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채 가시지 않았다. 커튼을 젖히니 어슴푸레 창문에 빗방울이 촘촘히 맺혀있다. 어제의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밤새 오락가락 비가 내린 게다. 궂은 날씨 탓인지 새벽이 길다. 어둠이 덜 깬 침침한 시각 예약된 시간을 맞추려 길을 나선다.
달리는 버스 앞창에 세찬 빗살이 부딪치며 물방울을 뿌려댄다. 경계를 이루면 마주 오는 차량의 강렬한 라이트에 맺힌 물방울이 핸들의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교차하며 영롱한 빛을 발한다. 잠이 들깬 눈으로 바라보는 이른 아침, 찬란한 빛이 경이롭고 몽환적이다. 마치 물방울 그림을 관람하려고 가는 차 안에 본 환상적인 풍경이다.
아들 그림 전시회를 마친 여운을 연계하듯, 지난해 타계한 유명 화가의 그림을 관람하러 떠나온 길이다. 출발할 때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세차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선다. 비를 맞는 낮은 현무암 검은 돌담이 사철 푸른 나무와 어우러져 싱그러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휘어진 좁은 숲길이 고즈넉하다. 무성한 비자나무 잎에 모인 빗물이 툭툭 떨어진다. 찰나의 순간, 깨어져 존재할 수 없는 물방울. 그 물방울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그려놓은 화가. 그의 그림을 마주하러 떠나온 길이다.
아주 오래전이다. 남편은 밑칠도 하지 않은 거친 마대에 영롱한 빛을 발하는 물방울 하나를 그린 김창열 그림 도록을 유심하게 보았다. 무엇보다 추상화를 그리던 화가가 극사실적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감동했다. 쉽지 않은 변화라고도 했다. 그때부터다. 나도 물방울 그림에 관심을 두었다. 그림에 이해도 해독도 부족한 나는 추상 그림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감상하기에 편하고 좋았다. 가끔은 전시장에서 한두 점 물방울 그림을 관람하긴 했다. 그려진 그림이 그림자까지 초롱초롱 빛을 발한다. 물방울을 실물처럼 세밀하게 표현한 화가의 능력이 신기했다.
그렇게 감질나게 보았던 그림을 집중적으로 관람하고 싶었다. 떠나기 전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관람을 예약했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보는 미술관 건물이 아니다. 검은 현무암으로 건축한 사각형 미술관은 이국적이다. 입구에는 물방울을 상징하는 조형 작품이 놓여있다. 조형물은 모든 것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듯 주위의 풍경을 오롯이 담고 있다. 나도 스며들듯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김창열이 기증한 220점은 3개월마다 전시작품이 교체된다고 한다. 이번에는 작가의 평생을 철학으로 삼아온 ‘회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300호 그림은 천자문에 물방울을 배치하는 구도로 그려졌다. 구슬처럼 동그란 물방울이 광채를 발한다. 자세히 보니 똑같은 모양의 물방울이 아니다. 형태가 찌그러졌거나 타원형으로, 또는 물방울이 머물렀다 흘러내렸던 자리가 젖어 눅눅해진 얼룩까지 표현했다. 막 뿌려놓은 듯한 물방울이 조롱조롱 맺혀있다. 작품은 대체로 대작들이다. 푸른빛과 빨갛고 노란, 초록빛을 띤 물방울이 한자나 낡은 신문지 위에도 그려졌다.
물방울에 되비친 글자가 볼록한 돋보기처럼 확대되어 선명하다. 백호, 이백 호, 삼백 호의 거대한 캔버스에 수많은 물방울이 각자의 모양으로 또는 다른 빛으로 다채롭다. 노구에 저 많은 물방울 형태 하나하나를 표현하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림그리기에 빠져 육신의 고통마저 느끼지 못했을까. 생생하고 또렷한 물방울은 훅 입김을 불면 금방이라도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맑고 투명한 물방울은 주변의 모든 것을 다 투영한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 못나고 허물어진 모습까지 받아들인다. 어떤 것이라도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다독여주는 포근한 사람처럼. 그 품속으로 들어가면 정갈해지고 맑아져 곱고 찬란한 빛으로 반영된다.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 따사롭고 밝은 빛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앞만 챙기느라 둘러보지 못한 지난 내 사유를 유추해 보지만 온통 회색 진 그늘뿐인 것을.
김창열 화가가 ‘회귀回歸’를 철학으로 삼아온 의미를 느끼게 한다. 물방울에 비친 빛과 그림자는 화가가 쏟아부은 예술의 특성이 고스란히 붓질 되어있다. 화가 역시 누구와 다르지 않았다. 강물에서 물장구치면 놀았던 어린 시절, 전쟁의 고통, 돌아가고 싶은 고향.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그리움까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모든 것이 표현되어있다. 그렇게 그려진 물방울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보다 더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술관에는 어느 하나라도 물방울과 무관한 것은 없다. 중정 작은 호수 한가운데는 3개의 물방울 유리 조형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빛이 달리하는 방향에 따라 오묘한 색을 발한다.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분수도 다르다. 자잘한 수많은 물구슬을 하늘 높이 튕겨 올린다. 치솟는 물구슬은 잠시 광채를 발하고 작은 호수에 떨어져 본래의 물로 돌아간다.
그림은 화가가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수없이 쏟아낸 눈물처럼 보인다. 영롱한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지난해 화가는 물방울만 그리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다시 땅으로 내려 강물로 흐르듯, 화가의 모든 생이 회귀되어 독특한 사각형 미술관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미술관을 나선다. 잠시 내린다던 예보와 달리 온종일 내리는 빗줄기가 거세다. 비를 맞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나뭇잎이 눈물처럼 주르르 물방울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