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에세이 발효를 꿈꾸다

[광역매일]

▲ 유서희 수필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발효’가 각광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발효식품을 비롯해 발효화장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인간이 먹는 음식의 3분의 1은 발효된 음식이라고 하니 발효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오미자가 시력과 면역력에 효과적이라 해서 발효액을 만들어 보았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미자를 하나 하나 낱알로 떼어낸 다음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뺀다. 다섯 가지의 맛을 품은 오미자라고 하지만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신맛이다. 배송되어 오는 동안 제 무게를 못 이겨 뭉그러진 것이 많아 오미자를 손질하는 내내 새콤한 향이 침을 샘솟게 한다.

준비한 유리 항아리에 물기 빠진 오미자와 설탕을 1:1 비율로 켜켜이 넣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밀봉한 다음 100일정도 보관한다. 숙성의 시간이 지나면 오미자가 품고 있던 선혈빛은 설탕에 녹아 들어 있다. 핏기 잃어 창백해진 오미자를 걸러낸 1차 발효액을 다시 3~6개월 보관하여 숙성시키면 오미자 발효액이 완성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긴 시간과 인내와 어우러짐이 있어야 참 맛의 발효액을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발효는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지니고 있는 효소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분해되어 알코올류, 유기산류, 탄산가스 따위가 발생하는 작용이다. 이미 6천년 전에 세워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나온 미생물이 만든 빵,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이 포도주를 담근 기록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신이 포도를 재배하고 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더라도 발효는 오래전부터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발효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건강을 유지하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발효액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식품 속의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이 효소나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부패하지 않고 알맞게 분해되어 특유한 맛과 향기를 생성하는 것이 숙성이다. 설탕은 식품이 가지고 있는 수분을 녹여 내어 새로운 식품으로 변모하는 동안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인내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비움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서로 침묵하며 긴밀하게 하나가 되는 시간을 견디는 숙성의 시간은 발효를 꿈꾸는 시간이다.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발효 중이다. 울퉁불퉁한 길 지나 깊은 협곡을 헤쳐 나오는 동안 한 겹 한 겹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이제는 아픔도 고통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서도 돌아보면 나는 아직도 미성숙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마종기시인의 「우화의 강」 중 일부

자주 애송하는 詩다. 이 시는 읊으면 읊을수록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굳이 많은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이 전달되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밝아진다.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연둣빛 새잎을 깨우듯 마음길이 열리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싱그럽다. 잎 하나 없는 겨울나뭇가지에 물을 돌게 학고 새잎 피워내는 봄 햇살같이, 변명과 이기심 앞에 진심은 허망하게 쓰러져 고통스러워 할 때 시린 가슴 쓰다듬어 준 따뜻한 마음. 그들은 내가 침묵하는 동안에도 말없이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었다. 내가늘 새로워질 수 있도록 나를 발효 시켜 주는 설탕 같은 존재다. 그들의 박수 소리를 가슴에 담고 삶을 새롭게 재생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발효를 꿈꾼다!

기사입력: 2017/04/20 [14:53]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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