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정상의 영화배우 최무룡과 김지미 간통 혐의로 구속 《1962년》
1962년 10월 최씨 아내 강효실씨는 “개복 수술로 아이(영화배우 최민수)를 낳은 지 열흘만에 두 사람의 간통사실을 확인했다”고 폭로했고, 이후 “퇴폐한 도덕감을 확립하기 위해 두 사람을 간통혐의로 고소한다”고 했다. 최씨와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간통 사실을 시인했고, 함께 구속됐다. 이후 김씨는 집을 팔아 위자료와 채무변제 등을 위해 300만원을 주기로 합의하고 일주일도 안돼 석방됐다. 한시대를 살고간 여배우중에 김지미가 있다. 여자에게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당대의 풍운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사 최고의 여배우로 손꼽히고 있고,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으로 세상을 뜨겁게 만들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는 1940년 7월 15일 대전에서 태어났다. 덕성여자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지금도 옛세대들은 화투를 치다가 6이 나오면, "김지미가 나왔네"라고 한다. 화투 6자, 목단(모란)에 비유될만큼, 미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즉, 화중지왕이라고 하는 모란처럼 최고의 꽃으로 지칭되기도 하지만, 안좋은 뜻으로는 향이 없고 꽃잎이 너무 만개한 모란에 빗대어 남자에게 헤픈 여자라는 비아냥이 숨어 있다. 그만큼 김지미의 인생은 화려하면서도 굴곡이 많았다. 김지미의 첫번째 남편은 영화감독 홍성기였다. 당시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으로 황혼열차에 출연했던 신인여배우였고 (18살때), 홍성기는 여러 작품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던 차세대 감독이었다.
김지미: "홍 감독이 나보다 12살 많은 늙은 총각이긴 했지만, 당시 유명한 감독이었다. 사실 영화를 찍는 건지, 사실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수선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와중에 결혼식을 치렀다." 둘은 1959년 결혼해서 첫딸을 낳는다(이름은 홍경임). 하지만 1962년 9월 4일 이혼하게 된다. 아마 당시 어린 김지미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모르고 결혼을 한 것 같다. 사실 이 이혼의 직접적인 사유는 최무룡과의 연애때문이기도 했다.
김지미: "결혼 후, 국제극장에 속한 당대 최고 영화사에 최무룡(1928~1999)씨와 내가 전속배우가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황이었다. 그 나이에 가정이나 남편이 중요하게 보였겠나.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이혼하게 되더라." 남편 홍성기를 볼 시간은 별로 없고, 잘생긴 최무룡(영화배우 최민수 아버지)과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된다. 이혼 당시 홍성기와 김지미는 각각 소감을 남긴다.
홍성기: "하룻벌이를 하는 지게꾼의 신세가 부럽다." 김지미: "어차피 맞을 소나기다."
홍성기는 이혼 후에도 영화감독으로 계속 활동했고, 지난 2001년 타계한다. 어쨌든 이들을 둘러싼 사건으로 당시 한국 사회는 떠들썩했다. 막 떠오르는 신인 여배우가 이혼하자마다 간통 사건에 연루가 되었으니까.
김지미: "당시 최무룡씨와 현장에 앉아 서로 자기 속상한 얘기 같은 거 털어놓게 되지 않나. 그러다 정이 들었는데, 이게 '빵'하고 터져버리더라. 수습해야 하니까, 안 살 수가 없게 된 거다." 같은 달(1962년 9월 말) 최무룡의 부인인 영화배우 강효실은 막 출산을 한 상황이었다.
강효실: "아들 최민수를 낳자마자 열흘만에 남편과 김지미의 간통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최무룡과 김지미는 간통죄로 구속이 된다. 그리고 김지미씨는 자신의 집을 팔아 위자료 230만원, 채무변제 78만원 등 약 300만원을 강효실에게 주기로 합의하고, 11월 7일 석방된다.(당시 최무룡에게는 돈이 없었음) 아직 이십대의 여배우가 이 정도의 사건에 연루되면, 한국에서는 거의 은퇴해야 하죠. 하지만 김지미는 그 후에도 변함없이 건재를 과시한다.
김지미: "사람들이 참 희한한 것 같다. 나를 욕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내가 못한 거 실컷 해서 통쾌하다' '당당하게 잘했다'는 얘기를 편지로, 전화로 전해왔다." 한국 사회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김지미의 불륜이 내심 부러운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김지미와 최무룡은 재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 딸 최영숙과 아들을 낳는데, 아들은 돌이 지날 무렵에 사망한다. 하지만 김지미 최무룡 두 사람은 7년뒤인 1969년 6월 10일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때 유명한 말을 남기는데.
최무룡: "사랑에 파탄이 가서가 아니라 지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한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이었다. 그런데 김지미와 최무룡 사이에는 이런 경제적인 문제외에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
김지미: "남편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행방을 수소문해보니, 아침 일찍 세종로 국제극장 다방에 커피 마시러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밍크(딸 최영숙의 아명)를 등에 업은 채 남편이 나타난다는 다방에 아침 일찍부터 진을 치고 기다렸죠."
김지미: "밤 새워 마작을 한 남편과 그 일행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방에 들어왔어요. “밍크 아버지, 이러면 안돼요”라 외치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뺨을 때렸어요."
최무룡: "이러면 몸 상해. 밍크 엄마, 진정하라고..." 최무룡이 김지미의 건강을 챙기면서 오히려 진정시킨다. 그런데 묘하게도 김지미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영화 제작을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도, 노름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다.
김지미: "난 사실 그 사람이 ‘이 여편네야. 새벽에 어딜 찾아와?’라고 소리치며 내 턱이 부서지도록 때려 주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오히려 내 몸을 걱정하더군요. 그때 느꼈죠. ‘아, 이 사람은 내가 평생을 맡길 남자가 아니구나’라고 말이에요." 이처럼 김지미는 자신을 제압할 강인한 남자를 원했다. 어쨌든 그렇게 김지미는 최무룡과 헤어지게 되고, 이번에는 11살 연하의 나훈아와 만나게 된다.
당시에 연상연하 커플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번 역시 당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1976년). 다만 김지미는 나훈아와는 결혼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지미: "나훈아가 노래를 잘해 우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와서 노래를 몇번 해줬다. 형제지간처럼 지내다 군대 다녀오고, 일이 없어 더 친해졌다. 오빠가 내 자금으로 신탄진에서 운영하는 공장에 자주 내려갔는데, 그 사람이 여러 번 따라왔다. 남녀관계니까 (육체적) 문제가 좀 있긴 있었지. 그러니 아니라고 할 수가 있나. 그래서 또 공개하게 됐다." 하지만 김지미는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최무룡때 고백했던 것처럼, 자신을 꽉 잡아줄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원했다. 아마 자신이 원하는 것과 본성간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다. 나훈아 역시 김지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것이 그의 기질상 자신이 보호하고 지키는 아내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사실혼 관계였던 김지미와는 이혼하자마자 14살 연하의 가수 후배 정수경과 4년간 동거를 하다가 1985년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김지미는 네번째(?) 남편 의사 이종구를 만나게 된다(1991년). 이번에는 연예계 사람이 아니라 심장 전문의였다(이종구는 캐나다에서 약 30년간 유명한 심장 전문의로 활동했고, 이후 89년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개업하게 된다.) 김지미: "지지고 볶으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게 건전한 가정인데 저는 항상 ‘네, 그러세요’ 하며 살았어요.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습니다’ ‘나가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이랬죠. 부부라면 싸움을 하고도 금세 ‘이리 와봐’ 하면서 껴안기도 하고,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큰소리 ‘뻥뻥’ 치고 해야 하는데 격식 차리다보니 거리감만 생기고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분이 ‘저 늦어요’라고 하면 저는 ‘네 알았어요’ 하며 살았다니까요. 저 몹시 피곤하게 살았어요." 그리고 김지미는 자기 인생에 대한 깨달음도 남긴다. 김지미: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김지미: "나는 마누라가 필요하지 남편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김지미: "딸 가진 부모들은 사윗감으로 의사, 판사, 변호사 같은 전문 직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유명하고, 파워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가정을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결혼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을 때 가장 편한 상대와 해야 한다는 걸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달았다."
김지미: "내게 조카가 서른두명이 있는데 사람 외에 다른 것은 보지 말라고 말한다. 그 사람의 장래에 희망을 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고. 완전하게 갖춰진 사람을 만나려고도 하지 말라고 한다. 완전하게 갖춰진 것을 얻으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