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위의 무게를 지고 세계 정상을 향해딱…딱…딱, 쌍문동의 새벽을 깨우는 청량한 울림. 바로 얼마 전 종영된 <응답하라1988> 최택 6단의 방에서 매일처럼 들려오던 바둑돌 소리다. 실제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속 최택 6단은 1988년도를 주름잡으며 ‘바둑의 신’으로 통했다.
그렇다. 한국바둑에는 언제나 수호신이 존재했다. 수백 년 바둑역사를 자랑하는 일본과 ‘1억’ 바둑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틈새에 낀 한국이 수십 년간 바둑 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로 이어지는 ‘1인자’ 계보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덕선(혜리)이네가 이사 간 판교가 빌딩숲 신도시로 천지개벽하고 중국이 야심차게 키워온 약관의 어린 바둑고수들이 세계를 넘보고 있는 오늘날, 2016년판 ‘바둑의 신’은 누구일까?
위기마다 한국을 지켜온 천재(天才)의 계보. 선대(先代) 이세돌 9단에게서 물려받은 한국랭킹 1위의 자리를 장장 26개월간 이어가고 있는 ‘4대 수호신’ 박정환 9단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평범한’ 어린 시절이란
어서 오세요. 날씨가 많이 춥죠?“네, 많이 춥네요”
박정환 9단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한국기원 4층 본선대국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곳은 <응답하라1988>에서 최택 6단이 열연했던 곳으로 실제 국내 주요 시합들이 벌어지는 장소다. 입고 온 점퍼를 주섬주섬 어색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최택 6단을 꼭 빼닮았다.
오늘은 양복을 입지 않으셨네요?“평소엔 캐주얼하게 입는 걸 좋아해요. 양복은 시합 때 워낙 자주 입어서. 추리닝 같이 편한 옷도 즐겨 입어요.”
2015 바둑대상 MVP를 수상한 박정환 9단 (사진 : 한국기원) |
최우수상, 다승상, 승률상, 연승상 등 2015년 상이란 상은 다 쓸어가셨는데 소감을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과분한 상을 많이 받아서 영광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5년은 아쉬움이 남는 한해 같아요. 큰 세계대회에서 중도 탈락한 게 아파서. 올해는 잘 하겠죠(웃음).”
요즘 <응답하라1988>의 최택 6단이 인기를 끌면서 바둑의 인기가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현역 최고의 기사로서 최택이란 캐릭터에 공감이 가셨는지 궁금합니다.“저도 너무 재밌게 본 드라마인데, 최택 6단은 정말 놀랍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바둑 하는 사람을 잘 표현하셨는지… 보면서 저랑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저도 바둑 말고는 딱히 잘 하는 게 없거든요(웃음). 주로 제 방에서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동네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건 부러웠어요. 어렸을 때 바둑만 하느라 학교생활을 못해서 친구가 많지 않거든요. 아마 바둑 하는 사람들은 많이 공감할 거예요.”
듣다 보니까 박9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는데요.“하하, 그냥 평범한데…”
여기서 독자 분들이 감안해야 할 게 있다. 대개 바둑 9단은 엄살도 9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흔히 하는 말로 “운이 좋았다” “…잘 모르겠다” “별 게 없다” 등이 있는데 일반적인 의미와 사뭇 다른 경우가 많다. 하나 예를 들자면 “(90%정도는 알지만 10%의 변수가 있으니)잘 모르겠다” 정도의 번역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럼 박정환 9단의 평범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정환 9단이 바둑에 입문하게 된 것은 6살 무렵. 바둑을 좋아하는 작은 아버지가 대국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흥미가 생겼다고 한다. 때마침 집 주변에 바둑학원이 생겼고 바둑에 푹 빠져 지낸 그는 1년 뒤 권갑룡 바둑도장에 입문해 본격적으로 바둑을 시작하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바둑도장은 대략 ‘프로입시학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보통 5년 정도 공부해 실력이 궤도에 오른 수재(秀才)들이 프로의 길을 결심하고 가는 곳인데, 박정환은 불과 7살의 나이로 최고의 명문(名聞)으로 손꼽히는 권갑룡 도장에 입문한 것이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에 입시학원에 들어간 박정환은 형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권갑룡 바둑도장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크고 작은 어린이대회에 입상하며 마냥 즐겁게 바둑을 두던 그는 3학년 때 바둑사관학교 격인 한국기원 연구생에 선발됐다.
참고로 얼마 전 입단대회를 통과한 이어덕둥 初단은 인터뷰에서 “나도 나름 기재(棋才)가 있는 편이었는지 6학년 때 연구생에 들어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박정환은 4학년이 되자 연구생 최고그룹인 1조 리그에 올라섰다. 당시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1조 그룹 멤버 중 초등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2005년 응씨배 결승을 치른 최철한 9단의 무릎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는 박정환 9단(당시 아마추어) (사진 : 사이버오로) |
혹시 그때 저랑 뒀던 것 기억나요?“(수줍어하며)네, 얼핏”
저에게 큰 굴욕을 안겨주셨는데….“(머리를 긁적이며)죄송합니다”
사실 필자는 박정환 9단과 인연이 있다. 필자도 한때 프로지망생이었는데 번번이 입단대회에서 낙방을 했고 어느덧 19살이 되어 연구생 최고참이 됐다. 함께 승부를 겨뤘던 동료들이 하나 둘 프로가 되어 곁을 떠나자 점점 초조해지던 어느 날, 같은 조에 웬 4학년 꼬맹이(?)가 합류하게 됐다.
당시 8살 어린 까마득한 후배와 승부를 겨룬다는 것은 필자로선 참 떨떠름한 일이었다. 주위에선 연구생 역대 최고 연령차 ‘빅매치’라며 떠들어댔다. 그래도 설마 초등학생에게 질까 하는 생각으로 바둑판을 마주했는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고등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이 한 책상에서 정해진 시간에 동일한 문제를 두고 겨룬다 생각해보자. 이제 갓 고사리 손을 벗어난 11살 초등학생이 그것도 상위 10% 안에 드는 19살 고등학생을 이긴다는 게 상상이 되는가?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든 ‘괴물 초등생’ 박정환은 나날이 더 강해져갔고, 3년 뒤 만 13세 나이로 프로가 됐다, 그리고 이은 다음 한마디가 더욱 필자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추기 위해선 얼마나 바둑공부를 해야 되나요?
“사실 어렸을 땐 공부를 아예 안 했어요. 그 나이 땐 그냥 놀고만 있어도 실력이 늘잖아요. 어렸을 땐 그냥 바둑 두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입단 후 프로세계를 경험해보니 세상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공부라는 건 철이 들고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
세상은 넓고 ‘넘사벽’이란 실제로 존재하는가 보다. 필자의 완벽한 ‘KO’패다.
기승전 ‘겸손’
현재 26개월 연속 한국랭킹 1위 자리를 ‘철옹성’처럼 지키고 계신데요. 이제 한 달만 더 1위 자리를 방어하면 이세돌 9단이 세운 27개월과 타이기록이 된다는 것 아시는지?“네, 안 그래도 랭킹 1위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단 다짐을 하곤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아직까지 바둑팬들이 가슴속에 ‘1인자’ 각인돼 있는 이세돌 9단과 며칠 전 2개의 타이틀을 두고 연이어 격돌해 화제가 됐었는데요.“이세돌 9단은 제가 많이 배워야 할 분입니다. 세계를 호령하셨던 분에게 랭킹은 무의미한 것 같고요. 타이틀전 당시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실력적으로 아직은 따라가야 할 부분이 많지요.”
막상 KBS바둑왕전은 “장군” 명인전에서는 “멍군”의 일진일퇴 양상을 보였는데요?“내용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우승한 KBS바둑왕전에서도 결승1국은 꽤 좋은 바둑을 놓쳤거든요. 준우승한 명인전은 전 판이 다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특히 결승4국은 초반부터 내내 우세한 바둑을 한 번 실수로 페이스가 무너져버려서…. 이번 승부를 통해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올 1월 들어 박정환 9단은 이세돌 9단과 두 개의 타이틀을 놓고 잇달아 격돌했다. 사진은 KBS바둑왕전 결승3국 복기장면 (사진 : 한국기원) |
도무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겸손의 향연. 이것이 박정환 9단의 ‘절대방어’ 화술이다. 무슨 질문을 해도 ‘기승전겸’이다. 2년이 넘도록 랭킹1위를 수성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와의 인터뷰에서 ‘일탈’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치 태극권처럼, 짓궂게 질문하면 더 자세를 낮춰 상대를 당혹케 만든다.
이런 방어술은 흡사 그의 기풍(棋風)과도 흡사한데, 박정환의 바둑은 강한 공격에는 유연하게 대응하다 카운터를 노리는 아웃복서와 같고 견고한 방어를 펼치는 상대에게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급소를 찔러가기도 한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성향은 없지만 어떤 상대에게도 약점을 보이지 않아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의 바둑을 두고 ‘무결점’이라 불렀다.
‘한국랭킹 1위’라는 왕관의 무게
그럼 세계대회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국내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박정환 9단이지만 세계대회에선 유독 약하다는 평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세계대회 성적이 국내만 못한 게 사실이라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랭킹1위로서 세계대회에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난해는 마음처럼 잘 풀리질 않아서….
부담감이 큰가 보군요.“네. 언젠가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맴돌기도 하고. 부담을 떨치기가 쉽지 않아요.”
인터넷 댓글도 승부에 영향을 미치나요? “신경 안 쓰려고 노력 하는데 아무래도 눈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중요한 바둑을 졌을 때 ‘악플’을 보게 되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해요. 정말 노력해도 잘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굳이 패배를 곱씹게 되는 말보다 응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죠. 슬럼프 때는 빨리 잊는 게 약이예요.”
박정환 9단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혼성 연기, 남자바둑단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사진 : 연합뉴스) |
17세 나이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를 따고 다음해 일본이 주최하는 세계대회 후지쓰배에서 우승, 2015년에도 LG배를 우승하는 등 그렇게 부족한 성적은 아닌데요.“제가 한국랭킹 1위 자리에 올라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워낙 뛰어난 선배님들이 거쳐 가신 자리라… 지금 제 성적으로 만족을 드리긴 어렵지 싶어요. 극복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죠.”
그의 커리어가 부족한 게 아니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한국랭킹 1위를 거처간 선배들의 업적이 너무 화려한 게 문제다. 세 선배기사가 획득한 타이틀의 수의 합은 무려 347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한 천재 3명이 동시대 태어나 빗자루로 낙엽 쓸어 담듯 국내외 타이틀을 휩쓴 탓에 후계자 격인 박정환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4형제 중 3명의 형이 하버드에 들어간 상황에서 고3이 된 넷째의 심정이랄까.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부모님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넷째가 받을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바둑계에서 ‘한국랭킹 1위’의 무게란 이런 것이다. 조훈현이란 스승을 둔 이창호도, 이창호란 선배를 둔 이세돌도 같은 과정을 견뎌내고 세계로 나아가 1인자의 자리를 쟁취했다. 이미 ‘무결점’이라 불릴 정도로 흠 잡을 데 없이 최상의 바둑을 구사하고 있는 박정환이지만, 그에게는 선배들의 위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바둑을 찾아야 하는 마지막 과제가 남겨져 있다.
‘바둑’ 하면 ‘박정환’을 떠올리도록
여자친구는 있나요? 키도 크고 피부도 좋고 돈도 잘 벌고… 최고의 신랑감인 것 같은데요.“다들 그렇게 말씀은 하시는데… 아쉽게도 없네요. 하지만 언제든지 활짝 열어두고 있습니다(웃음).”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요?“음… 미스에이의 수지?”
설마 여태까지 그런 여자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죠?“(수줍)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나쁘진 않겠죠”
음, 최택 6단도 그렇고 눈은 그다지 내성적인 것 같지 않네요. 요즘 프로기사 간 커플도 많은 것 같은데 이성으로서 동료기사는 어떤가요?“나쁠 것 같지는 않아요. 프로기사란 직업이 평범하진 않은데 서로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이들 만나 게 아닌가 싶어요.”
평소 바둑 말고는 어떤 취미가 있나요?“영화와 음악 감상을 좋아해요. 영화는 딱히 가리는 건 없는 것 같고 음악은 최신가요를 즐겨 듣습니다. (그 중 미스에이 노래를 특히 좋아하시는지?) 물론 좋아하고요(웃음).
박정환 9단은 대국 중 상대를 관찰하며 생각을 읽는다 (사진 : 한국기원) |
바둑을 두다 이따금씩 상대를 향해 예리한 눈빛(?)을 보낼 때가 있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일부러 째려보는 건 아니고요(웃음). 습관적으로 상대를 관찰하는 것 같습니다. 대국 중 힐끗 상대를 보면 그가 어느 곳을 보는지 어떤 수를 읽고 있는지 대략 보이거든요.”
자나 깨나 사활책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공부한다고 해 ‘사활귀신’이란 별명이 붙었는데요. 꼭 사활문제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우선 사활문제가 휴대폰 사진으로 찍어서 풀기도 좋고 휴대하기 간편해서 보는 면도 있고요. 바둑공부 중 수읽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매일 훈련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활문제만 공부하는 건 아니고 보통 공부를 집에서 하다 보니 사활공부 하는 모습만 부각되지 않았나 싶네요.”
최근 중국의 커제 9단이 혜성처럼 떠올라 세계대회 3관왕을 달성하며 중국랭킹 1위에 올랐는데요. 한국랭킹 1위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커제 9단이 물론 실력도 세지만 자신감이나 인터뷰 같은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이세돌 9단에게 감히 ”내가 95% 승리할 것이다“란 말을 꺼낼 엄두가 안 날 것 같거든요. 좋고 나쁜 걸 떠나서 제가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것이 부럽습니다.”
그럼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는 충분히 붙어 볼 만하다는 것인가요?“그렇죠. 몽백합배를 통해 커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그만큼 약점도 많이 노출됐거든요. 강하긴 하지만 극복 못할 상대 같지는 않고, 앞으로 세계대회에서 만나면 결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주로 하는 질문인데요. 박정환에게 ‘바둑’이란?“음… 정답이 없는 숙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답을 찾으면 새로운 수가 발견되고, 그 수를 파고들다보면 또 다른 수가 나오고…. 끝없이 도전해야 하는 인생 과제인 것 같습니다.”
정답이 없는 숙제라…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새해가 밝은 만큼 숙제도 더욱 늘어났을 텐데요. 2016년 목표가 궁금합니다.“새해에는 무엇보다 세계대회에 집중해 적어도 2개 이상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제가 판팅위 9단에게 빚이 있는데요. 올해 열리는 응씨배에서 꼭 판팅위 9단과 함께 결승에 올라 지난 빚을 청산하고 싶습니다.”
중국에 있는 판팅위 9단, 앞으로 밤잠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랭킹 1위=세계 최강’이라 굳게 믿고 있는 바둑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바둑’ 하면 ‘박정환’이 떠오를 수 있도록 올해는 꼭 세계대회 성적을 끌어올려 한국이 바둑최강국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정환 9단 프로필 이름: 박정환(朴廷桓)
생년월일: 1993년 1월 11일생
소속: 한국기원
출신도장: 권갑룡 도장
프로데뷔: 2006년 5월
특기사항
◆ 권갑용 문하
◆ 아시안게임 금메달 2관왕
◆ 체육진흥공단종신연금수령
◆ 금메달리스트로 병역특례
◆ 2009 바둑대상 신예기사상
◆ 국내 최연소 9단 승단 기록 [17세 11개월]
◆ 2011 바둑대상 연승상
◆ 2012 바둑대상 다승상, 승률상, 연승상
◆ 2013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다승상, 승률상
◆ 2014 바둑대상 다승상, 승률상, 연승상
◆ 2015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다승상, 승률상, 연승상
우승경력
-국내대회 통산 15회
-세계대회 통산 6회(아시안게임, 단체전 포함)
별명: 무결점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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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네이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