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화) 올 여름 휴가를 맞아 결혼 후 처음으로 나홀로 여행을 떠나다.
대학 3학년 딸아이는 자기 친구들과 계획이 있고 집사람 역시 고3인 아들아이 때문에 맘 편히 함께 갈 수 없다해서 모처럼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지방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날 수 없는 지인들과의 반가운 만남과 더불어 그 지역에서의 지난 시간 내 발자취 찾기와 맛난 음식 탐방.
예전 직장생활의 업무상 우리나라 웬만한 지역은 안가본데 없는 나로서는 지방마다 지난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찾아갔던 곳들인데 회사를 옮기니 이제는 가본지 너무 오래되어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첫번째 여행 코스는 영덕을 걸쳐 대구까지.
영덕엔 Blue Road라고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있는데 고양시 걷기 모임에서 올봄 다녀온 사진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꼭 한번 걷고 싶었던 곳이다.
서울 강변 터미널에서 안동을 거쳐 영덕까지는 4시간 40분 소요, 도착해서 점심식사 하고 바로 블루로드 걷기를 시작한다.
블루로드는 동해안을 끼고 걷는 길로서 몇 코스로 나눠져 있는데 하루에 다 걸을 수 없어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시작, 강구항까지 이르는 약 10km의 산길을 걷기로 한다. 블루로드 1코스를 거꾸로 도는 셈이다.
영덕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리던 비는 약 4시간의 걷는 시간 동안 계속 내려 배낭과 몸을 모두 젖혔다. 그야말로 옴팡 비를 맞았다고 해야할 듯. 블루로드 중에 바라본 전망. 저 산끝자락이 동해바다인데 비 때문에 보이지 않아 아쉽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숲길로 계속 이어지는 블루로드, 걷는 내내 비가 많이 와서 후텁지근하고 더 더운 느낌. 시계도 좋지 않다.
약 3시간 산길을 걸어 강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나왔다. 저 뒤에 보이는 펜션 너머가 바다인데 흐릿해서 사진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은 듯.
해안도로를 따라 강구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그래도 모처럼 동해바다를 보니 걷기의 피로는 다 잊고 마음이 탁 트인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경계하듯 쳐다본다. 비가 계속 오는 탓에 휴가철인데도 바닷가 횟집과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바닷가의 절경. 거센 바닷바람 맞으며 저 바위 틈에 자란 소나무의 생명력이 대단하다.
바닷가에 마치 풀장처럼 바위로 둘러쌓인 곳. 아이들이 놀기엔 아주 그만일 듯.^^
요렇게 작은 해변은 가족단위로 놀기엔 안성마춤이 아닐까 싶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환한 표정으로 쾌히 응해준다.
비오는 바닷가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신 갈매기떼들이 손님맞이를 대신한다.
어느새 강구항. 조용했던 강구항은 '그대 그리고 나'라는 TV 드러머 촬영지로 유명해지고
강구항의 전경
대게로 유명한 영덕이지만 지금은 철이 아닌지 러시아 수입산 대게가 주종을 이루고 있더라는. 모처럼 동해바다에 갔으니 싱싱한 회라도 먹어야지 했는데 이 계절 대표적인 동해의 횟감인 오징어, 가자미도 마땅치 않아 대구로 넘어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다.
대구에 와서는 예전 직장생활 시 내 상사이셨던 지인과 함께 동인동에 가서 그 유명한 대구 동인동 갈비(매운 소갈비찜)와 더불어 소주 한 잔 하며 10년만에 회포를 풀다.
하루저녁 그 분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아침식사를 집에서 하라는 걸 굳이 마다하고 지인과 함께 찾은 곳은 소피국으로 유명한 대구 앞산의 대덕식당.
2000년부터 약 1년 반 정도 회사 일로 대구에 홀로 내려와 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술 마시고는 자주 찾았던 곳이 바로 이 대덕식당. 아마도 대구사람이라면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집이다.
대덕식당의 전경
대덕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큰 무쇠솥에 끓고 있는 소피국(선지국)을 만난다.
선지국밥이 아직 4,000원 예전 2000년도엔 3,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참 저렴한 가격이다.
이 선지국(대구 사람들은 소피국이라 한다)외에도 도토리묵이 5,000원 등 다른 음식도 비싸지 않은 듯 하다.
대구 음식은 참기름등 양념이 별로 들어가지 않고 소금간을 주로 하는 까닭에 다소 달작지근한 서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좀 안맞을 수 있다. 하지만 먹을 수록 소박하고 독특한 맛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울이 고향인 나역시 그랬으니.ㅎㅎ
예전 직장 상사분. 올 나이가 64세이신데 아직도 청춘이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구 지인과 다시 이별을 한 나는 예전 업무로 자주 찾던 반월당과 인근 남산동 일대를 홀로 걸으며 지난 시절 추억에 잠기며 내 발자취를 찾아 보았다. 사진은 남산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 교구 인근의 오래된 가옥. 그 모습에서 세월이 절로 느껴진다.
남산동 일대를 한 바퀴 돌고는 아직 시간이 남아 반월당 인근의 동성로를 찾았다.
이 동성로는 대구 최고 최대 젊음의 거리. 서울로 치자면 명동과 같은 곳이다. 겨울엔 아주 춥고 여름이면 찜통 더위로 유명한 분지도시인 대구, 여름철이면 대구의 찜통더위와 더불어 TV 뉴스 화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기도. 아직 시간이 일러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다.
동성로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성당못역에 있는 서부시외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는데 1회용 전철표가 서울과 다른 방식이다. 서울은 구간 요금과는 별도로 500원 보증금을 넣고 카드로 된 1회용 티켓을 받아 사용 후 그 티켓을 자판기같은 기계에 넣으면 보증금을 되돌려 받는데 반해 대구는 티켓 자동발매기에 구간 요금만 넣으면 바로 이 500원짜리 동전만한 티켓이 나오는데 내리는 역 개찰구에 그냥 넣기만 하면 되니 서울보다 더 편리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다.
성당못역에서 내려 대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처갓집이 있는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영덕, 대구와 올 여름 인연을 끝내다.
대구에서 광주 가는 버스가 하루에 3회에 불과하니 아직 대구와 광주의 교류가 참 적은 편이다.
대구에서 광주 가는 길은 88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거창, 함양, 장수, 남원 등 지리산 초입에 있는 도시들을 경유해 가는 바 약 4시간 20분이 소요.
광주에 도착해서는 나팔꽃 장명신님과 함께 계절의 진미인 하모 샤브샤브를 먹으며 온갖 밀린 얘기로 맘껏 수다(?) 떨고는 처갓집에 가서 여장을 풀고 곤한 잠에 떨어진다.
장명신님과 광주에서 이렇게 오붓하게 오랜 시간 얘기 나누기는 실로 오랫만이라는. 가족과 함께 올 때는 홀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족 없이 홀로 오니 이런 좋은 점도 있네요.ㅎㅎ (시간의 흐름 순서로는 이 글 다음 '목포에서 白蓮과 민어를 만나다' 가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첫댓글 훈장님
대구와 영덕 등지를 흝으셨군요.
참으로 소중한 여행이셨을 것 같습니다...
잘 읽고 보고 갑니다...
인사 꾸벅
제게 이번 여름 남다른 의미를 남겨준 여행이었지요.
나홀로여행
허리는 괸찬으셨는지...소중한 시간들이셨죠
다행히 허리가 문제 없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엇습니다.거우니 허리 아픈 줄 모르겠더라구용.
제가 신혼여행 갔던 곳인데 그땐 겨울이라서 이런 경치는 놓쳤네요. 광주에서도 사진을 좀 찍었어야하는데 이야기하느라 바빠서 놓쳐 아쉽네요. ㅎㅎ
영덕하니칸 고향동네와 같아서 마음이 흐뭇하네요~~~홀로여행 좋습니다...스트레스 풀고 휴식이라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번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휴식에대하여 우리몸에 아주 좋은것이라고 방송하던군요~~
네 그야말로 이번 여행 중엔 만사 다 잊고 다녔습니당.
훈장님 덕분에 사진을 보며 글을 읽으며 공짜 여행 잘 했습니다.
꼼지락거리는 걸 죽기만큼 싫어하는 저지만 여행하고 싶어 지네요..
다음에는 저도 좀 달고 가 주세요..
오데요. 베낭 뒤에고 갈까요 싸이펑클45님도 혼자 여행 잘 하실 거 같은데요.
네 이장님 정말 제겐 아주 소중한 경험과 시간이었습니다. 내년 휴가 때도 홀로 간다면 집사람 찬성할까요
스마트폰으로 읽기는 다 읽었는데 컴터로 다시보아도 내가 여행한 느낌입니다.
훈장님 홀로 감행한 여행 옛지인을 찿아 시끌벅적한 바닷가 계곡보다는 의미있는 여행이였던 같네요
그저 놀고 먹는 것 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홀로 떠난 의미있는 여행,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 만족하고 후회 없습니다.
햐훈장님 대구음식을 참 잘 표현해주셨네요.'먹을수록 소박하고 독특한 맛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개 경상도 음식 맛있는 게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잘 하는 사람은 잘해요. 대구앞산의 대덕식당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아버지 살아계실 제 우리 식구들을 델꼬 맛있는 소피국을 먹여주시던 곳이지요....
그리고 반월당 남산동 동성로 수성못...등 갑자기 어릴 적 추억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하늘 낮은 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마구마구 피어납니다... 고생은 마이 하셨지만 아마도 그 이상의 더 많은 것들이 훈장님 마음속에서 힘으로 다져져 살아가면서 내공으로 발휘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상하고 세심한 포스팅도
경상도 음식의 특징은 맛이 좀 거칠고 투박해도 질리지 않는 소박함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연히 제 글 땜에 들님 어린 시절 추억과 고향 생각에 마음이 짠하시겠다는.
저런 바다 분위기 참 마이 그립다
긍게 시간내서 함 다녀오시라니껜.
여자들은 꿈만 꾸는 부러운 홀로여행..
저는 메뉴판에 눈길이 젤로 가네요 선지국밥 등뼈해장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