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보면 성찬식은 예수님이 무교절 첫날, 즉 유월절에 유월절 식사를 나누시며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성찬식을 기원으로 주님의 대속적 죽음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예식으로 지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68문의 답에서 말하듯 “그리스도가 명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 그분의 죽으심을 보여주는 신약의 성례”입니다.
문제는 주님의 죽으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념할 것인가입니다. 더 나아가 성찬의 본질이 과연 주님의 죽음에 국한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교회는 오늘날 성찬식을 주일에 시행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금요일”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일”을 성찬의 날로 사도들이 선택했다는 사실은, 성찬을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관점으로만 보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반증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나타난 식사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복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의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땅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먹을거리로 주신 것입니다. 음식은 사람에게 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사람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과 살을 기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하실 수 있는데, 특별히 식사로 한 것은 주님이 베푸신 성찬이 바로 그런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양무리를 먹이시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먹이실 뿐 아니라 마시게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행하신 첫 표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리에게 질 좋은 포도주로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도 제자들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음식을 잡수실 때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찬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들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찬은 주님이 베푸신 식사입니다. 그러므로 식사는 성찬의 본질입니다. 성찬은 말 그대로 “거룩한 식사”를 의미합니다. 성찬을 지칭하는 원래 문구는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입니다. 왕이신 주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식사가 바로 성찬입니다.
성찬의 본질을 식사로 본다면, 지금과 같은 성찬식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져야 합니다. 식사는 근본적으로 기쁘고 복된 시간입니다. 성찬식은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는 시간이기보다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에게 영적 음식을 나눠주는 시간입니다. 성찬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새 양식을 먹으며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입니다.
둘째, 성찬은 성도의 교제입니다. 사도행전 2:42절을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떡을 떼는 것”과 “교제하는 것”이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식사는 교제를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식사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식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차려주신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한 식구입니다. 그런 점에서 “식사 공동체” 혹은 “밥상 공동체”입니다.
셋째, 성찬은 언약의 식사입니다. 성찬은 기본적으로 언약적 성격을 띱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가리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심으로 성찬이 언약의 식사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바울과 누가는 잔과 관련하여 “새 언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5절을 보면“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도 동일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20절을 보면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과 누가는 새 언약을 말하는데 이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을 상기하게 합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이룹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성취요, 옛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 모순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안에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항상 언약으로 약속해 오셨고, 이 언약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가리키고 확정하는 표지(무지개, 할례, 유월절, 세례, 성찬)와 식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언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행할 때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그의 백성(자녀)이 되었다는 내용을 상기하고 고백함으로 그 예식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넷째, 성찬은 잔치입니다. 빵은 매일 먹는 일용할 양식이지만, 포도주는 일상적으로 먹는 음료수가 아닙니다. 따라서 성찬은 특별한 식사, 즉 잔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찬이 잔치라면 곧 기쁨의 식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잔치에서 나누는 기쁨은 참여한 사람들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 기쁨은 근본적으로 잔치를 베푼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성찬은 주님이 베푸신 잔치이므로 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님의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잔치”에 많이 비유됩니다. 요한계시록 19:9절을 보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성찬은 마지막 날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현재에 미리 맛보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성찬은 화목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식사, 즉 성찬이야말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어떻게 화목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가시적으로 증거합니다. 그렇기에 성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형제들에 대한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찬은 우리만의 식사, 잔치일 수 없습니다. 교제일 수 없습니다.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택하신 백성들이 이 자리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복되고 기쁜 잔치 소식을 세상에 전하고, 그들이 이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은 성찬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리는 자들만 할 수 있습니다.
성찬은 “소망의 식사”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소망 가운데서 그 식사의 배부름과 기쁨을 지금 여기에서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찬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띱니다. 믿음으로 이 양식을 먹는 사람은 미래의 완전한 식사를 소망하게 되고, 소망 가운데서 이 식사를 바라보는 사람은 믿음으로 생명의 양식을 먹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