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분음후토묘도비 铁器时代 · 汾阴后土庙图碑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만영후토묘(萬榮後土廟) 김천회(金天會) 15년(1137) 영하현 지현(知縣) 장유(張維) 등이 새긴 후토묘 건축 전모도비. 현재 산시성 완룽현 허우터우 사원에 있습니다.
후토묘(後土廟)는 북송(北宋) 대중상부(大中祥符) 5년(1012)에 건립되어 본래 황하(黃河)로 전락하였으며, 현재 절터는 청동치(淸同治) 12년(1873)에 두 번째로 이건한 것입니다.
이 비는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북송 사묘도 중의 하나입니다. 비석의 높이는 1.35m, 너비는 1.06m이며 전면 상단에는 '푸저우 룽허현 창건승천효법후덕광대후토황지기묘상도석'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음각묘도. 그림 옆에는 명 가정 34년(1555년)과 천계 3년(1623)에 다시 새긴 글씨가 있는데, 실제로는 다시 새긴 것이 아니라 원각을 깊게 한 것입니다. 비석의 뒷면은 명인들이 새긴 '역조립묘치제실적' 비문입니다.
그림에 따르면 묘의 서쪽과 북쪽은 황하와 펀허와 마주하고 있으며 총 평면은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묘의 북쪽은 반원형의 제단 구역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 펀인 후 토묘 평면도묘의 외곽은 기와지붕 궁벽으로 둘러져 있고, 네 귀퉁이에 각궐이 있고, 남벽에 3개의 문이 열려 있으며, 정문은 가운데에 있으며, '태녕묘'가 있습니다.
벽의 앞부분에는 이중문이 있고, 문 옆에는 벽이 있으며, 3중의 뜰로 분리되어 있고, 뜰에는 비석이 따로 세워져 있습니다.
뒷부분은 사찰의 본체로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전정입니다. 남랑 정중앙에는 궁유의 문이 있습니다. 북랑 정중앙이 침전입니다. 전정의 중심에는 정전, 방명 '곤유의 전'이 있습니다.
▲ 분음 뒤 토묘도비전 뒤에는 천랑통침전이 있습니다. 궁자전이 형성되어 있고, 전정 앞부분에 무대가 있고, 좌우에 악정이 있고, 전 앞 두 계단 사이에 석란, 즉 송진종이 옥책을 봉안한 곳이 있습니다.
또 동서랑의 바깥쪽에는 동서향전(東西向殿) 3기씩을 세웠고, 그 명칸에는 각각 회랑을 동서랑으로 연결하면서 회랑 바깥쪽에는 각각 4개의 작은 마당을 형성했습니다.
침전의 북쪽에는 절의 북쪽 담장 한가운데에 높은 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칸의 작은 전을 올려 '배천'이라고 불렀습니다.
▲ 후토묘헌원소지비는 북쪽에는 주랑이 있는데, 묘북제단구의 공(工)자형대에 있는 방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단구역은 동서벽으로 앞뒤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부분은 공(工)자형 대(臺)이고 뒷부분은 방단 위에 중첨방전을 세워 '헌원소지단(軒辕地壇)'이라고 불렀습니다.
절의 남문인 대녕문 외에도 오두문이 3칸 더 있고, 좌우에는 덧문이 있는 담이 앞마당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후토묘의 전체적인 배치는 기존의 곡부공묘, 태안대묘, 금각중악묘도비와 기본적으로 동일하여 송나라의 국가급 사묘제도의 개황을 알 수 있습니다.
분류:고고 표제어
본문 라벨: 후토묘 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