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서울
- 배윤주
모여라
사람 사는 세상 속에 묻혀 보고 싶은 사람 모여라
잘 먹고 잘사는 법도 살아봐야 알지
빈 그릇에도 민들레는 소복이 피는 것을 나비는 알지
겨울 지난 생가지는 봄 꽃놀이를 하고
불 땐 부지깽이는 불꽃놀이로 밤을 잊어버려요
모르는 척 은밀한 서치라이트로
광장에는 양귀비 붉은 꽃말을 흘려요
그늘의 반은 쾌락을 그리며 생의 반은 기생충이라며
워터밤의 물꽃놀이에 빛마저도 젖어버려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있겠나
건방진 소리
궁궐 기둥과 북촌 사이엔 기왓장마다 장이 열리죠
장의 반은 바람이고 사람의 반은 허깨비죠
밥의 반은 꽃이고 사랑은 닮은 꼴 찾기지
방자야, 생은 계급을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단다
도련님,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혁명이 있구먼요
미쳐가는 팽이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
죽창 끝에서 방자가 다이빙해요
참 살 만한 세상
하루의 반은 헛꽃이 되어 먼저 시들어 버리죠
오늘은 언덕에 어깨를 붙이고 기대어 살아야 해요
볼이 붉은 정인에게 손금 같은 물관을 보내 주세요
피맛골 시전에서 전통과 예술의 정치를 하거든요
어둠은 밤마다 포장마차로 항해하는데
순백의 하루를 받아 든 새는 어디쯤 불의 척추를 세울까요
오래된 질문에 달빛을 쓸어내리면 조선의 징이 울리죠
징 소리 녹아 흐르는 한강 물은
백만 겁의 시간을 향해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주문을 외듯 모르는 척 서울
ㅡ웹진 《님Nim》(2024,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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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이룬 '서울의 봄'이 무르익어서 색다른 '서울의 겨울'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5천만 인구를 훌쩍 넘어선 서울과 수도권으로 지방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호기심과 부러움이 아니라 걱정과 안타까움이 덧씌워져서 불안불안합니다
광화문과 여의도 서초동과 용산에 촛불과 깃발이 휘날린다고 모든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요즘 카메라에는 마이크가 내장되어 잇어서 모든 목소리가 담기는 바람에 진위는 불명입니다
모두의 손에 사물놀이 기구가 들렸으니 화음은 아예 들리지 않습니다
잘 생긴 도련님 한 분이 5년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자말자
노련해진 방자들이 하마 사면 복권을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네요
겨울에 피는 꽃은 헛꽃일까요 참꽃일까요?
어제 열린 영주문협 연간집 제48집 출판기념회에서는
신기하게도 시국관련 이야기가 단 한마디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혼잣말 주문이 들리지 않았을 뿐이지
선비의 고장 영주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찌 서울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