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는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뇌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본능을 따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강사는 자신이 제시한 글자의 색깔을 청중에게 곧바로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파란색으로 써진 ‘개’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곧바로 청중은 ‘파란색’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노란색으로 써진 ‘고양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습니다. 이번에도 청중은 ‘노란색’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녹색으로 써진 ‘빨강’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자, 청중은 ‘빨강’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문자 인식으로 무의식적으로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실수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능만을 따르는 삶은 오답으로 기울어 지기가 쉽습니다.
주님의 사랑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능만을 따르게 되면 사랑하기보다 사랑받는 데 더 집중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 관점으로 살게 됩니다. 참 행복의 삶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세상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가 보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주님의 평화는 세상의 논리에서 말하는 전쟁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세상의 평화만을 생각하다 보니 주님의 말씀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주님을 따른다고 생각하는데, 세상 안에서 실패의 경험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이루어지지도 않고 또 이웃과의 만남에서도 평화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본능적으로 따를 수 있는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통해서만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잠시 침묵하며 사랑을 키워 분노를 가라앉히는 일, 욕심을 멈추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일 등등…. 따라서 세상의 본능을 따르는 것을 멈추고, 주님의 말씀에 다시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좌절의 시간은 잊어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지 말라(하버트 S. 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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