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4년 세계경제포럼(WEF, 통칭 다보스포럼)이 19일(현지시간) 대회의장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글로벌 경제 전망 토론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다보스 포럼의 올해 주제는 '신뢰의 재구축'이었다. 전 세계의 정·재계 지도자들과 학계 유명 인사 등 2천8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신뢰 재구축'을 향해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I)의 미래, 안보 위기, 경기 둔화 등 글로벌 현안들을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다보스 포럼/사진출처:worldeconomicforum
올해로 54회를 맞았지만, 태생적으로 포럼 형식이 갖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말과 주장 뿐, 대안을 찾아 결론을 내는 무대는 아니다. 구속력이 없는 자유로운 토론장이라는 뜻이다.
다만, 특정 이슈에 대해 국제적으로 여론을 환기시킬 수는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무대로 다보스 포럼을 활용했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다보스 포럼 참석차 온 '글로벌 사우스'(남반부 국가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창한 '평화 공식 10원칙'을 논의하는 4차 '평화 공식 회의'에 대거 참석했다. 3차 회의보다 참가국이 18개국이나 늘어났다(총 83개국 참가).
뒤이어 다보스에 온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 대표단이 불참한 다보스 포럼 회의장을 누비며 1대 1 정상회담을 갖고, 주요 글로벌 투자가들및 기업 대표들과 만나 '전쟁'과 '전쟁 후'(재건 사업)를 협의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글로벌 투자자들과 만나는 장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러나 서방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진짜 만나고 싶었던 상대로부터는 퇴짜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다. 리창 중국 총리는 대규모 대표단을 데리고 다보스를 찾았지만, 우크라이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포럼에서 "세계가 거시경제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협력하자"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만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 연관된 언급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은 우크라이나는 스위스 측에 제안한 '평화 공식' 정상회담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시진핑 주석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이 보도는 '다보스에서 만나자'는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을 중국이 현지에서 정식으로 거부한 뒤에 나왔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리창 중국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다보스 회담을 거부했다. 중국은 앞서 열린 우크라이나 주도의 4차 평화 공식 회의에도 불참했다.
리창 중국 총리/사진출처:rfa.org
우크라, 시진핑 주석과 전화통화를 시도한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캡처
폴리티코는 "중국이 리창 총리-젤렌스키 대통령 회담을 거부한 것은 키예프(키이우)에게 '불쾌한 놀라움'"이라며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이 두 사람의 만남을 암시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국이 퇴짜를 놓은 이유에 대해 미 CNN 방송은 한때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 평화안을 제시한 중국은 이미 관심을 가자지구(팔레스타인 하마스-이스라엘 충돌)로 돌렸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개도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평화 협상을 이끌어내면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서는 "예전에는 중국이 러시아가 패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재를 나선 것일 수 있다"(윤 선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디렉터)고 CNN은 지적했다. 윤 선 디렉터는 "이제는 러시아가 패배하는 걱정을 덜었으니 우크라이나 평화 관련 회의에서 중국은 러시아가 수락하지 않는 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는 중국과의 만남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예 리창 총리는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다보스에서 가진 최종 기자회견에서 "리창 총리는 우리(우크라이나) 총리가 만날 것"이라며 "내가 아는 한, 시진핑 주석은 중국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나는 시 주석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다보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뿔나게 하는 또다른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이오와주 공화당 코커스(당원 대회. 대선후보 경선/편집자)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친 발언에 대해 불쾌한 톤으로 반박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적대 행위를 동결하거나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면, 러시아가 나토(NATO) 회원국을 공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푸틴(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점령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아버지가 늘 하신 말씀이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말하라'는 것이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전쟁을 멈출 수 있다. 나는 푸틴-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중단하지 않으면 더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고, 우크라이나가 중단하지 않으면 일부 예비 전력을 빼앗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