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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창작 연구 스크랩 * 백 석 시인 ( 시모음 )
은하수 추천 0 조회 104 16.03.05 14: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백석 시인 ( 시모음 ) 

        백석 시인     본명은 기행.

 

1912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토오꾜오 아오야마(東京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

1934년    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있었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母와 아들」이,

1935년    에 시 「定州城」이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옴.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고, 그 해 함흥 영생고보 교원으로 전직, 1938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가 1939년 만주로 이주.
1948년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學風』창간호에 발표하면서 남쪽에 알려진 작품활동을 끝을 맺게 되며,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白石詩全集』(이동순 편)이 간행되면서 분단의 엄혹한 현실 속에 가려져왔던

               그의 문학이 일반에 널리 알려짐.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단풍

?안물 짙게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느뇨
?안情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안 우슴을 웃고
새?안 말을 지줄댄다
어데 靑春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十月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야한다.
十月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十月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너나무 깨웃듬이 외로히서
서 한들걸이는것이 기로다
十月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것이니 울어서도 다하
지 못한 독한 원한이 ?안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고향

나는 北關(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如來(여래) 같은 상을 하고 關公(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이른 봄

골안에 이른 봄을 알린다 하지 말라
푸른 하늘에 비낀 실구름이여,
눈 녹이는 큰길가 버들강아지여,
돌배나무 가지에 자지러진 양진이 소리여.

골안엔 이미 이른 봄이 들었더라
산기슭 부식토 끄는 곡괭이 날에,
개울섶 참버들 찌는 낫자루에,
양지족 밭에서 첫운전하는 뜨락또르 소리에.

골안엔 그보다도 앞서 이른 봄이 들었더라
감자 정당 40톤, 아마 정당 3톤 ―
관리위원회에 나붙은 생산 계획 숫자 위에
작물별 경지 분당 작업반장회의의
밤새도록 밝은 전등 불빛에.

아, 그보다도 앞서 지난해 가을
알곡을 분배받던 기쁨 속에, 감사 속에,
그때 그 가슴 치밀던 증산의 결의 속에도.

붉은 마음들 붉게 핀 이 골안에선
이른 봄으 드는 때를 가르기 어려웁더라.
이 골안 사람들의 그 붉은 마음들은
언제나 이른 봄의 결의로, 긴장으로 일터에 나서다니.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지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엎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잡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언 옛적 큰어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었인가
겨룰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여승(女僧)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山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머리 빗기가 싫다면
니가 들구 나서
머리채를 끄을구 오른다는
山이 있었다

山너머는
겨드랑이에 짓이 돋아서 장수가 된다는
더꺼머리 총각들이 살아서
색시 처녀들을 잘도 업어간다고 했다
山마루에 서면
머리 언제나 늘 그물그물
그늘만 친 건넌山에서
벼락을 맞아 바윗돌이 되었다는
큰 땅괭이 한 마리
수염을 뻗치고 건너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그 쉬영꽃 진달래 빨가니 핀 꽃바위 너머
山 잔등에는 가지취 뻐꾹채 게루기 고사리 山나물판
山나물 냄새 물씬물씬 나는데
나는 복장노루를 따라 뛰었다

 

 

 

모닥불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하는 아이도 새 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 오는 탓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절간의 소 이야기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 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낳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칠십이 넘은 노 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마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수라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바다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절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침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人精)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임금의 땅과 나무
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작고 가벼웁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五千)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고독(孤獨)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郊外)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뒷산 솔밭 속의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아 주었지만 어떠냐!

그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第一課)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이 단장(短杖) 홰홰 내두르며
교외(郊外)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 날 밤
성좌(星座)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金)모래 구르는 청류수(淸流水)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도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第二課)를 슬픔과 고적(孤寂)과 애수(哀愁)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絡絲娘)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寂寞)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船)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寂寞)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沙場)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뚝 선 저-거무리는 그림자여......

 

 

 


적막강산

오리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定州 東林 九十여 里 긴긴 하룻길에
산에 오면 산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탕약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아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여 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아진다

 


寂境(적경)

신 살구를 잘도 먹더니 눈 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축복

이 먼 타관에 온 낯설은 손을
이른 새벽부터 집으로 청하는 이웃 있도다.

어린것의 첫생일이니
어린 것 위해 축복 베풀려는 이웃 있도다.

이깔나무 대들보 굵기도 한 집엔
정주에, 큰방에, 아이 어른― 이웃드이 그득히들 모
였는데.
주인은 감자 국수 눌러, 토장국에 말고
콩나물 갓김치를 얹어 대접을 한다.

내 들으니 이 집 주인은 고아로 자라난 사람.
이 집 안주인 또한 고아로 자라난 사람.
오직 당과 조국의 품안에서
당과 조국을 어버이로 하고 자라난 사람들.

그들의 목숨도 사랑도 그리고 생활도
당과 조국에서 받은 것이어라.

그리고 그들의 귀한 한 점 혈육도
당과 조국에서 받은 것이어라.

이 아침, 감자 국수를 누르고, 콩나물 데워
이웃 사람들을 대접하는 이 집 주인들의 마음에
이 아침 콩나물을 놓은 감자 국수를 무주하여
이 집 주인들의 대접을 받는 이웃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 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간절한 축복
그리고 당과 조국의 은혜에 대한 한량없는 감사.

나도 이 아침 축복 받는 어린 것을 바라보며,
당과 조국의 은혜 속에 태어나 이 어린 생명이
당과 조국의 은혜 속에 길고 탈 없는 한평생을 누리
기와,
그 한평생이 당과 조국을 기쁘게 하는 한평생이 되기
를 비노라.

 




초저녁 이 산골에 눈이 내린다.
조용히 조용히 눈이 내린다.
갈매나무, 돌배나무 엉클어진 숲 사이
무리돌이 주저앉은 오솔길 위에
함박눈, 눈이 내린다.

초저녁 호젓도 한 이 외딴 길을
마을의 여인 하나 걸어간다
모롱고지 하나 돌아 작업반장네 집
이 집에 노전결이 밤 작업에 간다.

모범 농민, 군 대의원, 그리고 어엿한 당원―
박순옥 아맹이의 위에 눈이 내린다
지아비, 원수를 치는 싸움에 바치고
여덟 자식 고이 길러내는 이 홀어미의 어깨에,
늙은 시아비, 늙은 시어미 정성으로 섬기여,
그 효성 눈물겨운 이 갸륵한 며느리의 잔등에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이 여인의 마음에도 눈이 내린다
잔잔하고 고로운 그 마음에,
때로는 거센 물결치는 그 마음에
슬프고 즐거운 지난날의 추억들 위에,
타오르는 원수에의 증오 위에,
또 하루 당의 뜻대로 살은 떳떳한 마음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이 쌓인다.

다정한 이야기같이, 살뜰한 쓰다듬같이
눈이 내린다.
위안같이, 동정같이, 고무같이
눈이 내린다.
이 호젓한 밤길에 눈이 내린다.
여인의 발자국을 그리며 지우며,
뜨거워 뜨거운 이 여인의 가슴속
가지가지 생각의 자국을 그리며 지우며
푹푹 나리여 쌓인다. 그 어느 크나큰 은총도
홀아비를 불러 낮에도 즐겁게
홀어미를 불러 이 밤도 즐겁게
더욱 큰 행복으로 가자고, 어서 가자고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는 당의 은총이.

밤길 위에,
이 길을 걷는 한 여인의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쌓인다.
은총이 내린다.
은총이 내려 쌓인다.

 

 

 

어리석은 메기

어느 산골 조그만 강에
메기 한 마리 살고 있었네

넓적한 메기네
왁살스럽고 쭉 뻗친 수염
위엄이 있어
모래지, 버들치, 잔고기들이
그 앞에선 슬슬 구망만 찾았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이
메기에게는 을시년스럽고
산골 강에 사는 잔고기들이
메기에게는 성 차지 않았네

이런 메기는 그 언제나 용이 돼서
하늘로 오르고 싶었네

하루는 이 메기 꿈을 꾸었네
조그만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
크나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설레는 물 속에서
푸른 실, 붉은 실 입에 물고
하늘로 둥둥 높이 올랐네

그러자 꿈을 깬 메기의 생각엔
이것은 분명 용이 될 꿈!

메기는 너무도 기쁘고 기뻐
그 길로 강물을 내려갔네
옆도 뒤도 돌볼 새 없이
급히도 급히도 헤엄쳐갔네

앞에서 참게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거들떠보지도 않고
"용이 되러 가네"대답하였네

뒤에서 뱀장어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돌이켜 보지도 않고
"용이 되러 가네" 대답하였네

작은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
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나설 때
늙은 숭어 한 마리 메기 앞을 막으며
어디로 가느냐 말 물었네

메기는 장한 듯 대답하는 말
"용이 되러 가네"

늙은 숭어 웃으며 다시 하는 말
"이렇듯 늙은 나도 못 되는 용,
젊은 메기 네가 어떻게 된담!"

이 말 듣자 메기는 꿈 이야기 하였네
그 좋은 꿈 이야기 늘어놓았네

그러자 늙은 숭어 껄껄 웃어 하는 말
"그것은 다름 아닌 낚시에 걸릴 꿈"

이 말에 메기는 가슴이 철렁
그러자 얼른 눈 둘러보니
실 같이 가느단 빨간 지렁이
웬일인가 제 옆으로 흘러가누나

작은 강, 큰 강 헤엄쳐 내리며
배도 출출히 고픈 김이라
용도 꿈도 낚시도 다 잊은 메기
지렁이도 낚싯줄도 덥석 물었네

꿈에 물은 붉은 실, 붉은 지렁이
꿈에 물은 푸른 실, 푸른 낚싯줄
꿈에 둥둥 하늘로 오른 그대로
낚싯줄에 둥둥 달려 메기 올랐네

어리석고 헛된 꿈을 믿어
용이 되려 바다로 내려 왔다가
낚시에 걸려 죽게 된 메기
눈에 암암 자꾸만 보이는 것은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이것들이 차마 잊히지 않아
메기는 자꾸만 몸부림쳤네
낚시를 벗어나려 푸덕거렸네



준치가시

준치는 옛날엔
가시 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 날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푸른 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일 데로
찾아갔네.

그기들을 찾아가
준치는 말했네
가시를 하나씩만
꽃아달라고
고기들은 준치를
반겨 맞으며
준치가 달라는
가시 주었네,
저마끔 가시들을
꽂아주었네.
큰 고기는 큰 가시
잔 고기는 잔 가시,
등 가시도 배 가시도
꽂아주었네.

가시 없던 준치는
가시가 많아져
기쁜 마음 못 이겨
떠나려 했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간다는 준치를
못 간다 했네.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고 하고,
붙잡는 고기들을
뿌리치며
온 길을 되돌아
달아났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르며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이때부터 준치는
가시 많은 고기,
꼬리에 더욱이
가시 많은 고기.

준치를 먹을때엔
나물지 말자,
가시가 많다고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



산골총각

어느 산골에
늙은 어미와
총각 아들 하나
가난하게 살았네.

집 뒤 높은 산엔
땅속도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에
백년 묵은 오소리가
살고 있었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오소리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갔네.

하루는 아들 총각
밭으로 일 나가며
뜰악에 널은 오조 멍석
늙은 어미 보라 했네

(어머니, 어머니,
오조 멍석 잘 보세요,
뒷산 오소리가
내려 올지 몰라요.)

그러자 얼마 안 가
아니나 다를까
뒷산 오소리
앙금앙금 내려왔네.

오소리는 대바람에
조 멍석에 오더니
이 귀 차고
저 귀 차고
멍석을 두루루 말아
냉큼 들어
등에 지고
가려고 했네.

조 멍석을 지키던
늙은 그 어미
죽을 애를 다 써
소리지르며
오소리를 붙들고
멱씨름했네.

그러나 아뿔싸
늙은 어미 힘 없어
오소리의 뒷발에
채여서 쓰러졌네.

오소리는 좋아라고
오조 멍석 휘딱 지고
뒷산 제 집으로
재촉 재촉 돌아갔네.

해 저물어
일 끝내고
아들 총각 돌아왔네.
오조 멍석
간 곳 없고
늙은 어미
쓰러졌네.

오소리의 한 짓인 줄
아들 총각 알아채고
슬프고 분한 마음
선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을 찾아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오조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범벅할까,

에라 궁금한데
떡이나 치자!)

오소리는 오조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덧거리도 힘껏 걸어
모으로 메쳐댔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뒷발로 걸어 차서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채인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동쪽 마을
늙은 소를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랫더니 늙은 소가
대답하는 말―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기장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노치 지질까,

에라 입맛 없는데
죽이나 쑤자!)

오소리는 기장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애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대가리로 받아넘겨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받긴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서쪽 마을
장수바위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장수바위
대답하는 말―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찰벼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전병 지질까

에라 시장한데
밥이나 짓자!)

오소리는 찰벼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이빨로 물고 닥채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물린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남쪽 마을
늙은 영감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늙은 영감
대답하는 말―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수수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지짐 지질까,

에라 배도 부른데
지짐이나 지지자!)

오소리는 수수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쳤네.

그러자 오소리는
콩하고 곤두박혀
네 다리 쭉 펴며
피두룩 죽고 말았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땅속에 고래 같은
기와집 짓고,

잘 입고 잘 먹던
백 년 묵은 오소리,
이렇게 하여
죽고 말았네.

그러자 아들 총각
이 산골 저 산골에
널리널리 소문놨네―

백년 묵은 오소리
둘러 메쳐 죽였으니
쌀 빼앗긴 사람
쌀 찾아가고,
옷 빼앗긴 사람
옷 찾아가라고.

그리고 땅속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은
땅 위로 헐어내다
여러 채 집을 짓고
집 없는 사람들께
들어 살게 하였네.

이리하여 어느 산골
가난한 총각 하나,
오소리 성화 받던
이 산골, 저 산골을
평안히 마음놓고
잘들 살게 하였네.




멧새 소리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별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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