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재일대한 오사카교회는 1920년대에 접어들자 수많은 조선의 무산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후쿠오카.히로시마.오사카.고베 등지의 공업단지로 이주해 왔다. 그 가운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던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힘든 타향살이 가운데 신앙은 그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다. 마침 고베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던 유학생 김우현과 박상동은 1921년5월 오사카 지역에 한인 동포들이 많이 이주해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도 목회사역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마침 방적회사의 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의생 자매와 신남수 자매 등이 신앙적으로 역사적인 만남을 가져 오사카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1922년에는 히가시나리구 오바세쵸의 김성하 주택의 2층을 전도소로 사용하여 선교활동을 개시했다. 김이곤목사가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가운데 1922년에 약 10여 명이 모여 본격적인 조직교회로 발돋움한다.
1923년에는 공간이 협소해 램버스여학원 안의 작은 방 안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김이곤 목사와 박상동 신학생이 이끌고 있던 때의 예배 출석 인원은 평균 17~18명이었는데 그당시 오사카의 조선인 총수는 약4만 명에 달했기 때문에 김우현 신학생은 ”기독 신보”에 재일동포 전도의 필요성과 후원을 호소했다. 1924년에는 매주 평균20~30명이 모일 정도로 성장했고 1926년에는 성공회 풀학원 임대를 벗어나 모모타니쵸의 2층 건물로 옮겨 입당예배를 드렸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하시니 먹고 다 베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누가복음9: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