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인연이 횃불로 타올라
손 원
20년 전 파견 공무원 시절의 이야기다. 사무관 승진과 함께 울진군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으로 주말 부부가 되었다. 울진은 당시 도청 소재지인 대구와 가장 먼 곳이다. 경주, 포항을 거쳐 동해안 도로를 몇 시간 달려야 하는 곳이다. 요즘은 승용차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지만, 당시는 고속도로가 없었고 도로 사정도 안 좋아 4시간 반이 걸렸다. 토요일도 격주 휴무여서 2주에 한 번 정도 가족이 있는 대구 집을 다녀갔다. 발령받아 가던 날 동료가 말했다. 울진은 인체로 치면 등줄기 가운데쯤 되어 손이 닿지 않은 지역이다. 사람의 발길이 적어 오염도 적고 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이라고 했다. 그리고 울진 온 사람은 올 때 울고 갈 때 운다고 했다. 올 때는 서러워서 울고, 갈 때는 아쉬워서 운다고 했다. 몇 년 후 도청으로 복귀하면서 그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런 오지에서 "2005 울진 세계 친환경농업 엑스포(2005. 7. 22~8.15.)"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태 사람의 발길이 뜸해서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고, 백두대간의 수려한 산과 계곡, 온천, 바다가 어우러진 친혜의 자연환경을 내세워 전 세계로 홍보를 전개하고 있었다. 인근에 대도시가 없고 접근성도 안 좋은 대한민국의 오지여서 관람객 유치가 관건이었다. 세계엑스포인 만큼 외국인이 어느 정도는 와 줘야 하는데 자칫 내국인만 참석하는 세계엑스포가 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울진군의 힘겨운 노력으로 외국인 운영 부스는 그런대로 채울 수는 있었지만, 외국인 관람객 유치는 큰 난제였다.
나는 도청 국제업무 담당 부서에 6년간 근무했다. 나의 진단으로도 울진을 찾는 외국인 관람객은 부스 운영자 외에는 거의 없을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한가지 방안이 떠 올랐다. 주한미군 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있는 노 씨였다. 그와는 지사님의 부대 사령관 접견 시 동행하여 두 번 정도 만난 것이 고작이었지만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바로 전화를 했다. 서툰 영어로 노 씨를 찾는다고 하니 연결이 되었다. "노 선생님, 저 손 원 사무관입니다. 기억나시는 지요?" "기억나고 말고요. 웬일로?" "예, 저 얼마 전 울진군으로 발령받아 왔어요. '2005 울진 세계 친환경농업 엑스포' 개막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외국인 관람객 유치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노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래요, 제 업무가 지역 협력 업무니까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행사를 잘 알아야 하기에 한 번 오셔서 설명 좀 해 주실까요?" 이틀 후 나는 그를 찾아가 설명하고 홍보자료도 건냈다. 며칠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령관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적극 추진하라고 했어요" 그 후 군수님과 사령관님이 만나서 전격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물론 수회의 실무협의가 있었고 나와 노 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울진군이 목말라했던 외국인 관람객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달간 개최되는 엑스포 행사에 주한미군과 그 가족이 울진을 대거 찾기로 한 것이다. 부대에서는 장병들의 여름 휴가지로 울진을 추천하고 권장할 정도였다. 5천 명의 장병과 그 가족을 합하면 1만 5천 명으로 최대한 울진을 찾게 하여 외국인 관람객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그결과 큰 성황을 이루었고, 매주 한 번씩 미군 군악대를 보내 주기까지 했다. 그들은 가족까지 같이 와서 울진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숙박하고 돌아갔다. 엑스포 기간에 사령관 일행이 방문하여 울진 투어를 했다. 만찬 때 일이다. 군수 주재로 소고기구이에 송이버섯이 나왔는데 그들은 송이버섯에 손이 가지 않았다. 송이버섯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앞다투어 접시를 비워 모두가 웃었다.
외국인 관람객 유치는 성공적이었다. 엑스포 행사는 울진군과 주한미군이 윈윈 하는 기회였다. 울진군으로서는 수많은 미군 장병에게 울진을 홍보하였고, 주한 미군측은 한국인과 함께하여 그들의 이미지를 개선하였다. 엑스포 행사를 끝내고 그들은 울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먼저 울진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기로 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으로 울진의 청소년과 함께하여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었다. 울진 관내 중고등학교에 미군 자원봉사자를 보내어 영어 수업을 해 주었다. 매주 20여 명의 영어 강사가 울진에 와서 각 학교에 배치되었다. 미군 중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 위주로 선발하였고, 모든 경비는 미군 측에서 부담했다. 영어학원은 물론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적은 울진지역 청소년들에게 큰 혜택이었다. 영어 수업을 한 것을 계기로 평소에도 교류하여 가족끼리 만나는 가정도 많았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에서 울진을 제2의 고향인 양 자주 오는 미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주한미군 군무원인 노 씨와의 반딧불 같았던 인연이 횃불처럼 커져 수많은 미군이 울진을 사랑하게 된 셈이었다. 미군들 사이에 울진 사랑이 점점 무르익어 갈 즈음 나는 울진을 떠나야 했다. 군수님은 자기 집에 나를 초대했다. 같이 간 직원과 함께 사모님의 정성이 가득한 저녁을 먹었다. 군수님은 말씀하셨다. " 몇 년간 주말 부부로 살면서 힘들었을 텐데 큰 업적을 남겨 주어 감사해요. 손 과장 덕분에 울진이 국제적으로 홍보된 점, 울진 청소년들의 영어 수업과 장병과의 교류 그리고 우리 부부가 지역 미군 사령관 주관 클럽 회원이 된 것 모두가 그대 덕분입니다." 주한미군 사령관 주관 클럽은 대구·경북지역 유력인사 20여 명인데 그 중 기초자치단체장은 울진군수가 유일했다. (2023.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