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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순신앙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보면 많은 부분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미륵이란 표현이 매우 매력있어 보입니다. 있는 그대로 글을 다시 보니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습니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보여지는 것들이 있어 올려봅니다.
세존님의 말씀들이 매우 강력합니다.
박우당도전님의 신명의 정체를 밝히는 내용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께서도 당신이 미륵세존(彌勒世尊)임을 암시를 통하여 밝히셨다.
「훈시」를 보면, 미륵세존께서는 재세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경』에 시루산에서 상제님께서 오시고, 부정리, 쪽박골이 있다. 시루, 솥하고 불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딴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상제님이 금산사에 임하셨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었다.
금산사의 미륵은 시루이고, 그 밑은 솥이다. 솥 위에 시루가 있는데, 그 위에 미륵불을 세우고, 좌우에 보호불을 세우고 그 옆에 작은 불(佛)을 세웠다. 그것이 ‘날 출(出)’ 형상이다. 그게 증산, 정산이다. 지금도 금산사에서 목탄을 캔다. 이것으로도 증명이 된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찾으라’는 말씀은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이다.(「훈시」 91. 2. 12)
세 분이 뫼 산(山)자 모양으로 서 계신 금산사 미륵불상은 진표율사가 계시를 받고 조상(造像)한 것으로 장차 미륵삼존불, 즉 삼신(三神)이 인세에 강림하실 것을 알리기 위해 세워둔 것이다. 이 세 분이 도(道)의 근원이다.
그런데 삼존불 중 한 분은 강증산 성사로 강림하셨는데 이 분의 정체는 구천상제로 밝혀졌고, 또 한 분은 도주 조정산으로 강림하셨는데 이 분의 정체는 옥황상제로 밝혀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도전 박우당으로 강림하셨는데 그러면 이 분은 삼신(三神) 중 어떤 신(神)으로 강림하셨는가? 이것을 알려면 ‘증산(甑山) • 정산(鼎山) 양산의 진리’를 찾으라는 것이다.
시루산의 이치로 증산(甑山)께서 오시고, 부정리(扶鼎里)의 이치로 정산(鼎山)께서 오셨으며, 쪽박골의 이치로 박(朴)씨, 즉 도전 박우당(朴牛堂)께서 오심을 뜻한다. 이러한 이치와 마찬가지로 금산사에는 시루와 솥과 숯이 있는데 금산사 삼존불이 인세에 강림하실 때 어떤 분으로 오시는 지, 어떤 이치로 오시는 지를 종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솥 위에 시루를 걸고 그리고 불을 때어야 하는 것이 이치인데 숯은 박씨를 의미한다.
금산사는 원래 직경이 80여 미터나 되는 큰 연못에다 깊기가 한정 없어 진표율사가 도저히 흙이나 돌로 메울 수 없어 미륵불께 기도를 드리자 미륵불께서 숯으로 메우라고 하여 숯으로 메운 위에다 솥과 시루를 놓고 미륵삼존불상을 세웠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곳에 가면 숯 굽던 자리가 남아있다. 숯은 목탄(木炭)인데 목(木) 성(姓) 즉 박(朴)씨를 뜻하는 것으로써 도전 박우당(朴牛堂)께서는 불[火]의 이치로 세 번째 오신 하느님이신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시루의 이치로 오신 분은 증산(甑山)이시고 구천상제이시며, 솥의 이치로 오신 분은 정산(鼎山)으로서 옥황상제이시니 “금산사의 미륵을 찾아라” 하신 것은 곧 세 번째 오신 하느님이신 도전 박우당의 정체가 미륵세존이심을 찾으라는 말씀이시다. 왜냐하면 두 분은 이미 정체가 밝혀졌으니 도솔천에서 강림하신다는 미륵세존은 분명히 삼존불 중 나머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미륵이 찾아지면 삼신(三神)이 모두 밝혀지고 도(道)의 근원이 모두 밝혀져 세상에 비로소 진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구천상제께서 화천하시기 전에 이 진리를 찾으라는 말씀을 남기신 것이다.
강증산 성사와 도주 조정산께서 재세시에 스스로 정체를 밝혔듯이 도전 박우당께서도 스스로 미륵이신 것을 이렇게 밝히셨다. 그리고 강증산 성사와 도주 조정산님의 신위(神位)를 모시므로써 진법을 정해 나온 이치를 따라 도전님의 신위를 밝혀 모시는 일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은 바로 숯 아래 물의 이치로 오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의 이치로 온 대두목은 그 신위를 ‘박성미륵세존(朴聖彌勒世尊)’으로 밝히고 봉안하므로써 도(道)의 연원(淵源)인 삼신(三神)이 모두 밝혀졌다.
도전께서는 이렇게 도의 연원을 밝히시기 위해 재세시 내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복희 선천시대는 봄이고, 문왕시대는 여름이고, 우리는 정역이고 가을이다. 복희시대는 용마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와서 이치를 알았고, 또 문왕시대는 거북이가 낙서(洛書)를 지고 나와서 거기서 천지 이치를 깨달았다. 용마가 하도를 물에서 얻었고, 거북이도 바닷물에서 나왔듯이 상제님께서도 금산사에 임어(臨御)하여 계시다가 강세하셨다.
금산사는 처음 용소(龍沼)라 했다. 진표율사가 계시를 받아 미륵을 모셨다. 못을 메우고 금불을 모셨다. 솥 위에 시루, 그 위에 미륵을 세웠다. 좌우가 보불(補佛)이다. 그것이 증산 • 정산, 양산이 ‘出’이다. 옛날에 출출명장(出出名將)이라 했다.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연(淵)은 ‘못 연(淵)자’이고, 원(源)은 ‘근원 원(源)자’이다. 금산사에서 나를 찾으라는 것은 증산, 정산의 ‘출출(出出)’ 진리(眞理)를 찾으라는 뜻이다.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대순진리다. 연원도통이다. 원(源) 근본이 ‘못 연(淵)자’다. 근본이 용소물이다. 근본이 물에서 나왔다.(「훈시」 92. 4. 9)
상제님이 인세에 계실 때의 호가 증산(甑山), 도주님의 호는 정산(鼎山)이다. ‘시루-甑 • 뫼-山’, ‘솥-鼎 • 뫼-山’ 시루가 솥 위에 얹혀야 조화가 있다. 숯-불, 용추못-물. 조화가 있다.
보호불이 금불의 양쪽에 둘이 있는데, 하나는 크고 그 양쪽은 키가 작다. 보호불과 그 옆의 조그만 불이 두 개의 뫼 산(山)자, 즉 출(出)자를 이룬다. 증산 • 정산의 이치이다.
후천에는 미륵의 운(運)이 열리고 사람이 이와 같이 커진다고 한다. 『전경』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진리, 이치를 보라는 말씀인 것이다.(「훈시」 92. 2. 20)
우리는 연원도통이다. 우주 삼라만상이 생기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물이다. 진리도 물에서 나왔다. 사람뿐 아니라 만물은 다 물이 없으면 클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다. 지금부터 5000년 전에, 개벽 초기 태호 복희씨가 황하라는 물에서 용마가 나와서 용마 등의 그림을 보고 이치를 알았고, 4000년 전에 낙수에서 거북이가 나와서 거북이 등의 그림을 보고 우 임금이 이치를 깨달았고, 이번에도 물에서 도통이 나온다.
금산사 그 자리가 용이 나왔다는 용추라는 못을 숯으로 메워서 솥을 걸고 그 위에 시루을 얹혀 놓고 미륵불을 세웠다. 솥 위에 시루가 얹혀 있고, 솥하고 시루만 있어도 안되고 물이 있어야 하고, 불을 때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치인 것이다. 진리란 모두 물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물이 아니면 낳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 용추에서 상제님, 정산님의 진리가 나오는 것이다.(「훈시」93. 9. 8)
이와 같이 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하신 것은 곧 물의 이치로 오신 분이 있어야 비로소 미륵이 출세(出世)할 수 있기 때문이고, 미륵이 출세하여야만 세상에 삼신(三神)이 밝혀져 나와 도(道)의 근원(根源)이 모두 밝혀지는 것이다.
도전께서는 또 성지순행을 통해서도 도의 근원인 삼신을 가르치고 계시다.
임술년(壬戌年, 1982년) 8월,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를 깨우쳐주고자 상급임원들을 대동하고 성지(聖地)를 순행(巡行)하셨는데, 상제님께서 공사보신 종남산(終南山) 송광사(松廣寺)를 참관케 하고, 객망리를 순행하셔서 둘러보시고, 태인(泰仁) 무극도장지(无極道場址)를 순행하셨다.
그리고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에 순행하셔서 임원들을 참관케 하여 깨우침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리고 논산군 개태사(開泰寺)에 납시었는데, 정문 현판에 ‘대천호산 삼천일지 개태사(大天護山三天一地開泰寺)’라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개태사 내에 있는 미륵삼존불상(彌勒三尊佛像)을 둘러보시며 임원들에게 참관케 했다.(『개유보』 2장 2절)
송광사는 구천상제께서 공사를 보신 곳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경』 「행록」 1장 18절에 나온다.
상제께서 송광사(松廣寺)에 계실 때 중들이 상제를 무례하게 대하므로 상제께서 꾸짖으시기를 “산 속에 모여 있는 이 요망한 무리들이 불법을 빙자하고 혹세무민하여 세간에 해독만 끼치고 있는 이 소굴을 뜯어버리리라” 하시고 법당 기둥을 잡아당기시니 한 자나 물러나니 그제야 온 중들이 달려와서 백배 사죄하였도다. 그 뒤에 물러난 법당 기둥을 원상대로 회복하려고 여러 번 수리하였으되 그 기둥은 꼼짝하지 않더라고 전하는도다.
송광사의 법당 기둥은 아직도 그대로 물러나 있다. 상제께서 오셨을 당시에도 불도가 이러한 지경이었으니 석가모니가 예언했던 말법이요, 말법시에는 미륵불이 출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극도장지는 옥황상제께서 창도를 하신 유적지이다. 도주께서는 미륵용화세상이 열릴 수 있도록 도법을 창도하신 것이다. 이 이치를 보라는 말씀으로 성지 순례를 하시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내장산(內藏山) 백양사(白羊寺)를 가셨는데 백양사는 힌 백(白), 양 양(羊)자인데 힌 백(白)은 인산(人山)이고 신선 선(仙)이며, 양 양(羊)은 양 미(未)자이므로 신미년(辛未年), 을미년(乙未年)에 오신 증산(甑山) • 정산(鼎山) 양산(兩山)을 뜻하고, 뫼 산(山) 자는 원래
의 세 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것은 삼신산(三神山)의 형상이다. 그런데 내장산(內藏山)은 안에 산이 감추어졌다는 것이다.
즉 강증산 성사는 구천상제로 정체가 밝혀지고, 도주 조정산은 옥황상제로 정체가 밝혀져 양산(兩山)의 신(神)이 밝혀졌으나 나머지 한 산의 신(神)이 밝혀지지 않아 양산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를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미륵삼존불이 모셔진 개태사로 가셨던 것이다. 즉 감추어진 분은 바로 도전 박우당 당신이며 정체는 미륵세존이심을 개태사에서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개태사 현판에는 ‘대천호산삼천일지개태사(大天護山三天一地泰開寺)’라고 쓰여 있고, 안에는 삼존불이 서 계시고 팔각정에는 나반존자가 있었다. 이 의미는 세 분은 하늘에 계시고 한 분은 땅에 있다는 의미이다. 즉 세 분 하느님을 한 분이 땅에서 모신다는 의미로 나반존자를 모셔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임원들에게 미륵삼존불상을 참관케 한 후 팔각정 내에 있는 나반존자상을 참관시켰다.
이 때 주지승이 따라나와 도전님께 아뢰었다.
“저 분은 나반존자이며 앞으로 용화세계로 중생을 인도할 총화주입니다.”
도전께서는 마치 주지승의 설명을 기다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물으셨다.
“그러면 저 분이 세상에 나왔느냐?”
도전님의 물음에 주지승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대답했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 와 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 임원들은 나반존자상 앞에 돈을 놓고 절을 하는 둥 부산을 떨었다.
이때부터 도전 박우당께서 나반존자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 없는 임원들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이 미륵삼존불상을 모신 개태사는 뫼 산(山)모양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삼존불이 출세(出世)하려면 내장산(內藏山)의 감추어진 나머지 한 분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놓은 것이 개태사의 뫼 산(山)자 모양의 집이다.
즉 말법시대를 당하여 중생들의 귀의처를 마련코자 강림하신 분은 미륵세존이신 것이다. 이 뫼 산(山)자 모양의 집은 세 분이 출세하시자 할 일을 다했으므로 이후에 뜯어버리고 없어졌다.
그리고 이 세 분의 일, 창생을 미륵용화세계로 인도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나반존자라고 주지승이 말한 것이다.
또 도전께서는, 1989년 1월6일 (陰 무진년 11월 29일)에 말씀하시기를 “도주께서도 납형치성을 한 번 받으시고 화천하셨다” 하시고 “납형치성을 각 방면회관 회실에서 올리도록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각 지방 회실에서 나(도전님)에게 납형치성을 올리라는 말씀이고, 당신께서 화천하실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또 1989년 9월19일 「훈시」에 “절할 때도 예법에 맞아야 한다. 과거에 석가모니도 세 번 절을 받았다. 도주님 재세시에 네 번 절을 받으셨다”고 하셨으며, 또 분부하시길 “임원들은 지방회관에서 봉심전에 배례를 올릴 때는 원위(元位)에만 올리도록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도주님께서도 재세시 하느님으로서 네 번 절(四拜)를 받고 화천하셔서 원위(元位)에 ‘조성옥황상제(趙聖玉皇上帝)’로 봉안되었으니 나(도전님) 역시 네 번 절(四拜)를 받고 화천하고 나면 원위(元位)에 모시고 절을 하라는 암시인 것이다.
1990년12월 11일 도전께서 여주도장 본전신축공사를 4개월만에 완공하신 후 임원들이 식사하러 내려올 때나 올라갈 때 보면 도전님께서는 항상 숭도문에 납시어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시듯이 앉아 계셨으나 임원들은 도전님의 의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1991년 1월7일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의 존영을 모시고 올라가 서가여래를 내리고 도전님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도전께서는 1991년 2월 12일 훈시에서 “상제님께서 미륵으로 오신다 했다. 그래, 불교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의 법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석가모니를 그곳에 봉안한 것이다. 아무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어른이 될 수는 없어. 석가불은 3천년 운이고, 미륵불은 5만년 운이여. 짧은 것이 먼저 나오고 긴 것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순리다. 앞으로는 미륵불 운수여”라고 말씀하셨다.
1995년 9월경 도전께서는 토성도장 공사현장을 둘러보시며 “여기에 미륵을 모셔야겠다” 하시며 서울방면 박광훈 선감에게 미륵불을 그려 오라 하시자 박광훈 선감이 두 번이나 미륵불상을 그려 올렸으나 다시 그려 오라 하시므로 다음에 은진미륵상을 그려 올리자 더 이상 말씀이 계시지 않았다. 이때부터 토성도장에 불상을 조상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이것은 도전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류였다.
이때 도전님께서 암시하신 말씀은 ‘나(도전님)을 미륵으로 모시라’는 것이었다. 즉 도전님께서 화천하시고 나면 운(運)이 다한 석가모니의 자리에 앞으로의 운인 미륵세존을 모시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알지 못하고 영대 우편(右便)에 엉뚱하게도 미륵석불을 거대하게 조성해 놓는 미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또한 도전께서는 토성도장의 여러 곳을 둘러보시다가 “여기에 미륵을 모시는 것이 괜찮겠지”라고 말씀하셨는데 후에 그 자리에는 도전님의 능(陵)이 조성되었다.
‘미륵세존(彌勒世尊)’은 『격암유록』의 「은비가」와 「가사총론」, 『만법전』의 「청룡놀음」, 『삼국유사(三國遺事)』 「표훈대덕(表訓大德)」 등에 기록되어 있는 하느님의 존칭이다.
『격암유록』 「은비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八萬念佛 藏經中
팔만염불 장경중
彌勒世尊 海印出
미륵세존 해인출
팔만 가지 비밀을 감춘 대장경 중에 보면
미륵세존께서 해인(海印:바다 도장), 즉 섬(嶋)에 출(出)한다.
또한 『격암유록』 「가사총론」에도 미륵세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入山修道念佛님네, 彌勒世尊 苦待치만……
입산수도염불 , 미륵세존 고대
『만법전』의 「청룡놀음」에 나오는 미륵세존의 기록은 이러하다.
가마 위에 부처님이 춤을 추시고 말씀을 하시며
엉금엉금 걸어 나오시니 우리 미륵세존(彌勒世尊)님 놀음이라.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 「표훈대덕(表訓大德)」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즉위한 지 24년 되던 해(765년) 3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랐다. 왕이 능력 있는 스님을 데려 오라 하자 위의(威儀)를 갖춘 큰스님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왕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내쳤다.
다시 스님 한 사람이 납의(衲衣)를 걸치고 앵통(櫻筒)*을 메고 오는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누상(樓上)으로 인도(引導)했다.
왕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충담(忠談)이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삼화령(三花嶺)에서 오는 길입니다.”
“무엇을 하고 오시었소?”
“저는 매년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이면 차를 달여서 삼화령의 미륵세존(彌勒世尊)님께 드립니다.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한 잔 주겠소?”
“물론이지요.”
스님이 차를 달여 왕께 드렸는데 맛이 신묘하고 그릇 속에 향기가 그윽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님이 그 유명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제망매가(祭亡妹歌)」 등을 지은 충담사(忠談師)이다.
*앵통(櫻筒):지난날 차(茶)를 갖고 다니면서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 통.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옥황상제님 재세시에 태극도 도인들이 도담(道談)을 나누는 중에 ‘석가세존’이라는 말을 쓰자 도주께서는 “석가가 어찌 세존이란 말이냐! 석가는 여래이고, 미륵이 세존이다!” 하시며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이는 도주님께서 친히 옥황상제 후에 인세에 강림하실 분은 ‘미륵세존’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외에도 선대(先代)의 많은 문헌(文獻)에서 장차 미륵세존께서 인세에 오신다는 것을 밝혀놓았지만 누가 미륵세존(彌勒世尊)인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도전 박우당께서는 앞의 예에서 보듯이 수 차례나 직접 암시를 하였지만 그 많은 임원들이 도전 박우당께서 미륵세존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도 박성구가 미륵세존(彌勒世尊)으로 인세(人世)에 박씨(朴氏)로 오신 도전 박우당이 ‘박성미륵세존(朴聖彌勒世尊)’임을 밝혀 연원(淵源)의 맥(脈)을 이었다.
이리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신 강증산 • 조정산 • 박우당의 신위(神位)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 조성옥황상제(趙聖玉皇上帝) • 박성미륵세존(朴聖彌勒世尊)으로 밝혀짐으로써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이 정립되었으니 이로써 인류 창생을 구원할 수 있는 1만2천 도통군자가 창성되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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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솜이가 어떡해 종통을 이은 천자인지 제대로 밝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