 달려가 알 품기를 교대해주는 것이었다. 황새도 사람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황새가 이제 내년이면 100여마리를 넘게 돼 2013년에는 야생에 황새를 풀어놓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황새들의 서식지다. 먹이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황새들은 봄이면 미꾸라지, 붕어, 올챙이, 우렁이를 논에서 잡아먹었다. 그리고 번식이 끝나는 9월이면 들판을 다니면서 들쥐, 뱀, 메뚜기, 사마귀 그리고 귀뚜라미 등 벌레를 잡아먹곤 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자연은 농약 천국이 되어 황새들이 먹고살 먹이가 없어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황새들이 마음껏 뛰놀며 춤추게 할 수 있을까.
황새 복원에 성공한 유럽을 지난 6월 찾았다. '황새 마을'로 유명한 독일의 동부 로브르크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역이었다. 황새가 한창 번식 중이었다.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황새들을 보니 바로 지렁이를 먹이는 게 아닌가. 주변의 땅에는 지렁이가 엄청나게 많았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한 줄기 빛을 보는 듯했다.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다시 생태계가 회복되고 황새를 살릴 수 있는 자연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황새가 멸종한 것은 바로 농약의 과다 사용이 남긴 대가였다. 오랫동안 농약으로 망가진 이 땅의 생태계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그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