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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대회 거리에 누운 해남군과 진도군 농민들
기독교대표단과 방문한 박승규 마산면신기교회목사
맨우측에 황산농민회 정관진씨의 모습이 보인다
해남군과 진도군 농민회 깃발이 나부끼다
바다에 뛰어든 한국인에 대한 취재와 구경모습
홍콩신문에 장식된 한농연의 김성일 해남군회장
한농연이 상여를 들고 컨벤션센타에 진입하려는 모습
거리에 앉아 투쟁하는 모습-앞에 해남군과 뒷편의 진도군 농민회원 모습이 보인다
홍콩 농민투쟁은 농업과 지역을 살리는 희생의 길이였다
이번 홍콩 방문은 매우 가슴 저린 경험과 더불어 농민들의 WTO 반대 투쟁에 대해 처절하리 만큼 절실함을 체험했으며, 이런 경험을 지역의 군수, 도의원, 군의원들이 참가해 현지에서 느껴 보았다면 군정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을 크게 가지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전국방송에 나온 농민투쟁을 보면 대체로 폭력시위를 하고 피투성이 모습이 되고 구속이 되는 사태로 ‘농민투쟁은 폭력투쟁’ ‘투쟁 농민은 과격 폭력사용자’라는 인식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국제농민연대조직인 ‘비아 캄페시나’의 각 대표자들의 주제발표와 토론의 내용에 따르면 농민투쟁의 모습은, 적어도 농업정책의 입안자 및 정치인, 농업 중심의 시․군 주민, 농업관련 종사자의 입장에서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선구자적인 희생자로 봐야 한다는 생각뿐 이었다.
정부에서 내 놓은 농업대책이란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다소간의 농업인의 불안을 해소하고 구조적으로 새 패턴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채 연기, 이자율감소, 턱없는 직불제 그리고 농어민의 문화, 교육, 복지 등의 명목의 투자가 당장 20-30%의 쌀값 등 농산물 가격 하락과 적자 농업을 경영하는 농민에게는 살농 정책이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했다.
상당부분이 소농의 희생, 국익을 위한 농업의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에 따른 전 농업인의 손실 감수를 하라는 것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익을 빌미로 적극 나서지 않지만, WTO협상에서 농업분야를 빼라는 이들의 요구는 각국 농업인 대표들의 외침에서 잘 느낄 수 있었다.
해남 떠나 23시간 만에 홍콩 도착
지난 12일 10시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버스 두 대로 공항에 해남에서 버스 2대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조금 지났으며, 쉴 곳 없는 공항에서 밤 10시35분에 홍콩으로 출발하는 마카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농민회원 외에 군의원에 출마 예정인 화산의 박종부씨도 동행했다.
마카오에 새벽 2시에 도착해 입국검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항구로 가 바로 홍콩행 배를 타면서 마카오 출국검사, 1시간이 지난 새벽 4시경 홍콩에 도착해 입국검사를 하고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에 오니 아침 6시가 됐다. 면단위에서 아침 먹고 출발한 농민들에게는 무려 23시간 만에 도착한 기독교 유스호스텔이 그나마 너무 반가웠다.
1실 6인 사용, TV도, 전화도, 비누도, 물과 전열기구 하나 없이 화장지만 덜렁
농사가격이 폭락한 시점에 1백여만의 자비를 들여 8박 9일 동안 TV도, 전화도, 먹을 물 한통도 그리고 세면도구도 일체 없이 어린이용 2층 침대 3개와 좌변기 한개, 사워꼭지 한개 그리고 세면기 1개와 세면기 앞의 벽거울에 화장지만 덜렁 있는 방에 6명의 성인이 잠을 자고 깨고 했다.
방안에 냄새나니 식사를 못하게 해 점심과 저녁식사인 도시락을 숙소에 있을 때는 숙소 밖 잔디와 도로위에 모여 옹기종기 먹어야 했다. 식사라고 해야 일명 알랑미 밥에 국도 물도 없이 고작 밥에 올려놓은 콩나물과 시금치 몇 가닥과 몇 조각 김치 및 향신료를 듬뿍 넣은 고기 종류가 전부 인지라, 행여 김치나 고추장이 있는 곳에 몰려 밥에 고추장을 조금 발라 먹기가 일수인 모습들도 보였다.
조식은 도시락보다 더해 김치도 없이 홍콩의 향신료를 사용한 반찬을 거의 먹지 못해 물에 말아 먹거나 준비한 고추장이나 김치 몇 조각을 얻어 겨우 넘기는 모습도 보였고, 점심을 거르거나, 점심 저녁을 합해 밤 10시경에 한 끼 도시락으로 견디며 투쟁하는 농민들의 모습은 국가가 할 일을, 모든 정치인과 행정책임자 등 군민이 할 일을, 그리고 모든 군민과 농민들이 할일을 대신하는 희생의 외침으로 들리는 게 당연했다.
전국 시군단위 2번째 규모인 65명 해남농민과 20명 진도 농민들 장했다
13일 새벽 6시에 숙소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불과 2시간 정도의 휴식을 가진 중에도, 해남에 별도의 임무로 구명조끼를 운반하는 임무가 내려와 구명조끼가 보이지 않도록 속옷으로 끼어 입고, 한 줄에 4인용이 아닌 5인용 자리로 된 너무도 좁은 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공원에 도착해, 바다에 투신할 회원들에게 구명 조키를 전달했다.
홍콩의 내외신 기자들은 갑자기 보인 ‘오렌지 색 옷-구명 조키를 말함’이 무엇이냐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정말 물에 빠지기 위해 사용하느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약 1킬로가 떨어진 WTO 국제회의가 진행되는 컨벤션센타 근처까지 ‘Down Down WTO (중단 중단 WTO)' 등의 구호를 외치며 ’Who kills Farmer‘(누가 농민을 죽이는가)라고 적혀진 조끼를 입고 평화적으로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했으나, 더 이상의 진입을 못하게 하자 여러 군데에서 농민들이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외국인 1명과 약 1백여명의 한국인 가운데 10여명의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으며, 이중 일부는 약 3백여 미터가 떨어진 컨벤션센터 앞까지 헤엄쳐 갔다. 홍콩 해경은 약 20대의 경비함과 구명정을 타고 바다에 뛰어든 농민들의 안전을 지켰지만 강제로 끌어내거나 수영의 진로를 막지는 않았다.
뛰어든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고 동시에 여러 곳에서 실시되었으며 제대로 확인이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해남군 농민회(회장 김영동) 산하에서도 옥천농민회 윤상학회장, 삼산농민회장 윤영상회장, 북일농민회 김검수씨, 황산 농민회 정관진씨 등 수명이 바다에 뛰어 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진도 농민들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왜 이토록 처절한 투쟁을 타국까지 와서 해야 하며, 찬 바닷물에 팬티차림으로 뛰어들어 허우적대야 하는 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 줄 수 없었는지 그리고 이런 현장에 우리의 지도자들은 다들 어디가고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이 남 여할 것 없이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하는지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동시다발적으로 컨벤션센타로 가는 길에는 한국 농업경영인회원들이 상여를 가지고 진입을 시도하다 되지 않자 상여를 불사르고 대치에 이어 민노총 등이 농민들과 가세해 겹겹이 막고 있는 폭동진압경찰을 상대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다음날에 역시 빅토리아 공원으로 이동해 각국의 대표들의 주제발표와 식량주권확보라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고, 밤에는 숙소인 우카시아 지역에서 각국의 시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화합의 밥을 개최했다.
3박4일간의 취재가 아닌 시위에 참여한 필자는 처음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농민, 눈물을 흘리며 WTO를 반대하는 대표들, 막사와 마찬가지인 불편한 숙소와 식사 그리고 잠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농업을 협상에서 제외하고자 하는 절규와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았다.
3개 TV방송국, 3개 라디오 방송국, 수개 신문과 영어 인터뷰
‘한국농민 시위를 폭력적이라 말라’ ‘가족의 생사를 걸고 온 농민의 입장을 아느냐’
그러기에 우연찮게 영어로 방송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수 곳의 방송국 인터뷰와 라디오방송 인터뷰 그리고 현지 홍콩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농민들이 잘 규율을 지킨 평화적인 시위자라는 말을 들었으며, 일부가 무력적인 농민이란 말로 물을 때 마다, 본인은 무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처절한 농업의 입장을 생각할 때 바다에 뛰어들거나 진입을 위해 몸싸움을 하는 것은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가난한 농민들이 무려 약 1만 홍콩달러 자비로 내 이곳까지 와서 WTO를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WTO 이후 한국 농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상황도 밝혔다. 물론 본인도 같이 투쟁대원의 일원으로 행동했기에 농부라고 거짓으로 밝혔다.
하지만 경찰간부가 묻는 한국경찰과 비교해 누가 평화적으로 대처하느냐는 말에는 차마 한국 경찰의 초 강경진압과 농민이 죽는 상황을 스스로 입으로 밝힐 수 없어 ‘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홍콩 기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홍콩 경찰은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져 인지는 몰라도 경찰의 대응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냐를 물었고, 인터뷰한 8명의 방송, 라디오, 신문기자도 경찰의 대처에 대한 평가를 물어볼 때마자 ‘Reasonable 사리에 맞는 처사’라고 답했다.
홍콩경찰은 한국의 시위진압경찰에 대해 유연한 태도와 더불어 한국농민의 투쟁이 타당성 있다는 입장으로 과격한 시위라기보다는 이해가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혀, 한국 경찰의 진압과 우리정부의 태도에 대해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홍콩원정투쟁단의 투쟁은 분명 한국의 방송에 보이는 모습과는 달랐다. 도든 관계자가 실제 현장에서 같이 참여하고 대화를 해, 정부가 농민들의 입장을, 지방자치단체가 농민들의 입장을, 그리고 지역의 모든 크고 작은 정치인이 체감되는 농정을 펼치는 모습이 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누가 이토록 외국에까지 가서 고생하는 농민들을 행여 국제적인 데모꾼으로 매도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입장을 위한 투쟁이라고 폄하하거나, 항상 하던 짓거리라고 냉소를 보내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현지에서 WTO반대 시위를 하면서 지역의 조합장이나 군의원 등은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다른 단체와 함께 와 현지에서 얼굴을 잠깐 본 김성일 해남군 농업경영인회장과 김미옥 생협회장의 모습과 마산 신기교회의 박승규 목사의 모습은 참으로 반가웠다.
농민들에게 체감하는 정책없는 지역발전 없다는 생각뿐
8박9일이 아닌 3박4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구경은 호사스런 소리이니 제쳐놓고라도, 단 한 끼 외식 한번, 제대로 목욕 한번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농민투쟁, 피곤이 역력한 모습으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차에 기대어 졸고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 강행군을 본 심정은 체감하는 농정정책을 펼치지 않는 한 농민들에게는 한낱 헛된 구호를 외치는 지도자일 뿐 이라는 생각뿐 이었다.
정치인이 직불제, 농촌복지, 교육지원, 부채 연기 및 이자율 감면으로는 적자 농업의 살길이 아님을 듣고 느낄 수 있었기에 우리의 각 분야별 지도자는 좀 더 농민의 미래를 보장하고 현실감 있는 다양한 정책을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마련하고, 실속 있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누구라도 공허한 메아리를 외치는 자로 들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들은 투쟁꾼, 반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존의 문제를 지역부터 시작해 풀어나가는데 전력을 하지 않는다면 홍콩의 바다에 구명 조키조차 입지 않고 생명을 버리는 투쟁을 하라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전국최대의 농군인 해남은 무엇보다 농민정책을 농민들이 체감하는 수준으로 하지 않고는 지역의 발전은 고사하고 갈등 해소조차 할 수 없다는 결론의 생각으로 농업의 생존과 지역의 발전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1면 편집바람
사진-1면이라고 쓰여진 사진 2장
해남 진도 농민들 WTO반대 적극 투쟁나서
해남군과 진도군 농민회 회원 등 약 90명은 지난 12일부터 20일까지 WTO반대를 위해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3일 WTO 각료회의 개막과 더불어 빅토리아 공원에서 각료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타가 있는 곳까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때로는 도로에 누워 투쟁 및 바다에 몸을 들어 한국 농민의 WTO를 반대하는 절박함을 나타냈다.
이런 과정에서 수명의 해남 농민들이 바다에 뛰어 들어 한시간여동안 시위 및 컨벤션센타로 헤엄쳐 건너기를 시도했고, 한편으로는 다른 육로를 봉쇄하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홍콩경찰의 고춧가루 스프레이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들은 점심과 저녁을 굶고 밤 10시가 되도록 투쟁을 하면서도 대오를 이탈하지 않아도 현지 및 경찰들에게도 평화적 시위와 WTO 반대의 타당성에 대해 공감을 얻어 냈다. 한편 14일 홍콩의 영자신문(South China Morning Post)에는 이런 시위에 대해 ‘북을 치고 구호를 외치며 농민가와 투쟁가를 부르는 등 노래를 하고 도로에 사랑이 가득 메운 모습은 마치 구정의 잔치와 같다’며 한국 농민의 시위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4일에는 빅토리아 공원에 각국의 투쟁인원 약 1500여명이 참가해 국제연대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와 식량주권 확보라는 주제로 토의 및 홍콩주민에게 WTO의 당위성 홍보물을 배포했다. 이틀째에는 첫날 귀금속 등 상가 등 대다수가 문을 닫은 것에 비해 거의 문을 열면서 한국의 평화적인 시위를 인정했다. 밤에는 우카시아의 숙소에서 국제농민연대와 단결과 친화의 밤을 개최했다.
15일에는 비아 캄페시나를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의 홍콩원정 투쟁단 1,000여명은 빅토리아 공원에서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인근의 카고 핸들링 에어리어까지 20분 3보 1배, 5분 휴식으로 행진했다. 진도농민의 맨발의 3보 일배 그리고 무릎과 손이 깨져 피가 난 모습이 홍콩 언론이 나왔다. 밤에는 촛불시위를 해 홍콩의 언론과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16일에는 브라질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주제발표와 토론회가 숙소 지역에서 있었으며, 17일에는 또 다시 대규모 투쟁을 빅토리아 파크에서 컨벤션센타로 향하며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나주와 해남이 다른 진입로 개척 및 해남이 또 다시 다른 진입로를 개척하는 등 저녁과 아침 그리고 점심을 굶으며 투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8일 새벽부터 홍콩 경찰 측과 물밑 협상이 이뤄졌고, 여성단체를 시작으로 경찰에 연행되기 시작해 이틀간의 구속이 된 가운데 해남과 진도의 전 투쟁원이 석방돼 세면도 할 겨를이 없이 홍콩에서 마카오를 거쳐 20일 오후 5시에 다들 마르고 시커먼 모습으로 해남에 돌아와 보는 이의 안타까움과 홍콩투쟁의 고생을 실감케 했다.
또한 이들은 17일에 이은 18일 새벽까지 연좌 농성 등 시위과정에서 일체의 음료와 식사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3끼 식사를 못하게 했고, 체포를 하면서 언론에 나온 고무총발사 내용 외에 연행 후 모두 손을 묶고, 여성연대 투쟁단을 한방에 20명씩 수용 및 남자들에게 옷을 벗기고 조사 및 불응자에게 구타를 했다며 인권위 조사를 요구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참가자들은 홍콩의 WTO 반대시위가 대체로 평화적으로 치렀고, 마지막 날의 시위 역시 절박한 농민 등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과격한 시위가 아님에도 지나치게 과격 시위로 국내외 여론 몰이를 한 것에 분개했다.
참가자들은 또한 홍콩의 영자 및 현지 중국신문 등이 1면부터 3면까지 기사를 할당하는 등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한국투쟁단의 차별화된 투쟁과 한국 농민의 실정을 대변한 데 비해 한국의 언론 보도는 일부 대립 장면과 극적인 장면을 단편으로 전해 아쉽다는 평을 내렸다 [ 해진신문 이사장 김철환 ]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해남 진도 농민회원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읍니다 추운날 출발하여돌아온날까지추워지만 소귀의 목적을달성하였다고봄니다 앞으로도 해남농민이아닌 전국농민대표가 되리라 밎읍니다 (추신) 삼산농민회윤영상 회장님 15년전에같이삼산녹산주을함께 한잔마셔보고 지금지면으로나마뵈오니반갑읍니다 해남농민회 화이팅
해남 진도 농민회원여러분 200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풍년돼시기바람니다
와 이곳에 울동창녀석의 얼굴도 있습니다 산이에서 사는 농민회 회원인데 자랑스럽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오늘 11일 늬우스보아읍니다 결과로로보면 좋은쪽으로흘러가네요 다행임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