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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시작
성경본문: 시편 100: 1-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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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아마,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여러 가지 준비에 시달린 분들에게는 많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고,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분들에게는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겠지요.
아마 이런 긴 휴식은 좀처럼 오기 힘든 일이기도 하여서, 추석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달력을 꺼내들고 긴 연휴가 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소란스럽기도 하고 분주했던 시간이 다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추석에 즈음해서 최영미 시인이 한 신문에 기고 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좀처럼 추석의 분위기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아버지와의 불화가 한 몫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아버지는 쓰러지셔서 요양원에 계시고, 약해진 어머니를 도와서 추석을 준비하고 찾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일이 참으로 익숙해지고, 자기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글은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엔 최영미 시인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그녀가 지난 1994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그녀가 펴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였는데, 그 제목을 보면서 아니 서른 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인생을 살아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저도 30대의 중반을 넘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그녀가 시간이 한 20년 쯤 지나서... 이번에는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가 말할 때,“아... 이제는 삶과 세상에 대해서 좀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구나... 이제는 정말 꽃다운 나이는 다 지나가고... 50대 접어든 나이인데... 지금이야말로 정말 즐겁고 풍성한 잔치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지고 삶에 대한 기대감이나 호기심도 점점 더 사라져버리는 오늘...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뭐 그렇게 좋은 것이 있겠나? 뭐 그렇게 새로운 것이 있겠나? 이렇게 단정해 버리고 말게 되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바로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라고 말해야할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들에게 그런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고, 새로운 일이라는 것, 감동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인생을 살고 있지만... 감동을 말할 수 있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새로움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잔치가 다 끝나버리고 모든 뜨거웠던 것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오늘 속에서 다시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우리는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 찾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는 삶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이가 어떠하든지, 사는 형편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세상을 살면서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산다면... 잃어버렸던 기쁨과 감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우리의 축제는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특별히 예배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찬양대가 번갈아가며 부르도록 만든 노래가 오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향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앞부분입니다.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성전에 미리 자리하고 있던 찬양대가 뒷부분을 부릅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이렇게 화답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음미해보면 거기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져 있음을 느낍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가는 이들을 위한 이 시에서 중요한 두 가지 감정은 다름 아닌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엄청난 확신과 열정으로 이런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1-3까지의 주제가 기쁨이고 4-5까지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그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내가 정말 기쁜가? 성경에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으니... 기쁜 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억지로 웃거나 기쁜 척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는 자기에게서 솟아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오죽 하면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표현할 수 없는 땅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와 함께 기뻐하자... 너희들도 한 번 환호성을 울리며 기쁨을 좀 표현해 보아라...’ 땅들이 그냥 아무런 표현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인 것이지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울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거라...’(v.2)
옆에 있는 사람이 보면 좀 정신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엄숙한 성전에 들어가면서 좀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갖추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가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만큼 기쁘고 좋은 것이지요.
도무지 마음속에 감추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기쁨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런 기쁨이 아닐까요?
획연히 내게 다가오는 그런 기쁨 말이지요.
“나를 도저히 잠잠하게 할 수 없는... 너무나 기쁘고 좋은 나머지 그것을 자꾸만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심지어는 말없이 있는 땅과 온 세상을 향하여서도 큰 소리를 지르며 나의 기쁨을 표현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그런 기쁨 말이지요. 이러한 기쁨이 우리들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까요?
왜 그 사람은 기쁜 것이지요. 무엇 때문에 감당하기가 어려울 만큼 기쁠까요?
그는 3절에서 자기가 이렇게 기뻐할 수밖에는 없는 까닭을 설명합니다.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기쁨의 이유를 하나님께로부터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언제 기쁜가요?
물론 소소하게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기대해야할 기쁨이 있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한 신앙인은 그 기쁨을 차분한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시4:7) 세상의 어떤 기쁨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에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고백이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란 나의 삶이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는 것... 나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보화처럼 소중히 여기고 계시다는 것... 이러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에 내 마음 속에 찾아오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 중에서 특별히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러한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이 말은 ‘내가 한 것은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렇게도 읽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 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 살았던 옛날 유대의 신앙인들이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기쁨의 이유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는 것... 지금도 나의 삶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로 이어져 있다는 것... 비록 내가 이 세상에서는 작고 평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주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고 계시다는 것...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것... 살면서 성취하고 누리는 모든 것...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그것은 또한 감사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후반부에 나오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향하여 찬양대가 불러주는 축복의 노래 속에 담겨 있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v.4)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이런 표현이 거듭해서 나옵니다.
순례자들이 하나님의 전의 뜰을 밟으며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들어갈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은 다름 아닌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이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드려라 하는 찬양을 들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온갖 세상에 대한 염려들... 또한 살면서 마음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좋지 않은 생각들... 이런 것들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올라오면서도 그다지 기쁘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 속에서 잊고 있던 감사의 마음이 조금씩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 “그래 맞아... 내겐 감사할 이유가 더 많은 거야... 이렇게 다시 하나님의 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사할일들이 서서히 빈 마음을 채워갈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할 신앙의 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고백일 수도 있겠지요.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이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v.5)
우리가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영원한 감사의 주제!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참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는 오로지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사랑을 <헷세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설혹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에라도 일관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변함없는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십니다.
결코 우리의 믿음을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바로 5절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게 되는 소중한 이유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영원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오늘 우리들에게 아주 확신에 차고 흥분된 어조로 선포합니다.
우리들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한 관계를 알게 될 때... 우리의 내면은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게다가 항상 선하시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될 때에 우리의 내면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내면이 항상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풍성하게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넘칠 때, 우리의 축제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우리에게 기쁨이 생겨나고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축제가 될 때, 우리의 일상에서도 축제와 같은 삶은 시작될 것입니다.
시편 100편은 참 짧고 단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그 내면에 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그 마음에 있는 사람... 그는 누구보다도 힘차고 당당하게, 누구보다도 부요하게, 누구보다도 풍성하고 행복하게... 비록 힘들고 고달픈 현실을 살더라도, 마치 축제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신비이고 소중한 특권입니다.
언제나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