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활친구
“여보, 얜 왜그래?” “아, 글쎄 윗집 창영이새끼가 물었대요”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니, 평소에 나가 놀아야할 놈이,
손가락에 헝겊을 싸매고 누워 있는 걸 보셨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자는 척하며, 아버지의 손길이 오길 기다렸다.
사람이 다치면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때때로 열 감지를
해봐야 한다는 걸, 어머니는 이미 그 필요성을 알고 계신 듯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마는커녕, 눈에 잘 띠게 담요 밖으로
내어놓은 아픈 손에도 손길이 없으시다.
연이나 나중에 어머니에게 누운 놈 사과라도 사주라고,
나 몰래 용돈을 주셨다는 얘기는 지금 껏 들은 바가 없다.
음~하고 인상을 쓰며 뒤척여도, 아버지의 손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사실 팔남매의 중간 얼치기가 아버지의 관심을 끈다는 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였다.
어머니가 이번 일에 분을 삭이지 못하시는 이유는,
당신 자식의 손가락을 깨물린 것에 더해 뒷이야기가 있다.
창영이, 용대와 나는, 윗집 아랫집으로 이웃해 있고
동갑내기여서 친하게 어울리며, 투닥거리기도 하는 사이다.
몇 달 전 초봄, 셋은 조마루라는 동네로 가는 중간에,
논 사이의 연못으로 송사리를 잡으러 갔었다.
연못은 깊고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물속에는
수초들 사이를 떼로 넘나드는 작은 물고기가 정겨웠다.
성질 급한 창영이가 먼저 고기를 잡겠다고, 물속을 향해
가지고 온 대바구니로 송사리를 덮치려 하다가, 그만 갯벌에서
미끄러지듯 연못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녀석의
손을 잡아채, 더 이상 연못 내로 깊이 빠지는 것을
일단은 막았다.
문제는 다음이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나도 슬슬 딸려 들어가는
거다. 이 상황을 보고서 헤헤헤 웃으며, “종근아, 나는 간다”라며
뒤돌아 가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동행한 용대다. 지금까지
겪어 온 경험에 의하면 이 녀석은 자기에 손해가 된다 싶으면
절대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다. 나는 용대의 뒤통수를 향해
울부짖었다. “ 야 우리 빠져 죽겠어, 나좀 도와주라응” 이 말이
통했는지, 몇 걸음 가던 녀석은 발길을 돌려 우리를 끌어내
주었다. 이리하여 저승행 급행열차 중간 기착지에서 하차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나는 어머니에게 사실 그대로 토로할 수밖엔
없었다. 왜냐하면 논흙(갯뻘과 유사)이 옷과 신발에 엉켜 붙어,
빨래하시는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려 추궁 당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가슴에 담고 계셨던 어머니에게, 나의 손가락을 깨문
창영이가 예쁘게 보일 리가 없다. 생명의 은인을 해꼬지한
천하에 배은망덕한, 베라먹을놈이 되는 거다.
그 이후, 창영이네와 우리는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이웃이 되었다.
길에서 간혹 마주치는 창영이 부모님, 누나, 형의 눈빛은
날이 갈수록 싸늘함이 더하다. 창영이와 나는 친구로서 모든 걸
수면 아래 묻고, 녀석 부친의 회갑잔치에도 참석하기도 하였으나,
미소조차 없는 차가운 시선은 걷혀지지 않았다.
나를 적대시한 이유의 해답은 수십 년이 흐른 후, 창영이 부친
장례식장에서 매듭이 풀렸다. 소주 몇잔이 돌았을 때, 우리
좌석으로 창영이의 형이 반갑다며 합석을 하였다.
“내가 이미지도 안좋고 미운 감정의 앙금은 아직 있으나,
세월이 흐르고 부친도 돌아 가셨으니 용서를 해야 안되겠냐“는 마음이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 양반이 앉자마자 “야 종근아 오랜만이다. 창영이는 너
때문에 저렇게 된거로 봐야지?“라며 농담 반의 힐난조를 던진다.
나는 몇 잔 먹은 술이 확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말씀이냐“라며 자초지종을 물으니, 창영이 형이 풀어논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연못에 빠질 때는 내가 밀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복숭아 과수원 주인에게 서리하다 들켜 얻어 터진 것도 종근이가
시켜서 한 짓이다.“ 결국 친구를 잘못 사귀어 착한 창영이의
앞날을 망쳐 놓은 것 아니냐는 거다. 녀석의 온 식구에게 나는
악의 축이였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고 기가 막혔다. 나는 즉시
녀석을 불러 이실직고를 요구하니, 짜식은 실실 썩소를 흘리며
“다 지나간 이야기를 가지고 뭘 그러냐”고 오히려 내가 속좁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무게를 둔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하지만, 식물들도 종류별로 성분이 다르고,
같은 동물들도 나름 개성이 다 있듯이, 사람의 개체도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성격이 있다고 본다. 이 천성이
변했다는 건, 변한 척할 뿐이다. 지금은 이런 철학을 깨우쳐준
그 불활친구에게 감사할 뿐이다.
첫댓글 불활친구? 불활은 활발하지 못하다는 뜻인데...큭
불활? 다시 부활한 친구 ㅎ
강이나 못에서 수영을 한다든가 멱을 감을 땐,
무섭도록 안으로 빨려드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어요.
그 어릴 적 친구,
참 나쁜 친구이네요.
서로 집안이 다 아는 사이인데
어떻게 거짓말을 해 놓고
세월이 가도 미안함도 없었지요.
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닙니다.
조심해야 겠네요.
들추어 보면 별별친구가 있죠
보고싶은친구 그리운친구
얄밉지만 그래도 궁금한친구
판단이 어려울 어린 나이일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선 사과 또는 진정성있는 반성은 있어야된다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는 유기체란 말이 맞는거 같습니다.
그걸 선악개념으로 나누면 성악설이 되는거겠지요.
그래도 그때의 일을 교훈으로 생각한다니 대개 그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