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성산목사님을 생각하며 (*순복음신문) - ♣15.05.06
우리교단총회에서 발간하는 순복음신문이 있습니다. 2015년 4월 19일 613호
<순복음신문>에 내 글이 실렸습니다. 글 제목; 故박성산목사님을 생각하며~
금주 목사칼럼은 순복음신문의 그 글을 그대로 옮김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故박성산목사님을 생각하며~” -- 박태원목사(선산순복음교회)
산이 좋아 산에 갔다가, 산 계곡의 맑은 물을 만나 산이 더 좋아짐 같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좋아서 기하성 교단에 왔다가, 기하성 교단 설립자인
박성산목사님을 알고서 순복음교회가 더 좋아졌다.
“성령 운동의 발자취”(하나님의성회 교회사, 이영훈 지음, 2014년) 책, 127,
128 면에 보면, 박성산은 1908년 1월 20일 경북 군위군에서 박동희씨 장남
으로 태어났으며, 일본 성서신학원에서 오순절신학을 공부하고 럼시 선교사
를 만나 기하성 최초 교회인 서빙고교회를 담임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130,131면에는 서빙고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장년 100명을 넘고 주일
학교 학생 200명을 넘었지만, 교회를 담임하던 박성산목사는 형편이 어려워
광화문에 성문당 서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139,140면에서 박성산목사는 채스넛목사와 함께 한국 하나님의성회
교단 설립을 준비하였고, 마침내 1953년 4월 8일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를 창립하였다 고 했다. 본 교단이 선교사의 일방적인 주도하에 설립된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부터 뿌리를 내린 오순절 성령 운동 사역자들과 연합한
것이었다고 했다. 박성산목사님이 일제 강점기부터 열심히 성령운동 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교단 연감”(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1997년) 책, 60,61,62면에는 “박성산
목사는 경북 군위군 우보면 선곡동에서 박동희씨 장남으로 출생했고, 우보공
립보통학교,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교단도 없이
오순절교회(서빙고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215면에 박성산
목사는 1932년부터 20년 넘게 서빙고교회(순복음성광교회)를 담임했다 했다.
나는 경북 군위군 우보면 선곡동 산골마을에서 출생해서 그곳에서 자랐고,
이어서 우보초등학교와 대구 계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故박성산목사님
은 바로 내 고향 마을 어른이었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선배이었다.
그러나 박성산목사님은 나와 45년 세월 차이가 났고,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
로 고향을 떠났고,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산골마을에서의 폐쇄적인 농촌생활
이어서, 박성산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서울 인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여의도순
복음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순복음교인이 되고 기하성 목회자가 되었다. 그러
면서도 경북에서 순복음교회 교인과 목회자가 된 것이 쑥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산골 고향의 어른(박성산목사님)이 기하성 교단의 주요 인물 중 한분
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내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고 믿어지지가 않아서, 당시 살아계셨던 조부님한테 여쭈
니, 내 조부님과 산골 동네 친구이었고, 나와 가까운 친척 됨을 알려 주셨다.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종종 산골 고향을 가면, 故박성산목사님의 허술한
생가를 둘러보면서 영적 마음을 정리하곤 한다.
매년 5월, 교단의 정기총회가 올 때마다 故박성산목사님을 생각하며 미력
하나마 기하성 교단을 위한 충성과 사랑을 다짐하였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박태원목사 *경북 군위군 우보면 선곡리 출생, 성장
*우보초등, 계성중.고등, 계명대학교 졸업
*구미여자상업고등학교(공립) 교사 역임
*1983년 선산순복음교회 개척, 담임목사
*기하성(여의도) 대구지방회 직전회장
*순복음대구신학교 이사, 교수
*구미시 선산읍기독교연합회 회장
*한국문인 신인문학상(수필) 당선, 등단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聖會)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레.23:7)
◆.사진- ①.故박성산목사와 서빙고교회의 모습이 실린 교단연감 책(1997년)
②.군위군 백일장에서 군수 상(賞) 받다.(우보국민 5학년, *1963년)
③.④.⑤.청운순복음교회 석춘자전도사 취임예배 기도하다(*2002년)
⑥.⑦.⑧.⑨.경북 의성군 구천면, 구천교회, 청산교회 방문(*2011년)
^^ 순복음신문에 실린 上記 "글" 사진은 다음호 칼럼에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이 칼럼(*글 5단락, 사진 09장)은, "박태원목사, 저 자신"의 수양(수련)을 위해 올려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댓글까지 주신 분은 그것으로 방문 인사와 흔적이 충분하오니,
한줄메모 글은 "사양"합니다. --이곳 카페에 "칼럼 댓글"은 "햇 빛"이고, "한줄 메모글"은 "달 빛"입니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성회사를 강의하시면서 교단발전사를 더욱더 빛내주셨습니다.
실행위원회 참석후 입수한 교단신문에 목사님의 글을 읽고 또한번 놀랐습니다.
구천교회의 내력도 알게 되었습니다.(권성수 목사님 외할아버지가 종을 치셨다는것)
증경회장목사님! 화이팅!!!
지방회장님!! 교단 신문에 난 제 글을 알려주셔서 몹시 감사했습니다.
^^구천교회의 감동적인 내력은 권성수목사님이 직접하신 간증입니다.
내일 권성수목사님의 주례로 따님이 결혼하게 됨을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 (*2016.07.01)
박성산 목사님은, 당시(1927년) 군위군수의 딸인 유지혜와 결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