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38,1-6.21-22.7-8; 마태 12,1-8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데 성당에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4년 전에, 항암 치료를 하셔야 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올라가, 입원하신 아버지 곁에서 여러 날을 병원에서 잤는데요, 그 기간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이 바로 연중 15주간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오늘과 독서, 복음 말씀이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제1독서를 읽으셨는데, 독서 내용 중에 ‘하느님께서 히즈키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신다’는 말씀을 읽고 서로 무척 감격해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5개월 뒤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말씀이 저에게 무척 ‘짠~’한데요, 한편으로 보면, 병원에 입원한 날 이런 독서가 나온 우연의 일치를 글자 그대로 하느님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희망의 끈을 붙들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합니다.
독서 말씀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히즈키야는 서른아홉 살이었고요, 히즈키야가 죽은 해는 기원전 687년경으로서,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이었던 당시에는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중년의 남성이 자식 없이 죽는다는 것은 커다란 벌로 이해되던 시대였습니다.
히즈키야는 자신의 증손자인 요시야와 함께 남유다 임금으로는 드물게, 하느님께 충실했던 왕으로 평가받는데요, 오늘 독서 말씀은 히즈키야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즈키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더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히즈키야의 운명은 남유다 백성 전체의 운명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히즈키야는 위기의 때에 순종과 신뢰로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는 임금이면서, 명백히 유한한 인간입니다. 예루살렘 역시 히즈키야처럼 유예 기간을 허락받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유예일 뿐입니다. 제1독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처럼 유한한 존재이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 손안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5년의 수명 연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입니다.
히즈키야는 자신이 낫게 되는 표징이 무엇인지 묻고, 해시계의 그림자가 열 칸 뒤로 돌아가는 표징을 받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께 표징을 청하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이 싫어서 표징을 청하지 않았던 아하즈의 태도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정말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돌아갔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히즈키야는 이처럼 자신이 회복된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안식’이 문제가 됩니다.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안식’은 ‘안식일 규정의 준수라는 또 하나의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우신 참된 안식으로서, 세상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발단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실 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입니다. 이게 ‘드라이브 스루’였다고 재작년에 말씀드렸는데요,
이를 두고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따집니다. 당시 랍비들은 논쟁 끝에,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 39가지 항목에 대해 합의했는데요, 바리사이들은 밀이삭을 따는 것을 ‘수확’으로 해석하고, 이삭을 비벼 껍질을 벗기는 것을 ‘탈곡’으로 해석하여, 이 두 가지 행위가 39가지 금지 조항에 나오기 때문에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안식일에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선언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우선순위의 문제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 빵을 먹은 다윗’의 예를 드시는데, 규정을 위반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자신이 지니고 있던 권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또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고 하시는데, 성전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의 중심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성전은 단순히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나라 자체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결국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고 하신 말씀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었던 성전보다, 하느님의 현존 자체이신 당신이 더 크시다는 말씀이고, 결국 멸망하고야 말 지상의 나라보다 훨씬 더 큰 하느님 나라가 당신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제자들에게 율법을 해석해 줄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시며, ‘너희들’ 즉 바리사이들이 아니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어제의 말씀처럼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렇기에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보다 앞서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키는 규정들이 겉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의 주님이신 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기 위한 도구들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소유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영원한 안식의 주인이십니다.
팔컨보르흐,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은 제자들을 변호하시는 그리스도, 1580~1590년
출처: File:Marten van Valckenborch - Christ defends the plucking of the ears of grain on the Sabbath (August).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