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도서출판 b에서 ‘줄탁동시’라는 이름의 동시집 시리즈를 마련했다. 줄탁동시(啐啄童詩)라는 말에는 ‘어린이가 선생님, 부모님과 함께 읽는 동시’라는 뜻이 담겼다. 알 껍질 안쪽에서 쪼아대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어미 닭이 알 껍질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어린이가 시를 읽기 시작하며 넓은 세상을 만나고자 할 때, 알 껍질의 안팎에서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쪼듯이 함께 힘을 보태자는 마음이 담겼다.
곽해룡 시인의 동시집 『뿔』이 첫 번째 알을 깨고 나왔다. 시인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언제 뿔이 돋아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뿔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물어보기 위함이라는 이유도 말이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고, 조금 더 궁금해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생각의 뿔들이 아이들을 더 단단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을 믿는 시인이다.
시집의 구성도 눈에 띈다. 1부와 2부의 시는 열 편이 넘는데 3부는 네 편밖에 안 된다. 4부는 하물며 스무 편이 넘는데, 5부는 달랑 다섯 편이다. 왜 그랬는지 시인에게 물어봤다. 독자들도 궁금하겠지만 말하지 않겠다. 궁금하면? 오백 원. (시인의 의도를 찾아가는 것도 시 읽기의 큰 즐거움일 테니까.)
첫 시가 「뿔」이다. “거울을 본 적 없는 어린 송아지는 / 어미 소처럼 자기 머리에 / 힘센 뿔이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근사한 뿔을 믿고 겁 없는 송아지들이”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뿔질을 해대는 거다. 이 어린 송아지가 조금 삐딱하게 바라본 사물들,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기억들, 길에서 마주친 생명들에게 말을 건넨다. “왜 그래?”
시인은 사랑스러운 어린 뿔들을 “저금통”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동전 하나 넣으면 / 넣은 만큼만 쌓이는 그런 저금통 아”니라 “온몸이 투입구여서 / 세상 모든 걸 받아 들이”고 종국에는 “세상보다 내가 더 커지는”(「저금통」) 저금통이란다. 이렇게 상큼하고 감각적인 시선이 시집 곳곳에 숨어 있다. 어느 구석에 가면 쿰쿰하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고 따습기도 한 시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시집에는 그림을 넣지 않았다. 시인은 그림이 없는 동시집이라는 작은 형식을 고집했다. 시를 읽는 일은 글자 사이에 숨은 풍경을 독자 스스로 그려 보는 일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좋은 글과 좋은 그림이 만나 더 큰 울림을 주는 동시집이 많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좋은 그림 ‘자리에’ 독자의 수많은 ‘다른 풍경’이 들어서길 원했다. 이 시집에는 마침표도 없다. 일부러 생략했거나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는 시인의 의지이다.
목차
ㅣ여는 글ㅣ 뿔이 돋는 순간·5
1부 나는 조금 삐딱한 사물
뿔·13 빨래집게·14 내 손이 더·15
낙서·16 저금통·18 삼각김밥·20
바람개비·22 보물찾기·23 말도 상한다·24
악수·26 깡통·27 도어락·28
에어쇼·30 운동화 주인·32 뒷짐·34
2부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물들
겨울 유리창·37 빨래·38 연못 보육원·40
날개옷·42 장례식·43 꽃밭 목욕탕·44
지팡이·46 치매·47 고모의 유언·48
천국에 오신 할머니·50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52
늦은 초대·54 꼬부랑 할머니·55
3부 착한 척 연습
수업 시작·59 하늘 글쓰기 수업·60
운동회·62 벚나무 신호등·63
4부 길에서 마주친 사물들
달밤·67 염소·68 나비·69
푸른 교향곡·70 꽃상추·72 물안개·73
칼치·74 보리·76 고등어·77
바다·78 병아리·80 양파·81
펭귄·82 올챙이·83 자벌레·84
딸기의 꿈·85 민들레꽃·86 초승달·87
민둥산 억새·88 물고기·89 산개구리·90
거울 속에 사는새·92 숭어가 뛰는 저녁·93
5부 쓸데없는 생각이 소중해
황금 똥을 누는 소·97 지하철에서·98 전복·101
죽은 별·102 벼랑에서 자란 소나무·104
ㅣ시인의 노트ㅣ 작은 형식에 대하여·107
책 속으로
빨래집게는
입이 하나
손가락이 두 개
서로 자기가 에이스라고
손가락을 눕혀
‘A’ 자를 그리고 있다가
젖은 옷을 물려주면
손가락을 세워
‘V’ 자를 그린다
--- 「빨래집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방 물기가 모두
유리창에 모여 있네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
물은
추운 곳으로도 흐르네
--- 「겨울 유리창」
구멍 숭숭 나고
그을린
용접공 아버지 작업복 같은
껍질
안쪽엔
열두 가지 빛
오늘도
바닥을 기지만
가슴속엔
무지개
--- 「전복」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이 시들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뿔 하나를 돋게 한다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고,
조금 더 궁금해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생각의 뿔 말입니다.
그 작은 뿔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2026년 봄
뿔 달린 시인 곽해룡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85714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