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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 예수님을 상상하라(묵시 5,1-6)
묵시 5장은 천상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돌연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누가 두루마리를 열어젖힐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어린양…. 그가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속속들이 보여 줄 것이다. 요한의 시선을 따른 이야기의 흐름 역시 어린양을 향한다. 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놓인 두루마리를 요한은 보았고, 그 두루마리의 봉인을 제거할 어린양을 보았다. 신적권능을 가리키는 오른손. 그러나 그 ‘오른손’의 권능은 드러나지 않는다. 어좌에 앉으신 그분이 두루마리를 열지 않으니까. 오히려 오른손에서 시작하여 두루마리를 열어젖힐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오른손은 어린양이 나타나야 할 이유이며, 어린양을 통해 두루마리는 제 속살을 드러내어야 한다.
어린양에 대한 집중적 서술은 요한의 인간적 한계성과 대립하여 부각된다. 하늘과 땅 위, 땅 아래, 그 누구도 봉인을 열 수 없다는 대목에서 오로지 어린양을 향한 요한의 집중도는 매우 뚜렷하다. 요한은 울고 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여전히, 계속해서…(‘울다’의 그리스말 동사는 지속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미완료 형태로 소개된다.) 요한의 울음을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채워 줄 예수님의 권능을 가리키는 메타포로 많이들 생각한다. 그러나 그 울음이 그것만일까. 우리의 일상 속 울음은 어떤가. 무기력한 한계에 봉착했을 때 우는 것이 과연 무기력해서 우는 것일까. 아니면 한계 너머, 간절한 바람을 담은 짙은 호소의 행위로 울음을 내뱉고 마는가. 요한의 울음은 두루마리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간절함의 메타포가 아닐까. 인간의 한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인간 너머 다른 존재와 다른 세상을 향한 개방과 상상이 울음으로 분하여 표현된 것은 아닐까.
드러나야 할 두루마리의 속살은 반쪽이다. 안과 밖에 쓰여진 두루마리는 반은 보이고 반은 가려져 있다. 어린양은 적혀진 것의 반을 열어 보여 줄 것이다. 교부들은 두루마리 안쪽에 적힌 것을 구약 성경, 밖에 적힌 것을 신약 성경으로 이해했다. 구약의 하느님이 신약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계시된다는 것. 예수님은 그야말로 계시의 완성이라는 것. 그러나…, 두루마리에 적힌 것에 대한 호기심은 이야기의 주된 관심이 아닌 듯하다. 요한 묵시록은 두루마리의 내용에 대해선 침묵한다. 무엇이 적혔는지 알 수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묵시 5장은 어린양에 대한 서술만 가득하다.
어린양은 사자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메시아와 그 집안을 가리켰던 동물은 사자, 그야말로 힘센 사자였다. 힘센 사자가 곧장 어린 양으로 구체화되는 이야기 흐름은 당황스럽다. 마치 마르코 복음에서 메시아를 두고 제자들과 예수님의 이해가 전혀 다른 것처럼, 그리하여 수난받는 메시아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베드로가 ‘사탄’이 되고마는 것처럼, 사자와 어린양은 결코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되지! 그럼에도 사자와 어린양은 요한의 시선으로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복음의 기막힌 역설은 기어이 어린양과 사자의 간극을 메꾸고 지워 버린다.
힘 있는 사자가 힘없는 어린양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의 논리가 새롭고 신선하다. 더욱이 어린양은 밀림의 사자처럼 홀로 우뚝 선 채 자랑하지 않는다. 어린양은 오히려 ‘함께, 하나 된’ 채 더불어 존재한다. 어린양은 ‘한가운데’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말 번역은 어린양의 공간을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로 해석하지만, ‘사이’가 아니라, 한가운데’이다. 어린양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어좌에 앉으신 분과 지상의 하느님 백성인 스물 넷 원로, 어디든 계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을 가리키는 네 생물과 ‘하나의 공간’ 안에 함께한다. ‘한가운데’는 배타적 중심이 아니라 모든 공간을 수렴하는 ‘일치의 기준’이 된다. 특정 공간이나 지위를 어린양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해석하는 건, 역사의 배타적 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시공간 안에 친교의 장으로서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겪어 내는 일’이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저런 분이시다 고백하는 건 쉬운 일이나 이런 분도, 저런 분도 되신다는 사실을 겪는 건 때론 고통스럽다. ‘내가’ 찾아나서는 메시아가 뚜렷할수록 ‘우리의’ 메시아는 흐릿해질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는 정답은 분명히 이것이어야 하는데, 다른 정답은 허용될 수 없는데, 저렇게 달리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부끄럽거나 슬퍼질 수 있다. 나의 예수님은 사라지고 우리의 예수님이 남을 때, 그건 실은 나의 인식의 틀이 무너져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발굴하는 일’이 될 테니.
어린양을 통해 새로운 예수님을 ‘발굴하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살해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서 있는 어린양’은 대개 인간 역사를 살다가 죽고 부활한 예수님으로 해석해 버린다. ‘살해되다’는 동사와 ‘서 있다’라는 동사는 ‘완료형’ 분사형태로, 죽음과 부활은 특정 시간의 구체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지속적인 성질이라는 것. 죽음과 생명이 어린양이라는 형상 안에 온전히 하나로 흡수되어 지속되는 것이다. 요한 묵시록은 예수님을 두고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의 흔적을 제거한 채 부활의 승리를 가져 온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과 생명은 대립의 두 단어가 아니라 어린 양을 통하여 통합의 새 이미지로 그려진다. 물리칠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서 있어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님 안에 죽음은 생명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분사형태의 두 동사는 성과 관련해서 더욱 복잡한 문법적 구조를 지닌다. 그리스말은 남성, 여성, 중성의 형태로 나뉘어져 구성되는데, ‘살해된’이라는 동사는 남성분사로, 중성명사인 ‘어린양’과 문법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혹자는 어린양이 중성일지라도 ‘살해된’ 동사가 남성을 가리키는만큼 한 남자, 곧 예수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린양을 예수님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남는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는 동사는 ‘스타우로오’로 요한 묵시록은 11장의 두 증인 이야기에서 이 동사를 사용한다. 요한 묵시록은 예수님의 역사적 죽음을 정확히 알고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묵시 5장의 어린양의 죽음을 가리키는 동사는 ‘스파조’로, 목을 잘라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가 사용된다. 목이 잘려 죽어 간 많은 순교자들, 그들의 피는 곧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섞여 구원의 생수가 되지 않을까.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는 실은 많은 신앙의 증거로 피가 끓어오르는 생명의 자리가 아닐까. 어린양은 예수님을 증언한 신앙인의 숱한 죽음 위에 새롭게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어린양의 형상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역사의 예수를 찾다가 지금 수많은 예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대개의 성서 신학이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느님의 역사성에 집중하여 해석하는 데 골몰하다가 지금 우리 삶에서 무수히 벌어지는 하느님의 일들엔 무지하거나 소홀한 것은 아닌지. 갈수록 신학과 신앙의 운동장에 뛰어놀 선수가 사라져 가는데도 신학과 신앙은 교문을 굳건히 닫아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한 묵시록의 어린양은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의 결정체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한 어린양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반복하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되었다. 상상이 현실을 깨우고 흔들어 댈 때, 신학과 신앙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예수님이 죽어간 흔적을 꼭 보아야겠다는 토마스의 의심이 예수님을 참된 주님으로 고백하게 한다. 빤한 믿음보다 설레는 믿음이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의심하고 상상하면 어떨까. 어린양을 읽으면서 저 옛날의 예수님이 오늘 다시 새롭게 살아 계시길, 그리하여 어린양이 서 있는 한, 우리의 믿음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 늘 새로움에 설레고 목마르길 바랄 뿐이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7)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친교로 일치돼야
코린토는 고대 헬라스의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기원전 146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기원전 44년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로 재건된 로마 제국의 식민 도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50~52년) 때 코린토에서 18개월간 머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며 교회를 세웁니다.(사도 18,1-17) 앞서 바오로 사도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필리피와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웠으나, 유다인들의 선동으로 황급히 그곳을 떠나 베로이아를 거쳐 아테네로 갔습니다. 그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티모테오를 보내고 자신은 코린토로 떠났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머물 당시 코린토는 국제 상업 중심지로 다민족·다종교가 섞여 있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문란한 성(性) 풍속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의 집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마다 시나고그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테살로니카 교회 소식을 갖고 오자 티티우스 유스투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는 스테파나스 집안 사람들입니다.(1코린 16,15)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의 고발로 아카이아 지방 총독 갈리오의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를 떠나 에페소와 카이사리아·예루살렘을 거쳐 처음 선교 여행을 떠났던 안티오키아로 돌아갑니다.(사도 18,11-22)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53~58년) 때 코린토 가이오스 집에 머물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썼습니다.(로마 16,22-23; 1코린 1,14-15)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서간은 신약 성경 정경에 두 권만 수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았다는 게 성경학자들의 일반 견해입니다. 일례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코린토 1서) 5장 9-13절의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훈계는 코린토 1서 이전에 쓴 편지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을 ‘경전전(經典前) 서간’이라고 합니다. 또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도 서로 다른 두 통의 서간이 한 권으로 묶인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봅니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적어도 4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 때 에페소에 27개월간 머뭅니다.(사도 19,1-22; 20,31; 1코린 16,8-9) 이때를 대략 52년 중반부터 55년 후반까지로 추정합니다. 사도는 코린토 교회가 여러 계파로 분열됐고, 그리스도인 일부가 문란한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례와 교리, 특히 ‘부활’에 관한 논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혼란을 해결하고 ‘사랑’으로 일치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씁니다. 이 서간이 바로 코린토 1서입니다.
‘경전전 서간’을 고려하면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 선교 활동 초기에 코린토 1서가 작성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에페소를 떠나기 얼마 전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코린토 1서를 쓴 후에도 코린토 교회와 에페소에 있던 바오로 사도 사이에 여러 교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순절까지는 에페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16,8)라는 내용을 보면 ‘봄’에 쓴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바오로 사도가 54년 봄 또는 55년 봄에 코린토 1서를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Κορινθιουs Α’(프로스 코린티우스 알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Corinthios 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라 표기합니다.
코린토 1서는 16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공동체 안에서 빚어지는 분열에 대한 해답’(1─6장)과 ‘공동체의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7─16장)으로 구분됩니다. 사도는 바오로 편·아폴로 편·케파 편·그리스도 편으로 분열된 코린토 신자들에게 ‘일치’를 강권합니다.
사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에 공동체의 분열과 파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1,10-17)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을 부각해 믿는 이들은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된다고 일깨웁니다.(1,18-2,16) 아울러 복음 선포자와 신자 모두 하느님께 속하기에 주제 넘게 처신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3-4장)
바오로 사도는 근친상간과 불륜 등 신자들의 윤리 도덕 폐해를 듣고 음란한 자와 사귀지 말라고 명합니다.(5,1-13) 그리고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더라도 이교도 법정에 고소하려 하지 말고 평화롭게 해결하라고 당부합니다.(6,1-11)
바오로 사도는 또 결혼과 독신에 관해 하느님께 받은 각자의 은사대로 살기를 권고합니다.(7장)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해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하거나 소심한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설명합니다.(8-10장) 사도는 또 전례와 신앙생활에 있어 남녀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11,1-6)와 성찬례를 엄숙하게 거행할 것(11,17-34)을 알려줍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친교로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2-14장) 끝으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의 근원이며 복음 선포의 토대이고, 죽은 이들의 부활의 원동력이며 인간 구원의 완성이라고 가르칩니다.(15장)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목숨을 걸고 정의를 외쳤던 아모스
목숨을 걸고 정의를 외쳤던 아모스
중세 영국의 비인간화를 비판한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대법관이었다. 이미 왕비를 6명이나 폐위시키고 대부분 처형시키는 불의한 군주였던 헨리 8세가 다시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와 결혼하려고 하자 토마스 모어는 국왕이라도 국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며 결국 대법관직을 사직했다. 헨리 8세는 믿었던 토마스 모어를 런던탑에 가두었고 결국 반역죄로 몰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이때 단두대에서 했던 토마스 모어의 말이 영국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평소 유머를 즐겨하던 토마스 모어는 관리에게 “목은 잘리더라도 죄 없는 수염은 다치지 않게 해주게”하며 여유를 보였다. 그는 죽기 전 시편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54,4)를 마지막 기도로 바치며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토마스 모어의 정의와 용기는 지금도 영국인들의 기억과 그들의 삶 속에 살아있다.
트코아의 목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모스는 어느 날 이스라엘이 몰락하는 환시를 보았다. 이스라엘의 전 지역이 망하고 불바다가 되어 백성들은 곤욕을 치르고 임금과 관리들은 포로로 잡혀간다는 내용이었다. 하느님은 아모스에게 자신의 말을 백성에게 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아모스는 평생 양을 치고 나무를 가꿔서 먹고사는 무식하고 능력도 없는 일개 농부의 말을 누가 귀담아듣겠냐며 부르심을 거절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아모스에게 당신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어 달라며 계속 설득했다.
아모스는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아모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해질수록 정신은 타락하여 사회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지도자나 백성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특히 지도자들은 술과 여자에 빠져 흥청거리며 정치는 뒷전이었다. 사회의 지도층이 썩고 부패하자 물질주의의 나쁜 물이 종교에도 물들어 갔다. 물질의 풍요가 극성을 부려 지도층이 부패할수록 일반 서민들은 더 착취당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힘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서민들을 착취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당시의 이스라엘의 위선과 잘못에 대해 엄하게 고발했다. 종교도 예외가 없었다. 이런 아모스의 예언은 당시의 지도층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사제들은 아모스를 몰아내기 위해 모함과 공격을 감행한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아첨은 지도자에게 우선 듣기는 좋지만 결국 모두 파멸과 멸망으로 이끈다. 어떤 공격과 모함에도 아모스는 당당했다.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야말로 참된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목숨을 걸고 특별히 정의를 강조했다. 아모스같은 예언자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인재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높고 우뚝한 산
오늘의 제1독서 에제 17,22-24에서는, 주님께서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시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가 맺히며 그 가지 그늘에 새와 들짐승이 깃들이리라고 전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않은 죄로 주권을 상실하게 되지만(기원전 6세기), 죗값을 치르고서 회개하면 과거보다 더 눈부시게 회복하리라는 희망의 예고였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실의 궁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는 죗값을 치르는 과정일 뿐 종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신탁에서는 오히려 이런 징벌과 회복을 통해 세상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세상 만민, 곧 “들의 모든 나무”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무력하여 그 백성들이 유배 간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은 다윗 후손을 상징합니다. 예부터 나무는 왕실과 수장의 상징이었습니다(이사 11,1 등). 1열왕 7,1-3에 따르면, 다윗 왕실은 향백나무로 궁전을 지었기에 향백나무는 왕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예레 22,15). 더 구체적으로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은 제1차 바빌론 유배 때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을 회복시켜 이스라엘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다시 심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고 우뚝한”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은 예루살렘을 암시합니다(시편 48,2-3; 이사 66,20 등). 예루살렘의 고도는 해발 700-750미터로 이스라엘에서 높은 산지에 속합니다. 이러한 구원과 회복의 예고를 통해, 하느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2사무 7,16; 23,5)을 잊으신 탓에 재앙이 닥친 게 아님을 또한 알려줍니다(시편 89,21-34).
다만 레바논에서 자라는 침엽수 향백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신탁에서는 하느님께서 심으시면 향백나무에도 열매가 맺히는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예고합니다. 이에 대해 옛 유다 전승은 아담과 하와 시대에는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었다고 전합니다. 에제 31,8에 따르면 향백나무는 에덴 동산에서 자란 나무이지만, 원조들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받자(창세 3,17) 생산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창세기 랍바』 5,9). 그러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제2의 종살이, 곧 바빌론 유배에서 구하시는 날, 이스라엘 땅은 에덴 동산처럼 풍요로워지고(에제 36,35)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는 기적을 보여줄 것입니다. 또한 향백나무에 새와 들짐승이 깃들이리라는 말씀으로 다윗 왕실의 번영을 예고하는데요, 성경에서 새와 들짐승은 이민족을 상징하는 소재입니다. 시편 104,16-17에서는 주님의 나무들,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표현으로 세상 만민에게 퍼져나가는 하느님의 은총을 비유합니다. 세상 곳곳에 스며드는 하느님의 사랑은 이제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행보에서 실현됩니다. 예루살렘에 자리한 “높고 우뚝한” 시온산에서는 에제키엘서에 예고된 이런 사랑의 역사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아니, 왜?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하는 거지?’ 예수님께서 갑자기 당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당신이 겪게 될 수난과 죽음을 제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갈릴래아 주변에서 퍼져나가는 스승님의 명성을 생각할 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최근 몇몇 율법 학자들과 헤로데 당원들과 마찰을 빚으셨지만, 그 때문에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지나친 비약으로만 들립니다. 괜한 공명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며 스승님의 말씀에 흥분을 감추지 않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하는데!
엿새가 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십니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너무나 놀란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런데 더 말문을 막히게 만든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누굴까? 이야기를 들으며 그 두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거룩한 조상이며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순간인가! 율법과 예언서를 아우르는 두 분과 함께 우리 스승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9,5) 베드로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심지어 초막 셋을 지어 스승님과 모세, 엘리야를 모시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내뱉습니다. 그때,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그들을 덮더니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납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만 그들 곁에 남아계셨습니다.
잠시 꿈을 꾼 것일까? 이토록 황홀한 순간이 왜 펼쳐진 것일까? 마르코는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자세한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활동을 드러내는 구름이 그들을 덮고 성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밝혀주신 이 사건은 분명 제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을 때, 부활의 빛 안에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신 것인지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죽음으로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부활의 기쁨에 취해 초막을 짓고 안주하려는 나약함을 보이지 말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살고 그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제자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