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 보통 '피에타' 라고 하는 조각작품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누구에게나 숙연한 감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그 작품에 대해 전혀 다른 느낌도 가집니다. 성모 마리아의 깊고 슬픈 표정 이면에 새겨진 거짓의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보기 때문입니다. 성스런 예술작품에 웬 이데올로기냐구요? 피에타는 지난 2천년간 지켜져온 서구 신학과 교회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또한 가공된 성모 마리아에 의해 가려져온 '막달라 마리아' 라는 여성을 통해 성서의 진정한 민중전통과 여성해방 전통을 추적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예수의 시신을 끌어 안고 있는 여성은 예수의 생모인 마리아가 아니라, 바로 예수의 친구요 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라고 느꼈습니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데다가 성서의 전통에 가까운 깊은 의미를 전해 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와 개인적으로 친밀했던 '여자친구(?)'였다고 볼만한 기록들을 성서에서 볼수 있습니다. 물론 서구 문화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많은 오해와 왜곡된 논쟁을 해왔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죽음의 현장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구체적 정황은 복음서에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예수의 친지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뤘던 것으로 생각되는 요한은 십자가 아래에 어머니 마리아가 여러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고 어물쩍 보도합니다. 복음서들의 맥락에서 볼때 어머니 마리아가 AD 30년경 유대의 해방절 축제기간에 예수와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행진하여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예수를 최후까지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 등 몇몇의 여성들이 멀리서 처형장면을 지켜보왔다는 다른 복음서들의 증언이 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복음서에서 마리아와 성인이 된 예수와의 대화 장면은 딱 한번 나오는데 영화 '예수 최후의 유혹'은 그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집을 나갔다가 어쩌다 돌아온 아들을 보고 "동네 친지들이 너보고 미쳤다고 한다. 제발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살자"라고 애원하지요. 예수는 마리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 길을 가며 말합니다. "당신이 나의 어머니라구요? 나의 어머니는 바로 저와 함께 하느님의 길을 가는 이분들입니다". 마리아는 땅바닥에 엎어져 가슴을 찢으며 통곡합니다.
복음서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마리아에 대해 생모 이상의 역할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처녀시절 가난한 사람들의 메시아를 잉태하고자 했던 '마리아의 노래'와 같은 민중적 전승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결국 어머니 마리아는 고향 나자렛에 눌러 앉아 열심히 공부시킨 아들에게 기대어 편안히 살고자 했을 따름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성모 마리아를 마치 계모(?) 처럼 취급하는 논조에 거부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 역사는 마리아에게 성모, 동정녀 라는 거룩의 덧을 씌움으로써 오늘날 이를 추종하는 우리의 어머니들과 여성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워왔다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마리아 컴플렉스'에 의한 가부장적 복종과 성억압은 사유재산과 남성적 독점을 공고히 해온 서구 계급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고 보겠습니다. 게다가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는 주름하나 없이 너무나 젊은 모습으로 '영원한 동정녀 신화'를 강요하고 있기에 부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피에타가 성베드로 성당과 앙상블을 이루는 것도 바로 초대 교회에서 가부장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베드로그룹의 승리와 긴밀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제는 관심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막달라는 예수의 고향인 갈릴래아지역 나자렛에서 꽤 떨어진 갈릴리 호수 서편의 상업도시였는데, 예수의 제2의 고향이었던 가파나움으로 가는 도상에 위치한 곳입니다. 예수는 가파나움을 무대로 방랑하면서 활동하다가 그녀를 만났을 것이고, 막달라 마리아는 재산을 바쳐 예수 최후의 순간까지 따랐던 여성 제자그룹의 일원이었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그녀는 어떤 치료의 경험에 의해 예수집단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남성제자들 보다도 예수와 더욱 긴밀한 동지적 관계였으며 여성그룹내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와 같은 죄인이었다는 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과 동일 인물이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대화하는 장면은 두어번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공생애 막바지에서 자신의 행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수제자그룹과 함께 발치에서 의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현장에서 모두 달아났던 남성 제자들을 뒤로 하고 최후까지 그의 죽음을 목격하였고, 결국 그의 시신을 찾아 무덤까지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고 성서는 보도합니다. 그리고 첫 부활절 일요일 예수와 마리아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죽었던 예수가 나타나 마리아를 부르자 마리아는 "예, 선생님 "이라고 대답합니다. 서로 부동켜 안을 분위기였지만 예수는 다시 말합니다. "아직은 나를 만지지 말라... 갈릴래아에서 동지들과 함께 다시 만날때까지는..."
이는 마리아와 예수 사이에 있었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남녀로서 동지로서 끝까지 사랑했다고 보아주는 게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게 더욱 인간적이고 구체적 해방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성서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의 구원은 좀더 육체적인 친밀감 속에서 경험됩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룹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전승을 전달한 모체로 인정되고 있고, 초기 기독교는 그 전승에 기초해서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AD 3세기경 니케아종교회의와 로마의 국교화에 의해 인간적이고 혁명적인 아름다운 남녀의 이야기는 비인간화되고 무력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전적으로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 숭배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혁명적인 육화를 무력화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육체와 상관 없는 신의 존재를 만들고 신을 비인간화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처형당한 예수를 끌어 안고자 했던 여성, 바로 갈릴래아에서 예수살렘까지 고난의 행진을 마다하지 않았고, 님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고자 했고, 종국에는 동지적인 대의를 위하여 사랑하는 님을 죽음의 현장에 보내야 했기에 그의 부활을 염원했던 여성,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참된 민중전통의 신앙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을 공부하면 민중전통과 여성해방적 전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 '예수 최후의 유혹'은 그 인간적 관계를 대담하게 그렸더군요. 허나 그게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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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트만 벤델, 예수주변의 여인들
- 루이제 린저, 미리암
- 안병무, '예수와 여성' 갈릴래아의 예수
-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사회적 혁명가의 전기
- 뷜리발트 뵈젠, 예수시대의 갈릴래아
- 앨버트 노울런,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토론과 책소개(2002.4.10)에 올렸던 글임.
성모마리아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모마리아를 종교적으로 섬기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주, 어른 연극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이란희연출가가 '마리아'역을 언니가 하면 좋겠다고 했을때 괜히 기분좋아 했던 것은 이런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하며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요...물론, 우리가 본격적으로 준비하게되면 마리아 역은 오디션을 거쳐야할 듯..ㅋ 기회 되면 다같이 빠졸리니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보고 이런 이야기들을 더 나누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신약공부 시즌이 다가왔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