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대기업들에게 부과한 종합부동산세를 일부 환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적지 않은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벌써부터 '환급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세금을 과다부과했다는 오해를 뒤집어 쓴 국세청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국세청은 현행 법 규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대법 판결후 '세금을 못 걷어 안달난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답답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 12일 KT와 한국전력, 신세계, 국민은행 등 25개 기업이 각 관할 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부동산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한 2심을 뒤집고(파기환송)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 측은 국세청이 마땅히 공제받아야 할 부분까지 종부세를 부과하면서 세부담이 부당하게 늘어났다고 주장했으며 국세청은 개정된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종부세를 과세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중심에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란 것이 있다. 이를 두고 원고(기업)와 피고(국세청)의 시각차이가 생기면서 결국 거액의 세금을 둘러싼 소송전이 비화된 것이다.
□ '공정시장가액비율' =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종부세 과세체계를 먼저 뜯어볼 필요가 있다.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 억제와 부동산을 과다 보유한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 위해 2005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현재 개인별 합산시 6억원(1세대 1주택자는 9억원)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부과대상이다. 토지의 경우 종합합산토지는 5억, 별도합산토지는 80억을 초과하는 경우 종부세 과세 대상이다.
종부세가 국세로 분류되기 때문에 납세자 입장에서는 각 지자체에서 부과하는 지방세인 재산세와 함께 이중 부담을 지는 격이 된다. 이중과세 소지를 없애기 위해 여러 장치를 가미한 제도가 현재 운영 중에 있다.
가액 16억원의 주택 두 채를 보유한 A씨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A씨는 지자체로부터 재산세를 먼저 부과받는다. 이후 종부세는 6억원을 초과한 나머지 10억원에 대해서 부과하게 되는데, 이 때 납세자에 대해 과도한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세표준(10억원)에 80%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부과한다.
이 80%라는 비율이 바로 '공정시장가액'이다. 공정시장가액이 도입되기 2009년 이전 주택이나 토지의 가격이 하락해도 종부세 과표적용비율은 매년 5%씩 기계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부동산 가격은 자꾸 하락해 재산가치는 떨어지고 있지만 종부세를 부과하는 재산에 대한 비율은 매년 늘어나면서 내야 할 세금이 많아지는 불합리한 측면을 막기 위해 정부는 2009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60~100% 범위에서 정부가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 시행령 개정 취지 두고 '평행선' = 정부는 공정시장가액 제도를 도입하면서 관련 시행령도 함께 개정했다. 과거에는 과세표준적용비율(80%)이란 명칭으로 6억원을 초과한 재산 중 80%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부과했지만 재산세는 100%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제했다.
A씨 경우라면 종부세가 부과되는 10억원 중 8억원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납부하면 되지만 재산세 공제는 10억원에 대해서 해 준 것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종부세를 납부하지 않은 나머지 2억원에 대해서도 재산세를 공제해주게 된 셈이다.
이에 기획재정부에서는 종부세를 내지 않는 부분까지 재산세를 공제하는 등 과다공제되는 부분이 있다며 2009년 시행령을 개정, 종부세가 부과되는 80%에 대해서만 재산세를 공제해주도록 했다.
국세청은 시행령이 개정된데 따라 종부세 과세를 했지만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은 시행령 개정 전보다 적게 공제를 받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며(이중과세) 환급을 요구했던 것이다.
2011년 6월에 있었던 1심 판결에서는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며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놓았지만 같은해 12월 2심에서는 시행령 개정은 과대공제되는 불합리를 개선한 것이라며 국세청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대법원이 2심의 판결을 깨고 다시 사건을 돌려보내면서 국세청은 비상이 걸렸다.
수 년에 걸쳐 100억원 가량의 종부세를 부과받았던 한국전력의 경우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르면 76억5000만원만 납부해도 된다. 다른 기업들도 케이스에 따라 각각 수십억원의 종부세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국세청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소송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시행령을 개정한 기획재정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답답한 가슴만 치고 있다. 개정은 기재부가, 집행은 국세청이 했음에도 소송 주체는 국세청이 되면서 마치 국세청이 세금을 잘못 부과했다는 식으로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세청이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기업들의 대규모 환급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임에 따라 가뜩이나 부족한 세수상황에서 돌려막아야 할 세수(종부세 환급액)가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국세청으로서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원고들의 주장은 마트에서 1만원에 팔고 있는 물건을 80% 할인해서 8000원에 사놓고 환불해달라며 1만원을 내놓으라는 것과 같다"며 "국세청은 법대로 했을 뿐인데 원고 등이 시행령 개정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우선 판결문을 검토한 뒤 국세청과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청에서는 법대로 집행했고 법원에서는 추가공제를 해달라는 것이다. 국세청은 입법 취지에 맞게 법을 집행했다"며 "우선 판결문을 검토하면서 국세청과 적극 대응하겠다. 시행령 개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