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래서 오늘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한글에 대한 시험이 있대요.
난, 한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
"그러냐? 뭘 모르는데?"
"맞춤법도 그렇고 한글 문법도 잘 모르고 어려워요."
"그래, 한글이 쉽게 배울 수 있어 쉬운 글자라고 하지만 제대로 알고 쓰려면
대단히 어려운 글자다. 나도 한글이 어렵다."
"맞아요."
"오늘 국어시간에 어떤 한글 시험이 나올까?"
"모르겠어요. 우리말에 대한 것이 나올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지. 오늘 시험은 공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헷갈리는 우리말 어법이나 사용법을
부지런히 보아두어야 한글을 제대로 쓸 수가 있지. 너 오래 전에 내가 구해 준
<바른말 고운말>이란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냐?"
"아직 못 읽었어요."
"야, 임마 한 번이라도 집중해서 읽어 봐. 그런 내용은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아. 하지만 네 놈이 커서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글도 쓰고
네 생각을 표현도 해야 하니까 꼭 필요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선생님이 가르쳐 줄 수가 없다. 내 한 가지 물어 볼까?"
"...."
녀석은 자신이 없는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물어 보세요."
"너, <넘어>와 <너머>를 구별해서 쓸 줄 아나?"
"그게 서로 다르게 쓰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야 임마 중학교 3학년이라는 놈이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 다르지
달라도 엄청 달라. 사람들도 사용하는데 많이 헷갈리고 ....."
"어떻게 다른데요?"
"국어든 영어든 문법을 배울 때 품사를 배웠으니까 동사와 명사가 무엇인지는 알겠지?
"예, 그건 알아요."
"<넘어>는 동사로 쓰인다. 예를 들어 <산을 넘어 물을 건너가다.> 할 때는
<넘어>를 써야지 <너머>를 쓰면 안 된다. 이 문장의 의미가 산을 넘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에서는 <너머>를 써야지
<넘어>를 쓰면 안 된다. 산너머는 동작이 아닌 산을 너머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의미로 명사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냐? 아, 또 생각 난 김에
너 <던>과 <든>을 구별해서 쓸 줄 아냐?"
"몰라요."
"아들아, 너는 우리 국어에 대해서 어쩌면 그리도 모르쇠냐?
쉽게 얘기해서 <던>은 과거를 의미할 때 쓰면 되고
<든>은 둘 중에서 하나라는 선택의 의미가 있을 때 쓰면 된다.
예를 들어 <가던 길 오던 길> 할 때는 <던>을 써야 한다. 예전에 가거나
오거나 했던 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좀 변형하여
<가든지 오든지 말든지>라고 할 때는 <든>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가거나 오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선택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듣겠냐?"
"예, 우리말이 참 복잡한 것 같아요."
"그래, 어렵지. 오늘이 한글날이니까 한글에 대해서 하나 더 물어 보겠다.
너, 우리 한글이 자음은 몇 자고, 모음은 몇 자인 줄은 알겠지?"
"그 정도는 알아요. 자음은 14자 모음은 10자로 모두 스물 넉자요."
"그렇지. 지금 이런 소리 들으면 머리 아프겠지만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28자였다. 고등학교 올라가면 구경하게 된다.
그런데 너 자음 14자를 글자로 다 쓸 수가 있냐? 있다면 소리내어
한 번 순서대로 읽어봐라. "
마침, 차가 신호등에 받아 기다리는데 녀석의 자음 읽기는 시작된다.
기억, 니은, 디긋, 니을, 미음, 비읍, 시읏, 이응, 지읏 ..... 읊어대기는 하는데
순 엉터리요. 지 지끼고 싶은 대로다. 기본이 제대로 안된 것이었다.
"동작 그만 - 셧업 마우스! 야, 아들아 너 순 엉터리다.
학교에서 그런 것에 대해 선생님이 한 번도 말하지 않더냐?"
"모르겠어요. 자음도 읽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있지. 이놈아! 한글이 어떤 글자인데 쉽고도 어려운 글자가 바로 한글이야.
금방 배워서 괴발새발 쓰기는 쉽지만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따지면
무지하게 어려운게 한글이다.
답을 말해주기 전에 아버지가 너처럼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시간 때의 일을 얘기해 줄까.
그 날도 오늘처럼 한글날이었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빈 종이를
한 장씩 꺼내라고 하시고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쓰라는 거야.
우리는 신나게 썼지. 그러고는 옆자리 친구와 바꾸라고 하시고는 정답을 칠판에다
적으셨는데 답을 맞춰보니 모두가 제대로 쓴 답이 없었어. 심지어 자모의 순서가
틀린 친구도 있었고.....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틀렸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배워서 알면 되는 것이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학생 형님 누나들도
당장 써보라고하면 틀리게 쓰는 사람이 대부분일걸"
"그럼 정답은 어떻게 써야해요?"
"의외로 간단해. 자음은 앞말은 자기 글자에 이(ㅣ)를 붙이고, 뒷말은 (으)를 쓰고
아래에 자기 글자를 받침으로 쓰면 되지. 예를 들어 (ㄴ)은 (니은)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단 세 글자는 예외 없는 규칙이 없듯이 규칙에서 예외가 있어.
ㄱ, ㄷ, ㅅ 이 세 글자야 이 세 글자는 ㄱ(기역), ㄷ(디귿), ㅅ(시옷) 이라고 써야 되지.
이 규칙만 알고 있으면 된다. 모음은 자기 글자 빈곳에 이응(ㅇ)만 두면 되지.
모음은 예외가 없으므로 간단해.
그래서 모음은 쉬우니까 놔두고 자음을 순서대로 말해보면,
기역(ㄱ), 니은(ㄴ), 디귿(ㄷ), 리을(ㄹ), 미음(ㅁ), 비읍(ㅂ), 시옷(ㅅ), 이응(ㅇ)
지읒(ㅈ), 치읓(ㅊ), 키읔(ㅋ), 피읖(ㅍ), 히읗(ㅎ) 이라고 읽고 쓰는 거야.
그런데 웃기는 건 언젠가 너거 엄마한테 (히읗)을 한번 발음해 보라니까
자꾸 히흥 히흥 하더라. 당나귀 코방귀 뀌는 것처럼 말이야"
"하하하.... 히히히히...."
"그런데 아빠, 왜 그렇게 읽어야 되요?"
"....."
"거참 어려운 질문이다. 글쎄 그렇게 하자고 예전에 약속을 했으니까 그렇겠지.
한글 자모를 읽고 쓰는 법은 조선 중종 때 사람인 최세진 이라는 어른이
<훈몽자회>라는 책에서 그렇게 하자고 정해 놓았어. 말하자면 오래 전에
그 정해진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 훈몽자회는 한글연구나 우리말 어원에
대해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귀중한 책이지."
"....."
"오늘 국어시간 시험에 한글 자모를 쓰라고 하면 좋겠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기대해 봐."
이러는 동안에 차는 교문 앞에 다 오게 되었다.
"공부 잘 해라. 그리고 오늘이 한글날이니까
니가 걸핏하면 <즐> <즐>하면서 우리 집 대장인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나
동생한테도 그 말을 자주 쓰는데 그 말을 오늘만이라도 쓰지 마라.
알아보니 뜻이 아주 나빠. 동생은 몰라도 아버지나 엄마한테 <꺼져>라고 하면
되겠냐? 말을 함부로 창조하면 안 된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의미나
새로운 물건에 대한 것은 말의 창조가 가능하겠지만
이미 <꺼져>라는 뜻의 말이 있는데 그 뜻으로 <즐>이라고 하면 되겠냐?
이 말은 윗사람한테 사용하는 말도 아니고
예전엔 <불쌍하다>란 뜻의 <어여쁘다>가 <예쁘다>라는 의미로 변했듯
어의전성 되는 것은 허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요즘 너들이 쓰는 말은 뒤죽박죽 창조를 해서 도대체 어느나라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서 혼란스럽다. ET가 쓰는 말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