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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례법회] 청년법회
나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
원기 106년 5월 8일
설교 : 전성욱 교무님
타이핑 : 소현진
반갑습니다. 오늘 일기도 있고, 강연도 있고 풍성한 날이네요. 또 오늘 무슨 날이죠? 아침에 나오시면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하고 오셨습니까? 민망해서 카네이션만 이렇게 주고 오셨어요? 직접 달아드리지도 못하고? 돈 보내드렸습니까? 잘했네. 요즘 컨텐츠에 맞는 불공을 하셨습니다. 근데 어버이날에만 연락하고 돈 드리면 어때요? 평소에 잘하려고 하십니까? 아마 감사한 마음을 부모님께 내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특히 보은하는 날이죠. 평소에도 해야 하는데 특히 하는 날이에요, 오늘은, 마음의 안정과 감사의 표현과 몸의 불공도 특별히 오늘은 더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혹시 표현을 못하셨으면 법회를 마치고 가셔서는 꼭 표현을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가지를 못해서 이모티콘으로 열심히, 그리고 이따 저녁에 가서 전화를 하려고 합니다.
정기일기 먼저 보겠습니다. 우리 은화교우가 발표를 했는데요, 상시일기라고 해서 나는 상시일기를 어떻게 공유하려고 하나 했는데 정기일기. 은화교우가 보고 있으면 정기일기예요. 심신작용 처리건 발표를 해줬습니다. 제목이 <일하기 싫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한 번>이었습니다. 재택근무 하는 상황에서 일하기 싫을 때, 그 때 마음을 바라보고 챙겨서 취사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감정을 해보면 일단 우리 은화 교우가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죠.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잘 돌려서 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화를 얻었어요. 그리고 뭔가 해야 하는 일을 안 했을 때 돌아오는 인과는 분명하죠. 그것을 시비이해 생각하기를 통해서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은혜로운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 고민하고 그 쪽으로 취사했습니다. 잘했죠? 모든 경계 상황 속에서 이렇게 취사를 잘 하고 내가 은혜로운 방향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죠?
우리가 평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싫은 마음이 나서 고민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걸 할까, 말까? 좀 미뤄볼까? 다음에 할까? 아예 안 해버릴까?’ 근데 그 고민하는 순간이 어때요? 행복합니까? 괴롭습니까? 고민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할까 말까 하면서 행복한 사람? 여기선 이제 부정적인 것이죠. 하기 싫은 걸 가지고 고민하는 거잖아요. 아마 그때 괴로울 거예요. 그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 게 누구예요? 본인이죠. 나예요. 그러니까 사실 미룰 것이 없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뤄도 될 일은 미뤄도 돼요. 근데 대부분 미뤄도 되는 일이에요 아니에요? 안 되는 일이죠. 상황 따라서 내 몸이나 내 마음이나 상황이 정 안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미뤄도 돼요. 근데 돌아보세요. 그런 경우가 많은가. 정말 어쩔 수 없이 미뤄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습니까? 별로 없을 거예요. 아마. 그리고 때로는 마음 한 번 돌리면 쉽게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괜히 그냥 싫은 마음이 나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은화 교우는 이 재택근무라는 환경이 그런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아마 회사에 있었으면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났을 것 같은데, 재택근무라는 환경이 그런 마음을 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환경도 중요합니다. 환경을 내가 고민하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시험공부 한다고 친구네 집 가서 한다고 간 적 있었을 겁니다. 가면 공부해요? 환경이 공부할 환경이 아니에요. 스터디를 하거나 이런 거면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외우고 해야 하는데 국사공부 해야 하는데 거기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잘 안되죠. 게임 한 번 해야 하고, 과자 하나 먹어야하고, 옆에 침대 있으면 잠깐 눕고 “잠깐 누울 거니까 깨워~” 하고 푹 자잖아요. 저도 다 해봤어요. 환경이 그렇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환경을 그러지 않도록. 그 환경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취사를 하면서 나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해요? 잘 생각해 봐야 해요? 시비만 보고 하면 됩니다. 이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해야 할 일인가 안 해야 할 일인가. 그러면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시를 향하면 이가 온다. 옳은 일을 하면 은혜가 온다는 것을 말씀하셨죠. 그게 인과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내가 잘 모르겠으면 그냥 옳은 일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알아서 진리께서 은혜를 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면 그냥 옳은 일 하세요. 그러면 고민이 없어요. 그냥 해버리면 되니까. 득이 될지 안 될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기 돌아 봤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편안한, 안정된, 평화로운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은 우리 준오교우가 했던 강연을 토대로 제가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준오교우 보면 어때요? 오늘 또 깔끔하게 하고 왔는데 평소이미지가 스마트한 느낌이 나죠? 일도 스마트하게 하고, 실제로 일을 맡겨보면 준비하는 과정이나, 뒤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참 스마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요즘 우리 교당에서 온라인 성북교당 계속 하고 있고, 또 저번에 공연도 그렇고 우리 준오교우 없었으면 안암교당에서 못할 일이 좀 있었어요? 본인 마음공부 하러오기도 했지만 보은하러 왔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면서 괴롭진 않았겠죠? 즐겁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오늘 강연 들으면서 아마 여러분들 어떤 생각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본인이 원불교를 만나는 과정이나, 본인의 성격을 다양한 검사나 프로그램을 통해서. 되게 좋아하네, 그걸? 저는 이중에 보니까 하나 해봤더라고, MBTI 하나 해봤더라고요? 뭐가 나왔는지 기억은 안 나고, 나하고 비슷하다.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스스로를 잘 알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다. 물어보잖아요, “넌 어떤 사람이야?” 물어봤을 때,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기만의 특성이 있습니까? 특성을 이야기하면 단점을 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점을 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성격에 따라서. 그런데 장단점은 다 있습니다. 우리 준오교우가 얘기도 해놨지만, 장점이 많이 있죠? 무슨 형이라고 했어? ENFP형이라고 했는데, 정열적이고 활력이 넘치고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했죠? 이것만 있어야하는데 뒤에 뭐가 또 따라붙죠? 몰아서 말하면 ‘산만하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어느 형이나 다 장단이 있죠. 그래서 장은 키워야 할 것이고 단은 보완할 것이고. 근데 쉽진 않습니다. 이게 성격적인 내용이라. 그러나 내용들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성격적으로 대략 어떻더라. 정도는 파악을 하면 경계를 당했을 때, 또 일을 준비할 때에 있어서 참고해서 그에 맞게 내가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준비도 할 수 있고. 우리도 있죠? 우리도 스스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어요? 일기법이 있죠. 저번시간에도 제가 한 번 이야기했는데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일기를 쓰는 거예요. 일기를 많이 써보면 내가 ‘아, 이런 경계가 나에게 자주 오는구나. 아, 내가 이런 걸 만나면 이렇게 반응을 하는구나. 내가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사람 싫어하는구나. 아, 나는 준비를 잘 하는구나, 못하는구나.’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나요. 다양한 성격유형검사도 좋고,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여러분들의 성격 혹은 유형, 특성 이런 것들이 고정되어있습니까? 지금 한 번 딱 하면 끝이에요 그게? 우리 준오교우는 ENFP형이니까 앞으로 무조건 그렇게만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드러난 모습을 통해서 나를 확인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고정 될 필요는 없다. 우리 훈련법으로 공부하면 대종사님께서 3년만 있으면 다른 사람 된다고 하셨어요.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요? 무슨 형으로 가야해? 네, 저기 일원형으로 가야해요. 일원형으로. ENFP를 넘어서 일원형으로 가야죠. 그 전에 교당에 한 번 유행했던 내용이 있었죠? 피플스마트. 네 가지 유형가지고 했던, 저도 그 중 하나에 들어갔었는데 저는 ‘지시형’이라고 나왔었는데 그것을 보면 좋을 때는 지시형이라고 했다가, 또 불리할 땐 아니라고 하고 싶고 이럴 때도 있어요,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고 뭐 이렇게 여러 가지 나오더라구요. 다른 사람을 울릴 수도 있고, 너무 일적이고.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저는 처음 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의 나를 비교해보면, 그게 10년 넘었죠. 한 15년 전에 했었던 건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대종사님의 법을 공부하면서 달라져왔고, 저는 그 때 ‘지시형을 벗어나 일원형으로 가겠다!’ 그랬었는데 좀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성들도 거기에 활용은 하지만 매일 필요는 없다. 일원형으로 가야합니다. 우리는 변하는 존재다. 근데 우리 준오교우는 본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일도 그것에 맞게 잘 선택을 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죠? 내 재능과, 성격과 이런 것들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죠? 여러분들도 아마 취업을 준비하거나 혹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나 이런 것들이 그것이 맞다면 참 행복할겁니다. 그런데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다 던지고 새로 찾아야 해요? 맞지 않다고 본인이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안 그럴 수도 있어요. 물론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 그 고민을 하지 않고 누가 딱 주기를 바라고 알아서 딱 주기를 바라고 이것은 인과에 맞지 않습니다, 본인이 찾는 거예요. 상담을 해보면,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이렇게 상담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본인이 이미 알고 있는데 표현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전혀 찾아보지 않고 막연하게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서로 찾기가 참 어려워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가.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고 싶으세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제가 최근에 법륜스님 영상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영상 중에 이런 질문을 했어요. 한 청년인가 그런데, “왜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것인가요?” 하고 질문을 했더라고요.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것이다.’ 라는 것에 동의하세요? 이 사람은 동의가 안 되니까 질문을 했겠지. 그러면서 예를 들어주시더라고, “예를 들어볼게.” 하시면서. “꽃을 보고 ‘아~ 예쁘다, 꽃이 왜 이렇게 예쁘니? 꽃 너무 예쁘다.’ 이런 마음이 나면 꽃이 좋냐, 내가 좋냐?‘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누가 좋아요? 내가? 꽃은 안 좋아? 꽃도 좋아해~ ’아이 좋아~‘ 이렇게 한다고. 근데 꽃이니까 그렇지, 사람한테 해볼까요? 우리 하은이 너무 좋아~ 하은이 참 좋아~ 이러면 하은이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좀 바뀐 것 같지? 어떻게 돼요 그러면? 하은이가 좋아? 저는? 그럼 남을 위한다고 내가 좋다고 했는데 그럼 법륜 스님 말씀이 안 맞는 거예요? 사랑을 하는 게 좋아요 받는 게 좋아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사랑하는 게 좋아요 받는 게 좋아요? 대답하기 어렵습니까? 둘 다 좋아요. 맞습니다. 둘 다 좋아요. 뭐예요 이거는? 긍정에너지거든. 둘 다 좋은 거예요. 너 싫어! 그러면 나만 나빠요 쟤만 나빠요? 둘 다 나빠요. 왜? 부정 에너지거든. 그죠? 누가 더 좋냐,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둘 다 좋은 거예요.
대종사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저는 생각해봤거든요. ’남을 위해 사는 게 나를 위한 겁니까?‘ 우리는 무슨 관계로 되어있어요? 자리이타의 관계라고 했어요. 자리이타. 서로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서로 은혜를 주기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여러분이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은혜고 서로에게 좋은 거예요. 그게 은혜의 관계라고 그러셨거든요. 근데 만약에 둘의 관계가 은혜롭지 않아. 자리이타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해요? 회사에서,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회사한테는 좋은 것 같은데 나한테는 별로 이득이 없어요, 내 단물만 다 빨아먹는 것 같아 회사가, 박봉에, 별로 배우는 것도 없이 잡일만 하고 있어요. 나와요. 저는 그렇게 상담 온 사람 나오라고 했어요. 본인의 꿈이 있고, 본인의 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거든. 그것만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서로 자리이타가 돼야 해요. 근데 회사 입장에서 돈은 많이 주고 있는데 일을 너무 못해, 관계도 별로 안 좋아. 그러면 어차피 서로 은혜가 되는 관계니까 데리고 있어야 해요? 아니에요. 자르는 거죠 서로 은혜가 돼요. 자리이타의 관계가 돼야 해요.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해요 앞으로? 자리이타가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해요? 나만을 위하려는 생각을 갖고 살 것인가, 함께, 때로는 남을 위해서. 그 방향을 갖고 살 것인가. 어떤 게 더 나의 행복에 유리하다고요? 함께, 또는 남을 위해서. 그게 내 행복에 유리하다고요. 더 들어가면 부처님들은 어디까지 가요? ‘무아봉공’이죠. 나를 놓고 오직 공을 위해서, 대중을 위해서 사는 삶을 삽니다.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란 걸 당신들은 알기 때문에. 사실 그 계산도 없어요, 부처님은. 그냥 할 뿐이죠. 근데 그 삶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기가 어려워요. 우리가 무아봉공 하자고 하지만, “무아봉공 다 해라!” 공감할 사람 많이 없습니다. 왜? ‘무아’가 안 되어봤거든. ‘무아’가 되어보면 공을 위해 일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무아’가 안 돼봤어, 근데 무아봉공 하라고 하면 무아봉공해요? 왠지 나만 희생하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고 그러죠. 억지로 해보세요, 괴롭기만 해요. 근데 방향은 공을 위한 방향으로 잡으면 점점 여러분의 삶이, 또 마음이, 주변 인연들이 도와주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하게 된다. 이것도 인과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가 고민할 때, 그런 일을 찾아보세요, 많습니다. 너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출가하는 게 그렇다 생각하고 출가를 했는데, 꼭 출가가 아니어도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죠. 그 고민을 하고 사셔야 해요.
준오 교우는 지금 보니까, 준오 교우가 하는 일을 본인을 위해서만 그 재능을 쓰지 않고 교당에서도 쓰고 있어요. 지금. 아마 교당뿐만이 아니고, 부탁하면 잘 들어주는 것 같아요 보니까. 여러 군데서 보은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잘 하는 것. 기능, 재능, 실력 이런 것들을 나를 위해서만 쓰면 그게 정말 행복한 일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옛날에 어디선가 그 실험을 한 번 했대요. 돈을 일정량 주면서 계속 쓰게 하는 거예요, 매일. 그런데 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계속 쓰는 거야. 똑같은 돈을, 소비를 해야 해, 저축할 수 없어. 또 한 사람은 남을 위해서만 써야해. 계속 했대요. 어떻게 돼요? 처음에는 비슷해, 만족도가. 그런데 뒤로 갈수록 어떻게 돼요? 나를 위해서만 쓰는 사람은 만족도가 계속 떨어지더래, 그런데 남을 위해서 쓴 사람은 만족도가 계속 올라가더라. 여러분들 잠깐 살고 말 거 아니죠? 잠깐 몇 번 하고 살 거 아니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잠깐 일하고, 잠깐 마음 몇 번 쓰고 이렇게 살 거 아니잖아요. 계속 쓰고 살아야해,
내용 중에 하나 짚을 것이 있어서. ‘경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교리적으로 해석해보면 ‘스트레스가 경계다.’ 라고 했는데 일부는 맞는 말이죠? 여기서의 스트레스는 뭐예요? ‘역경’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경계죠. 그 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죠. 여러분들 좋은 일 있을 때 스트레스 받아요? 그건 스트레스 받는다는 표현 안 하죠? 그것도 경계거든. 좋은 경계죠? ‘순경’ 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스트레스보다는 뭐예요? 좋은 자극? 이렇게 표현 할까요? 자극이라는 표현으로 쓰면, 좋은 자극, 나쁜 자극,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Good? Bad? Not bad? 이렇게 할까? 그런 경계가 있을 수 있죠. 그런 경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경 역경 공경이 같이 있습니다. 순경,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일과 나쁜 일, 나에게 있어서. 원래는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입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이 많냐? 공경이 제일 많아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Not bad. 그냥 일상적인 것들. 그것을 가지고 경계다 뭐다 표현하지 않아요. 그냥 쭉 흘러가는 거죠. 그 중에 일부 몇 개가 Good, Bad가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막 불행하다고 하지만, 정말 나쁜 일이 그렇게 많냐? 해보면 별로 많지 않아요. 그럼 좋은 일이 그렇게 많냐? 그러면 또 그렇지도 않아요. 대부분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죠. 두드러져 보이죠. 그러면 그것만 보고 살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일상이 소중하다. 그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 아니겠어요? 지금 코로나 겪으면서 다 느끼고 있잖아. 맨날 나오는 말이 뭐예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그죠? 일 년 반 지나고 나니까 이제 철저하게 느끼잖아요. 그죠? 왜? 일상을 못 누리니까. 당연하게 느꼈던 것들. 그게 그냥 Not bad였는데, 지금 그걸 못하니까 너무 힘들잖아요. 그죠? 근데 그것을 감사하게 항상 느꼈던 사람은 이런 상황이 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어요. 그죠? 툭 튀어나온 것만 보고 살지 마시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돌아보세요. 그러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내용 중에, 본인에게 과제를 두 가지를 던졌어요. 성장 과제를 이야기하면서 벼락치기 습관과 고민을 잘 말하지 않는 것. 이야기 했죠. 벼락치기 습관이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손 들어봐요. 나는 살면서 벼락치기를 한 번도 안 해봤어. 아마 없을 거예요. 저도 해봤고, 자주 하죠? 습관이 될 정도로, 맨날 벼락치기만 하면 어떻게 돼요? 큰일을 못해요. 작은 일, 순발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하지만 큰일은 못한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하는데 몇 달 전부터 하지. 오늘 5월 8일이야, 5월 9일 날 그 일이 있으니까 5월 8일부터 준비하자! 이렇게 하는 회사가 있습니까? 없죠. 미리 준비를 하죠. 큰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근데 작은 일일수록 순발력으로 가능해요. 그런데 큰일은 순발력으로만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때로는 순발력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래. “나는 준비를 못하면 절대 일을 못해요. 그래서 갑자기 일을 주면 못해요.” 하고 버티는 사람이 있어. 그래야 해요? 할 수 있어야 해요. 얼마만큼? 내 역량만큼. 내 역량만큼 하면 되는 거예요. 도망간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거든. 때로는 그냥 벼락치기로 일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겹쳐서 오는 일도 많죠. 그 때는 할 수 있어야 해요. “대종사님께서 미리준비를 잘 하라고 하셨는데 미리준비가 안되었으니 하면 안 되지.” 이것은 뭐예요? 법에 매인 거죠. 순발력으로 해야 하는 일 벼락치기로 해야 하는 일이 또 있다. 그 때는 그 일 그 일 일심으로 해서 해결하면 돼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큰일을 하고 싶다면 무슨 습관을 길들여 가야해? 준비하는 습관을 길들여가라. 그래야 큰일을 맡길 수 있어요.
그리고 고민을 말하지 않는 것. 어려울 때 우리 준오 교우는 사실 이렇게 살아와서 괜찮았다.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럼 그렇게 살아도 돼요. 큰 문제 없었다잖아? 큰 문제가 있었으면 “아 바꿔야지!” 이랬을텐데 큰 문제가 없어가지고, 근데 성장과제로 삼았으니까 이것도 돌아봐야죠. 그래서 법의 지자를 가까이하고, 지도를 받는다면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해가 되진 않을 거예요. 교무님의 도움을 만나가지고. 해를 주는 교무님이 모르겠네. 있을 수도 있지만은 암튼 주로 은혜가 될 겁니다. 여러분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은혜만 줘요? 아니거든. 교무님을 만나면 은혜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법의 지자를 가까이 하시면 좋겠다 싶고. 꼭 어려운 주제를 들고 오지 않아도 돼요. 저나 박세훈 교무님이나 바쁘지 않습니다. 한가해요. 아주 한가합니다. 오셔도 뭐라 하지 않을테니까, “왜 왔어!” 이렇게 안 할테니까 자주 오시고, 오면 주려고 캡슐커피머신도 갖다놓고 했는데, 얘가 휴업상태가 오래되고 있어요 지금. 녹차도 냄새가 날아가고 있어. 차 한 잔 하러 오셔도 된다.
우리 준오 교우가 뒤에 이것만 보고 넘어가렵니다. 신이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 신이 있어요? 없어요? 다 동의하지 않는데 신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신은 어떤 일을 하는 존재입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이죠. 운영하는 사람이죠. 창조해서 운영하는 사람. 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사람을 뭐라고 해요? 창업자라고 하죠? 그 회사의 신은 누구에요? 창업자죠. 이 세상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이 세상의 창업자. 신이죠. 여러분들의 창업자는 누구에요? 여러분 자신이죠.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나의 조물주는 나다. 나의 신은 누구다? 나다. 자‘신’. 거기서 신은 물론 몸 신(身) 자를 썼지만, 신 신(神)자를 써도 될 것 같아요. 그죠? 귀신 신자를. 이것은 뭐예요. 내 조물주가 나다. 근본적으로 나는 부처라는 존재죠. 다만 지금 그것을 행으로, 생각한대로. 또는 생각을 못할 수도 있고. 온전하게 못 내고 있기 때문이지 사실은 나는 내가 만들어왔다. 준오 교우는 나만 믿고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 나를 온전하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항상 옳은 판단을 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고, 좌절하지 않고, 힘이 있고, 그런 존재입니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건방진 사람이죠. 그런 사람 있어요? 100%인 사람 있어요? 100%를 향해 나아갈 뿐이죠. 다만 근본적으로 이미 우리는 100%다.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매달릴 것은 없지만 본인이 그런 존재고 또 이 우주가 나와 둘이 아니어서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그걸 이해하시고 그 우주의 질서, 우주의 진리. 일원상의 진리를 체득해서 내 안으로 가져와서 내 삶을, 내 주위를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을 더 빛나게 하면 그게 내가 바로 신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신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말씀을 드렸고요 마지막으로 우리 준오 교우가 처음 박광재 교무님을 만났다고 했는데 참 따뜻한 교무님인데 잘 만났어요. 처음에. 그래서 이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나 싶고요. 또 안암교당에 다니면서 서원을 세우고, ‘내 재능을 대중적인 원불교 교화 컨텐츠를 만들어 기여를 하겠다.’ 이렇게 서원을 세웠다고 하니까 참 대단하고 본인이 찾아오고. 큰 서원이 있으니까 찾아올 수 있는 거거든요. 내가 지금 알지 못하지만 나도 모르게 끌려오는 거예요 서원이 있으면. 그래서 재능을 서원으로 돌려서, 연결시켜서 가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사람을 누가 안 도와주겠나 싶어요. 아마 주위에서 많이 도와줄 것이고 본인이 노력하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도와줄 것이고 잘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교당에서 하고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는 마음공부도 잘 이어가서 늘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내용을 살펴봤고요, 혹시 이제 제가 오늘 강연을 통해서 얘기했던 내용 중에 질문이 있거나 감상이 있으면 이야기해도 좋고.
(문)
신대룡 교우님: 법륜스님 말씀 하시면서 “너를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라고 하셨는데, 상대방의 의견, 사고, 생각 차이가 있어서 나는 너를 위하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못 느꼈을 경우에는 계속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답)
전성욱 교무님: 내가 위하는 마음을 냈는데 상대방이 모른다. 그런데 계속 해야 하느냐?
(문)
신대룡 교우님: 만약 했다면 그런 공덕은 나만 좋아지는 건지, 아니면 그와 별개로 상대방도 또 좋아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답)
전성욱 교무님: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지금의 행동이 그 사람이 꼭 알아야하는 일이에요? 알아야 하는 일이면 어떻게 해요? 헤야겠죠. 그 사람이 모르면 누구 잘못이에요? 모르는 사람 잘못인가?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너는 몰라! 네 잘못이 크도다!’ 그래요? 내 잘못이지. 내가 충분히 알아듣지 못하게 한 거죠. 그런 것이 있어요. 말을 막 빨리하는 사람이 있어. 막 했어 말을. ‘알겠지?’ 근데 모르겠대. 상대방이. 그럼 누구 잘못이에요? 말을 빨린 한 사람 잘못이지. 그죠? 근데 왜 못 알아듣냐 뭐라 해요. 알아듣게 해야지. 근데 내가 만약에 뭔가 불공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꼭 알아야 할 것이면 어떻게 해요? 알도록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근데 내가 불공하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다만, 내가 불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방향이 뭐에요? 그 사람을 위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한다는 것이죠. 그 목적만 달하면 되죠.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 몰랐을 때 뭐라고 해요? ‘음덕’이라고 하죠. 알았을 때는 드러난 덕이죠. 어떤 것이 더 크다고 했어요? 대종사님께서, 음덕이 더 크다고 하셨죠. 내가 불공을 하고 있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어요.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해요 그래서? ‘제도의 방편을 모르게 한다.’ 그러셨거든. 모르게 한다 그러셨어요. 다만 이제 아까 질문 자체를 보면 이렇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의도를 조금 바꾸면 상대방이 전혀 몰라주는데 내가 굳이 그렇게 계속 할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상대방이 전혀 모를 것 같고, 내가 하는 것이 은혜가 안 될 것 같으면 멈춰야겠죠. 은혜가 안 될 것 같으면. 그걸 계속 하고 있는 것을 뭐라고 해요? 어리석은 사람. 은혜가 안 되는데 계속 하고 있어. 어리석은 사람이죠. 방법을 당연히 바꿔야죠. 그리고 그것이 은혜가 된다면 그대로 가는 것이고, 은혜가 안 된다면 당연히 멈추고 또 그 사람이 좋게 하는 마음이 계속 있다면 바꿔서 하고, 그렇게 가야겠죠. 은혜가 되냐 안 되냐를 포인트로 잡고 불공을 하시면 될 것 같다.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와우 현진 교우님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타이핑의 정성이 소현진 교우님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