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불교문학, 한국시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읽기와 시쓰기
정효구 지음|학술총서 63|160×232×28mm(하드커버)|448쪽
43,000원|ISBN 979-11-308-2131-3 93800 | 2024.1.25
■ 도서 소개
근대와 근대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가는 오늘날,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시학을 모색하다
문학평론가인 정효구 교수(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읽기와 시쓰기』가 푸른사상사의 <학술총서 63>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절감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새로운 시학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모색한다. 여기서 새롭다는 것은 우주적 진실과 만나면서 영성 수행의 장을 가꾸어 나아가는 일이다.
■ 저자 소개
정효구
1958년 출생.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1981)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1983)와 박사학위(1989)를 받았다. 1985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상,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존재의 전환을 위하여』(1987), 『시와 젊음』(1989), 『현대시와 기호학』(1989), 『광야의 시학』(1991), 『상상력의 모험 : 80년대 시인들』(1992), 『우주공동체와 문학의 길』(1994), 『20세기 한국시의 정신과 방법』(1995), 『백석』(편저, 1996), 『20세기 한국시와 비평정신』(1997), 『몽상의 시학 : 90년대 시인들』(1998), 『한국 현대시와 자연 탐구』(1998), 『시 읽는 기쁨』(2001), 『한국 현대시와 문명의 전환』(2002), 『시 읽는 기쁨 2』(2003), 『재미 한인문학 연구』(공저, 2003), 『정진규의 시와 시론 연구』(2005), 『시 읽는 기쁨 3』(2006), 『한국 현대시와 평인(平人)의 사상』(2007), 『마당 이야기』(2009),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2010), 『일심(一心)의 시학, 도심(道心)의 미학』(2011),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전편 다시 읽기』(2013), 『붓다와 함께 쓰는 시론』(2015), 『신월인천강지곡』(2016), 『님의 말씀』(2016), 『불교시학의 발견과 모색』(2018), 『다르마의 축복』(2018), 『바다에 관한 115장의 명상』(2019), 『파라미타의 행복』(2021), 『사막 수업 82장』(2022),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읽기와 시쓰기』(2024)가 있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환지본처’의 상상력과 영성 수행의 길
조종현의 연작시조 「백팔공덕가」의 ‘공덕행’ 담론과 그 미학
정진규 시에 나타난 ‘귀가’의 상상력
정진규 시의 ‘정원’과 생태인문학
서정주 시집 『질마재 신화』의 마을서사와 승화의 메커니즘
영성 수행으로서의 21세기 문학, 종교, 학문, 삶
한용운의 시를 통하여 치유의 원리를 발견하고 구현하는 일
1920년대 시가 발견한 ‘들’의 표상성과 그 의미
제2부 ‘호모 스피리투스’의 상상력과 무유정법의 길
시 — 유성출가, 그 난경의 미학
시 — ‘호모 스피리투스’의 마음 혹은 ‘심우도’의 길
시 — 만행의 길, 화엄의 꿈
허의 미학을 창조하는 일
무한함의 현상학과 무유정법의 해탈감
불교적 생태시의 회향담론에 대한 사유
문명으로서의 근현대시가 가는 ‘무상의 길’
본심이 부르는 소리, 본심에 다가가는 시간
산중실록(山中實錄), 심중유사(心中遺事)
유심(惟心)의 길에서 부른 유심(唯心)의 노래
삼업을 닦으며, 삼보를 꿈꾸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난처한 과제와 주체 형성의 길고 과격한 길
서향(書香)과 문향(文香), 시향(詩香)과 예향(藝香)의 여정
업식(業識)으로서의 장녀 의식과 구도 의식
제3부 ‘철목개화’의 상상력과 회향의 미학
바다의 철학, 수평선의 미학
봄이 오는 이치, 봄이 온다는 믿음
우주의 이치에 전율하는 고요한 밤
지혜인의 감동적인 사랑론
소박하나 신선한 행복의 풍경
Gobi의 로드맵, 고비의 내비게이션
‘엄마의 품’, 온전한 믿음과 안심의 소우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유하는 시간
하늘을 마시고 능금처럼 익어가는 가을날
마음속에 그린 은혜로운 집과 삶의 풍경
문명의 달력, 인생의 달력, 자연의 달력
물처럼, 강물처럼 하나 되어 흘러가는 시간
여행, 길에서 ‘길’을 찾는 발견의 시간
전나무 숲속에서 들려오는 3월의 법문
4월의 지리산 벚꽃길에 관한 명상
들꽃과 자전거가 동행하는 ‘야생’의 길
청녹색, 우리가 아껴야 할 선량한 색상
‘선우(善友)’가 되어 ‘선연(善緣)’으로 만나는 생명들
산들이 창조한 감동과 영원의 풍경
인간은 언제 둥근 수박만큼 진화할까
현실, 그 너머를 꿈꾸고 사랑하는 인류의 영혼
고요하고 적막한 우리들의 ‘등(背)’을 만난다는 것
낯설고 신선한 이역, 우리들의 유년 시절
흰빛의 매화가 피고, 매화빛의 눈이 내리는 새해 첫날
새들을 예찬하는 특별한 마음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피는 비경
봄날이어서 가능한 비현실의 꿈길
머무르지 않는 바람의 설법
내일을 그리며 사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
■ 수록지 및 발표지 목록
■ 찾아보기
■ 책머리에 중에서
영성! 수행! 우주적 진실과 실상!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와 개아중심주의의 모든 것들은 한계 속의 효용성을 지닐 뿐이다. 이들은 분별과 대립, 갈등과 불화, 중심과 주변, 호승심과 지배욕 등을 한가운데에 두고 있는 생명체의 생존 욕구를 위한 도구이자 방편의 성격을 지닐 뿐인 것이다. 인간들은 언제, 어떻게 이런 ‘고해(苦海)’의 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의 현 시단도 이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해’의 다른 이름인 엔트로피가 너무 높아져서 재생 가능성을 따지기가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런 우리 시단의 현실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시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하나의 강력한 신호이다.
나는 학술서인 『불교시학의 발견과 모색』(2018)을 출간한 이후, 평론이나 논문 등과 같은 2차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보다 산문집, 명상 에세이 등과 같은 1차 텍스트를 창조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 그것은 의도적이라기보다 자연발생적인 것이었고, 내가 그동안 추구했던 ‘영성의 언어’들을 매개 없이 직접 드러내고자 하는 내적 충동의 소산이었다. 이런 가운데서 나는 틈틈이 기회가 될 때마다 평론, 논문 등과 같은 2차 텍스트도 조금씩 생산하였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앉히게 된 것이 이번의 저서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읽기와 시쓰기』이다. (중략)
영성! 우주적 진실! 도심! 절대무한! 그리고 공성! 공심! 일심! 법성! 등과 같은 말들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뛰고 심연으로부터 끝간 데 없이 환한 에너지를 밀어 올리는 세계이다. 나는 이들을 조견(照見)하고 증득해야만 인간사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소아(small I)’를 붙들고 전 생애에 걸쳐 동어반복의 몸부림을 치는 삶과 인간사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 근대가 가르쳐준 주체로서의 개인은 ‘우주적 진실’을 품에 안음으로써 진정 대아(big I)로서의 주체 형성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우리 시는 물론 우리 시대의 모든 것이 이런 과제 앞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엔 여러 가지 형태의 글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은 우주적 진실과 만나면서 ‘영성 수행’의 장을 가꾸어 나아가는 내용들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직감하면서, 그 시대를 준비하고 열어가려는 마음으로 이런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는다.
■ 출판사 리뷰
정효구 교수의 『영성 수행으로서의 시읽기와 시쓰기』는 근대와 근대시의 효용성이 약화되고 그 유효기간이 만료되어가고 있음을 절감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 그리고 새로운 시학의 출현을 기대하고 모색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시를 읽고 쓰는 일을 통해 우주적 진실과 만나면서 영성 수행의 장을 가꾸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별히 불교적 사유를 중심에 두고 시론에서부터 시인론과 작품론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 시사와 시단이 나아가야 할 미래적인 길을 제시한다.
제1부 ‘‘환지본처’의 상상력과 영성 수행의 길’에서는 조종현, 서정주, 한용운, 정진규 등과 같은 시인들을 통하여 그들의 정신적 거점이자 지향점인 ‘환지본처(還至本處)’의 세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들이 영성 수행이라는 현실적 과업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탐구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주된 과제가 영성 수행이라는 전제 아래 특별히 불교적 담론을 중심으로 삼아 시와 문학은 물론 종교, 학문, 삶 등의 세계를 인류사적 과제와 연관시켜 탐구하고 있다.
제2부 ‘‘호모 스피리투스’의 상상력과 무유정법의 길’에서는 ‘호모 스피리투스’로서의 시인의 길과 ‘무유정법(無有定法)’의 무한한 창조력에 주목하면서 이 시대의 한계를 극복할 미래적인 시론들과 시인론 및 작품론을 전개하고 있다.
제3부 ‘‘철목개화’의 상상력과 회향의 미학’에서는 다양한 시편들을 자유롭게 평설하면서 이들에 직간접적으로 내재된 ‘공성(空性)의 상상세계’를 포착하여 드러내는 가운데, 시인들의 시 쓰기와 독자들의 시 읽기가 ‘회향’의 길로 이어지는 순환의 여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 책 속으로
철운(鐵雲) 조종현(趙宗玄, 1906~1989)은 불교계의 승려이자 문학계의 시조시인이다. 우리 근현대문학사 속에서 이런 두 가지 요건을 갖춘 대표적인 문인이자 시인(시조시인)으로는 만해(萬海) 한용운을 비롯하여 석전(石顚) 박한영, 월하(月下) 김달진, 무산(霧山) 조오현, 법산(法山) 김용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불교 승려에게 문학 언어로 구축된 시나 시조를 쓰는 일이란 그들의 본분사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문학 언어를 포함한 일체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인간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인간사의 특수한 도구로서 불교 승려가 추구하는 법, 실상, 실재, 진리, 도심 등을 표현하기엔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조라는 문학 장르이자 양식은 승려와 승단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전개된 불교 문화적 전통 속에서 어느 다른 장르나 양식보다도 불도(佛道)와 불심(佛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애용되고 선용된 양식이다. 불교사의 수많은 경전들 속에서 불도와 불심을 드러내는 수사적 방편이자 표현 방식으로 사용된 ‘게송(偈頌)’ 형태가 그 대표적 실례이거니와 고승대덕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을 비롯한 전법가(傳法歌) 등의 형태도 주목하여 살펴볼 만한 실례이다. (17~18쪽)
이런 가운데 후자의 ‘무유정법’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무유정법’이란 불교의 ‘공(空)사상’을 기반으로 삼은 우주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엔 고정된 법이자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보는 자에 따라서, 놓인 맥락에 따라서 우주는 ‘무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진실로서의 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것을 인간적 언어로 표현해본다면, 문장의 근본 문법인 ‘A는 B이다’에서, 응시하는 A도 무한하고 해석되는 B도 무한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엔 무한의 관점이 있고 무한의 해석이 있으며, 그때의 관점과 해석은, 인간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계를 넘어선 우주적 존재 전체, 그리고 그 우주적 존재 전체의 찰나마다의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은 진실과 법을 고정시켜놓는 것이 불가능한 ‘정해진 바가 없는 세계’ 곧 ‘공성’의 세계이다. (256쪽)
물의 하나됨! 강물의 흘러감! 이 둘은 물이 지닌 일심과 강물이 지닌 동행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물은 지구별의 어느 한 곳 남김없이 실핏줄처럼 퍼져 생명의 물길을 열어가는 가운데 지구별을 살리며 연결시킵니다. 또한 강물은 지구별의 중심을 잡으며 동맥처럼 근간을 형성하는 가운데 물길 따라 인간과 생명들이 모여들어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물을 바라보는 일은 평화롭고 싱그럽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는 일은 특별히 고요하고 충만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메마를 때 물을 찾고 강물을 방문하는 것은 이런 물의 묘용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한 해가 물처럼, 강물처럼 하나 되어 흘러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