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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의 마음 공부
내 행복의 열쇠는 오직 내게 있다
심리 테라피를 받으며 얻은 통찰
글 스텔라박
"당신은 외부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대해 권한을 갖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힘을 얻을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심리 테라피를 받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심리학과 대학원에서는 학생들이 1년에 26주 이상, 의무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게 되어 있다. 심리 상담을 받아봐야 클라이언트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이 다음에 테라피스트가 될 학생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도 지난 6월부터 매주 테라피를 받고 있다. 테라피를 받으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테라피 첫 날, 나는 내 테라피스트에게 내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테라피스트는 내게 “아뇨, 당신 성격은 외향적인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다. 나는 부인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 결과, 나는 내향적인 INFP로 나왔기 때문이다. 참고적으로 INFP는 내향적(Introverted), 직관적(Intuitive), 감정적(Feeling), 인식적(Perceiving) 성향을 가진 성격 유형이다. 중재자 또는 이상주의자의 특성을 가진 INFP 유형의 사람들은 주로 깊은 내면의 세계를 중시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이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게슈탈트 테라피(Gestalt Therapy)를 개발한 프리츠 펄스(Fritz Perls) 박사는 글로리아(Gloria)라는 클라이언트와의 테라피에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상담실에 들어오자니 좀 겁나는데요.”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그녀에게 “진짜 겁이 난 사람은 웃지 않아요.”라고 알려준다. 게슈탈트 테라피스트는 이처럼 클라이언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관찰하고 지적함으로써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더 잘 인식하여 자아통합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다.
나의 테라피스트 역시 내가 말로 하는 내용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더 신뢰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머리를 당신처럼 빨간 색으로 염색하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가 나를 외향적이라고 판단했던 근거는 바로 내 외모에 모두 드러나 있었다. 테라피스트들은 겉으로 드러난 클라이언트의 여러 요소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리고 대부분 외모는 고의적으로 가장하지 않는 한, 클라이언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내가 나 자신을 내향적이라고 믿고 있는 근거는 내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며, 내면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것은 딱 두 가지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에 가깝다며 내 경우는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의 중간 지점에 있을 것이라고 진단해주었다.
그는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더니 “당신, 참 용감한 여자이네요.”라고 말했다. “정말이요?” 나는 반문했다. 나 자신을 용감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INFP 성격 유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나치게 신경 써서 자신을 소진할 위험이 있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유부단할 수 있으며, 명확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항상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환갑이 되어서야 실행에 옮길 만큼 용기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다가가서 말하지 못하고 마음만 끙끙 앓다가 포기했었다. 그것도 옛날 얘기다.
내가 생각했던 나 자신과 밖으로 보여지는 나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테라피스트와의 세션을 통해 나도 잘 모르고 있던 나의 성격과 컴플렉스, 나의 욕구와 욕망을 양파 껍질 까듯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할 수 있을 만큼 전능하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 화를 낼 때, 당신의 첫 반응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에는 몸과 마음이 움츠려들면서,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어 그 사람의 불안정한 내면의 상태가 내게로 전이된다. 나는 그 사람의 기분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 아빠가 화를 내시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봤고, 자라서는 친구가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해도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봤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척 해맑게 커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줄 알지만, 실제 나는 엄청나게 타인들의 눈치를 보는 타입(People Pleaser)이다.
최근 나는 다시금 이처럼 내면의 평정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나는 테라피스트에게 남의 분노로 인해 내가 불안초조해지는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늘 변한다는 것을 알고, 그냥 내려놓는 연습을 오래 했어요. 그래서 웬만한 것에는 동요되지 않고 평정에 머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등의 협박적인 표현을 듣고선, 왜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안해지는 걸까요?”
나의 테라피스트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해, 부모의 기분을 살펴야 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권위적인 존재나 제도, 시스템에 대해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 이유는 여럿이다. 먼저 부모의 기분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자란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통제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로 인해 성인이 되었을 때도 권위적인 인물이나 제도가 자신을 통제한다고 느끼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불안감이 되살아나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부를 잘해야만, 착한 아이여야만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경우, 자기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권위적인 인물이나 기관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기분을 살피며 자란 아이들은 실수를 처벌로 연결짓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학교, 경찰, 법 등 권위적인 존재가 잘못을 지적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이면서 두려움이 커질 수 있다.
나의 테라피스트는 내게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불안감이나 부정적인 감정 패턴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면서 기본적인 심리적 상태로 작용하는 ‘원형 불안(Primal Anxiety)’에 대해 알려줬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는 만큼, 원형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수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이러한 증상에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였다. ‘기본 불안(Basic Anxiety)’, ‘내면화된 불안(Internalized Anxiety)’이 모두 어린 시절 경험한 불안이 내면화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기본적인 감정 반응이나 행동 패턴으로 자리잡은 것을 뜻한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불안정한 애착 유형이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에서도 불안하고 불안정한 감정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러한 애착 형태를 ‘불안 애착(Anxious Attachment)’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나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대처 방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기본적인 대처 방식으로 고정되어 반복되는 것을 ‘고정된 대처 기제(Fixed Coping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삶의 경험들을 만나면, 그 불안한 경험에 대응하던 초기 상태의 자동 모드(Default Mode)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나의 테라피스트는 죽비로 몸을 맞은 것처럼, 다시는 잊어버릴 수 없는 깨달음을 주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당신, 아직도 전능한 아기이군요? ‘앵' 하고 울기만 하면 엄마가 와서 젖 주고, 기저귀도 갈게 할 수 있는.”
아기가 자기 스스로를 ‘전능(omnipotent)’하다고 생각한다는 개념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과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 등의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상관계이론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유아들은 초기 발달 단계에서 자기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이 전능하다고 느낀다. 배고프거나 불편할 때 울면 엄마가 와서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아기의 욕구가 즉각 충족되기 때문에 자기 욕구가 현실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의 전능감은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을 통해 점차적으로 사라진다. 즉 아기는 자라면서 자신의 욕구가 항상 즉각적으로 충족되지 않으며, 외부 세계는 자신과 떨어져 있는,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와 외부 세계의 분리감을 경험하고, 전능감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반응이 나 자신의 행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유아적 사고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행복해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거에요. 그 누구도 당신의 행복을 대신 찾아줄 수는 없어요. 당신의 행복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밖의 세계에 있는 그 누구일지라도 그의 행복은 오직 그의 책임이에요. 그가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이 화를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에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을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당신이 밖의 대상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유아기의 전능감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충격적인 경험을 더 잘 기억한다. 그날의 테라피에서 깨달은 바는 나의 존재를 산산히 부서지게 만들 만큼 강력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24시간, 주 7일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앎'에 대한 ‘사띠'는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었다.
불안감에 뿌리한 저장강박증
내 삶에서 내가 가장 고치고 싶어하는 면 중 하나는 저장강박이다. 어릴 때 밥을 버리면, “쌀은 농부가 흘린 땀의 결정체란다. 한 알 한 알이 너무 귀한 것이야.”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쌀뿐만이 아니다. 모든 물건들 역시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정체이니, 아껴써야 한다고 배웠다. 치약을 다 짜고 나서는 가위로 가운데를 잘라 완전히 써야 버렸고, 비누 역시 마지막까지 사용했다. 종이 쇼핑백도 다음에 리사이클할 생각으로 한군데에 모아둔다. 그러다보니 적은 공간이 꽉차고도 남는다. 이 풍요의 시대에 왜 나는 종이 쇼핑백 하나도 잘 못 버릴까.
나의 테라피스트는 버리지 못하는 행위를 낳는 것은 불안감, 두려움,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믿음 때문임을 알려줬다.
“제3세계 시골에서 살던 한 사람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화장실이 없어서 늘 땅을 파고서 볼 일을 본 후, 다시 흙을 덮곤 했어요. 그 사람이 미국에 왔어요. 물이 잘 나오는 양변기가 있는데도, 이를 놔두고 밖으로 나가 땅을 파고 볼 일을 봐요.”
그는 이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서도 언젠가는 쓸 것이라는 생각에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를 이렇게 비유했다. 이 비유 역시 내게 큰 충격을 주었고, 무언가를 놔두려 할 때마다 다시금 “혹시 내가 양변기를 두고서도 땅 파서 일 보려 하는 건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행동은 하나 둘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무의식을 의식의 수면으로 가져오는 테라
지금 현재의 내 생각, 감정, 행동을 바꾸기 위해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런 저런 원인을 분석해보는 심리 테라피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너무 속도가 느린 작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 과거의 원인을 돌아볼 만큼 한가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용기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업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인생에 한 번쯤은 테라피를 받아볼 만 하다. 어쩜 당신은 그런 것들, 수행으로 다 되는 것 아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내 답변은, 수행은 수행이고 테라피는 테라피라는 것이다. 코어 근육 단련을 위해 할 수 있는 운동이 여럿이다. 플랭크(Plank), 레그 레이즈(Leg Raise), 러시안 트위스트(Russian Twist), 크런치(Crunch) 등 다양하다. 이 운동들이 자극하는 부위는 조금씩 다르다. 수행과 테라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행으로 깨닫는 부분이 있고, 테라피로 일깨워지는 부분이 있다. 둘 모두를 병행할 때 효과는 가장 크다.
테라피에는 시간과 돈이 든다. 하지만 찾아보면 저소득층을 위한 테라피도 많이 있다. 이 세상 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테라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꺼이 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능하고 마음이 따뜻한 테라피스트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나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받던 클라이언트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생각을 하면 이 나이의 공부도 그리 힘들지 않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 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 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 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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