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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KIA 외국인 투수 트래비스 블랙클리가 일본 야구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트래비스는 마운드 위에서의 투쟁심과 팬 서비스가 탁월한 수준급 외국인 투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올 시즌은 예년에 비해 새로운 외국인 선수의 입단이 많았다. 그만큼 각 구단은 정성을 기울여 새로운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준비했다. 물론 아쉽게 시즌 중 웨이버 공시로 팀을 떠난 선수도 있다. 그러나 더스틴 니퍼트(두산), 트래비스 블랙클리(KIA), 벤저민 주키치 와 레다메스 리즈(이상 LG) 등 한국 프로야구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선수들이 더 많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즌 시작 전 영입되는 외국인 선수의 그룹은 정해져 있었다. 미국 프로야구 트리플 A의 자유계약 선수나 메이저리그 구단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돼 있지만, 구단의 엔트리 조정 과정에서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된 메이저리거들이 그러한 그룹을 이뤘다.
여기다 일본 프로야구나 멕시코 그리고 타이완 리그 출신의 외국인 선수들이 국외리그 자유계약 선수 신분으로 국내 구단에 입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구단의 움직임을 보면 기존 영입 대상 그룹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인상이다. 바로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현역 메이저리그 급 선수들을 미국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해 계약을 해지한 후, 한국으로 이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몇 년 전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제는 한국 구단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이렇게 영입되는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기엔 기량이 다소 부족하지만, 언제든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이들이다. 기존에 한국을 찾던 외국인 선수 (트리플 A 기량의 우수 선수)보다 기량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 : 물론 현지 적응이라는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머니볼’의 새로운 진화 한화 외국인 선수 데니 바티스타(사진 오른쪽)과 카림 가르시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줌인스포츠 강명호 기자)
‘머니볼(Moneyball)’은 미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렉티스 빌리 빈 단장이 추구한 새로운 야구 경향을 총칭하는 말이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오클랜드의 ‘영건 3인방’과 제이슨 지암비, 에릭 차베스의 선전은 머니볼을 성공적인 야구 이론으로 자리 잡게 했다. 하지만, 최근 오클랜드는 플레이오프 진출보다는 올스타전을 전·후로 셀러(Seller, 판매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올 시즌 오클랜드가 새로운 영건 마운드를 구축했지만, 같은 지구의 텍사스 레인저스나 LA 에인절스를 넘기에는 전력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이때부터 오클랜드가 시작한 게 이른바 ‘포A 레벨(주 :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가능성은 작지만, 트리플A에서는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로 분류되는 선수들을 대거로 영입하는 것이었다.
올 시즌 KIA의 외국인 선수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왼손투수 트래비스는 오클랜드 소속이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지난 시즌 종료 후, KIA에 이적료를 받고서 트래비스를 팔았다.
사실 트래비스는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다. 지난 시즌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부진을 거듭하며 메츠에서 방출됐다. 이후 과감히 멕시코로 이적을 진행했으나 거기서도 부진하며 다시 방출됐다.
그즈음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을 추진하던 국내 모 구단에서 평소 트래비스와의 친분을 이용해 영입을 추진했지만, 당해년도의 성적 부진에 부담을 느낀 고위층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때를 노려 트리플A 수준의 왼손투수를 물색하던 오클랜드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트래비스를 영입했다. 트래비스는 국내 모 구단 고위층의 판단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트리플A에서 멋진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자 오클랜드는 트리플A 시즌이 종료됐음에도, 아시아 구단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트래비스를 40인 로스터에 포함해 보호했다. 그리고 결국엔 오랜 시간 트래비스를 주목했던 KIA구단에 팔아 이적료 수입을 챙기는 수완을 발휘했다.
얼마 전 삼성과 계약한 덕 메티스도 지난해 겨울 도미니카 윈터리그 때부터 한국과 일본 구단들이 영입을 추진했던 선수다. 그러나 메티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계약했고, 바이아웃 옵션( 주 : 일정한 이적료를 정해놓고 그 금액 이상을 지급하는 구단이 나타날 시 소속 구단이 이적협상에 응해야 하는 옵션)을 이용해 스프링캠프가 종료된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후 메티스는 또 한 번의 바이아웃 옵션을 이용해 오클랜드에 입단했다.
결과적으로 오클랜드에서 메티스는 4경기만 등판했지만, 메티스를 삼성에 팔며 메티스에게 지급한 한 달 급여의 몇 배나 되는 이적료를 챙길 수 있었다. 오클랜드는 트래비스와 메티스 그리고 지난 시즌 초반 KIA에서 뛰었던 매트 라이트의 이적을 통해 투자 금액(선수에게 지급한 연봉이나 월봉) 대비 10배가 넘는 이적료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천정부지로 높아만 가는 이적료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이적료를 기록한 LG 리즈.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선 그만큼 지갑을 열어야 하는 게 최근 상황이다. 이것을 고려하자면 LG는 수준급 투수를 데려오려고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다(사진=줌인스포츠 강명호 기자)
올 시즌 전까지 가장 비싼 이적료로 한국땅을 밟은 외국인 선수는 2008년 KIA에서 뛰었던 케인 데이비스로 알려졌다. KIA는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영입 경쟁에서 승리하며 데이비스를 영입했다. 당시, 라쿠텐이 데이비스의 소속구단이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제안한 이적료는 20만 달러였다. 사실 그 즈음만 해도 미국 구단이 시즌 중 한국이나 일본으로 선수를 이적시킬 때, 시장에 형성된 일종의 공정 거래 가격이 있었다. 정확한 금액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으로 이적할 땐 5만 달러, 일본으로 이적할 땐 10만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그 정도 금액으론 시즌 중 좋은 외국인 선수를 잡기란 불가능하다. 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젠 미국 구단들이 한국과 일본 야구 시장을 따지지 않고, 동일한 이적료를 제시해 선수를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내 구단이 모기업(히어로즈 제외)의 지원으로 운영된다면, 미국 구단은 독립적인 법인이다. 태생적으로 비즈니스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 구단들의 ‘과잉투자’와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자 미국의 일부 스몰마켓 구단들은 아예 오클랜드의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구단들이 플로리다 말린스와 토론토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이다.
파드리스는 LG에 리즈를 이적시키면서, 케인 데이비스의 이적료를 훨씬 뛰어넘는 이적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초반엔 말린스가 투수 클레이 헨슬리를 높은 이적료를 받고 국내 모 구단에 이적시키려다가 선수의 거절로 실패한 바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두산 니퍼트가 투구할 때 LG 이대형이 도루를 시도하고 있다. 두산은 합리적인 금액으로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근래엔 두산도 팀 전력 강화를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사진=줌인스포츠 강명호 기자)
정직하게 말해 과거보다 ‘저(底) 연봉 고(高) 효율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트래비스의 예에서 보듯, 미국 구단들이 시즌 중 아시아 구단들의 관심을 받는 선수들을 40인 로스터에 묶어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넥센은 현대를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담당 직원과 스카우트를 미국에 파견했다. 이제 국내의 모든 구단이 국외로 스카우트를 파견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게 된 셈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30만 달러 연봉 상한선’은 무의미해졌다. 문제는 많은 이적료를 지급하고 정성을 들여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을 시즌 종료 후, 일본 구단에 빼앗기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는 수준과 규모 그리고 인기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제도는 내가 외국인 스카우트 업무를 시작한 2004년에 비해 발전하거나 개선된 부분이 거의 없다. 지금이야말로 ‘연봉 상한선의 수정’이나, ‘외국인 선수의 FA 제도 도입’ 등 제도의 개선과 발전이 이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오늘도 늦은 밤까지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경기 기록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을 국내 구단의 외국인 선수 영입 담당 직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글 :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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