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보이’의 사전적 의미는 매사에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소년이나 남자로써 순화된 표현으로는 ‘응석받이’, ‘치마폭 아이’를 뜻합니다.
요즘 꽤나 시청률이 높은 TV 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대기업 여회장의 외아들이 마마보이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극중의 외아들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치마폭에 싸여 자란 탓에 무슨 일에나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결정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마다 엄마 뒤에 숨으며 결혼한 후에도 엄마가 골라주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지독한 마마보이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마저도 엄마의 일방적인 미움에서 지켜내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엄마가 골라주는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대게 이런 마마보이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어머니의 잘못된 사랑과 과잉보호 때문에 자녀가 성장기에 올바른 자아가 형성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심각한 사회 부적응은 물론이고 결혼을 한 경우 배우자와의 불화나 고부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실은 요즈음 제가 점점 마마보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쳇말로 마누라 외출할 때 ‘어디가?’라고 묻는다고 두들겨 맞을 나이에 무슨 ‘마마보이’ 타령이라고 타박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살아오신 것은 더욱 아닙니다.
제가 새롭게, 아니 새롭다는 말은 조금은 틀린 말입니다. 오래 전부터 저의 어머니셨지만 지금에 와서야 더 잘 그리고 더 많이 알게 된 어머님 한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열다섯 어린 나이에 목수와 정혼을 했는데 결혼도 하기 전에 그만 아이를 갖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갖게 된 것은 어느 날 하느님의 천사가 당신께 나타나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전하자 당신께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크신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사시던 그 시대에는 결혼 전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율법에 따라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죄악이었습니다. 열다섯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임에도 당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부르심에 응답하셨습니다. 참으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믿음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옹골찬 결단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요셉과 함께 어린 예수를 양육하시고 예수님의 삶과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동참하시어 인류 구원의 협력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이 되시어 십자가형을 당하여 돌아가실 때 제자를 보시며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고 하셨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은 저의 어머니도 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지는 난처한 일이 벌어지자 당신께서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이르며 크나큰 신뢰로 예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시어 예수님의 첫 기적이 당신의 전구에 힘입음을 알게 하시고 당신이 믿는 이들의 으뜸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오늘도 제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때마다 늘 함께 하시어 저의 나약하고 부족함으로 인하여 헐거워지고 남루해진 기도를 채워주시고 정갈하게 기워주십니다. 그리하여 저의기도가 항상 하느님께 합당한 기도가 되게 해주십니다.
제가 세상사 고통에 힘들어 할 때마다 당신의 아들이 매달린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시는 당신을 생각하며 크나큰 위로를 얻습니다. 제가 어둠에 휩싸여 불안에 떨고 있을 때에는 하느님께 드린 당신의 티 없는 믿음을 생각하며 힘을 얻습니다. 저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해주시고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 함께 해주시는 저의 어머님 당신의 이름은 마라아이십니다.
부활절이 갓 지난 지금은 온 누리에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생명의 잔치가 한창인 이런 날에 당신께서 하느님께 바치신 찬양의 노래를 다시금 음미합니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 앞에서 저는 기꺼이 마마보이이가 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